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어제보다 조금 빠르지만 여전히 늦은 시각.
역시 한 번 무너지니까 쉽지 않군요...
내일은 오후 2시까지 올리겠습니다.
이것은 자체 공약.
만약 내일 2시까지 올리지 못한다면 토요일과 일요일 둘 다 연재를 할 것입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D
동물적인 그녀
장덕자는 우울했다. 역시 이번에도 동생과 화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기껏 도움까지 받았는데.’
서주환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자신만 보면 피하는 동생과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실패로 끝났으니.
‘뭐가 문제인 거지? 분명 이번엔 제대로 사과했는데!”
짐작 가는 게 없어서 너무나 답답했다. 항상 장난스럽게 사과하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무릎까지 꿇은 상태에서 세상 진지하게 용서를 구했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으니 더 이상 무얼 어찌한단 말인가.
“하아. 화내는 게 당연한가? 옛날에 내가 왜 그래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스스로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어떻게 사랑하는 동생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린단 말인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질투심에 눈이 멀어 저지른 짓이었기에 너무나 후회됐다.
장덕자와 장덕훈은 어린 시절부터 무척 친했다. 네 살 차이가 났지만 죽이 잘 맞았고, 둘 모두 격투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함께 도장을 다니며 우애를 다졌다.
먼저 운동을 배우고 있던 장덕자는 자신보다 늦게 입문한 동생에게 성심성의껏 기술을 알려주었다. 그녀 자신도 어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중등부 남자들과 대련을 해온 그녀였기에 장덕훈에게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녀 자신 따위로는 장덕훈을 가르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만 더 지나도 따라잡히는 것은 물론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갈 게 분명했다. 스승이 되겠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만큼 장덕훈의 재능은 대단했다.
장덕훈은 어렸을 적부터 빛나는 재능을 가진 원석이었다. 겉 표면에 묻은 흙먼지를 조금만 털어내고 세공한다면 누구보다 빛날 수 있는 게 바로 그녀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장덕자는, 그런 장덕훈의 재능을 죽이고 말았다.
이유는 질투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년. 동생 팔을 부러트리다니.’
이전에도 실수로 어깨 관절을 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실수였기 때문에 장덕훈 본인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팔을 부러트린 건 온전한 실수라 부를 수 없었다.
장덕자는 아직도 그날의 대련이 선명했다.
*
당시의 그녀는 고등학생.
장덕훈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15살.
그때 급격히 키가 커지고 있던 장덕훈은 자신감을 갖고 누나인 장덕자에게 도전했다. 한 번 호되게 깨진 이후로 몇 달 만에 하는 도전이었다.
“오늘은 내가 이길 거야!”
“아하핳. 그럼 누나도 안 봐준다?”
“좋아!”
장덕자는 결의에 찬 동생을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덩치가 커졌어도 동생은 동생. 네 살 차이가 나는 동생과 달리 그녀는 MMA 프로 파이터로서의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은 키도 그녀가 더 컸던 시기였으니.
뻐억!
그러나 대련이 이어질수록 그녀는 당황에 찬 눈빛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반 년 만에 대련.
불과 6개월이란 시간은 동생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박감에 질 수도 있겠다느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못하면 진다!’
그런 생각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다. 주짓수는 물론 킥복싱을 포함한 모든 운동을 동생보다 먼저 배웠다. 특히 킥복싱은 비교도 안 된다. 장덕훈은 아직 1년 남짓 배운 반면 그녀는 몇 년 동안이나 꾸준한 훈련을 거듭해 왔었다.
쉭, 뻐억!
위빙으로 주먹을 피한 장덕훈이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순간 턱, 하고 호흡이 막혔다. 동생에게 재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금방 따라잡힐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녀 또한 어렸을 적부터 남다른 재능이 있는 천재란 말을 숱하게 들어왔거늘!
‘안 돼! 질 수 없어!’
프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자신이 네 살 차이나 나는 동생에게 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장덕자의 눈이 뒤집혔다. 그 순간, 동생을 가르쳐주겠다던 생각은 사라지고 상대를 때려눕히겠다는 생각만이 그녀를 지배했다.
파앙!
잽으로 반격. 머리를 흔들어서 날아오는 펀치를 피하고 더킹으로 파고들었다. 이어지는 보디블로. 조금 전의 공격을 고스란히 되돌려준 뒤 일어나면서 어퍼!
후웅!
장덕훈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추가타를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공방. 주먹이 공기를 가르고 상대의 머리를 노린다. 잽과 잽이 오가고 스트레이트가 교차했다.
뻐억!
