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82화 (18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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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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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D

기말 시험

내기는 다섯 명 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다. 정하연이 1등을 할 것이 유력했지만, 대학 성적이란 1학기 단위로 공개되기 때문에 기말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순위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야, 그럼 일등이 다 명령하는 거냐?”

“노노. 자기 밑 순위 한 명 정해서 명령하는 걸로. 소원권이니까 앵간하면 빼지 말기임.”

“좋아. 내가 일등할 거니까!”

유지경이 야심차게 선언했다. 뒤이어 장덕훈도 이석찬을 보며 말했다.

“전 석찬 형만 이기면 됩니다. 두고 보십쇼.”

“인마, 너 나한테 뭐 시키려고? 감정 있냐?”

장덕훈은 몰라서 묻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이석찬을 응시했다. 그에 움찔하다가도 다시 낄낄거리며 장덕훈을 놀려먹는 이석찬이다.

“흐응. 소원권이란 말이지? 재밌겠다.”

정하연은 그리 말하며 술을 홀짝였다.

서주환은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누구한테 뭐 시킬 건데?”

“아직 안 정했어. 그러는 넌?”

“글쎄? 나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너 노예로 부려먹을까?”

“뭐래, 미친놈이.”

정하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샐쭉한 얼굴로 말한다.

“그럼 내가 이기면 너 부려먹어야겠다.”

*

시험 전 마지막 술자리라 그런지 다들 평소보다 과하게 달렸다.

오랜만에 잔뜩 취한 장덕훈은 이석찬에게 엉겨 붙었다.

“석찬 형님! 제가 쓴 소설이 그렇게 재미 없슴까? 너무하심다…….”

“아니, 내가 언제 재미없다고 했냐? 너무 씹덕 같아서 별로라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취향 문제라고, 곰탱이 새꺄. 아오, 이 새끼 또 진상이네. 똑바로 걸어!”

이석찬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도 장덕훈의 팔을 목에 둘러맸다. 그가 다른 일행들을 보며 귀찮다는 듯 말한다.

“난 이 곰탱이 집에 던져주러 간다. 아, 귀찮게 이 녀석은 왜 통금이 생긴 거냐고.”

“큭큭. 저번에 만취해서 들어간 후에 생겼다잖아. 그때 네가 술 먹이지 않았었냐?”

“에라이.”

“잘 데려다 주고 와. 크으. 천하의 이석찬이 여자도 아니고 남자를 데려다 주네.”

“아오, 씹. 걍 길바닥에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된다는 듯 길거리의 쓰레기뭉치를 힐끔거리며 말한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는 벌써 장덕훈을 두어 번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항상 얄미운 행동과 말로 놀려먹어도 은근히 자기 사람을 챙기는 이석찬이다. 장덕훈이 툴툴대면서도 그를 잘 따르는 이유였다.

서주환은 멀어지는 이석찬을 보며 등에 업은 유지경을 고쳐맸다. 만취한 유지경은 속이 불편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너구르르…….”

“토하면 삶아 먹는다, 너굴아. 얌전히 자라.”

“너구울…….”

오랜만에 떡이 된 유지경은 완전히 곯아떨어져서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어우, 무거워. 지경이 얘 요즘 다시 살 쪘다.”

“야, 지경이 상처 받아.”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확실히 너보단 가볍다.”

그 말에 정하연이 쌍심지를 켜고 주먹을 흔들었다.

“뒤질래? 내 키에 지경이 체중이면 뼈밖에 안 남거든?”

“죄송. 당연히 농담이지.”

“조심해라. 나 지금 취해서 기술 나온다. 확 다 꺾어버려.”

“야야, 나 그거 트라우마 있다. 하지 마.”

서주환이 질색하며 앞장 서 걸었다. 그는 정하연과 사귈 적 연애 5일차에 개수작을 부리다 삼각조르기에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5일이면 괜찮은 줄 알았지.’

사실 그도 상식적으로는 연애 5일차에 관계를 가지는 게 이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귀 후의 경험이 상식에 격변을 일으켰다.

정소라는 취한 척 그를 먼저 꼬셨고, 임수희에게는 면간을 당했으며, 최미화와도 두 번째 만남에서 관계를 가졌다. 하물며 지금 등에 업고 있는 유지경도 그가 자고 있을 때 먼저 덮쳐왔으니.

그쯤 되자 자신의 상식이 잘못된 거구나, 모쏠아다가 생각하는 것과 인싸의 현실은 다르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모쏠아다가 바라보는 섹스는 하늘의 별과 같은 것이었지만, 회귀 후의 경험으로 서주환의 섹스에 대한 기준은 굉장히 낮아져 있던 상태였던 것이다.

