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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또다른심장 님, 셀피리온 님, 인연무상 님, 우영파파 님, 파괴군주 님, 이불속은위험해 님, TY탱율 님, 토우마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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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더블데이트
"원래 오빠 주려고 만든 곡이었어요. 저 빙의사부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그래도 그건……."
서주환은 거절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곡이 탐났기 때문이다. 민가희가 만들어준 곡은 그가 보기에도 해당 장면에 딱 들어맞아 글의 흡입력을 올려주었다. 공식 테마로 써도 될 정도로 말이다.
민가희는 그런 서주환을 보며 해맑은 얼굴로 웃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어차피 그거 오빠 소설 보고 맞춤형으로 만든 거라서 다른 데 쓰지도 못해요."
"으음. 진짜 고맙긴 한데 이런 곡을 그냥 받아도 되나 싶다. 그러지 말고, 내가 가희 너한테 곡을 사는 걸로 하면 어떨까? 아니면 사용료를 낼게."
"네? 도, 돈은 됐어요. 그냥 오빠 가지라니까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소리냐는 듯 말하는 민가희. 그녀는 돈을 받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방황하던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게 누구던가. 서주환의 입장에서야 지나가듯 언질을 준 것 뿐이었지만, 가벼운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불안과 좌절, 막막함에 주저앉아 있던 그녀에게 새로운 대안을 준 서주환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 팬아트 생각해봐요. 팬아트 받았다고 일일이 독자들한테 연락해서 돈 주고 그러진 않잖아요? 저도 팬심으로 준 거예요."
애초에 그녀가 곡을 만든 이유는 정말로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한참 작곡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쯤, 소설 장면을 보자 파바박! 하고 영감이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만든 곡이었다.
서주환은 잠시 갈등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값을 치르고 사는 거야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팬아트라는 말을 듣자 확실히 민가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고맙게 받을게."
"흐흥. 그거면 됐어요. 혹시 다른 곡 더 필요하면 말하구요."
금세 신나서 뿌듯해하는 민가희였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미묘하게 웃었다. 어쩐지 순진한 여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제비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엔 내가 먼저 의뢰해야겠다.'
팬심으로 받는 게 아니라 의뢰 형태로 주문한다면 민가희도 정당한 대가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혹시 몰라서 말을 덧붙였다.
"가희야."
"넹?"
"진짜 너무 고맙긴 한데, 아무한테나 그러지는 마. 좋은 작품에는 정당한 값을 치르는 게 당연한 거잖아?"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잔소리를 늘어놓게 됐다. 워낙 순진해빠진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그 또한 창작자로서 확실히 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고 말이다.
'가희 재능이 흔해 빠진 것도 아니고.'
민가희가 지닌 '작곡' 재능의 현재등급은 숙련자라고 할 수 있는 C+급이다. 하지만 그녀의 잠재등급은 무려 S급. 잠재력이 높으면 현재등급이 낮아도 심심찮게 등급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가 준 곡은 명백히 재능 이상의 결과물에 해당됐다. 한데, 이 순진한 아가씨가 지금처럼 어수룩하게 곡을 넘길 걸 생각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민가희는 눈을 깜빡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해서가 아니다. 서주환의 기색을 보아하니 부정했다가는 잔소리만 더 들을 것 같아서였다.
"치이."
그녀는 식사 내내 뚱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아무한테나 그러는 거 아닌데…….'
삐죽삐죽.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어 입술이 튀어나왔다.
*
서주환은 세 사람을 안양으로 초대한 만큼 식사부터 놀 곳까지 책임지고 안내했다.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워낙 안양에서 오래 살기도 했고, 이번 생에는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닌 터라 모르는 곳이 거의 없었다.
네 사람은 방 탈출 카페를 시작으로 보드게임 카페를 거쳐 지금은 볼링장에 와 있었다. 둘둘 짝 지어서 볼링을 치고 있으니 정말 더블데이트를 하는 느낌이 났다.
"아싸, 스트라이크!"
볼링은 상당히 접점이었다. 개인 점수는 당연 이정훈이 압도적이었고, 서주환이 '손재주' 재능의 덕을 보고 그 뒤를 따라붙었다. 민가희도 의외로 볼링을 잘 쳤다. 유일하게 점수가 저조한 윤슬기가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오빠들 볼링 진짜 잘 친다."
"슬기가 제일 못 쳐. 운동치!"
"가희 너?"
"힉. 잘못했어!"
"늦었거든!"
