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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진도가 느린 것 같아서 분량을 꽉꽉 채워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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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론맛세계 님, 뿌우릉 님, 에이스1 님, 냥냥000 님, 탄사난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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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좋은 하루 되시기를 :D
대학 축제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
본인이 입을 맞춰놓고 동공지진이 일어난 도유이.
서주환은 픽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뭐야, 하는 척만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미, 미안! 춤추다 흥분해서 그만!”
한껏 당황하는 도유이의 반응에 그는 짐짓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우. 미안하다, 유이야. 오빠는 네 마음을 받아주지 못해요.”
도유이가 몸을 크게 들썩이며 발작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춤추다가 실수한 거라고!”
“하아. 곤란하다, 정말. 나 좋아하지 마라.”
“아니라니까!?”
서주환은 낄낄 웃어대며 도유이를 놀렸다. 차라리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넘어가기 위함이었다. 사실 도유이가 왜 그랬는지 짐작 가는 바가 없지도 않았고.
‘코리오필리아가 춤출 때 흥분하는 페티시라고 했지?’
조금 전에는 놀랄 정도로 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순간적이지만 서로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듯했던 그 감각. 덕분에 서주환도 겪어보지 못한 짜릿함을 느끼고 적잖게 흥분했었다.
‘그런데 얜 춤추다 흥분하면 아무한테나 이러려나?’
설마 그건 아니지 싶었다. 어느 정도는 호감이 있으니까 나온 반응이겠지. 그리고 자신이 지닌 ‘페로몬’ 스킬도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A랭크가 된 페로몬 스킬에는 ‘모든 행동에 색기(이성에게 성적 호감을 일으키는 매력)가 깃든다’라는 효과가 추가되었다. 필시 춤에도 그런 느낌이 묻어났을 터다.
“씨이. 짜증나.”
한참 놀림을 받은 도유이가 분한 듯 잇소리를 냈다. 하지만 본인이 실수를 한 터라 무어라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서주환도 그를 알기에 마음껏 그녀를 놀려먹은 것이었다.
“어쭈. 당한 건 난데 왜 네가 짜증을 내?”
“아, 미안하다고. 다시 연습이나 해!”
“알아따따. 그만 할게.”
더 놀려댔다가는 오히려 분위기가 안 좋아질 듯했다.
서주환은 장난을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두 사람은 지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바닥에 뻗어버렸다.
“유이야, 여기서 자고 가도 돼? 나 지금 운전하면 사고 난다.”
“응, 자도 돼. 내일 8시 전에만 정리하면 되니까 몇 시간 정도는 눈 붙일 수 있을 거야.”
“오케이. 난 잔다.”
“아, 오빠, 잠깐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어.”
“무슨 제안?”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니 도유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얼굴이 아닌 상체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누가 봐도 몸을 훑는 눈길이었다. 현재 서주환의 상체는 땀으로 푹 절어서 하얀 면 티가 착 달라붙은 상태.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이 설핏 드러나 있었다.
서주환은 흠칫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소리쳤다.
“안 돼!”
제안을 말하려던 도유이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 안 되긴 뭐가!”
“방금 그 눈은 날 덮치려고 하는 눈이었어.”
“아니거든!?”
도유이는 허둥대며 변명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지친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였다.
“그냥 몸이 좋다고 생각한 거야!”
“역시 덮치려고?”
“아니라니까! 그게 아니라 내일 무대에서…….”
도유이는 손짓발짓까지 섞어가며 설명했다. 이내 이유를 알게 된 서주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또 뭐라고.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치? 많이도 아니고 딱 두세 개면 돼. 그것도 끝날 때 딱 몇 초만. 그럼 무조건 1등할 걸?”
“후우. 1등 하려고 선배 몸을 팔아먹다니. 진짜 못된 후배님이네.”
“아, 진짜! 좀!”
서주환은 낄낄대다가 눈을 감았다. 항상 조경준을 놀리던 모습만 봤는데 막상 놀려보니 반응이 무척 찰진 도유이였다.
*
이른 아침, 스마트폰의 알람벨이 울렸다. 하지만 밤새 춤 연습을 하느라 지친 두 사람은 누구도 일어나지 못했다. 서주환이 눈을 뜬 건 알람이 울리고 30분이 더 지나서였다.
“야, 유이야. 일어나봐.”
“헉! 지금 몇 시야?”
“일곱시 반.”
