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212화 (21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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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어제 분량까지 연찹입니다!

매듭짓기

샌드백을 친 것처럼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달려들었던 서주환은 묵직한 통증에 주춤 한 걸음 물러섰다.

후웅!

이어서 날아드는 레프트 훅.

순간, 서주환의 동공이 번쩍 빛을 발했다.

【집중: 슬로우비디오】

▶ 효과: 동체 시력과 사고가 빨라진다.

※ 박투 상황에서만 온전한 효과가 나온다.

【마안(Rank: B+】

▶ 효과1: 시력이 2.0까지 좋아지며 더 이상 손상되지 않는다.

▶ 효과2: 동체시력이 상승한다.

▶ 효과3: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강화된 동체시력이 우측에서 날아드는 훅의 움직임을 잡아낸다. 그러나 주먹이 또렷이 보인다고 해서 속도까지 함께 느려진 것은 아니다. 그는 급히 상체를 뒤로 젖혀서 훅을 피해냈다. B+의 박투 재능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다리를 뻗으라고 시켰다.

짜악!

엊그제 속성으로 배운 로우킥. 프로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일반인치고는 상당히 숙련된 킥이었다.

파앙!

장덕자는 킥을 맞았음에도 잽을 내질렀다. 날아드는 주먹에 그는 몸을 크게 뒤로 뺐다.

타탁.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지고 잠시간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그 순간 링 아래 관원들이 놀란 소리를 토했다.

“와 씨, 뭐야 저거! 저 둘이 일반인이라고? 파고드는 속도 봤냐? 이후에 라이트훅 막고 왼손 피하고 로우킥까지 날려?”

“아니, 난 저 여자가 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처음에 슈퍼맨펀치 피하고 반격한 거 봤지? 로우 맞고도 잽으로 견제하고. 저게 일반인?”

“병신아, 덕자 누님은 프로로 뛰던 사람이야. 국내 챔피언 먹을 뻔했었다고.”

“뭐? 진짜? 그럼 저 남자는?”

“몰라. 관장님이 아까 일반인이라고 하던데.”

“시발, 일반인 다 얼어 뒤졌냐?”

짧지만 강렬했던 공방에 체육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에 조용히 운동하던 사람들까지 링 주위로 모여들었다.

한편 서주환은 물러난 상태에서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

라이트 훅을 간신히 막아낸 팔에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눈앞을 경계했다.

‘미친. 한 방에 누울 뻔했네.’

뛰어 들어가서 주먹을 날렸는데 고개를 슬쩍 꺾어서 피한 장덕자의 훅이 날아왔다. 하마터면 시작하자마자 경기가 끝날 뻔한 것이다.

‘특수능력이 아니었으면… 쓰읍.’

두 번째 훅에서 아구창이 날아가고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약속을 이행하는 데 승패가 상관없다지만 먼저 제의해놓고 한 방 기절이라니 절대로 안 된다.

‘적어도 한 대는 쳐야지.’

좀 전의 로우킥은 제외다. 그녀가 다리를 들어서 타점이 틀어졌다. 유효하다고 볼 수 있는 타격이 아니었다.

그때 링 아래 콧수염 아저씨가 소리쳤다. 엊그제 봤던 체육관 코치 중 한 명이었다.

“주환아, 붙어! 덕자가 발 쓰면 너 아무것도 못한다!”

서주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 있어도 숙련도 차이는 명백하다. 전 프로인 장덕자가 제대로 발을 쓰면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겠지. 그가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치고받으려면 바짝 붙어서 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입식타격이니까!’

적어도 태클당하거나 매쳐질 염려는 없다. 그리고 격투기는 몰라도 막싸움이라면 학창시절 왕따 당할 때 질리도록 해봤다. 눈으로 보고 피하고 치면 몇 대는 때리겠지!

타악!

서주환은 다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스텝 같은 건 밟을 줄 모르지만 그냥 돌진하는 간단한 행동이라면 B+급의 ‘발재간’ 재능이 보조해준다!

“흡!”

가까이 붙자 놀란 눈을 한 장덕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이가 없는 건 분명 놀란 얼굴인데도 주먹을 뻗어온다는 것이었다.

뻐억!

오른팔을 들어서 막고, 왼손으로 잽을 날렸다.

쉬익!

복싱 같은 건 배운 적 없지만 그에겐 ‘손재주’ 재능이 있었다. 그럴듯한 잽이 허공을 갈랐다.

장덕자를 맞추지 못했다는 소리다. 그녀는 위빙으로 잽을 피하고 계속해서 몸을 흔들며 잽을 마주 날렸다.

