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으아아... 분량 조절 실패로 정시 연재 실패ㅠㅠ
혹시나 오해하실까 싶어 첨언합니다!
정호승 시인님의 시를 인용한 만큼 분량을 더 채웠습니다!
날먹 아니에오오.....
*
엘라이니 님, 다정무죄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이르하니아 님, adswhdgur 님, Semyaza 님, 눈꽃소이73 님, hb-choi 님, Elcid 님, 고뤵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D
리더십 캠프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는 회귀 전 주경은이 알려준 시였다. 홀로 동떨어져 있는 그에게 무엇을 느낀 건지, 그녀는 다소 뜬금없이 다가와 시를 들려주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의 서주환은 ‘수선화에게’를 싫어했다. 오히려 주경은이 직접 낭송해준 시를 듣고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었다.
23년 간 지속된 불행도 이유지만, 결정적으로 한수아가 죽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는 위로를 온전히 위로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너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니까 궁상떨지 말라’는 꾸지람으로 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 남은 시는 훗날 그에게 위로와 격려로 다가왔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며 유지경과 거리를 두었을 때 ‘수선화에게’를 보며 자기위로를 하곤 했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이 천지로 있으니 나만 특별히 불행한 게 아니다. 나는 외롭기에 사람이고, 그렇기에 외로워도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
몇 번이고 주문처럼 되뇌었더랬다.
누군가는 그저 외톨이의 자위일 뿐이라고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지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잠시나마 도망칠 장소가 필요한 법이었다. 불행한 인생을 살던 서주환에게는 웹소설과 더불어 한 편의 시가 그런 장소이며 버팀목이었다.
그래서 시를 알려준 주경은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담아 낭송한 것이었는데…….
“가, 강사님? 괜찮으세요?”
자신이 읊은 시 때문에 주경은의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당황한 기색으로 다가온 서주환.
주경은은 눈앞에 선 그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눈가를 닦아냈다.
“아이고, 죄송해요. 제가 못난 모습을 보였네요.”
“아, 아뇨. 안 못났어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아하하. 고마워요.”
주경은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작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서주환에게 말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낭송해주셨네요. 감동받아서 눈물까지 흘렸지 뭐예요.”
“하하…….”
“그래도 피드백은 확실히 해야겠죠? 주환 학생, 전반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떨지도 않고 감정을 실어서 나송할 수 있다는 건 큰 재능이에요. 하지만, 낭송 후는 조금 아쉬웠어요. 당황한 티가 너무 역력했거든요.”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였다. 거참, 울면서도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경은은 그런 서주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
“네?”
“눈꼬리 긁적이는 거, 버릇이죠?”
“아, 네…….”
서주환은 조금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하거나 머쓱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눈꼬리를 긁적이곤 했다. 살면서 별로 의식했던 적은 없었는데.
주경은이 작게 웃으며 조언했다.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문제 될 만한 버릇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렇게 주체가 되어 말하는 자리에서는 의식적으로 주의하는 게 좋아요. 당황한 게 눈에 보이거든요.”
“넵. 감사합니다.”
피드백이 끝나고 꾸벅 작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려는 때, 뒤에서 작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인간미 있게 보여서 좋았지만요.”
“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강당 앞에 선 주경은이 빨리 자리로 들어가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쪽 눈을 찡긋, 아무튼 능청스러운 모습이다.
*
1일차 리더십 교육이 끝났다.
학생들은 야외에 마련된 천막에서 고기와 술로 파티를 벌였다.
“이석찬! 그만 놀고 빨리 술이나 받아와!”
“얌마, 잔뜩 있는데 좀 천천히 하자.”
“그거 금방 떨어져. 애들 마시는 거 안 보이냐? 미리 받아놔야 돼. 아님 네가 고기 굽던가.”
“쓰읍. 고기는 네가 구워야지. 기달. 술 받아옴.”
이석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술을 받으러 갔다. 같은 고기라도 서주환이 굽는 게 확연히 맛있었기에 순순히 말을 듣는 게 좋았다. 실제로도 여러 테이블 중 서주환이 고기를 굽는 테이블에 학생들이 제일 많았다.
배준호가 고기 한 점을 집어먹으며 물었다.
“주환아, 고깃집에서 알바 얼마나 했어? 내가 구우면 왜 같은 맛이 안 나지?”
“알바는 아니고 친구들이랑 자주 구워 먹어서 그래. 거의 내가 굽거든.”
그때 고기를 오물거리던 유별이 배준호를 툭툭 치며 말한다.
“준호 오빠, 잘 보고 배워서 나중에 나 구워줘야 돼?”
“별아, 네가 더 잘 굽잖아. 그냥 네가 나 구워주라.”
“야!”
“으악! 야, 너 목 상한다? 왜 소리를 질러.”
“이게…….”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척 보기에도 유별이 배준호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배준호는 까맣게 모르는 눈치였다.
“너희 소꿉친구라고 했지?”
“어, 그치? 초딩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준호 너 여친 있어?”
“갑자기? 일단 없는데. 왜? 네가 소개시켜주려고?”
배준호가 은근히 기대하는 눈으로 물었다.
서주환은 답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적었다. 쯔쯔. 이렇게 여자 마음을 몰라서야. 그는 유별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술잔을 내밀었다.
“별아, 네가 고생이 많다.”
“…왜 당사자 빼고 다 아는 걸까요?”
“이런 놈은 대놓고 말 안 하면 모를 걸. 나중에 취하면 자빠트려봐.”
