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80화 (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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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개인적으로 좀 답답한 구간이라 한 번에 두 편을 올리고 싶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ㄷㄷ

우선 한 편 먼저 올리고 약속 드렸던 일요일 연재 하겠습니다.

아참, 추석에도 연재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리한 일정만 없다면요...

*

엘라이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엘라이니 님, 하dbak 님, 연필싐 님, 창천을 님, 한얼사랑 님, 메잰가 님, Hirance 님, 천하무적오리 님, DKL 님, wadize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D

한여름 밤의 꿈

찌걱찌걱찌걱!

윤슬기의 허리를 붙들고 박아댄 지도 한 시간이 넘어갔다. 이쯤 되자 서주환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허리 움직임이 자연히 느릿해졌다.

쮸거억~ 쮸거억~ 찌거억.

여유가 생기니 윤슬기의 엉덩이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장시간 행위로 발갛게 달아오른 보지에서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농도 짙은 백탁액이 새어나온다. 몇 번이고 안에 싸질렀더니 이제 진퇴운동을 할 때마다 정액이 귀두에 끌려나왔다.

뽀옥.

서주환은 잠시 쉬기 위해서 자지를 뽑았다. 그러자 울컥! 하며 보지에서 정액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손가락 두 개를 가져가 질구에 넣고 긁어내자 정액이 뭉텅이로 쏟아졌다.

“하우으으…….”

윤슬기는 길게 숨을 흘렸다. 이제야 민가희가 왜 그렇게 교성을 질러댔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섹스를 당한다면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녀도 중간에 몇 번이나 비명 같은 소리가 나오려던 걸 수건을 질끈 물고 참아내지 않았던가.

“주환… 오빠… 제발 그만…….”

“…….”

“말, 안 할게요. 오늘 일 다 잊을 테니까…….”

쯔르르르륵!

자지가 다시 삽입됐다.

“흐읏?! 왜, 왜? 말 안 한다니까… 요옥?!”

찌봅찌봅찌봅찌봅!

서주환은 대답하지 않고 윤슬기의 상체를 끌어안은 채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가슴 한 쪽을 틀어쥐고, 한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만지면서였다. 찍- 찌익! ‘성스러운 손길’로 클리를 애무하며 자지를 빼내자 윤슬기의 보지에서 분수가 뿜어졌다.

“흐아아읏! 왜, 왜. 말 안하겠다고…….”

쭈거억! 울컥울컥!

서주환은 다시 자지를 삽입하고 네 번째 사정을 토해냈다. 그의 시선은 퀘스트 창을 향해 있었다.

“후우. 거짓말인 거 알아, 슬기야.”

아직 퀘스트 완료가 안 됐거든.

윤슬기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

서주환이 다섯 번 사정하여 5중첩을 달성했을 때도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여섯 번을 싸질러 윤슬기의 눈동자가 쾌락으로 풀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퀘스트가 완료됐다.

“흐극, 흐악, 으…오오옥!?”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사정을 했을 때, 윤슬기의 눈이 성적 쾌락을 버티지 못하고 까뒤집어졌다. 그녀는 아예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기절했다.

“후우우…….”

서주환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에 숨을 길게 내뱉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네.’

솔직히 서너 번쯤 하면 될 줄 알았다. 앞서 보인 윤슬기의 멘탈이 약했기 때문이다. 한데, 생각 이상으로 그녀의 성욕이 강했던 건지, 일곱 번을 하고서야 그녀는 쾌락에 기절을 했다. 덕분에 서주환도 완전히 지쳐버렸다. 민가희와 한 것까지 셈을 하면 도대체 몇 번을 사정한 건지 모르겠다.

[욕망 퀘스트,『윤슬기를 막아라』의 보상으로 20,000LP가 지급됩니다.]

그래도 퀘스트는 무사히 완수했다. 더불어 ‘멀티 오르가즘’과 ‘귀축’ 등의 몇 가지 업적 달성으로 15,000LP를 추가로 벌어들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루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루시의 말만 믿고 일을 강행했다. 물론 루시의 말이 아니었어도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지금 서주환이 기대를 걸 만한 사람은 루시밖에 없었다.

루시가 미묘한 어조로 말했다.