움직이는 상대를 주먹으로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게 면적이 작은 얼굴임에야. 전문적으로 격투기를 배우지 않은 서주환이 상체를 흔드는 장덕자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쉬익!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맞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 저 사람 또 피했어!”

서주환은 특수능력과 스킬에 의해 강화된 동체시력으로 장덕자의 주먹을 대부분 피해냈다. 피하지 못한 공격은 손재주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쳐냈다.

그는 기술도 모르면서 동체시력과 손재주만으로 패링(Parrying)을 하고 있었다. 주먹을 피하는 중간 격투 재능이 시키는 대로 날카로운 공격을 하기까지! 도저히 일반인이라고 볼 수 없는 공세였다.

하지만 그도 얼마 가지 못했다.

얼굴로 주먹을 날리던 장덕자가 서주환의 복부를 노렸다. 타격점이 바뀌자 눈으로 봤음에도 몸의 반응이 일순 느려졌다.

뻐억!

묵직한 고통과 함께 내장이 밀어 올려지는 느낌. 이게 정말 여자가 내지른 주먹이 맞는가?

“크웁!”

서주환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선수들이 왜 마우스피스를 끼우는지 알 것 같았다. 맞을 때마다 이렇게 이를 꽉 깨물면 남아나지를 않겠지.

탁, 타탁!

복부를 친 장덕자가 스텝을 밟아 멀어졌다. 순간 코치의 말이 떠올랐다. 붙어서 쳐야 한다!

서주환은 곧장 따라붙어서 주먹을 휘둘렀다.

부웅!

되는 대로 크게 휘두른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바람 소리를 일으켰다. 장덕자가 상체를 뒤로 젖혀서 피해내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특수능력, 럭키핸드의 행운이 매우 낮은 확률로 발동합니다!]

따라가기 위해 몸을 깊게 숙인 서주환의 주먹 궤도가 횡에서 직선으로 바뀌었다. 경악한 장덕자가 급히 팔을 들어 올린다.

뻐어어억!

강렬한 타격음. 양팔로 주먹을 받아낸 장덕자가 뒷걸음질 쳤다.

장덕자는 얼떨떨한 얼굴로 서주환을 올려다봤다. 씩 웃으며 다시 달려드는 그가 보였다.

“…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망설이던 마음이 말끔하게 씻겨나갔다.

장덕자는 마주 달려들며 가까이 붙었다. 초보자인 그를 상대로 발을 쓰면 적당히 치고 빠지면서 끝낼 수 있겠지. 하지만 애초에 그녀의 파이팅 스타일은 근접거리에서 하는 난타전이었다.

쉬익! 팡!

서주환이 주먹을 피해내고 쳐내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쉴 틈 없이 주먹을 지르며 중간마다 그의 복부를 올려쳤다. 하지만 어느새 적응한 듯 복부를 노리는 주먹까지 패링 당한다.

‘격투기 배워본 적 없다면서!’

어떻게 이 움직임이 일반인이란 말인가. 아니, 어설픈 펀치는 일반인이 맞는데 눈으로 본 후 피하고 쳐내는 게 말도 안 된다. 단순히 눈이 좋은 건가? 펀치를 내지를 때마다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불공평한 재능.

장덕자는 서주환에게서도 그를 느꼈다. 적당히 하겠다느니 어설픈 마음으로 상대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펀치에 킥을 섞기 시작했다.

짜악!

초보자가 하체로 날아드는 공격을 막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 주먹 싸움을 하지 하단을 노릴 일은 거의 없으니까.

그녀는 서주환이 다리를 맞고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다시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을 똑바로 보고 글러브 낀 주먹을 드는 서주환. 또 다시 패링하려는 것이다.

그 순간 뻗어나가던 장덕자의 주먹이 우뚝 멈추고 발이 움직였다. 모션 페이크. 불시에 다시 로우를 맞은 서주환의 중심이 무너졌다.

휘청!

중심이 무너지면 패링도 부질없다. 크게 스윙한 훅이 얼굴을 직격했다.

뻐어억!

쿠당탕!

서주환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첫 번째 다운.

“이보게, 괜찮나?!”

놀란 대머리 관장이 카운트를 세는 것도 잊고 물었다. 장덕자의 주먹은 남성 프로에게도 밀리지 않는 펀치력을 보유했다. 일반인이 그걸 맞고 쓰러졌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서주환은 고개를 두어 번 털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우. 괜찮아요. 맞는 건 익숙해서.”