장덕자의 훅이 장덕훈의 얼굴을 가격했다. 돌아가는 고개와 흔들리는 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대 쪽 훅을 날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장덕훈의 재능은 빛을 발하여 주먹을 피해냈다. 그리고 훅을 치느라 열린 장덕자의 몸을 보고 눈을 번득였다.
미끌!
하지만 운까지 따라주진 않았다. 파고들려던 장덕훈은 땀을 밟고 미끄러져 중심을 잃었다.
그대로 두면 슬립으로 이어질 상황.
장덕자는 본능적으로 기회를 잡아채고 몸을 크게 돌렸다. 축발과 허리를 비틀고 회전력을 그대로 받은 돌려차기가 상단에 꽂힌다. 간신히 팔을 들어 가드한 장덕훈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MMA에서는 복싱과 달리 슬립을 다운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경기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는 뜻이다.
장덕자는 연습대련임을 잊고 나뒹군 동생의 몸 위에 올라타서 마운트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먹세례. 상대방을 때려눕히겠다는 의지를 담아 숨도 쉬지 않고 무호흡 상태에서 연신 해머를 내리꽂았다.
퍽, 퍽, 뻐억! 빠악! 쾅! 쾅! 쾅!
멈추지 않는 맹공에 지켜보던 관원들이 기겁했다.
“그만! 그만 해, 장덕자! 덕훈이 죽어!”
“야, 말려! 올라가서 말리라고!”
관장과 코치에 의해 장덕자가 멈췄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장덕훈은 그야말로 피떡이 된 상태였고, 팔은 언뜻 보기에도 퉁퉁 부어 올라있었다. 슬립 당시의 하이킥과 마운트 자세에서 쏟아지는 주먹을 막는 바람에 뼈가 부러진 것이다.
장덕훈은 그대로 병원으로 향했고 수술을 받게 됐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그만큼 타격을 받아 부러졌으면 뼛조각이 생길만도 했는데 타고난 강골이 부상을 최소한으로 막은 것이다.
하지만 육체와 달리 정신은 바로 회복되지 못했다.
당시 장덕훈의 나이는 고작 15살. 만으로는 13살에 불과했으니.
“누, 누나…….”
장덕훈은 누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미약하나마 공포심마저 엿보이는 태도였다.
그러나 18살의 장덕자는 그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동생에게 사죄하기 위해 다가갔다.
“덕훈아, 괜찮아? 내가 정말 미안…”
탁!
“…덕훈아?”
장덕훈은 살며시 잡아오는 누나의 손을 쳐냈다. 그는 스스로 한 행동에 깜짝 놀라서 겁에 질린 눈으로 장덕자에게 사과했다.
“미, 미안. 누나.”
“…아니야. 나중에 올게.”
그 뒤로 절친했던 남매는 서먹해졌다.
장덕훈은 본능적으로 겁에 질려 자신의 누나를 피했고, 장덕자는 그런 동생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실수였는데.’
스파링 중 부상이 일어나는 일은 흔한 사고였다. 주먹을 교환하고 경기에 임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제동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장덕자와 장덕훈의 스파링도 흥분을 억제하지 못한 탓에 일어난 사고이고, 미숙함에서 나온 실수였을 뿐이었다.
‘…진짜 실수야?’
장덕자는 확신이 없었다.
동생의 재능이 엄청난 걸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질투한 적이 많았다. 자신과 달리 그냥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타고난 천재. 그게 장덕훈이었다.
15살의 남성과 18살의 여성.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뚜렷하지 않은 시기. 그리고 운동인과 프로 준비생.
장덕훈은 그런 조건에서 그녀를 몰아붙였다. 현재가 아니라 1년 후였다면…….
‘내가 졌을 거야.’
1년도 필요 없었다. 불과 몇 달의 차이가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시기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병원에 있는 것은 동생이 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럼 프로 데뷔를 앞둔 상황에서 모든 자신감을 잃었겠지.
그리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흠칫!
‘내, 내가 무슨 생각을.’
동생의 팔을 부러트리고, 피떡으로 만들고 나서 한다는 생각이 다행? 스스로 한 생각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했다.
“관장님, 저 데뷔 안 할래요.”
“뭐? 덕자야, 그게 무슨 말이냐. 덕자야?”
“지금은… 안 되겠어요.”
장덕자는 스스로가 역겨워서 앞두고 있던 데뷔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아주 운동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차선으로 헬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을 포기하기란 힘든 법이었다.