‘하연이가 보수적인 것도 좀 있었지.’

사실 선 섹스, 후 연애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연애 후 일주일 안에 관계를 가지는 커플들도 무척 많다. 다만 정하연은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작정 달려들었으니 관절이 꺾일 만도 했다. 오히려 싸게 먹힌 것일지도.

그가 새삼 떠오르는 기억에 피식 웃자, 옆에서 걷던 정하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생각하는데 그러고 웃어?”

“흐. 너 얼굴값 못한다고 생각했어.”

“뭐? 이게 왜 갑자기 시비야?”

“아니, 야, 때리지 마. 칭찬이었어, 칭찬! 얼굴값 못해서 좋다고!”

“그게 어떻게 칭찬이야, 미친놈아!”

“어억…!”

차마 그렇게 예쁜 얼굴로 나이 스물 셋 먹도록 처녀였던 게 말이 되냐고 따질 수는 없었다.

*

일행들은 주말 동안 서주환의 집에서 다시 모였다.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함이다. 어느새 서주환의 집은 일행의 아지트가 되어있었다.

사각사각.

방안에 필기하는 소리가 낮게 깔린다. 웬일로 떠드는 일 없이 모두가 공부태세다. 심지어 이석찬까지도. 금요일 저녁 술자리에서 장난스럽게 오갔던 내기 때문이었다.

서주환은 힐끗 일행들을 둘러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지한 태도로 공부에 임한지도 벌써 이틀째였다.

‘엄청 열심히 하네. 다들 뭘 시켜먹으려기에.’

토요일에도 다 같이 모여서 공부를 했다. 그때도 모르는 걸 물어보거나 서로 암기 테스트를 해주는 일 외에는 일절 잡담이 없었다. 마치 모두가 ‘집중의 축복’을 쓰는 것만 같았다.

‘으아악! 답답해!’

서주환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타임이라도 가지지 않으면 슬슬 한계였다. 그때 이석찬이 슬쩍 눈치를 보며 같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베란다로 나와 불을 붙였다. 이내 연기를 길게 뱉어낸 이석찬이 서주환을 돌아본다.

“주환아.”

“어.”

“못해먹겠다.”

“나도.”

“쉬불. 내기 괜히 제안했나봐. 덕훈이 새끼 나한테 뭐 시키려고 저렇게 열심히 하냐.”

“평소에 잘하지 그랬냐.”

“인마, 나 정도면 존나 착한 형이지.”

“지랄.”

이석찬이 은근히 장덕훈을 챙겨주긴 한다. 하지만 놀리는 빈도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야, 쭈환. 그냥 노래방이나 가쉴?”

“내기는 어떻게 하고?”

다들 모여서 빡세게 공부를 하고 있으니 혼자 쉬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공부를 할 것이고, 쉬는 사람은 뒤쳐질 것이 아닌가. 그럼 내기에서 지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뭔가 시켜도 단단히 시킬 것 같았다.

“흐. 내기를 왜 져?”

이석찬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는 킬킬거리며 방안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전부 놀게 만들면 되지. 평균치를 떨어트리면 내 순위는 올라가게 되어있다고.”

서주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석찬을 바라봤다.

“너 이…”

“뭐, 꼽냐?”

“천재냐?”

“내가 좀. 그래서 노래방 콜?”

“콜. 너구리는 내가 꼬드긴다.”

“곰탱이는 나한테 맡겨라.”

“그럼 하연이는?”

이석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걔는 놀게 해도 우리가 못 이겨. 내비 둬.”

“혼자 두고 가자고?”

“그건 아니고.”

이석찬이 낄낄거리며 덧붙였다.

“네 명 다 간다는데 지 혼자 뭘 어쩌게. 당연히 와야지. 찐따쉑.”

*

일행들을 설득하는 건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은근슬쩍 찔러보자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는 게 아닌가. 내심 본인들도 좀 쉬고 싶었는데 경쟁에 뒤쳐질까봐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지경과 장덕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 같이 놀면 좋아.”

“…사실 저도 아까부터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옵니다. 쉴 땐 쉬어야 탄력이 붙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이 새끼 등치는 산만해서 혓바닥 긴 거 봐라.”

“놀고 싶슴다!”

“그래, 인마. 그거지.”

물론 중간에 정하연의 태클이 있기는 했다.

“공부한지 얼마나 됐다고? 지경이 너는 장학금 타겠다면서?”

그러자 장덕훈과 유지경이 반발했다.

“오늘만 다섯 시간이 넘었슴다! 벌써 저녁 시간입니다, 누님!”

“언니, 나빠!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해!”

이어서 이석찬이 쐐기를 박는다.

“아그들아, 가기 싫다는데 내비둬라. 우리끼리 가자. 야, 넌 혼자 공부나 해.”