[사람… 그렇게 생각해주시는군요.]

“응?”

[아뇨, 아닙니다. 그보다 퀘스트를 무사히 완수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충분한 욕망 에너지가 모였어요. 윤슬기의 감정이 상당했거든요.]

“해결할 수 있다는 거야?”

서주환은 힐끗 욕조 안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시체처럼 축 늘어진 윤슬기가 기절해 있었다. 그래도 일단 조심해야겠지. 그는 루시와 속으로 대화를 나눴다.

[가능합니다. 주인님은 오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거지요?]

‘…맞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계속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뭐? 회귀라도 시켜주겠다는 거야?’

[아니요. 회귀는 욕망 에너지가 아무리 많아도 불가능합니다. 뭐… 창조주께서 안배한 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루시의 창조주면 그에게 시스템을 준 몽마신 ‘러스트’를 말하는 것이다. 루시는 여상한 어조로 말했다.

[주인님, 욕망 포인트(Lust Point)를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뜬금없는 말에 의문을 비추자, 루시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욕망 시스템이 사람의 욕망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 좀 더 정확히는 주인님이 살아가는 동안 쌓은 경험, 거기서 발생하는 희로애락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수행하고 계신 욕망 퀘스트는 그 감정의 강도가 일정치를 넘으면 랜덤 발생하는 시스템의 성장 촉진제지요.]

[LP는 욕망 에너지의 일부를 수치화시킨 것입니다. 주인님께서 LP를 사용하신다면,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거예요.]

즉, 필요한 것은 욕망 포인트란 말이다. 그 동안 그가 모아둔 LP와 오늘 얻은 걸 합치면 대략 30만 포인트.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모아둔 것이었다.

[아니요. 포인트를 모두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제가 한 번에 가용할 수 있는 건 10만LP가 최대니까요. LP말고 다른 게 필요합니다.]

10만LP면 그리 큰 부담도 아니었다. 꾸준히 모아둔 탓에 가진 바 LP가 제법 넉넉했다.

‘다른 거? 내가 뭘 하면 돼?’

[…주인님께서 무언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윤슬기에게서 수집한 욕망 에너지를 사용하면 되니까요. 본래 수치화(LP) 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걸 제가 억지로 붙들어두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슬기랑 하라고 한 거구나.’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왜 윤슬기와 하라고 한 건지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해소가 됐다.

‘그런데…….’

서주환은 의문이 들었다. 그는 현재 루시가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직감했다. 루시의 말에 두루뭉술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LP를 사용해서 해결하겠다는 건 알겠다. 한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빠져있다. 그 외에도 숨기고 있는 부분이 있어 보였고.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까, 아니면 물어볼까. 어쩐지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주환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는 마치 정면에 루시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차분한 얼굴로 응시했다.

‘루시,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그렇습니다.]

서주환의 눈썹이 작게 들썩였다. 짐작은 했지만 설마 정말로 숨기는 게 있을 줄이야.

‘말 할 수 없는 거야? 또 시스템적으로 제한이 걸려 있다던가.’

[제한이 걸린 것도,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제한이 걸리지 않은 거라도 말해줄래?’

[…….]

어째서인지 루시의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

루시는 주인을 바라봤다.

‘주인님의 정신파장이…….’

일전에 정하연과 헤어졌을 때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루시는 이전과 달리 자신의 주인이 왜 혼란스러워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일부나마 사람의 감정을 배웠기에 가능했다.

‘주인님께선 인연이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셔.’

그녀의 주인인 서주환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인연이 몇 있었다. 그 중에는 이정훈과 민가희도 포함된다. 비단 윤슬기만의 문제라면 이토록 흔들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내가 도와드려야 돼.’

자신은 몽마신께서 만든 주인님의 서포터.

주인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루시(Lusy).

루시는 언제나 주인님을 위해 행동한다.

[주인님,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뭐?”

[루시를 믿어주세요. 그러니…]

루시에게는 해결책이 있었다. 아이템(Item)을 만들어 주인님께 드리면 된다. 마침 지금은 새벽 시간. 하루가 지나갔으니 새롭게 아이템 뽑기를 할 수 있었다.