“꺄악! 늦었다! 빨리 청소해야 돼!”
“뭘 그렇게 급해? 축제라서 평소보다 늦게 가도 되잖아.”
“안 돼! 빨리 치워야 돼!”
어째서인지 시간이 한참 남았음에도 허둥지둥하는 도유이.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그녀를 따라 빠르게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청소를 끝마쳤을 무렵, 그녀가 기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막 걸레질을 마무리했을 쯤 드르륵, 연습실 문이 열렸다.
“…도유이?”
“헉! 어, 언니들. 안녕하세요.”
문밖에는 세 명의 여자가 서있었다. 그녀들 중 가운데 있던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학교 때문에 당분간 못 온다면서?”
“춤 연습하러…….”
“너희 이미 축제 시작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연습을 한다고? 진즉 하지 않고선. 쯧.”
“아, 그게 멤버 중 한 명이…”
도유이는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새빨간 머리의 여자는 손을 휘저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됐고, 빨리 나가줄래? 청소는 다 했지?”
“…네. 깨끗이 치워놨어요.”
서주환은 그 장면을 멀뚱히 지켜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척 보기에도 그리 좋아 보이는 사이는 아니었다.
‘어젠 다들 친한 것 같더니.’
아무래도 모두가 친한 건 아닌 듯했다. 대형 스튜디오이니 만큼 소속된 인원도 많을 터. 그 중 사이가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세 여자는 저들끼리 도유이를 보며 아무렇게나 떠들어댔다.
“청소나 하면서 빌붙어 있는 년이 누구 마음대로 연습실을 사용하는 거야?”
“맞아. 외부인까지 끌고 와서는.”
“왕언니 허락 받았는데요…….”
“어머, 말대꾸 하는 것 좀 봐. 왕언니 허락 받았으면 우린 개무시 해도 된다는 거야?”
“…….”
“그리고 네가 밤새 정말 연습만 했을지 어떻게 아니?”
의미심장하게 말한 여자의 시선은 곧 서주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위아래로 서주환을 훑어보더니 픽 웃었다.
“유이 친구니?”
음. 역시 마음에 안 드는 여자다. 언제 봤다고 반말인지. 서주환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어. 학교 선밴데.”
마주 돌아오는 반말에 눈썹을 꿈틀하는 여자. 하지만 그녀는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너 당당해서 마음에 든다. 이름이 뭐야?”
“난 너 마음에 안 드는데. 이름도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고.”
서주환은 삐딱하게 목을 꺾으며 답했다. 그에 벙 찐 표정이 된 여자는 이내 화가 난 듯 눈썹이 하늘 끝까지 올렸지만, 알 게 무언가. 먼저 무례하게 나온 건 저쪽이다. 그가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너…!”
여자가 막 소리치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킥, 하고 웃음소리가 작게 새어나왔다. 여자의 눈이 희번덕거리며 돌아갔음은 물론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의 도유이가 서있었다. 서주환과 여자를 번갈아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여간 불안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 사이 서주환은 태연자약한 어조로 말했다.
“유이야, 그만 가자. 학교 늦겠다.”
“어, 으응. 언니들 안녕히 계세요!”
두 사람은 재빨리 짐을 챙겨들었다. 곧 연습실을 나가는 두 사람의 뒤로 뒤늦은 짜증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몇 살이야!”
“어이구, 나이 많이 처먹으셔서 좋겠수다, 신호등 아줌마.”
“아, 아줌마? 신호등?”
서주환은 충격 받은 여자를 두고 문을 탁 닫았다. 뒤에서 길길이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별로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는 차에 올라탄 후 물었다.
“걔들은 아까 왜 그런 거야?”
“…그냥 내가 샘나서 그래. 지들보다 예쁘고 춤도 더 잘 추니까.”
“오. 널 왜 싫어하는지 알 것 같기도?”
그리 말하며 굉장히 재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도유이가 빽 소리쳤다.
“무슨 뜻이야!”
“큭큭. 장난이야. 화내지 마.”
“나도 장난 한 번 쳐본 거다, 뭐.”
도유이가 혀를 낼름거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서주환은 그런 도유이를 힐끔 쳐다본 후 생각했다.
‘청소나 하면서 빌붙어 있는다고 했지?’
빨강머리 여자가 했던 말이다.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적인 사정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주환은 굳이 물어보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그때 도유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그를 돌아봤다.
“맞다, 오빠. 아줌마는 알겠는데 신호등은 뭐야?”
