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87화 (18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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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완결까지는 많이 남았습니다!

어제 말한 외전은 뜬금없이 생각난 것 뿐이랍니다.

외전은 쓸 지 안 쓸 지도 몰라요ㅎㅎ;;

*

엘라이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ruble 님, 유지원 님, 광궁 님, byEscape 님, 霧(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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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D

리더십 캠프

강당 앞에 선 주경은의 소개에 이목이 집중됐다. 수십 쌍의 시선을 받았기 때문일까. 주경은이 어깨를 움찔하며 다시 꾸벅 인사했다.

- 아, 안녕하세요. 리더십 캠프 강사 주경은이에요…….

마이크로 증폭되었음에도 우물거리듯 분명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미성은 순식간에 학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조그맣게 저들끼리 이야기하던 학생들이 주경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여, 여러분은 리더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리더의 유형에도 여러 유형이 있답니다. 팀형 리더, 배려형 리더, 사교형 리더, 절충형 리더, 권위형 리더 등 다섯 가지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주경은에게 집중되었던 학생들의 눈길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자신감 없이 흐릿한 목소리와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시선. 그러한 요소는 귀를 즐겁게 만드는 미성이었음에도 듣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무슨 리더십 강사가 저래?”

“진짜 괜히 왔네.”

작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 이, 이처럼 여러 유형이 있지만 뛰어난 리더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감이랍니다. 어떤 유형의 리더이든 자신감이 없다면 주변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지 못한다,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그리 말하는 주경은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자신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리더십 캠프에서 자신감에 대해 설명하는 강사가 이러한 태도라니. 아이러니한 광경에 몇몇 학생들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결국 주경은에게 향했던 시선은 하나둘씩 떨어져나갔다. 곧 강당 안은 학생들끼리 작게 이야기하는 소리로 채워졌다.

서주환은 그러한 모습들을 보며 가만히 주경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옆에 있던 이석찬이 그런 서주환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뭘 그렇게 집중함? 강사도 별론데.”

“그러는 너는?”

서주환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정작 강사가 별로라고 말한 이석찬은 제법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석찬이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강의 내용은 나름 괜찮아서? 어렸을 때 배운 거랑 비슷하거든. 그리고 난 왠지 저 강사 맘에 듦. 일단 목소리가 좋잖아.”

“…푸흐. 나도 목소리가 좋아서 듣고 있어.”

서주환은 그리 말하며 내심 이석찬에게 감탄했다.

‘역시 이 녀석도 재능이 사기란 말이야.’

그는 회귀 전에도 캠프를 왔었기에 주경은이 왜 저러한 태도로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데 이석찬은 그저 본능적으로 강사를 좋게 보고 있는 중이다. 과연 S급의 ‘직감’과 A급의 ‘안목’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까.

- …이렇듯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면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을 해도 신뢰를 얻을 수 없지요.

슬슬 강당 앞에 선 주경은의 음성이 변하고 있었다. 더듬거리던 목소리가 안정되고,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선도 또렷해졌다. 이어서 앞으로 말려있던 어깨가 펴지고, 구부정하던 허리가 곧추 세워진다. 그러자 체감상 160도 안 되어 보였던 그녀의 키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주경은이 강당 안을 넓게 둘러보며 말한다.

- 자, 여러분들만 해도 그렇지요? 제가 자신감 없는 태도로 나와서 이야기하니 집중이 안 됐을 거예요. 아,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당연한 거랍니다. 리더십과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사가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그리 말한 주경은은 강당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 아참, 뒤쪽에 있는 남학생 두 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집중해줬네요. 고마워요.

주경은이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녀가 말한 남학생 두 명은 물론 서주환과 이석찬이었다.

이석찬이 재밌다는 듯 낮게 키득거리며 말한다.

“캬. 저 강사 매력 있네. 함 꼬셔봐? 몇 살이지?”

그녀의 나이를 알고 있는 서주환이 대답해주었다.

“아까 밥 먹을 때 들었는데 서른셋이라더라.”

“그래? 한 스물 후반으로 보였는데. 쩝. 내 수비범위 밖이네.”

“아, 너 연하 좋아했지?”

“엉. 난 위로 다섯 살 이상 차이 나면 별로더라. 연상보단 연하지.”

서주환은 쯔쯔 혀를 찼다. 누님의 매력을 모르다니 하여간 꼴알못 자식이다. 정소라나 임수희만 해도 얼마나 매력적이던가. 그는 자기관리만 잘한다면 십여 살 정도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 이제 많은 분들이 집중해주시네요. 직접 체감하니까 자신감의 중요성에 대해 확실히 알겠죠? 이러한 자신감을 이루는 요소에는 시선, 말투, 자세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시선은 되도록 한 쪽에 고정. 소통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한 번씩 여러 사람들과 시선을 맞춰주는 것도 좋습니다.

