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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전 빗소리는 좋지만 비는 싫습니다.
일부러 빗소리 들으면서 글 쓰니까 갑자기 김치전과 막걸리가 땡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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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이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hbㅡchoi 님, 엘라이니 님, 무협소설광 님, 요병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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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D
덧칠하는 기억
서주환은 정하연에게도 식사를 권했다.
“나 밥 먹었다니까.”
“어허. 잔말 말고 드셔. 주방 보니까 풀떼기만 조금 주워 먹은 것 같구만 뭘.”
“풀떼기라니…….”
“사온 거 안 먹으면 내가 직접 요리한다?”
“아,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정하연은 마지못해 먹는다는 듯 떨떠름하게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막상 식사를 시작하자 맛나게 잘만 먹었다. 그의 말대로 샐러드만 조금 먹은 게 다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서주환이 픽 웃음을 흘리니 그녀가 민망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했다.
“웃지 마. 나 진짜 배 안 고팠거든?”
“누가 뭐라냐. 마저 먹기나 하시죠, 마님.”
“…되게 띠껍네.”
“너무 고맙다고? 괜찮으니까 넣어둬.”
“뭐래.”
“거 솔직하지 못하기는.”
“…너 캠프 가더니 더 재수 없어졌어.”
능글능글 대답하니 그 태도가 불만스럽다는 듯 삐죽이는 정하연이다. 그러나 정작 부루퉁한 태도와 뾰족한 말씨에서 느껴지는 건 고마움이었다. 감정이란 비단 말로써만 표현되는 게 아니었으니, 고양이를 닮은 눈매가 어느덧 호선을 그리며 누그러져 있었다.
서주환은 봉지에서 도시락을 하나 더 꺼내며 말했다.
“나 하나 더 먹을 건데, 혼자 먹기엔 좀 많다. 하연이 네가 같이 좀 먹어주라.”
“…흐흠. 어쩔 수 없지.”
“큭큭큭.”
“아, 웃지 말라고!”
“거 웃는 것도 뭐라 그러냐.”
“씨이…….”
서주환은 작게 미소 지은 채 정하연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오는 길에 포장해온 보람이 있었다.
‘빼길 잘했다.’
원래도 오려고 하긴 했지만, 쏟아지는 폭우와 벼락을 보고 느낌이 안 좋아서 강의를 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선택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역시 ‘몽마신의 축복’에서 온 메시지였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어났다. 간단하게 준비를 마친 서주환은 문밖으로 나가기 전 정하연을 돌아보고 짐짓 옷깃을 정리하며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냐?”
“어?”
갑작스런 질문에 정하연은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민망함에 틱틱대긴 했어도 그에게는 정말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응. 와줘서 고마워. 그, 밥도.”
“아니, 그거 말고.”
“응?”
그럼 무엇을 말하는 건지,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자 그가 씩 웃으며 폼을 잡았다.
“어때, 잘 어울리지?”
“아. 정장 입었구나.”
“뭐야. 그걸 이제 알았어?”
갑자기 찾아온 사실에 너무 놀라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에는 같이 대화하고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옷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고. 한데, 자세히 살펴본 그는 하얀 셔츠 위로 못 보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운동을 하면 일반적인 정장핏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난다. 보통 근육이 크고 어깨가 너무 넓으면 정장이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패션근육을 목표로 한다던 서주환은 비교적 스포츠모델처럼 날렵한 몸매라 정장이 잘 어울렸다. 특히 맞춤형으로 제작을 한 듯 라인을 따라 슬림하게 떨어지는 핏이 유려했다.
그도 스스로 잘 어울리는 걸 아는 듯 씩 웃으며 말한다.
“존나 멋있지?”
“…….”
솔직히 말해, 멋있었다.
사귈 적을 제외하면 그가 꾸민 걸 본 적은 드물었고, 정장은 아예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좀 더 어른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왜 여자들이 슈트나 제복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서주환은 대답 없는 그녀의 눈앞에 손바닥을 흔들며 물었다.
“말이 없어. 반했냐?”
“너, 넌 제발 입 좀 다물어라. 이석찬한테 물들더니 입만 열면 엄청 깨는 거 알아?”
“성격인데 어쩌겠냐. 말 돌리지 말고 평을 해주라고, 평을.”
“아, 그래. 멋있으니까 빨리 나가기나 해.”
“거 엎드려 절 받기네. 쩝.”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힐끗 뒤를 돌아봤는데, 여전히 정하연의 얼굴은 빨리 나가라는 듯 재촉하는 표정이었다.
철컥. 띠리리.
문을 닫고 뒤따르며 작게 숨을 흘리는 정하연.
불현 듯 불어온 비바람에 머리카락 사이로 귀가 잠시 드러난다. 발갛게 달아오른 귀는 이내 머리카락 사이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
안전벨트를 맨 정하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는다.
“너 그러고 보니 면허 딴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그치? 시험 기간 때 땄으니까.”
“…당연히 운전도 얼마 안 해봤겠네?”
“서너 번 해봤나? 아, 참고로 빗길 운전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리 말한 서주환은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안전벨트만 잘 매면 죽을 일은 거의 없다더라.”
“나 내릴래! 야!”
“어허. 탈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내릴 땐 아니다. 우리 하연이, 오빠 믿지?”
“미친놈아!”
날아드는 욕설에도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조용히 하라는 듯 정하연의 좌석 뒤로 손을 짚었다.
그의 예상대로 정하연은 불쑥 눈앞으로 다가온 팔뚝에 말을 멈췄다. 걷어 올린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 힘줄이 선명했다.
곧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온 서주환은 짐짓 거들먹거리는 투로 말했다.
“크. 죽이지?”
“…대체 뭐가?”
“이 깔끔한 후진을 보고도 그런 반응이란 말이야?”