아까 전 연습실에서 그가 했던 말을 묻는 것이다. 그는 픽 웃으며 답했다.
“여자 둘이 빨강머리에 초록머리라서.”
“한 명은 까만 머린데?”
“걘 얼굴색이 샛노랗잖아.”
“…킥! 신호등 맞네.”
“그치?”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을 떨었다. 그 태도에 도유이는 새삼 여자들의 머리와 얼굴색이 떠올라서 한참 깔깔댔다. 간신히 진정한 그녀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괜히 그를 나무랐다.
“아, 오빠 때문에 망했어. 그 언니들 나중에 분명히 나한테 뭐라고 할 걸.”
“내 탓하기야? 너도 중간에 웃었잖아.”
“…그거 언니들도 알려나?”
서주환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도유이가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이없음에 넘어갔던 것이다. 세 여자가 황당해하는 표정이 아직도 선명했다.
도유이는 다시 한 번 망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아이씨. 망할 신호등 아줌마들.”
“걔들이 뭐라고 지랄하면 말해. 확 성희롱으로 고소 해버릴 라니까.”
“응? 성희롱?”
“너랑 내가 했다는 것처럼 말하잖냐. 나 성적 수치심 느꼈어.”
“…왜 내가 기분이 나쁘지?”
도유이는 화도 내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까 그거 폰에 다 찍혔으니까 필요하면 말만 해. 나 아는 변호사 있다.”
정확히는 그가 아는 게 아니라 이석찬이 아는 것이었지만, 친구 좋다는 게 뭔가. 가끔 소개 받아서 고용도 하는 거지. 그걸로 죄가 성립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겁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다.
도유이는 그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픽 웃었다.
“그건 또 언제 찍어놨담.”
“네가 나 덮칠까봐 동영상 틀어놓고 잤… 야, 나 운전 중이야!”
“아우! 얄미워!”
*
축제 이틀 째 저녁.
서주환은 초대가수가 오기 전 진행하는 학과 장기자랑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대기 중이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 이번 순서는 출판콘텐츠학과입니다! 여자가 많은 과여서 그런지 여자 네 명에 남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무대네요. 어떤 곡의 댄스를 리메이크했다고 합니다!
사회자가 설명을 하는 사이 서주환을 비롯한 학생들은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도유이 믓찌다!”
“주환 오빠! 잘해요!”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출콘과 학생들 중에도 구경하러 온 인원이 꽤 있었다. 때마침 쉬는 시간을 받은 인원들이었다.
‘하연이랑 지경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두 사람은 칵테일 바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꽤 진득한 안무로 가득한 무대를 봤다면 분명 아닌 척 그를 갈궜을 것이다. 말만 연인이 아니지 두 사람은 이미 그와 사귀는 사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그럼 음악 틀어주세요!
이번에 출콘과 학생들이 커버한 곡은 ‘장난꾼’이라는 섹시콘셉트의 남녀 듀엣곡이다. 펑키한 일렉 사운드가 특징으로 귀를 사로잡기 좋은 곡이기도 했다.
곧 휘파람 같은 색소폰 소리가 깔렸다. 이내 One, Two, Three!하는 AR과 함께 노래가 시작됐다.
- 조금씩 점점 더~!
서주환은 무대 중앙에서 몸을 가볍게 튕기며 한 걸음씩만 작게 움직였다. 무대의 처음은 그가 특별히 할 것이 없었다. 대신 각기 다른 스타일로 꾸며 입은 네 명의 여성들이 그의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꺄아악! 예쁘다!”
“소희 언니, 섹시하다!”
출콘과 학생들은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크게 호응했다. 바람잡이 역할을 제대로 해서일까. 다른 과 학생들의 호응도 점점 많아졌다. 이내 서주환이 본격적으로 여성들과 돌아가며 춤을 추기 시작하자 환호 소리가 더욱 커졌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지.’
사실 바람잡이가 없었어도 반응이 좋았을 것이다. 도유이가 워낙 춤을 잘 가르쳐놔서다. 한 명씩 그의 어깨를 짚고 돌고 웨이브를 타는 여자들의 춤이 상당히 그럴 듯했다.
물론 그 중 압권은 단연 도유이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에서 그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속삭였다.
“오빠, 지금.”
서주환은 그녀가 알려준 타이밍에 맞춰서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을 홱 떨쳐버리고 도유이의 허리를 휘어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가는 동시에 다른 세 명이 뒤로 빠지며 백댄서로 역할을 바꿨다.
