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22화 (22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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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이걸로 방송 관련 내용은 끝! 일 걸요?

*

메론맛세계 님, 제이워터 님, 고구마맛사탕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설날 님, 소천흑월 님, ㅇㅣ아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D

나랑 놀아달란 말이야!

위기는 곧 기회다.

고전적이고 낡아빠진 말이지만 그만큼 삶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다. 적어도 현재의 한수아로서는 온몸으로 체감되는 말이었다.

“주희야, 평균 시청자 수가 엄청 올랐어!”

“이게 다 지경이, 아니, 지경 언니 덕분이야.”

“흐흫.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니까.”

“나도! 나도 언니라고 부를래! 우와, 지경 언니!”

“수, 수아까지. 흐흫.”

유지경의 의도가 제대로 들어맞았다.

커뮤니티에서 유입된 사람 중 일부가 그대로 팔로우를 누르고 고정 시청자가 된 것이다. 한수아는 실력을 증명하며 트릭키TV의 대표적인 싸이킥워치 방송인이 되었다.

결정적인 기폭제는 유지경이 만든 매드무비였다. 그녀는 처음 논란이 터지자마자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보고 영상물을 하나 작업했다. 며칠 전 고미TV의 편집자가 되기 위해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던 매드무비. 그것을 베이스로 하여 지난 며칠간의 최신 영상을 이어 붙였다.

유지경이 부리나케 만든 영상물은 방송에 순풍을 달았다. 매드무비가 위튜브에 올라가며 알고리즘을 탔고, 짤방으로 커뮤니티를 떠돌며 유명해진 것이다.

- 149cm라는 댓글 진짜임? ㄹㅇ?

- 이게 20살 여고생? 이게 20살 여고생? 이게 20살 여고생?

- ㅈㄴ집에서 키우고 싶게 생겼네ㅋㅋㅋㅋㅋ

처음에는 한수아의 외모에 대한 글이 많았다. 20살이면서 여고생이라는 언밸런스함과 149cm밖에 안 되는 작은 키, 거기에 더해 귀엽고 동글동글한 외모의 여자가 한창 유행하는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게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영상을 본 사람들의 관심은 그녀의 게임 실력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 와 씨, 이게 여자 플레이라고? 서폿도 아니고 딜러인데 ㅈㄴ잘하네.

- 다른 건 마스터 수준 같은데 저격총 에임이 돌았네. 조준하고 쏘는 게 거의 즉발이잖아. 핵 아님?

└ 핵 아님. 손캠으로 실력 증명했음.

└ 아니ㅋㅋㅋㅋ 얼굴은 귀여운데 저격은 ㅈㄴ 살벌하네.

싸이킥워치의 최초 여성 챌린저.

그것도 서폿이 아니라 딜러로 달성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헌데 너무 화제가 됐던 걸까.

8월이 되었을 무렵, 한수아의 이메일과 방송용 계정으로 놀랄만한 제안 하나가 들어왔다.

[싸이킥워치 프로 팀GRM에 한고미 님을 꼭 영입하고 싶습니다.]

메일을 본 한수아의 입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나왔다.

“으, 우와아! 나한테 프로게이머가 되래!”

한 팀에서만 온 게 아니었다. 다섯 팀이나 영입 제안을 보내왔다.

“역시 수아도 왔구나.”

“어? 환이 오빠도 받았어?”

“응. 난 세 팀에서 왔어.”

그리 말하는 서주환도 얼떨떨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영입 제안을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설마 취미로 즐기던 게임에서 프로 영입 제안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분명 리그가 이제 막 창설될 때였지.’

싸이킥워치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는 고작 4개월 정도. 게임의 흥행과 시장성을 빠르게 판단한 기업들이 프로 리그를 창설하고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었다. 그 와중 트릭키TV에서 화제가 된 한수아와 서주환에게 영입 제안을 보내온 것이었다.

‘나한테까지 보낼 줄은.’

한수아는 흥행성이 충분하다. 귀여운 외모와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여성 프로게이머. 그것도 딜러라는 점에서 새로 창설할 프로 리그 시장을 키우는 데 무척이나 적절한 선수였다.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좋다는 소리다.