윤슬기가 민가희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려댔다. 운동은 못해도 민가희 잡는 건 윤슬기가 제일이었다. 막상 맞는 민가희도 즐겁게 웃고 있는 걸 보면 그냥 둘이 장난치는 방법이 저런 것 같기도 했다.
"주환아, 담배 한 대?"
"또? 형 그러다 폐 썩는다. 슬기가 뭐라고 안 해?"
볼링장에 온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두 개비를 피웠다. 이정훈은 잘생긴데다 성격도 좋고 능력까지 좋았지만, 엄청난 헤비 스모커라는 단점이 있었다. 전 여친들 중 몇은 그 엄청난 흡연량에 질려서 이별을 통보했다나.
이정훈이 흡연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괜찮아. 슬기도 담배 피우거든. 그래도 가끔 잔소리는 하지만."
"아, 슬기도 흡연자였지."
그러고 보니 클럽에서 만났을 때 담배를 피운다고 했었다. 오늘 한 대도 안 피우기에 깜빡 잊고 있었다.
이정훈이 연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한다.
"후우. 가희 앞에서는 잘 안 피운다더라. 가희가 원래 보컬 하려고 했었잖아."
"배려하는 거구나."
"그렇지 뭐."
이정훈은 그리 말하는 사이 담배를 벌써 필터까지 다 빨아들였다. 그가 꽁초를 버리며 말했다.
"주환아, 나 화장실 때문에 먼저 나가볼게."
"엉. 난 좀 천천히 피우고 갈게."
이정훈은 볼 일이 급한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잠시 후 흡연실 문이 다시 열렸다.
"오빠~ 같이 피우자!"
"가희? 아, 슬기구나."
목소리만 듣고 민가희인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니 윤슬기였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흡연실 안을 둘러봤다. 하지만 보이는 건 서주환 뿐이었다.
"오빠, 정훈 오빠는요?"
"형은 좀 전에 화장실 갔어. 밖에서 못 봤어?"
"에엥. 엇갈렸나 봐요. 오빠 거 뺏어 피우려고 했는데."
올해는 담배 뺏어 피우는 게 트랜드인가? 윤슬기가 눈치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주환 오빠, 저 한 대만 주면 안 돼요? 원래 안 피우려고 해서 안 가져왔거든요."
"안 되긴. 종류 안 가리지?"
"하이브리드5?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여기 불."
"땡큐요~."
윤슬기는 담배를 한 모금 머금고 활짝 펴진 얼굴로 웃었다. 서주환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푸흐흐흫."
"응? 왜 웃어요?"
"네가 담배를 너무 맛있게 피워서."
"…오늘 처음 피우는 거란 말이에요. 오빠도 흡연자니까 이 느낌 알 거 아녜요. 그죠? 알죠?"
윤슬기는 오늘 노는 동안 그가 많이 편해졌는지 무척 살가워진 말투였다. 서주환은 큭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지금 느낀 건데 슬기 너 가희랑 목소리가 엄청 비슷하다?"
그 말에 윤슬기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바람 소리를 내며 웃었다.
"히. 그럼 나 오빠랑 친해졌나보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거 친한 사람만 알거든요. 제가 목소리 톤이 가희보다 좀 낮은데 기분 좋으면 올라가요. 그럼 진짜 엄청 비슷해지고요. 그래서 친한 사람들은 우리 목소리 비슷한 거 다 알아요."
"그거 신기하네. 정훈이 형은 구별할 수 있으려나?"
"어? 저도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이따 오빠한테 시험해봐야지."
윤슬기가 재밌겠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가 무척 살벌했다.
"못 맞추기만 해봐라."
"……."
서주환은 사죄의 의미로 이정훈에게 정력제를 하나 더 챙겨주자고 생각했다.
*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가는 법이었다. 신나게 놀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서주환이 잔을 들며 말했다.
"형, 좀 늦었지만 전역 축하해.'
"정훈 오빠, 축하해요."
"우리 오빠 진짜 고생 많았어!"
이정훈은 축하주를 한 번에 들이킨 후 씩 웃었다.
"크으. 야, 맞선임한테 들으니까 진짜 전역한 기분 확 난다."
"푸하하. 진짜 전역 기분 내게 FM으로 함 해볼래?"
"오, 그럴까?"
"아, 형, 빨리 앉아! 뭔 말을 못하겠네. 당연히 그냥 한 말이지!"
"큭큭. 나도 장난이었지, 인마."
짐짓 일어나려던 이정훈이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때 민가희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주환 오빠가 정훈 오빠 맞선임이었어요? 맞선임이 그거 맞죠? 바로 윗선임."
"아, 가희는 들은 적 없구나. 우리 둘이 같은 중대였고, 3개월 차이로 내가 정훈이 형 맞선임이었어."