“아니, 뭐, 잘 하긴 하는데.”
생각보다 시큰둥한 반응에 서주환은 김이 샜다는 듯 혀를 찼다.
“쯧. 걍 후방 카메라 볼 걸.”
“카메라 있는데 그런 거였어?!”
그것도 초보 운전자가 빗길에?
정하연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서주환도 머쓱해진 얼굴로 변명하듯 말했다.
“석찬이가 후진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 줬음. 여자들 뻑 간다고.”
“…다른 개소리는 안 하던?”
“이거 하기 전에 셔츠 꼭 걷으라더라. 그게 포인트라고.”
“참 나. 되게 좋은 거 가르쳐줬네요.”
명백히 비꼬는 투였다.
정하연은 인상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다른 애들 앞에서는 하지 마. 여자들도 남자들이 일부러 그러는 거 다 알거든?”
“쓰읍. 하여간 이석찬 허당 새끼.”
서주환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막상 그에게 면박을 준 정하연은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본래 여우짓이라는 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알고도 당해주게 되는 것 아니던가.
‘얘가 오늘 왜 이래.’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람을 감동시키질 않나, 못 보던 정장을 쫙 빼입고 어떠냐며 바라보지를 않나. 이석찬에게 배웠다며 잘 알지도 못하고 여우짓을 써먹는 것까지 하며 새삼 일부러 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껏 친구로만 보려고 노력 중인 사람한테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아니, 그냥 내가 이상한 건가?’
다시 생각해 보니까 평소에도 이랬던 것 같긴 하다. 그는 워낙 사람 놀려먹기를 좋아하고 장난기 있는 성격이라 본인도 모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런 행동은 비단 그녀에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학기 초, 4월까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꽤 달랐다. 그런데 점점 사람이 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에는 어린 동생들이 먼저 그에게 장난을 칠 정도로 친근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필 오늘이라서 민감한 걸지도…….’
유독 빈틈이 많아지는 날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그를 좋아하고 있는데, 울적한 마음까지 겹치니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크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래서야 완전히 친구 실격이 아닌가. 어떻게 알고선 찾아와가지고 사람 마음을 흔드는 건지.
그러다 문득, 정하연은 어물쩍 넘어갔던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맞다, 서주환.”
그녀는 운전 중인 서주환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여름이라고만 했지 날짜는 말해준 적 없는데?”
“쓰읍. 운전 중에는 말 걸지 마라. 나 초보 운전이고 지금 빗길이다.”
“말 돌리지 말고, 좀.”
“이게 안 통하네…….”
서주환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힐끗 정하연을 돌아봤다. 빨리 말하라는 듯 재촉하는 표정. 스킬까지 사용해서 능숙하게 운전을 하고 있어 그런지 초보 운전자라는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앞에 집중하며 말했다.
“네가 안 알려줬으면 누가 알려줬겠어? 떠오르는 사람 있지 않아?”
“…이석찬?”
“당연히 석찬이지. 그 녀석 맨날 뺀질거려도 너 많이 걱정하는 거 알잖아.”
사실 그는 지난 중간고사 기간 중 ‘교접몽’에서 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 바로 메모까지 해두었으니 잊을 리가 있겠는가.
뮬론 이석찬이 알려줬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본인이 따라가기엔 자신도 어머니의 눈치가 보이고, 무엇보다 정하연이 너무 부담스러워 해서 어쩔 수가 없다나.
‘그래도 자기 누나라고 챙기기는, 자식이.’
항상 유쾌한 텐션의 이석찬은 여기저기 잘 섞여드는 듯싶지만, 실상은 오히려 정하연보다 더 타인에게 무심하고 차가운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잘 몰랐는데, 함께 지내다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조차도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은근히 잔정이 많아서 자기 사람만큼은 잘 챙겼다. 다만 그 방법을 드러내느냐, 티 나지 않게 하느냐의 차이였다.
“석찬이한테 괜히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까.”
“그랬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연의 얼굴이 복잡한 심정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배다른 동생의 걱정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특히 이석찬의 어머니를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성격 나쁜 계모였으면 마음이 편하련만, 사람 좋은 그녀는 남편의 외도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을 본인이 배 아파 낳은 자식들과 차별 없이 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서주환은 밑을 보고 있는 정하연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야, 정하연. 빨리 다시 고개 들어.”
“으응?”
“너 그럴까봐 말 안 하려고 한 거야. 석찬이 놈도 지 누나 성격 뻔히 아니까 암말 안 한 거고. 평소에는 나랑 석찬이 놈이랑 덕훈이까지 다 휘어잡고 다니면서 왜 그래?”
그가 생각하기에 정하연은 전형적인 외강내유(外剛內柔)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차갑고 도도하기만 할 것 같은 여자가 속은 왜 이리도 정이 많고 여린지.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인데다가, 과거의 자신을 닮아서 더욱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아하하… 미안.”
“미안하라고 한 말 아닌 거 알지?”
“으응. 고마워.”
정하연도 자신의 그런 점을 알고 있기에 부끄러움 깃든 웃음을 흘렸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잘 숨기었음에 이석찬을 제외하면 알아보는 이들이 거의 없었건만, 올해 대학에 들어와서 유독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들이 많아졌다. 특히 항상 함께 다니는 서주환과 유지경, 장덕훈에게는 허들이 낮아지고는 했다.
그녀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물었다.
“그런데 이석찬이 나한테 누나라고 했어?”
별 생각 없이 한 질문이지만 말하고 보니까 정말로 궁금해진다. 지금껏 이석찬이 그녀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쓴 것은 장난칠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없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찐따새끼 또 찌질거릴 거라고 하던데?”
“…….”
정하연의 얼굴이 휴지조각마냥 구겨졌음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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