19살의 장덕자는 서먹해진 동생의 눈치를 보는 한편 다시 격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데뷔하여 7전 6승 1패 5KO를 따내며 명실상부한 MMA프로가 되었다. 돈을 벌게 된 후로는 동생의 눈을 피해 독립하여 프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장덕자의 프로 생활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2패를 기록한 경기에서 그녀는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과 차원이 다른 재능의 소유자를 만났다. 마치 장덕훈을 여성화 시킨 듯한 선수를 만나 자신의 한계를 통감했다.
‘이런 사람이 세계로 가는 거구나.’
죽기 살기로 훈련한다면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세계에서 통하지 않겠지.
18살의 시합은 장덕훈이 아닌 그녀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재능의 한계. 압도적인 재능에 짓눌려 그녀는 불과 3년 만에 프로 생활을 청산했다.
장덕자는 프로를 그만두고 다양한 운동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녀가 좋아하는 건 격투기가 아닌 몸으로 하는 운동 그 자체였다.
헬스, 수영, 스키 등 각종 운동에 취미를 맛들이고 전문 PT강사가 되어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생활하며 간혹 집에 들러서 가족을 찾았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그리고… 동생에게 인사하기 위해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아! 저기선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저 선수는 다 좋은데 그라운드가 부족하네.”
MMA를 시청하고 있는 장덕훈을 발견했다. 그는 수첩에 메모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MMA를 분석 중이었다.
‘우리 막둥이가 미련이 남았었구나. 그런데 나 때문에…….’
장덕훈이 이토록 열정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이미 도전해보고 미련 없이 포기를 했지만 장덕훈은 어찌한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누나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덕훈이한테 다시 사과해야 해.’
다행히 최근에는 서먹해졌던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트라우마를 없애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괴물 같은 재능을 찬란히 펼칠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주어야 했다.
그때부터 장덕자는 동생을 다시 격투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고 성과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수희 언니의 섹스 파트너인 서주환을 만났다.
*
장덕자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주환이가 언니 파트너만 아니었어도 확 덮치는 건데.’
벌써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모른다. 그 커다란 손으로 마사지 해줄 때 얼마나 흥분되던지. 존경하는 수희 언니의 파트너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덮치고도 남았다.
‘으음. 애인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상관없나?’
순간마다 차오르는 욕정에 고민이 되었다. 잡아먹고 싶어서 눈이 돌아갈 때마다 그래도 수희 언니 거니까 어떻게든 참아내고 있었다. 겨우겨우 마사지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서주환에게 다시 도움을 구해야 된다. 기껏 기회를 만들어줬는데도 날려먹어 염치없었지만 그 외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그녀의 동생은 황소고집이 따로 없어서 부모님의 중재도 통하지 않았다.
마침 서주환은 아침 일찍 헬스장에 나왔다. 평소보다 이른 새벽 시간인데도 있다니.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걸까?
“주환아!”
장덕자는 반갑게 인사했다.
“어? 너 피곤해?”
어째 서주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잠이 부족했던 걸까? 근성장에는 충부한 수면도 중요한 법인데.
아차. 금세 또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장덕자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주환아, 미안한데 한 번만 더 도와줄 수 없을까? 부탁해. 덕훈이한테 말 좀 잘해주라. 응? 내가 진짜 맛있는 걸로 밥 살게.”
“…격투기 때문이지? 덕훈이랑 화해하고 싶은 거.”
어딘가 이상한 질문.
장덕자는 그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채지 못했다.
“앗, 너도 아는구나? 그치? 안 하긴 너무 아깝잖아. 내가 우리 막둥이 꼭 챔피언 되도록 도와줄 거야.”
역시! 서주환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장덕훈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서주환은 취미라고 했지만 그의 몸은 취미 정도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잘 빠진 스포츠 모델 체형으로 만들었지만 압축된 근육들이 얼마나 실한지 모른다. 1년도 안 되는 단기간에 이 정도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미친 듯이 운동에 매달려야만 가능했다.
‘내가 사람 잘 봤지.’
장덕자는 자신의 안목에 흐뭇함을 느꼈다. 처음 뚱뚱했을 적의 그가 미친 사람처럼 운동하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서주환을 좋게 봤다.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그때 명명백백 좋은 사람임이 분명한 서주환이 말했다.
“그깟…….”
“응?”
“그까짓 격투기가 뭐라고?”
“…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장덕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서주환은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격투기 따위가 뭐라고?”
장덕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생글생글 웃던 기색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껏 드러내지 않은 짐승의 눈빛이 번뜩였다.
서주환이 무어라 말을 이어갔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장덕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장덕자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씹어뱉었다.
“야, 다시 지껄여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