- 말투는 ‘~같습니다’ 보다는 ‘~입니다’처럼 확신을 담아 말해야 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확신을 가진 사람의 말에 더 끌리기 마련이니까요.

- 자세도 중요합니다. 어깨를 펴고, 허리는 세우고. 몸의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지금 말한 요소는 비단 리더십뿐만이 아닌 화자의 요령이기도 하니까 일상에서도 사용해보세요.

어느덧 강당 안의 학생 대부분은 주경은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떠드는 학생도 몇몇 보였다. 아예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저들끼리 떠들던 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게 힐끗 시선을 준 주경은이 곧 떠드는 학생들 몰래 검지로 입술을 가리며 말한다.

- 후후. 말하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청자의 시선과 귀를 붙드는 것이죠. 말하는 방법에도 여러 스킬이 있답니다. 예를 들면…….

쉿, 하고 말을 끝맺은 그녀는 마이크를 내리고 침묵했다.

그러기를 10초 정도.

강당 안을 채우던 음성이 뚝 끊기자 떠들던 학생들이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다 깜짝 놀란다. 강사 주경은을 포함한 강당의 모든 인원들이 두 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당황하는 순간, 주경은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이렇게 잠깐의 침묵을 통해서 주의를 끄는 방법도 있답니다. 때로는 열변을 토하는 것보다 침묵이 더 좋은 수단일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두 명의 학생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무안을 준 상황. 그들에게 주경은이 다시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말한다.

- 제가 처음에는 영 못미더웠죠? 지금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집중해줘요~.

나무란다기보다는 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듯한 음성이다. 안 그래도 미성(美聲)인 목소리로 그리 말하니 듣는 사람도 좋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넵!”

“헤헤. 집중할게요.”

두 학생의 대답에 주경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시 강의가 시작되고, 잠시 후 종이 하나가 배부되었다. 그리고 서주환이 종이를 받기 무섭게 메시지 하나가 귓가를 울렸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

루시가 잠든 날 뽑았던 두 개의 아이템 중 하나인 ‘몽마신의 축복’이었다.

*

아무리 좋은 목소리라도 강의란 결국 지루한 법이다. 심지어 방학 중에 끌려 온 학생들이었으니 집중력이 좋을 수가 없었다.

주경은은 적당히 강의를 진행하다가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을 주었다.

15분의 쉬는 시간.

이후 다시 모인 학생들은 여전히 산만했다.

- 계속 설명만 들으니까 지루하죠?

““네!””

학생들이 일심동체로 대답했다.

주경은이 짐짓 상처받은 얼굴로 말한다.

- 너무 솔직한 아니야? 내 강의가 그렇게 지루했어?

은근슬쩍 친구에게 말하듯 반말을 구사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 친근한 태도가 웃음을 자아냈다.

주경은이 다시 말한다.

- 좋아, 그럼 설명 말고 직접 해보는 걸로 하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에에엑~.”

- 흥. 그러게 대답을 잘했어야지.

“강의 재밌어요!”

- 이미 늦었어!

다시 한바탕 웃음이 일고,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모두가 일어났다.

주경은이 종이 한 장을 팔락거리며 말한다.

- 아까 나눠준 종이 다들 있죠? 자, 거기 쓰인 미션을 지금부터 수행합니다. 이름하여 ‘우리 친해져요’ 시간!

- 다들 과가 달라서 아직 안 친한 거 알고 있어요. 지금 친해지도록 하죠. 모든 미션을 제일 먼저 수행한 사람에게는 문화상품권 1만원을 드릴게요.

가난한 대학생들이라지만 문화상품권 1만원은 너무 짰던 걸까. 장난 섞인 야유가 흘러나왔다.

“우우~.”

- 어머, 만 원이 땅 파면 나오니? 싫으면 그냥 상품 없이 진행하지 뭐.

“와아~!”

순식간에 달라진 반응에 주경은은 짐짓 새침하게 고개를 틀어보였다. 강사 일을 얼마나 한 건지 능숙한 모습이다.

- 흥.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참고로 같은 조원한테는 미션 수행 금지! 종이에 상대방 싸인 받을 것!

- 자, 그럼 시작!

- 얘들아, 맘에 드는 이성이랑 친해질 기회야~!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에게는 문화상품권보다는 마지막 말이 더 와 닿았을 것이다. 학생들이 너도 나도 미션지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이거 미션 종류가 서로 조금씩 다른데?”

“그러게.”

“신경 좀 써서 만들었나 보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랑 친해지라는 소리인 듯?”

학생들의 말처럼 미션지는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서주환도 자신의 미션 내용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회귀 전에는 다 채우지도 못했었는데.’