곧장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자세를 잡았다. 헤드기어가 없었으면 일어날 수 있었으려나? 어쨌든 다시 경기가 시작된다.

이번에 먼저 달려든 건 장덕자였다.

그녀는 바짝 붙어서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어설프게 상대하면 더 큰 부상을 입힐 수도 있다. 차라리 빨리 끝낼 심산이었다.

퍽, 퍼억! 짜악!

펀치와 킥이 몰아친다. 동체시력을 지녔어도 전 프로였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하니 다 피하고 쳐낼 수가 없었다.

서주환은 피하지 못한 공격은 대충 몸으로 때웠다. 학창 시절을 험하게 보내서 맷집은 자신 있는 편이다. 프로 선수의 주먹이라지만 B+급에 이르는 격투기 재능의 감각이 그를 살렸다. 아프긴 해도 결정타는 어떻게든 피해냈다.

쩌어억!

또 다시 날아온 로우킥.

서주환의 하체가 휘청이는 순간 장덕자의 어깨가 크게 움직였다. 이번 기회에 끝을 내려는 듯 큰 동작이다.

‘지금!’

서주환은 중심을 잃은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몸을 휘돌렸다. 축발과 몸이 한 바퀴를 휘릭 돌아간다.

【원숭이 발】

▶ 효과: 발을 손처럼 다룰 수 있다

그의 몸에서 처음으로 능숙한 기술이 펼쳐졌다.

빠아아악!

“커헉!”

쿠당탕탕!

뒤차기에 맞은 장덕자가 링 위를 나뒹굴었다.

관장이 다운을 선언하고 카운트를 센다.

“텐! 나인! 에잇!”

장덕자는 복부를 부여잡고 아연실색 얼굴로 서주환을 올려다봤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태권도는 배웠다고 했잖아. 이래봬도 검은띠였다고.”

물론 배운 지 1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기술을 제대로 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재능빨과 특수능력빨이었고.

‘알 게 뭐야.’

억울하면 회귀해서 시스템 받던가.

어우, 속 시원해.

*

집에 돌아온 장덕자는 터진 입술을 매만졌다.

“아야.”

낯설면서도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랜만의 스파링은 적당히 하겠다던 생각과 달리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미친 재능충…….”

일반인과는 스파링 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어떻게 서주환을 일반인으로 본단 말인가.

보통 프로 경기에서 난타전을 벌일 때면 공격을 눈으로 확인하고 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얼핏 스쳐지나가는 걸 경험과 감으로 피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주환은 그걸 보고 피한다. 눈이 얼마나 좋은 건지 공격 하나하나를 보고 반응했다.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 타고난 센스까지 좋아서 엊그제 가르쳐준 몇 가지 기술을 잘도 써먹었다.

특히 뒤차기에 복부를 맞았을 때는…….

장덕자는 쓰게 웃었다.

‘졸전이었네.’

전 프로가 일반인에게 다운을 당했다. 이후에 일방적으로 두드리다시피하며 갚아주긴 했지만 결국 승리를 따내지도 못했다. 기어코 쓰러트리기 전에 종이 울리고 만 것이다.

전 프로와 일반인의 1라운 3분 승부에 판정이 가당키나 한가. 어떻게 봐도 진 것은 자신이었다.

‘현역이었을 때면.’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훨씬 무뎌진 감각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다만, 스파링 이후 카페에서 이어진 서주환의 말이 폐부 깊숙이 들어와 아직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약속대로 듣기만 했던 그 자리가 어찌나 무겁던지.

‘편지를 써보라고 했었지.’

때로는 말보다 글이 마음을 전달하기 좋다던가. 특히 쉽게 흥분하고 성급한 자신에게는 오히려 글이 맞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편지지와 펜을 사왔다.

장덕자는 빈 종이를 한참 바라보며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아으. 편지 써본 건 초딩 때가 마지막인데.”

그래도 써야지 어쩌겠나.

어차피 지금 장덕훈과 대화를 나누기란 요원한 일이다. 열심히 써서 읽어주길 바래야지.

그렇게 장덕자는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를 완성했다.

*

장덕자가 집에 들렀다 갔다.

장덕훈은 그녀가 나간 후 방문 안으로 들어온 편지를 읽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누나’가 편지라니. 마음이 상한 상태여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 안녕, 덕훈아?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편지를 써본 게 너무 오래전이라 그러니까 이해해줘. 그래도 정말 열심히 썼으니까 끝까지 읽어줬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두서없이 시작된 편지는 무척 길게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더니 편지를 두 장이나 썼다. 지웠다 다시 쓰며 고친 흔적이 있는 걸 보아하니 대충 쓴 것 같지도 않았다.