반면 서주환은 이전과 달라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고 방송인도 아니었으니 순수하게 실력만 보고 제안했다는 뜻이다. 그의 특이한 점이라면 특수능력인 ‘멀티태스킹’능력을 살리기 위해서 보이스 채팅으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 정도일까. 실제로 영입 제안서에도 전략적인 플레이를 인상 깊게 봤다고 나와 있었다.

‘프로는 무슨.’

아주 잠시 혹 하는 마음이 생기긴 했지만 금세 생각을 접었다. 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지닌 게임 재능의 잠재등급은 B+가 최대치였다.

게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에야 프로씬을 씹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에서 회귀 한 그에겐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정보와 게임 이해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1년만 지나도 판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게임을 좀 잘하던가. 한국의 PC방 문화와 게임에 대한 열정은 A급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조기교육으로 단련시킨다. 덕분에 다른 직종보다 재능의 평균치가 훨씬 높은 게 바로 프로 게이머였다.

“수아야, 너는 어떡할 거야? 생각 있으면 잘 고민해봐. 내가 보기엔 너 엄청 재능 있어.”

“으응. 일단 환이 오빤 안 하는 거지?”

“난 학교도 다녀야 하고 글도 쓰고 있으니까 무리지.”

“그렇구나. 으음…….”

한수아는 생각보다 깊이 고민에 잠겼다. 그것은 비단 프로 게이머 제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

한수아에게 프로 게이머 제안은 별로 의미 없는 일이었다. 설레고 기쁜 일인 건 맞지만 현재 하고 있는 방송이 더 중요했다. 다만 문득 새로운 진로가 눈앞에 열리자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생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내가 굳이 대학에 갈 필요가 있는 걸까? 물론 가고 싶긴 하지만…….’

공부를 하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저 현재 상황이 너무 잘 풀리고 있으니까 방송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한국에서 대학을 가려는 것은 대부분 배움을 위해서라기보단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다. 그리고 졸업장이 필요한 이유는 취직을 하기 위해서였다.

헌데 한수아는 이미 돈을 벌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액수로 말이다. 안 그래도 날로 커지던 방송은 이번 기회를 만나 순풍에 돛을 단 듯 급성장의 물결을 탔다.

상황이 이러하니 과연 대학에 가는 것이 맞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여전히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음이 현실적인 이유가 아닌 너무 어린 생각으로만 여겨져서 고민이 됐다.

“수아야,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했어. 무슨 고민 있는 거야?”

대학을 가는 것에 회의감이 드니 공부에 집중이 잘 될 리가 없다. 결국 과외 중 지적을 받고 만 한수아는 시무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주환은 괴외가 끝난 후 그녀에게 물었다.

“프로 게이머 때문에 그래? 안 한다고 했잖아.”

“으응. 그거 때문은 아니야.”

“흐음. 나한테 말 못할 거야?”

한수아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건 자신의 생각이 너무 어려 보이진 않을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서주환은 그런 한수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머리에 손이 닿자 반사적으로 헤헤 웃으며 부비는 한수아. 그 멍멍이 같은 모습에 픽 웃음이 나온다. 그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버릇이 생긴 이유는 전적으로 한수아 때문이었다.

“수아야.”

“응응.”

“오빠랑 술이나 한 잔 할까?”

“응! …응?”

한수아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술?”

서주환이 먼저 술을 먹자고 제안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고민상담을 위한 제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시 고맙고 믿음직한 오빠였다.

그렇게 헤헤 미소 짓는 그 순간, 한수아는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 차례 눈을 크게 뜬 그녀는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실래!”

“하하. 술 마시고 싶었어? 엄청 좋아하네.”

서주환은 생각보다 적극적인 반응에 웃음을 흘렸다. 한수아가 술을 좋아하던가? 이전에 같이 몇 잔 마셔본 적 밖에 없었는데.

그때 한수아가 말했다.

“환이 오빠네 가서 마셔도 돼?”

“우리 집? 흠, 부모님 계시는데 상관 없어?”

술을 마시자고 한 이유는 한수아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고민을 털어놔줬으면 해서였다. 헌데 집에는 부모님과 서주희가 있었다.