“아, 오빠!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서주환의 말에 유별이 크게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에 고기 한 점을 집어먹던 배준호가 놀라서 기침을 한다.
“아니, 왜 또 소리를 질러? 술 먹고 그러면 목 상한다니까. 배우 되겠다는 애가… 어억!”
“이 병신이!”
“별아, 그래도 내가 오빤데 병신이라니… 아, 알았어. 뭔지 몰라도 내가 미안해!”
“짜증나! 주환 오빠, 빨리 술 줘요!”
서주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유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준호 이 녀석 나중에 후회할 텐데.’
지레짐작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다.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하는 확신이었다.
‘얘네 둘 다 엄청 유명했지.’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둘의 생김새가 미래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미래의 배준호는 지금의 멀끔한 얼굴과 달리 수염을 잔뜩 길러서 산적 같은 인상이었고, 유별은 뒤늦게 젖살이 빠진 건지 지금의 귀여운, 달리 말하면 아이 같은 인상이 무척 달라져있었다.
서주환이 미래의 두 사람을 떠올리고 동일인임을 확신한 것은 상태창을 확인한 후였다.
<배준호>
성별: 남성
나이: 23
키: 178cm
몸무게: 80kg
호감도: C
현재성욕: D+
페티시: -
보유 재능: 영화감독(D/A+), 드라마감독(D/A), 관찰(B/A)
<유별>
성별: 여성
나이: 20
키: 162cm
몸무게: 45kg
호감도: D+
현재성욕: C
페티시: -
보유 재능: 배우(B/A+), 충동(C/A), 반성(C/A)
다시 한 번 둘의 재능을 확인하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허…….”
“응? 주환아,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서주환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이런 놈이 배우가 되겠다고 연기를 붙잡고 있었으니.’
지금으로부터 9년 후의 배준호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영화계에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 된다. 나이만 충분했다면 거장(巨匠)으로 불렸을 것이다.
유별도 마찬가지. 29살의 그녀는 탑배우의 반열에 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드라마 판에 발을 들이고 머지않아 영화계로 진출해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다. 훗날 그녀는 천의 얼굴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였다.
‘재능을 보니까 말이 되네.’
두 사람 모두 상위 재능의 수는 적지만, 그까짓 건 문제가 되지 않는 ‘직업 재능’을 갖고 있었다.
직업 재능. 여러 사람들의 상태창을 관찰하며 임의로 붙인 명칭이었다. 예컨대 같은 배우로써의 재능이라도 ‘연기’로 표기되는 재능과 ‘배우’로 표기되는 차이다.
‘연기’ 재능은 말 그대로 연기에 필요한 요소로 한정되지만, ‘배우’는 그 직업에 필요한 훨씬 넓은 범위의 재능을 포함한다. 그 직업에 특화된 재능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친해져놔야지.’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자신이 쓴 소설을 배준호가 감독하여 영상화시키고, 배역 중 하나를 유별이 맡아줄지도.
서주환은 조금 속물적인 생각을 하며 배준호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준호야, 너 혹시 관상이나 사주 같은 거 믿냐?”
“관상? 으음. 관심은 있는데 일부러 안 보는 편이야. 집에서 그런 걸 싫어해가지고.”
“뭐? 왜?”
서주환은 조금 당황했다. 이럼 나가린데.
유별이 술을 홀짝이며 이유를 대신 말해준다.
“준호 오빠네 집이 불교거든.”
“어? 그래서 안 본다고? 그건 좀 이상한데. 애초에 길흉화복을 보는 게 불교에서 나온 거 아니었나?”
“그래? 부처님께서 점치지 말라, 사주보지 말라, 관상보지 말라. 그렇게 말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서주환은 씩 미소 지었다. 그런 이유라면 상관없었다.
“나도 그거 알아. 미래를 점쳐서 과연 행복하겠느냐, 이런 말씀 때문이지?”
배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궁금하면서도 좀 꺼려지더라고.”
“야, 그거 너 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별이가 한 말 앞에 조건을 하나 붙여야 돼.”
“조건?”
“그래. ‘생계를 위해서’라는 전제조건. 금전이 오가는 상황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면 상대방 입맛에 맞게 고쳐주게 되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한 거야.”
“어, 진짜? 주환이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너도 불교야?”
“그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알게 됐어.”
소설 때문에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알게 됐다. 민간신앙이나 신화, 전설, 종교적인 문화 등은 장르소설을 쓸 때 참고할만한 부분이 많았다.
그때 유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요즘 공짜로 점 봐주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결국 같은 거 아닌가?”
“그러게. 스님들은 그런 거 봐주기 싫어하시고.”
서주환은 술잔을 내밀어 두 사람과 부딪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관상 좀 볼 줄 아는데, 어때? 봐줄까?”
“진짜? 관상을 볼 줄 알아?”
“재밌겠다! 오빠, 나도 봐주라!”
서주환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관상 따위는 하나도 볼 줄 모르지만, 두 사람의 미래는 대충 알고 있었다.
배준호가 무명배우로 전전하다가 감독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유별이 이십대 중반에 다른 사람과 열애설이 터진 것도. 결국 두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하는 것도 말이다.
‘어차피 결혼할 거, 처음도 네가 가져가는 게 낫지 않겠냐?’
진짜 이건 크게 한 턱 받아야 되는 건데.
서주환은 먼 미래에라도 반드시 빚을 받아내자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