서주환은 그리 말하다가 윤슬기를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
"내가 많이 어수룩했는데 형이 많이 도와줬었어. 역시 형이다 싶더라고."
그리 말하자 맥주를 홀짝이던 윤슬기가 살며시 웃는 게 보였다. 역시 여자친구 앞에서는 남자친구 면을 세워줘야 하는 법이었다. 이정훈도 고맙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슬쩍 들어보였다.
같은 부대를 전역한 사람끼리 술을 마시면 자연스레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법이다. 심지어 이정훈은 전역한지 고작 한 달차였다 보니 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군대 이야기가 이어지니 처음에는 흥미진진하게 듣던 윤슬기와 민가희가 조금 지루해 하는 게 보였다.
서주환은 그 기색을 눈치 채고 슬쩍 이야기를 돌렸다.
"아, 군대 하니까 말인데, 나 이번에 신작 쓰는 거 군대물이다."
그러자 이정훈의 얼굴이 조건반사적으로 찌푸려졌다. 이내 그가 썩은 얼굴로 말했다.
"…그 신작은 좀 나중에 봐야겠다."
그 떨떠름한 반응에 이정훈을 제외한 세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후로는 군대 주제를 벗어나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각자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공통 주제인 대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렇게 한참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다시 돌아온 주제는 서주환의 소설이었다. 아무래도 세 명 다 그의 소설을 보다보니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웹소설을 좋아하던 이정훈이 가장 신나서 말했다.
"사실 나 빙의사부 네 소설인 줄 모르고 봤었다? 나중에 필명 보고 깜짝 놀랐어. 내가 네 전작들도 봤었잖아.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잘 쓰게 됐더라고."
이정훈은 한때 작가를 꿈꿨을 정도로 웹소설을 좋아했다. 위병소에서 '작가님, 간다던 군대가 여기였어요?' 라고 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서주환의 전작 중 야설인 '무림색황'을 봤을 정도로 보는 장르의 스펙트럼도 넓었다.
한참 이야기하던 이정훈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야, 주환아. 너 그건 유료화 안 하냐?"
"응? 뭘?"
"그거 있잖아, 색마귀환. 자유연재하고 있는 거."
"아, 그건 좀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쓰는 거라 당장은 유료화 안 할 것 같아. 연재주기도 불규칙하고."
"하긴, 요즘은 더 안 올라오더라. 난 빙의사부보다 그걸 더 재밌게 봤는데."
"이 형 이제 보니까 야설 취향이네."
"아니, 진짜 재밌다니까? 그치, 슬기야?"
"응. 나도 그게 더 재밌었어."
"아니, 슬기도 그걸 봤어? 일부러 부계정으로 올렸는데. 형만 보라니까."
서주환은 조금 책망하는 눈으로 이정훈을 바라봤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야설을 보여주기는 조금 민망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말이다.
이정훈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어어? 야, 오해하지 마라? 난 안 알려줬어. 슬기가 야설에 맛 들려서 보기 시작한 거야."
"맞아. 나 그게 오빠 소설인 줄 지금 알았는데?"
"그래? 그런데 지금 안 거면 결국 형 때문에 내가 쓴 거라는 게 밝혀진 거 아닌가?"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야, 미안하다. 술 마셨더니 이게 참……."
"푸흐. 괜찮아. 그나저나 둘이 소설 취향까지 똑같네."
참 비슷한 사람끼리 잘 만났구나 싶었다. 그저 클럽에서 하룻밤 불태우고 끝날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이렇게 진심으로 말이다.
이정훈이 술을 벌컥 들이키더니 말했다.
"크으. 어쨌든 난 그게 제일 재밌더라."
"흐. 재밌다니 어쨌든 고맙네."
"어? 야, 빈말 아니다? 진짜 나중에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싶을 만큼 재밌게 봤어."
이정훈이 다시 술을 단번에 넘기더니 말을 이었다.
"스토리 좀 각색해서 도트 겜으로, 장르는 로그라이트 액션으로 딱 잡고, 원작이 성인소설이니까 쌔끈한 일러 딱 박고, 그러면 어? 우리 슬기가 리얼 사운드로 딱 녹음해주고, 어? 다음은 어? 어……."
이정훈의 말끝이 흐려지더니, 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그가 쓰러진 채로 중얼거렸다.
"게임, 내가 일단… 지금 하는 거부터… 마무리… 끄응… 쿠울……."
"으응? 오빠? 정훈 오빠아?"
"설마 형 자? 아니, 이 형 술 셌던 거 같은데 왜 이래?"
