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27화 (22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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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덕훈이 아낍니다.

작중 치나 쨩은 주문토끼의 치노입니다.

이 캐릭터도 키가 149cm더라고요.

참고로 전 주문토끼 1화 보고 하차 했습니다ㅎㅎ

힐링물이라고 해서 봤는데... 항마력이...

*

능력Skyey 님, 유돈노빠 님, H1Jack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D

방학일상

장덕훈은 남중, 남고를 나왔다. 그래서 남자답게 생긴 얼굴과 좋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여자와 교류가 별로 없다. 무엇보다 그는 3D보단 2D 여성을 좋아한다.

물론 그도 신체 건강한 남자인 만큼 이성에게 호기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껏 여자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고 막상 대학에 올라오자 연애에 대한 흥미가 식었다.

‘굳이 연애를 해야 하나? 여자면… 누나 같은 거잖아.’

이러한 생각도 그의 솔로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어렸을 적부터 장덕자를 보고 자라온 그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굳이 환상이 있다면 한국 여자가 아닌 일본 여자일까.

헌데, 오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상형을 만났다. 정확히는 자신의 이상형을 깨달았다.

‘치나 쨩.’

별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좋아하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헌데 치나 쨩이 생각나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를 보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내가 작고 귀여운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장덕훈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상형을 깨달았다. 현실에서도 소설처럼 첫 눈에 반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소설 같다.’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이 현실로 이루어진 듯했다. 심지어 첫 눈에 반한 그 여성과 방학여행을 함께 가는, 마치 소설 같은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수아 씨가, 주환 형님을, 좋아한단 말입니까…?”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석찬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잔을 채워주며 말한다.

“술이나 마저 마시자, 덕훈아. 형이 살게.”

장덕훈은 술잔을 거부하고 소리쳤다.

“그건, 그건 모르는 거 아닙니까! 수아 씨한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고……!”

“하아. 99프로야, 인마. 나도 너 응원해주고 싶긴 한데, 그런 콩깍지는 절대 안 벗겨져. 무려 20년간 농축된 콩깍지다. 쉽게 떨어져 나가겠냐?”

“그걸 형이 어떻게 확신합니까! 근거가 없잖아요!”

“물론 대부분은 그냥 감이긴 한데…….”

감. 겨우 감으로 확신을 말하는 이석찬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 없다.

하지만 장덕훈은 알고 있었다. 이석찬의 감이 얼마나 정확한지. 차라리 어설픈 증거를 들이밀어줬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말이다.

“감, 입니까…….”

드물게 그런 사람이 있다. 어떤 근거나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고작 감 하나로 오지선다 문제를 때려 맞춰버리는 사람. 곁눈질로 슥 살펴보고 타고난 직관력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

몇 개월간 지켜본 이석찬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특출났다. 사소하게는 어떤 문제가 시험에 나올지 귀신처럼 맞추거나, 재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을 직감으로 파악한다. 크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듯이 추측하는데, 그게 모두 귀신같이 들어맞았다.

‘몰카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그랬지.’

몇 달 전 중간고사가 끝났을 쯤의 일이다. 당시 문지민과 김수지는 몰카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되었다.

서주환의 활약으로 사건은 막을 내렸지만, 그 이전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문지민과 김수지가 장덕훈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 얘기다.

두 사람은 장덕훈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오죽하면 두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나 생각될 정도였으니.

당시 이석찬은 말했다.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괜히 두 사람과 얽히지 말라고. 연애가 하고 싶은 거면 차라리 자신이 여자를 소개해주겠다고.

‘인마, 쟤네랑 놀지 마. 형이랑 놀자. 애니 같이 봐줄까?’

‘제가 추천은 해도 억지로 보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여소 해주랴?’

‘됐습니다. 전 연애 관심 없슴다.’

연애에 관심이 없기에 별 생각 없이 이석찬의 말을 따라 두 사람과 거리를 뒀다. 그러자 문지민과 김수지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떨어져나갔다. 장덕훈은 자신이 상대해주지 않으니 관심이 식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몰카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이번에도 석찬 형님의 감이 맞겠지.’

이성은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감정은 아니다.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직감 하나만 믿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형님, 저, 이만 일어나 보겠슴다…….”

“후우. 그래, 가자. 데려다줄게. 너 많이 취했다.”

“아님다. 혼자 가겠슴다.”

“새끼가… 들어가면 연락해.”

“예.”

장덕훈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이석찬은 그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헤집었다.