장덕훈은 편지를 읽다가 다음 문장에서 기겁했다.

- 오늘 주환이랑 스파링을 했어.

“형님이랑?!”

걱정부터 들었다. 덕자 누나는 전 프로다. 게다가 국내 챔피언에 도전까지 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음 문장을 읽고 그는 다른 의미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내가 졌어. 주환이 엄청 잘하더라.

“형님이 이겼다고?!”

입이 떡 벌어졌다. 헬스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격투기는 다르다. 백정기 같은 양아치와 싸우는 수준이 아닐 텐데 누나를 이겼다니?

“아. 룰이 다르구나. 그리고 무승부.”

무승부도 대단하긴 마찬가지다. 장덕자의 말대로 그가 이겼다고 봐야겠지.

그는 계속 편지를 읽어나갔다.

- 주환이가 나한테 그러더라. 격투기 따위가 뭐길래 그러냐고. 다음 말을 못 들을 정도로 화가 났어. 아, 참고로 스파링은 주환이가 먼저 신청했다? 내가 싸우자고 한 거 아니야. 오해하면 안 돼!

아무튼 스파링 끝난 다음 다시 얘기를 들었어. 약속대로 듣기만 했는데, 내가 멍청하게 오해한 거더라. 주환이는 격투기를 비하한 게 아니라 내가 한 행동을 알려준 거였어. 내가 너한테 한 말을 생각하라는데, 듣고 나니까 덕훈이 너한테 뭘 잘못했는지 알겠더라.

덕훈아, 소설 같은 거라고 말해서 미안해. 네 꿈을 격투기보다 못한 것처럼 말해서 미안해.

장덕훈은 몇 번이나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가 이제껏 듣고 싶었던 말이 꾹꾹 눌러 쓴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루 전, 장덕자가 사과를 하러 왔을 때 말했다. 자신이 정말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소설 같은 거 그만 쓰고 다시 격투기를 시작하자고.

이전에 사과하러 왔을 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래서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과거의 스파링 따위가 아닌, 자신의 꿈을 무시하고 본인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누나가 질려서 얘기하기를 포기했다.

-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네 꿈을 무시하려고 한 건 아니야. 나는 덕훈이 네가 나 때문에 격투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했어. 아직도 하고 싶은데 그때의 기억 때문에 못하는 거라고…….

- 사실 예전에 집에 들렀을 때 네가 MMA프로 보면서 메모까지 하는 걸 봤거든. 그래서 미련이 남았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 맘대로 생각하고 단정 지은 거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한편으로는 우리 막둥이한테 트라우마가 남은 게 아니라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이것도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덕훈아, 누나가 많이 미안해. 성질 급한 누나라서 또 미안하고. 꿈을 무시하는 말을 해서 미안해.

부족한 누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앞으로는 내 생각을 말하기보다 네 이야기를 먼저 들을게.

P.s.)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 격투기만큼이나 멋있다고 생각해. 항상 응원할게.

*

집에 온 장덕자는 문득 억울해졌다.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말 하나 잘못 들어가지고 맞은 거 아니야? 아으, 배 아파. 얼마나 세게 찬 거야?”

헬스장에서 그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장덕훈과 화해하려는 게 격투기를 시키기 위해서냐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잘못 들었을 뿐이다. 격투기를 하지 않아도 장덕훈이 사랑하는 동생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확실히 오해를 풀어야겠어.”

서주환의 얘기를 듣기만 하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해를 풀 겨를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장덕자는 까톡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 나: 시간 돼? 내가 밥 살게. 저녁 먹자.

- 서주환: 편지는?

- 나: 전달하고 왔어. 아직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서주환: 알았어. 뭐라고 썼는지 얘기나 들어보자.

- 나: 술도 한 잔 할래?

- 서주환: 한 달 뒤에 피규어(*여성 피트니스 종목) 대회 나간다면서?

- 나: 평소에 열심히 해서 하루쯤은 괜찮아.

- 서주환: 그럼 ㅇㅋ.

성공적으로 약속을 잡았다.

장덕자는 배를 어루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뒤차기에 맞았더니 자궁이 욱신거리는 듯했다.

“아, 참.”

장덕자는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까톡 하나를 더 보냈다.

- 나: 언니 미안행. 하루만 빌릴게.

- 임수희: ?

- 나: 사랑해 언니ㅎㅎ♡

- 임수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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