소심했던 그때는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멀뚱히 서있기만 했다. 자신의 미션을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과만 형식적으로 교환하듯 미션지를 주고받고 끝.

서주환은 까마득한 과거를 떠올리고 픽 웃으며 일어났다. 이번에는 먼저 움직여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기, 키 180되죠?”

“신발 사이즈 몇이에요?”

“아까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오빠 같던데… 맞죠? 헤헤, 제 미션 중 하나가 스무 살보다 많은 사람 찾는 거라서요.”

구름처럼 몰려든 학생들을 본 서주환은 조금 당황하다가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겉모습도 성격도 많이 바뀐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과거와 괴리감이 느껴질 때면 한 번씩 당황스러웠다.

“딱 180이에요. 신발은 280~285 신고, 나이는 스물 셋이에요.”

“어, 형이었어요? 형, 그럼 반말하세요.”

“맞아. 세 살 오빠가 존대하니까 이상해요.”

“하하, 그럴까? 아, 나는 나보다 손 작은 사람… 대부분 나보다 작겠네.”

그는 자신의 미션 내용도 말하며 싸인을 채우기 시작했다. 굳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몰려든 덕분에 미션을 수행하는 게 쉬웠다.

“야, 쭈환 몇 개 채움? 난 세 개 남음.”

무리의 중심이 된 상황은 이석찬도 마찬가지였다. 이석찬은 좀 양아치스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잘생긴 얼굴과 특유의 넉살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었다.

“난 다 채웠어.”

서주환은 씩 웃으며 싸인이 가득한 종이를 흔들어보였다. 아무리 이석찬이라도 사람의 호감을 쉽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페로몬’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쓰읍. 내가 제일 빠른 줄 알았는데 까비.”

“그럼 먼저 간다.”

“어? 야, 너 잠깐, 너 이거… 얌마!”

이석찬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강당 앞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던 주경은이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어머, 벌써 채웠어요?”

“네. 금방 되더라고요.”

“하긴, 잘생겨서 쉬웠겠다. 애들이 먼저 다가갔겠어. 후후.”

스스럼없는 칭찬에 서주환은 멋쩍게 웃었다. 자각은 있지만 역시 눈앞에서 대놓고 잘생겼다 하니 낯이 좀 뜨거웠다.

그 모습을 본 주경은이 킥 웃으며 말한다.

“잘생겼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 이름이 서주환 맞죠?”

“어? 기억하시네요?”

“난데없이 목소리 좋다고 한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요? 강사님이야말로 그런 칭찬 자주 들을 것 같았는데.”

“칭찬은 자주 듣죠. 주환 학생처럼 첫 마디 듣고 감탄한 사람은 처음이지만.”

“하하…….”

확실히 첫 마디만 듣고 감탄을 했으니 엄청 뜬금없어 보였겠다. 그가 어색하게 눈꼬리를 긁적이자 주경은이 킥킥 웃음을 흘렸다.

“종이 주세요. 상품으로 문상줄게요.”

“여기요.”

미션지를 받아간 주경은이 품에서 문화상품권을 꺼냈다. 그렇게 문상을 넘겨주려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주환 학생, 여기 하나 안 채웠는데요?”

주경은이 미션지의 빈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뒤에서 이석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얌마,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하나 안 채웠다니까. 비켜봐, 나 다 채움. 흐흐.”

“에고, 주환 학생 너무 아깝다. 잘 확인하지 그랬어요.”

주경은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내심 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학생이 일등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벌써 다음 학생이 왔으니 모르는 척 넘어가줄 수도 없었다.

“얌마, 쭈환. 비켜보라니까?”

“나 다 채웠어.”

“엉? 뭔 소리야? 거기 비어있구만.”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주경은에게 말했다.

“거기 빈칸에 강사님 싸인 해주세요. 원래 강사님한테 싸인 받으러 온 거거든요.”

“어머?”

“강사님한테 싸인 받지 말라곤 안 했잖아요?”

씩 웃으며 말하니 주경은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고, 뒤에 선 이석찬은 표정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와. 이거 나보다 더 한 놈이네. 너 지금 강사님 꼬시냐?”

“어머, 정말 나 꼬시는 건가?”

주경은이 재밌다는 듯 이석찬의 말꼬리를 물었다.

서주환은 당황하지 않고 씩 웃으며 빈칸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에이, 그런 거 아녜요. 이거 보세요. 내용이 강사님이랑 딱이잖아요.”

거짓말이 아니라, 마지막 10번 미션은 처음 미션지를 받았을 때부터 주경은으로 정했었다.

“야, 뭐길래 그래?”

이석찬의 시선이 질문지로 향했다.

[10.]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 )

내용을 확인한 이석찬이 헛웃음을 흘렸다.

“꼬시는 거 맞잖아,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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