“아오. 고추 새끼한테 ‘들어가면 연락해’ 이지랄. 하여간 서주환 이 새낀 진짜… 우유부단한 것도 이정도면 진즉 손절인데.”

아니면 죽탱이를 돌려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던가 말이다.

“그 놈은 이상하게 별 걱정이 안 된단 말이지.”

어떻게든 좋게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어설프게 관여하기보단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더 좋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이상한 새끼.”

그게 아니었으면 정하연과 더럽게 얽힌 시점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나쁜 새끼였으면 아예 밟아놨을 거고.

“알아서들 해라.”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내심으로는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휴.”

아무려면 어쩌겠는가.

이미 몇 없는 친구가 되어버렸는데.

*

유지경은 성큼성큼 길을 거닐며 씨근덕댔다. 그녀는 막 정하연과 대작을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아오! 답답한 언니! 호구가 따로 없네!”

단 둘이 술을 마시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았다. 바로 서주환에 대한 얘기였다.

“기껏 둘이서만 얘기한 건데…….”

두 사람은 이제껏 단 둘이 시간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다. 분명 친한 언니 동생 사이였지만 무의식중에 둘만 남는 상황을 피했기 때문이다.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에 되도록 불편한 화제를 피해왔다.

바로 그 속내를 오늘 시원하게 터놓았다. 두 사람 모두 서주환을 좋아하고 있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했다.

*

유지경이 술잔을 빙글 돌리며 묻는다.

“언니는 주환 오빠가 몇 명이나 만나고 있을 것 같아? 난 솔직히 우리 둘이 끝은 아닐 것 같거든?”

“…범위가 너무 넓은데.”

유지경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서주환이 직접적으로 다른 여자를 언급한 적은 전혀 없지만 몸을 섞은 여자의 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서주환은 이상하게도 여자들을 홀리는 야한 냄새와 분위기를 풍겨댔다. 심지어 그 향과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점점 진해졌으니.

여자들이 안 꼬일 수가 없는 남자라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럼 우리 같은 애매한 관계로 좁혀서. 섹파 이상 연인 미만.”

“우리까지 셋? 넷?”

“어떻게 나온 추측이야?”

“사귈 때 들은 게 있어. 나랑 사귀기 전에 두 명이랑 해봤다고 했거든.”

“그 오빠 미친 새끼네! 사귈 때 그런 걸 말했다고?!”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허. 언니도 정상은 아니구나.”

“…너구리 혼난다?”

“참나. 내가 언니 앞에서도 너굴거릴까봐서? 메롱이다.”

“……”

입을 다문 정하연의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무표정한 그녀의 눈초리에 유지경은 움찔했다. 연애 관련 이야기만 하면 얼빵해지는 주제에 싸늘한 얼굴로 분위기를 잡으니 위압감이 느껴졌다. 서주환이 매도할 때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노, 노려보면 어쩌려고? 내가 왜 너굴거려야 되는데!”

“너굴거릴 필요는 없지. 그런데 우리 지경이, 언니한테 많이 건방지다?”

그 순간 정하연이 손을 움직여 유지경을 잡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위아래가 반전하며 침대에 눕혀진다. 유지경은 체구부터 기술까지 정하연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흐약! 꺄하하핳! 미, 미안! 너굴! 존나 너굴!”

유지경은 굴복했다. 말로는 안 질 자신이 있었지만 정하연은 분위기와 힘으로 그녀를 제압했다. 간지럼 때문에 웃다가 질식사 하는 줄 알았다.

“아, 아무튼 내가 얘기하자고 한 이유는 수아 때문이야.”

“아. 수아.”

“수아가 주환 오빠 소꿉친구인 건 언니도 알지?”

“응. 얼마 전에 주환이한테 고백도 했다고…….”

“에엑?!”

“그런데 주환이가 거절했대.”

“그, 그렇구나. 동생으로 생각한다는 게 진짜였어.”

유지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수아가 서주환을 좋아하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편집자로 취업하면서 조만간이라는 기류도 읽었다. 그런데 설마 벌써 고백 했을 줄은…….

안도하던 것도 잠시.

유지경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도 안심하면 안 돼. 내가 불안했던 건 최근 주환 오빠 태도가 이상해서였거든.”

“이상하다고?”

“응. 그 오빠 분명히 수아를 친동생처럼 대했는데 요즘 이상해. 단순히 고백 때문에 어색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아니야. 조만간 일 날 걸.”