한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빠 자취방 가서 마시고 싶어.”

“내 자취방?”

“응!”

한수아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반짝 빛났다.

*

서주환은 한수아를 데리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미리 한수아의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음은 물론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호호. 그럼, 당연히 괜찮지. 얼마든지 데려가렴. 평생 데려가도 된단다.’

‘하하.’

‘아참, 대신 그건 꼭 써야한다? 알지?’

‘…그게 뭔데요?’

‘에이, 알면서. 오호호.’

‘알긴 뭘요?!’

전화 너머로도 음흉하게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뒤로 ‘속도위반은 허락 못한다!’ 하는 외침은 한수아의 아빠인 한정석의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반쯤 진담임을 알고 있기에 더욱 난감했다.

‘수아는 동생인데.’

태어났을 때부터 보고 자란 동생이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친동생처럼 느껴지는 건 물론 조금은 아빠의 마음도 있었다.

추측컨대 남매사이라고 생각하는 건 한수아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했다.

그가 한수아네 집에 찾아갈 때마다 그녀의 부모님은 짓궂게 웃으며 언제 결혼할 건지, 애는 몇 명이나 낳을 건지 물어보곤 했다.

회귀 전의 서주환은 그럴 때면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한수아도 그게 무슨 소리냐며 엄마와 아빠를 타박했다.

반면 이번 생의 그는 넉살 좋게 답했다.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니까 10년 후에나 얘기하자며 기한을 미뤘고, 한정석은 5년으로 하자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둘의 장난 같은 대화에 한수아는 뭘 협상하는 거냐고 폭발했었다.

그렇기에 서주환은 한수아 또한 자신을 친오빠처럼 여긴다고 생각했다.

서주화는 친오빠, 혹은 아빠의 마음으로 한수아의 고민을 들었다.

“으음. 대학에 가야하나, 방송에 집중해야하나 고민이라고?”

한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솔직히 지금 방송이 너무 잘 되잖아. 조금 있으면 벌써 20만이야. 나처럼 빠르고 꾸준하게 구독자를 올린 사람은 드물다고 하더라.”

“하긴. 확실히 잘 크긴 했지.”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고작 6개월 남짓. 그 짧은 시간 안에 구독자 10만을 넘게 달성하더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탄력을 받아 20만을 찍었다. 규모가 이미 취미 수준을 넘은 것이다. 한수아가 고민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수아 방송이 재밌긴 하지.’

한수아는 기본적으로 귀여운 외모에 표정이 무척 다채롭다. 거기에 더해 명기(明氣)라는 특수한 재능을 지녀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마 게임 방송이 아니라 라디오 방송을 했어도 언젠가는 크게 뜨지 않았을까.

“흐음. 일단 짠 할까?”

“응! 내가 따라줄게!”

한수아는 소주를 잡고 넘치기 직전까지 따랐다.

“어어? 넘친다, 수아야.”

“헤헤. 사랑하는 만큼 따르는 거랬어!”

“푸하하.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그럼 나도 가득 따라줘야겠네.”

“에엑! 왜 이렇게 조금 따라! 환이 오빠 나 미워해?!”

“큭큭. 장난이지. 안 넘치게 조심해. 자, 짠.”

“짜안!”

그렇게 술을 홀짝이며 대화를 나눴다.

서주환은 섣부르게 말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그냥 대학 안 가고 방송 하는 게 더 좋지 않나아~ 고민 되는 거 이찌?”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술을 넘겼다. 그리고 진지해진 표정으로 한수아에게 물었다.

“그런 이유 제쳐 두고, 대학은 일단 가고 싶은 거지?”

“으응. 그런데 가고 싶은 이유가 너무 유치해서어…….”

“뭐 때문인데?”

한수아는 쉽게 말하기 힘든지 우물쭈물했다.

“안 비웃을게. 어떤 이유든 괜찮으니까 말해봐.”

“으으.”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수아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고집에 어울려서 다시 안양에 있는 자취방까지 온 서주환 아니던가.

그녀는 술잔 가득 담긴 소주를 쭈욱 들이켜고 말했다.

“재밌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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