서주환과 도유이는 메인이 되어 서로에게 밀착한 채로 몸을 움직였다. 손으로 팔을 쓸어내리고, 허리와 골반에 닿을 듯 말듯하게 손을 가져간다. 도유이의 다섯 손가락이 서주환의 턱을 간질이다가 멀어지고, 그런 도유이를 붙잡아 끌어당기며 다시 합을 맞춘다.
“꺄아아악! 엄청 섹시해!”
“와, 저거 그냥 만진 거 아니야?”
“진짜겠냐. 잘 보면 떨어져 있어.”
노래 소리가 큰 와중에도 앞자리에 앉은 관객의 말이 유독 귀에 들어온다. 사실 정말로 슬쩍 만져서다. 당연히 고의는 아니고 춤을 추다보면 곧잘 일어나는 해프닝이었다.
관객석 여학생들의 환호는 점점 더 커졌다. 가죽자켓안에 입고 있는 서주환의 셔츠 단추가 어느샌가 하나둘씩 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와중 도유이가 풀어버린 것이다.
“주환 오빠 섹시하다!”
“다 풀어버려라!”
“와, 저 남자 몸 엄청 좋을 것 같다. 3대 몇 치지?”
쓸데없는 소리가 하나 섞여 있는 듯했지만 아무튼 반응은 좋았다. 도유이는 그의 셔츠 단추를 세 개째 풀어내고 더 이상 풀지 않았다. 아이돌 공연도 아니고 과한 노출을 해봐야 부담스러울 뿐이다. 쇄골과 앞섬이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다.
무대가 막바지로 다가갔다. 드럼과 일렉 사운드가 잦아들고 휘파람 소리가 멀어져간다. 이내 딱,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깔렸다.
딱, 딱, 딱.
핑거스냅 소리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도유이가 발끝을 끌면서 부드럽게 서주환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가죽자켓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고개를 들면서였다. 동시에 고개를 살짝 내린 서주환의 얼굴도 입술 부근이 절묘하게 가려진다. 관객들에게 자켓 안쪽을 상상하게 만드는 구도였다.
“와아아아아!”
환호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학생들 무대 중에서는 가장 큰 소리였다.
서주환과 도유이, 다른 세 명의 학생들은 서로 웃는 얼굴로 마주보며 이내 무대를 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출판콘텐츠학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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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끝나고 칵테일 바는 낙수효과를 받아 끝도 없이 매출을 올렸다. 덕분에 이미 코스프레 옷을 대여한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았다.
“오빠, 진짜 키스했어요?”
“형, 도유이 선배랑 사귀어요?”
서주환에게 그런 질문이 들어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아니라고 맹렬하게 부정했다. 아닌 척 이쪽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너구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티 나지 않게 지나가며 서주환의 옆구리를 꼬집어댔다. 귀여운 투정이었다.
반면 정하연은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태연하게 칵테일을 제조했다. 배우는 게 빠른 그녀는 칵테일 만드는 법도 금방 배워서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서주환은 슬쩍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하연아, 그냥 무대 도와준 거야. 알지?”
“응? 당연히 알지. 나도 그때 같이 들었잖아.”
도유이가 허리 숙이며 부탁한 건 정하연도 함께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자리였다. 진즉에 그녀도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서주환은 태연자약한 그녀의 태도에 눈꼬리를 긁적였다.
‘아무렇지 않으니까 조금 섭섭하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녀가 상처받는 것보단 낫지 싶었다.
사실 정하연과 유지경은 애매한 관계 때문에라도 그에게 일부러 여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고작해야 귀여운 질투를 하며 꼬집는 것 정도일까.
특히 정하연은 더 티를 내지 않았는데, 일례로는 한수아와의 관계를 털어놓았음에도 그럴 줄 알았다며 납득하던 모습을 보였었다.
‘그래도 가끔은 질투하는 모습도 보고 싶긴 하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서주환은 스스로를 나무라며 다시 요리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야, 서주환. 나 왔어.”
“말을 하지. 내가 갔을 텐데. 밤중에 위험하게.”
“그보다 이거…….”
새벽 시간, 자취방에 찾아온 정하연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옷을 하나 꺼내보였다. 그가 사준 메이드복과 고양이 머리띠였다.
서주환은 그날 정하연이 질투가 없는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것이란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섯 발이나 뺌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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