정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서주환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다름 아닌 서주환이었으니까.

유지경이 그런 정하연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견제하자. 소꿉친구라고, 소꿉친구. 만약 일 나면 다른 여자들처럼 한 번으로는 안 끝난단 말이야.”

그녀가 방학여행에 한수아와 서주희가 함께 가는 걸 은근히 반대한 이유였다.

그가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건 싫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마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많을 걸로 추측되는 경쟁자를 더 늘릴 수는 없었다. 그것도 소꿉친구라는 강력한 위치를 가진 여자는 더더욱 말이다.

“오빠한테 몇 명이나 있는지는 몰라도 나랑 언니한테 제일 마음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언니도 좀 도와줘.”

정하연과 자리를 만든 이유였다. 그녀와 함께 서주환에게 거듭 답을 받아낸다면 혹시 상황이 닥치더라도 거절할 가능성이 커진다. 서주환은 분명 쓰레기에 개새끼지만 은근히 마음이 약하니까 분명 통할 것이다.

하지만 정하연의 반응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돌아왔다.

“난 안 할래.”

“…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왜, 왜? 언니는 불안하지도 않아? 수아가 제일 위험한 상대라니까?”

정하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라고 안 불안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너랑 나는?”

“…….”

“불안한 걸로 치면 난 지경이 네가 더 불안해. 아, 네가 싫다는 게 아니라…….”

정하연은 말을 골랐다.

“그런 식으로 불안해할 거면 끝도 없다는 얘기야. 별로 주환이를 압박하고 싶지도 않고. 걔 그러는 거 너도 다 알고 만나는 거잖아?”

서주환이 아무 것도 밝히지 않았으면 모를까 정하연 자신도, 유지경도 모두 알고 만나는 입장이었다. 물론 서운할 수는 있다. 실제로 가끔 서운하거나 심통 난 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얼마 전만 해도 그랬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건 의미가 달라진다. 이제 와서 그를 탓하고 압박한다면 지금의 관계가 어그러질 터였다.

‘이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유지경은 그런 정하연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물론 그녀도 서주환이 그러는 걸 알고 만났다. 처음 떡을 쳤을 때부터 여자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 투정도 못한단 말인가? 마음에 둔 여자를 쳐내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자는 것뿐이었다. 경쟁자를 밀어내지는 못해도 경쟁자가 더 늘어나지 않도록 대비할 수는 있지 않은가.

생긴 건 차갑고 도도해 보이면서, 까탈스럽기로는 제일일 것 같은 여자가 왜 이리 착해빠진 걸까. 아니, 이건 착한 게 아니라 그냥 호구다. 아니면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

유지경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대체 언니는 뭘 믿고 그럴 수 있어?”

정하연의 대답은 지체 없이 돌아왔다.

“약속했거든.”

“약속?”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옆에 있겠다고 했어.”

정하연은 한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비가 쏟아지던 날. 어머니의 기일. 불현 듯 나타났던 서주환.

그리고 그가 어머니의 묘비 앞에서 했던 말들.

‘결혼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 할 것 같아요. 얘 아니면 다른 여자랑도 마찬가지고, 하연이가 제 첫 여자친구이고 마지막 연애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연이 옆에 계속 있어주겠다고.’

정하연은 그날을 기억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자신은 그날 서주환에게 붙잡혀버렸노라고.

‘뭘 믿고 자신감을 갖는 게 아니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더 아파지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

유지경은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 확고한 믿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니까 더 불안해야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걸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자신은 이렇게 불안하기만 한데.

유지경은 입을 달싹이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만약, 만약 오빠가 언니를 떠나면? 그렇게 안일하게 있다가 다른 여자한테 가버리면…?”

“그럼…….”

말끝을 흐린 정하연은 곧 예쁘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 표정을 본 유지경은 흠칫, 겁먹은 너구리처럼 목을 움츠렸다.

*

너구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으레 겁먹은 짐승이 위협하듯 목소리를 토해냈다.

“호구 언니! 바보! 멍청이! 맨날 삽질이나 하는 찌질이!”

유지경은 차마 앞에서 하지 못했던 욕들을 내뱉으며 길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저기서 산만한 덩치의 남자가 걸어왔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위압감에 겁을 먹게 되는 덩치였다.

“유지경…?”

남자가 그녀를 불렀다.

다른 길로 돌아갈까 눈치를 보던 유지경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덕훈이야?”

장덕훈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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