서주환은 쓰러진 이정훈을 깨우기 위해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한 번 잠든 그는 쉽게 일어날 줄을 몰랐다. 만났을 때부터 다크써클을 진하게 달고 있더니만 술기운을 못 이기고 깊게 잠들어버린 것이다.
"허 참. 얘들아, 일어나자. 가희야?"
"으엥?"
"…너도 취했니?"
"아, 아뇨오! 저 안 취했어요!"
민가희가 푸른 머리카락을 탈탈 털면서 부정했다. 하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이나 반쯤 감긴 눈은 그녀가 취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히이. 우리 오빠 자는 모습도 잘생겨따아…!"
이제 보니까 윤슬기도 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민가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아이템을 괜히 먹었나.'
서주환은 술을 마시기 전 지속형 아이템인 '숙취해소제'를 복용했었다. 혹시라도 일행 중 만취하는 사람을 챙기기 위해서였는데, 너무 즐겁게 떠들다 보니 모두가 취하는 걸 눈치 채는 게 늦어버렸다. 개수만 충분했어도 다른 셋도 전부 복용시키는 거였는데.
"쓰읍. 일단 우리집으로 가자."
그리 말한 서주환은 이정훈을 둘러업었다. 그나마 덜 취한 민가희가 윤슬기의 팔을 붙잡아 챙긴 후, 계산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
서주환의 자취방은 거실이 하나, 방이 두 개다. 대학생이 혼자 사는 자취방 치고는 호화롭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넓었다. 덕분에 이석찬을 비롯한 일행들이 자주 오다보니 방 하나를 아예 손님방으로 만든 후 침대까지 사다놓았다.
"들어가, 형. 절대 토하지 말고!"
집에 도착한 서주환은 이정훈을 방으로 밀어 넣었다. 한데 윤슬기가 그 옆에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오. 슬기 얘는 갑자기 왜 매미가 됐냐? 슬기야, 좀 떨어져봐. 네가 가희랑 같이 자야지."
"시러어어! 우리 오빠랑 잘 거야아!"
"술 취하니까 얘가 완전 진상… 그래, 토 안 하는 게 어디냐."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이 정도 진상이면 귀여운 편이었다. 다만 방 분배가 애매해졌다는 게 문제였는데…….
뒤를 돌아보자 민가희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보였다. 그녀가 푸른 머리를 찰랑찰랑 좌우로 흔들면서 말했다.
"왜요오? 둘이 같이 자라고 하면 되자나여. 어차피 커풀인데."
"참나. 그럼 가희 너는 나랑 같이 자려고?"
헛웃음을 흘리니, 민가희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
"네! 전 오빠랑 같이 잘 건데요? 저번에도 가치 잤자나여?"
"허 참. 얘가 취하니까 막 말하네. 에휴. 가희 네가 방에서 자라. 난 거실에서 자야겠다."
서주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같이 잘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자제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였다. 안 그래도 술을 절제 없이 마셔댔더니 성욕이 올라왔다. 하지만 또 다시 그녀와 관계를 가지기에는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았다.
'내가 도끼병일 수도 있는 거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게 민가희를 방에 밀어 넣은 후 나가려는 때였다.
와락!
등에서 말랑하고 푹신한 쿠션의 느낌이 전해졌다. 민가희가 그를 껴안은 것이다. F컵에 이르는 은혜로운 가슴이 등에 짓눌리자 자지가 벌떡 일어났다.
'아, 참기 힘들다.'
서주환은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동해물과백두산이마르고닳도록~!
부처님과 애국가의 힘을 빌려 순간 확 치고 올라왔던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가희야, 이거 놓자. 나중에 너 후회한다."
"싫어요. 같이 자요, 오빠."
서주환은 이번엔 속으로 참을 인(忍)을 그렸다. 옛말에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했다. 살인을 면할 수 있는데 성욕을 못 참을 리가 없었다. 그는 간신히 민가희의 팔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후우. 가희야, 진짜 너 후회해. 얼른 들어가서 자. 착하지? 지금은 취해서 그런 거야. 응?"
"…어요."
"응? 뭐라고?"
서주환은 고개를 돌렸다가 순간 몸을 움찔했다.
"…가희 너?"
민가희가 또렷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새빨개진 얼굴로, 하지만 어느 때보다 차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안 취했어요."
"……."
그럼 지금까지 취한 척 연기했다는 말인가?
그 생각이 맞다는 듯 민가희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말했다.
"저, 후회도 안 할 거예요."
"……."
그 말에 뚝, 하고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게 끊어졌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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