“아니…….”

“하연아, 우리 놀고 올게. 열공해!”

서주환까지 그러자 정하연이 울상으로 소리쳤다.

“야! 나도 같이 가!”

네 사람이 계획대로라는 듯 씩 미소 지었다.

*

역시 스트레스가 받을 때는 노래방에서 시원하게 지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한바탕 신나게 노래르 부르고 나오자 일행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석찬이 장덕훈의 목에 팔을 두르고 꿀밤을 날리며 말한다.

“야 이 씹덕아! 일본 노래 부르니까 예약이 안 되잖아!”

“번호로 예약하면 되지 말입니다.”

“아 몰랑. 귀찮음.”

“…내기 제가 이기면 두고 보십쇼.”

“이 곰탱이 봐라? 그제도 내가 너 케어한 건 알지? 양심 어디?”

“…….”

“푸하핳. 일단 이기고나 말해라, 곰탱아.”

이석찬은 낄낄거리며 장덕훈의 등짝을 철썩 두드렸다. 저지른 죄가 있던 장덕훈은 썩은 얼굴로 퍽퍽 맞을 뿐이다.

“배고프다. 우리 밥 어디서 먹을까?”

“언니, 저희 술도 조금?”

“술? 오늘은 완전히 놀려고?”

“에이, 낮에 공부 많이 했잖아.”

“으음…….”

정하연은 본래 혼술을 즐길 정도로 상당한 주당이다. 단순히 주량이 센 게 아니라 제법 다양한 종류의 술을 즐겨봤을 정도다. 가끔 양주나 와인을 들고 오는 이석찬 때문에 술에 눈을 뜬 케이스였다.

“언니이이~ 딱 몇 잔만 해요. 네?”

유지경이 정하연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를 피웠다. 말끝마다 네? 하고 누구를 꼬드길 때만 쓰는 존대가 나온다.

“그래. 지경이가 그러는데 어쩔 수 없지.”

“아싸아! 오빠들 저희 술 먹으러 가요!”

정하연이 너구리의 꾐에 넘어갔다. 사실 알면서 넘어가준 것에 가까웠지만.

너구리가 뒤따라오는 서주환과 이석찬에게 소리치다가 말을 덧붙였다.

“아, 덕훈이 너는 적당히 마셔! 술찌!”

“수, 술찌?”

“푸하하핳! 야, 장덕훈 이 자식 술 먹으면 완전 씹덕모드잖아. 씹덕술찌네.”

“씹덕술찌라니! 아닙니다! 주환 햄, 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응? 대충 맞는 것 같은데?”

장덕훈은 충격받은 얼굴로 정하연을 돌아봤다. 제발 누님만이라도 아니라고 해주길 바라는 눈빛이다.

정하연은 말없이 어색하게 웃었다.

“…….”

장덕훈은 억울했다. 소주 두 병이면 어디 가서 꿀리는 주량이 아닐 터인데. 하지만 서주환은 네 병을 마시고 정하연과 이석찬도 주량이 세 병에 가깝다. 유지경마저도 장덕훈보다는 잘 마셨다.

씹덕술찌는 입을 닥쳤다.

*

저녁 무렵 마시기 시작한 일행은 자정이 되어서야 자리를 파했다. 반주만 하자던 술자리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덕분에 테이블 밑으로 술병이 한 가득이었다.

“아으. 다들 잘 들어가. 난 빨리 자야겠다.”

정하연이 머리를 털며 말했다.

이석찬은 장덕훈의 등을 짝짝 내리쳤다.

“야, 술찌. 오늘은 안 취했냐? 취했어도 혼자 들어가셈.”

“…안 취했슴다. 술찌 아닙니다.”

“새끼, 삐지긴. 들어가라.”

일행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와중, 집으로 가는 듯했던 너구리 한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서주환에게 뛰어왔다. 등 뒤에서 부딪치듯 팍 하고 끌어안은 유지경이 히히 웃었다.

“나 오빠 집 가서 공부해도 돼?”

“술 먹었는데 괜찮아?”

“히. 나 사실 거의 안 마셨어.”

“뭐?”

서주환은 눈을 크게 뜨고 유지경을 바라봤다. 확실히 이제 보니까 볼도 안 빨갛고 졸린 듯 감겨있던 눈도 초롱초롱한 게 멀쩡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술자리에서 유지경은 받아먹기보단 일행들에게 주로 따라주는 쪽이었다.

서주환이 혀를 내둘렀다.

“와. 야, 너구리 너…….”

“너굴?”

“시치미 떼기는. 오늘 일부러 술 마시러 가자고 했지?”

“계획성공!”

너구리가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하여간 영악한 것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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