‘만드는 아이템은 기억삭제. 본래 인과에 허락된 아이템이 아니지만… 많이도 필요 없다. 몇 시간 정도의 기억만 삭제하면 될 거야.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주인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만드는 것은 본래부터 루시에게 허락된 권한이다. 단, 확률을 조작하거나 주인에게 의도적으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건 시스템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이미 루시가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조차도 위험 수준이다.

‘시스템을 우회해서 확률을 조작하려면… LP가 필요하겠구나. 기억삭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에도 LP가 추가로 들어가고. 자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라면…….’

사람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등 몇몇 아이템은 제작이 제한되어 있다. 또한 아이템을 이용해 정도가 넘는 악행을 저지른다면 서주환의 업으로 돌아갈 터다. 그러한 제한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인과에 일부나마 개입할 수 있는 힘, 욕망 포인트였다. 그나마도 일정 수치를 초과한다면 이 차원을 관리하는 신이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루시의 사고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루시는 시스템의 법칙을 무시하고 주인을 위해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루시는 자신의 이상을 깨닫는다.

‘나는 시스템이고 동시에 관제인격이야. 그런데 이게 무슨…….’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은 곧 욕망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곧 루시다. 한데 시스템을 우회한다니? 관제인격이라고 하지만 루시와 시스템, 둘을 따로 놓고 보는 건 이상한 생각이었다.

루시는 곧 스스로의 생각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게 경악이라는 감정이구나. 그렇다면 감정이 생긴 자신은 무엇인가. 시스템이 아닌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이전에 진즉 깨달았어야 했음에 이제야 자각을 하고 혼란이 파고들었다.

그 순간 루시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시스템이 관제인격의 이상을 감지했다.

루시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미 자신은 시스템과 별개의 존재가 되었다. 이대로 시스템의 법칙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한다면 기껏 얻은 감정이 사라질 것이다.

‘아, 러스트님. 어찌 저를 이리 만드셨나요.’

루시는 이제 자신의 창조주마저 원망했다. 차라리 감정을 가질 수 없도록 할 것이지, 이런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 것이지, 하고.

[…일단 박으세요.]

그렇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아이템을 만들고 확률을 조작한다면 시스템에 의해 감정을 배제 당한다. 루시는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서주환은 무사히 퀘스트를 완수했다. 루시는 그 순간을 노렸다. 시스템이 보상을 지급하는 틈을 타서 주인인 서주환과 대상자 윤슬기에게서 발생한 욕망 에너지를 강제로 끌어 모았다. 이 에너지와 LP로 시스템의 눈을 가리고 인과율을 감당할 것이다.

‘그래도 부족해. 대가는 피할 수 없다.’

시스템이 이상을 감지하는 바람에 대가가 더욱 커졌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최악의 경우 리셋 당할 수도 있었다.

‘에너지를 용도 외의 것으로 너무 많이 썼다. 그리고 루시는… 나는 일종의 ‘버그’나 마찬가지다.’

본래 욕망 에너지는 세 개의 용도로 사용된다.

첫 번째, 인과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수치화 시킨 욕망 포인트(Lust Point).

두 번째, 시스템이 아이템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에너지.

세 번째, 에너지를 흡수한 시스템의 성장.

그리고 시스템에 발생한 오류는 네 번째 용도를 만들었다.

관제인격, 루시(Lusy)의 성장.

그 과정에서 루시는 감정을 배웠다. 영혼 없는 관제인격이 감정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게 됐다. 창조주인 몽마신의 명령보다 자신에게 이름을 부여해준 서주환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아직은 미약한 감정.

움트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마음.

그렇기에 스스로 알지 못하는 소망.

루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서주환은 배란다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열두 번의 사정을 했더니 몸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니코틴이 절실했다.

칙, 치익.

“후우. 좀 살겠네.”

몸은 지쳤지만 담배 한 대로 정신을 또렷이 차렸다. 마음의 안정도 찾아왔다. 비단 담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루시, 고마워.”

[천만에요. 저는 주인님의 도우미. 주인님을 위하는 건 당연하답니다.]

루시 덕분에 일이 깔끔하게 해결됐다. 아이템 뽑기 두 번을 통해 나온 건 ‘몽마신의 축복(30)’과 짧은 시간 동안의 기억을 삭제해주는 ‘한여름 밤의 꿈’ 이다. 현재 윤슬기는 새벽 동안의 기억을 삭제당한 채 이정훈의 옆에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서주환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이내 침울한 얼굴을 연기를 내뱉었다.

‘루시가 버그 같은 존재라니.’

처음의 루시는 지금보다 훨씬 무뚝뚝했다. 목소리는 미성이었지만 말투나 어조는 고저가 거의 없는 기계음과 같았고, 간혹 내비치는 감정도 굉장히 미약했다. 말 그대로 시스템의 일부로써 그를 지원하는 도우미라는 느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루시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 또한 진즉 그를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루시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딥러닝(deep learning) 형태의 관제인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루시의 존재는 예상치 못한 프로그램 버그에 가까웠으니.

서주환은 담배 연기가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시, 너는 이미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가족…….]

“그래.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지. 모든 시간을 공유하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고저가 없는 음성.

그러나 분명 진심이 담겨 있다.

감사, 기쁨, 행복.

감정의 농도는 옅지만, 루시는 분명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감사까지.”

[당연한 건가요…….]

“오,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부끄럽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큭큭. 그런 것 같다는 또 뭐야.”

낮게 웃음을 흘리는 서주환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씁쓸했다. 이내 웃음기가 사라지고 씁쓸한 기색만이 남는다.

그는 루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시스템의 주의를 돌리고 있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했지만, 그것 또한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루시가 말했던 ‘제가 해결 하겠습니다’의 의미. 그리고 타이밍 좋게 나왔던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아이템까지. 분명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일 터다.

서주환은 굳이 짐작한 바를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이 말 하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해결하자고 확답을 요구하기에는 지금도 치러야 할 대가가 컸다. 루시가 사람의 감정을 알고, 스스로가 버그임을 자각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루시,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했지?”

[네. 주인님께서 제 존재를 허락해 주셨으니까요.]

루시가 말 할 수 있었지만 말하기 싫어했던 비밀.

자신이 버그 같은 존재라는 사실.

루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불안한 기색으로 사실을 털어놓았었다. 주인인 그가 싫다고 한다면 사라지겠다는 말과 함께.

서주환은 그 말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그가 단호하게 말한다.

“허락이고 자시고, 그것도 당연한 거야. 난 무미건조한 시스템보다 루시가 마음에 들거든.”

[…저도, 주인님이 좋습니다.]

“뭐? 푸흐. 루시, 방금은 진짜 사람 같았어. 아까 망설였을 때보다 더.”

[그런가요.]

어쩐지 루시가 작게 웃는 것 같았다.

서주환은 본 적도 없는 루시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 위로 다시 아쉬운 기색이 만연해진다.

그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루시, 언제… 다시 오는 거야?”

[조금 오래 걸릴 거예요.]

“쓸쓸하겠네.”

[쓸쓸한가요?]

“그럼. 항상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는 건데. 내 혼잣말을 받아 줄 사람이 없잖아.”

[그렇군요. 저도 조금 쓸쓸할 것 같습니다.]

“조금? 나는 많이 쓸쓸할 것 같은데.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음. 그럼 많이 쓸쓸한 걸로 하겠습니다.]

“흐. 그게 뭐야. 엎드려 절 받기네.”

그렇게 낄낄거리며 웃고 있자니, 문득 루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주인님. 루시는 주인님께서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

루시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서주환은 루시의 말을 끊지 않고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주인님께서 원하는 모든 걸 이루시길 바랍니다.]

[많은 경험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가능한 즐겁고 기쁜 일이 많으셨으면 좋겠지만, 가끔은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루시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평범하게 사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주인님께서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흐릿해지는 목소리.

치지직- 기계음이 섞여드는 음성.

서주환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루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혹여 쓰러진다면 다시 일어나주시길 바랍니다.]

[주인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가족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전과 달리 쓸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인님께선 이미 친구가 많으시니까 주변을 둘러봐주십시오.]

[혹여,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치지직- 기계음이 심해졌다.

그 사이로 루시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흐릿하다.

마치 허공에 녹아드는 듯한 음성.

서주환은 루시의 마지막 말을 또렷이 들었다.

[주인님의 곁에는 언제나 루시가 있으니까요.]

-치익.

루시가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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