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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173화 (17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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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새벽 업로드으...!

여러 번 수정하다 보니 많이 늦어졌습니다...

작중에서 서주환의 작가로서의 이야기가 나오면 글을 여러 번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제 에고를 넣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저는 안 넣었다고 생각해도 독자님들이 보시기에는 넣었다고 느끼실 수 있을만한 부분을 쳐내곤 하거든요... 이번에도 약 1천자 정도를 삭제했네요ㅎㅎ;;

주인공이 작가라는 설정은 스토리적으로 연계하기 용이하다고 생각해서 잡은 건데, 가끔은 괜히 이렇게 잡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서주환 이놈이 쓴 글이 엄청 잘 팔리고 인기가 끝내준다! 라는 부분이 나오면 아무래도 제 작품과 비교하게 되면서 부끄러워지거든요......

혹시나 싶어 못 박아두자면 주인공 서주환과 본 글쟁이는 전혀 별개의 인물입니다아......

*

적화란 님, 이탈자2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 새로 바뀐 표지는 115화 삽화로 설정탭에서 더 크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더블데이트

안양역에 도착한 서주환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이정훈을 발견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정훈이 형!”

“어? 주환! 야, 오랜만이다!”

이정훈이 마주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드러냈다.

“와. 이 형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길어?”

어떻게 간부들의 눈을 피해 다닌 건지, 이정훈은 전역한지 한 달 된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길었다.

“인마,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형이야 말로 어떻게 지내는 거야? 다크써클이 장난 아닌데.”

이정훈은 마치 야근을 며칠이나 한 사람처럼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와 있었다. 전역한 지 불과 한 달 된 그가 사회에 찌든 직장인처럼 웃었다.

“흐흐. 전역 하자마자 일 때문에 갈렸거든.”

“일?”

“나 친구들이랑 게임 만든다고 했잖아. 입대 전부터 천천히 진행하던 게 있는데, 이 새끼들이 아주 악질이야. 나 전역 날만 풀어주고 바로 쪼더라. 내가 기획자거든.”

“오, 뭐야. 형 디렉터였어? 왠지 프로그래밍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같이하긴 해. 너 출판콘텐츠학과라고 했지? 출판사도 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한 사람이 업무 여러 개 처리하잖아. 그런 느낌이야.”

“아하.”

서주환은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에서도 그러더니 이정훈은 맞춤형 설명을 잘했다.

“형이 고등학생 때부터 게임 만들었다고 했지?”

“어. 고딩 때 시작한 건데 대학에서 동아리도 만들고 지금은 팀까지 만들었다.”

“동아리에 팀까지? 겁나 멋있네. 그런데 졸업은 안 한 거야?”

“게임 만드느라 몇 번 휴학했더니 그렇게 됐다. 다음 학기에 복학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너도 복학했다고 하지 않았나?”

“복학은 했는데 신입생이나 다름없어. 내가 스무 살 때 입학하자마자 휴학 때려서 복학을 1학년 1학기에 했거든.”

“푸하하. 너도 특이한 케이스네.”

이정훈이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런 얼굴조차도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이래서야 오늘 제대로 놀 수나 있을까.

서주환은 나직하게 혀를 차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형, 이것 좀 마셔.”

“응? 뭔데?”

서주환은 짐짓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척 ‘피로회복제’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언젠가 정소라에게도 주었던 아이템이다.

“박x스? 야, 나 이거 보기만 해도 물린다. 너무 많이 마셨어.”

“그래도 좀 마셔. 안 마시는 것보단 낫겠지.”

“으. 질리는데…….”

이정훈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음료를 받아들었다. 내키진 않지만 친한 동생이 권하는 걸 계속 거절하기도 그랬다.

곧 음료를 복용한 이정훈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와, 이거 뭐냐? 마시자마자 정신이 확 드는데?”

“오늘 약빨이 잘 받나 보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말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진하게 피로에 쩔어있던 얼굴이 많이 펴졌다.

이정훈이 한 층 밝아진 얼굴로 웃었다.

“좀 살 것 같다. 솔직히 요즘 너무 피곤했거든.”

“일 때문에? 대체 얼마나 갈리는 거야.”

“…사실 일도 일인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이정훈은 어쩐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그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내가 요즘 늙었나 보다, 주환아.”

“뭔 소리야? 이제 스물여섯이면서.”

“아니, 진짜 옛날에는 멀쩡했는데 요즘 좀 힘들다니까.”

“그러니까 뭐가?”

이정훈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피곤함의 진상을 털어놨다.

“슬기 알지?”

“당연히 알지. 오늘 같이 만나기로 했잖아. 형 여친.”

“…슬기 성욕이 너무 강해.”

“뭐?”

“아니, 휴가 나올 때야 하루에 두 번도 괜찮았지만 전역한 후에는 좀 많이 빡세. 그나마 요즘은 야근하겠다고 도망치는 중이다.”

“푸하. 그게 뭐야.”

서주환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뭔가 큰 문제라도 있나 했더니 이런 이유였다니. 하지만 이정훈은 정색을 했다.

“야, 이게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옛날에는 하루에 두 번씩도 했는데 지금은 이틀에 한 번도 힘들다. 안 그래도 게임 만드느라 죽겠는데 떡치려니까 진짜로 죽겠어. 이제 섹스가 노동이라니까?”

“큭큭큭. 슬기가 형 많이 좋아하나 보네.”

“끄응. 좋아해주는 건 고맙지. 물론 나도 좋아하고…….”

복잡한 표정의 이정훈을 보며 서주환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삼사십 대 유부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다보니 새삼 자신의 회귀 전이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멎었다.

‘시발, 나 발기부전이었지.’

잘못 부여된 업 때문이라지만 아침에 텐트가 안 쳐지는 느낌은 정말이지 끔찍한 기억이었다. 최근에는 정력이 딸린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해서 올챙이 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서주환은 갑자기 이정훈에게 남자로서의 공감능력이 강하게 발휘됐다. 공감능력이란 게 꼭 여자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형, 내가 나중에 좋은 것 좀 챙겨줄게.”

“어? 뭘?”

“정력에 좋은 거.”

“…진짜냐?”

이정훈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렇게 근황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있자니, 다른 두 사람도 금방 도착했다. 윤슬기가 날 듯이 달려와 이정훈의 품에 안겼다.

“정훈 오빠!”

“어이쿠. 우리 슬기 왔어?”

“히히. 나 보고 싶었지?”

“그럼. 엄청 보고 싶었지.”

이정훈은 조금 전까지 한탄하던 게 거짓말처럼 품에 안긴 윤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에 입을 쪽 맞추며 애정행각을 하기까지. 윤슬기도 좋다고 배시시 웃으며 이정훈의 뺨에 입을 맞췄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힘들다고 하더니 그래도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옷소매를 살짝 끌어당겼다.

“주환 오빠, 저도 왔어요.”

“아, 가희야.”

커플의 애정행각에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새 물빛머리 여성이 다가와 있었다. 가볍게 원나잇을 생각하고 클럽에 갔다가 생각보다 깊게 인연을 맺은 여자, S급 작곡 재능의 보유자인 민가희였다.

그녀가 특유의 빙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빠.”

불과 이주 전에도 만났었건만 뭐가 그리 반가운지 연신 웃음을 흘리는 민가희다.

“그래. 오랜만이다, 가희야.”

찰랑찰랑 흔들리는 푸른 머리를 보니 어째 웃음이 나왔다.

*

서주환은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일행들을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며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이정훈과 윤슬기는 둘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민가희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삐죽였다.

“치. 이럴 거면 왜 같이 놀자고 한 건지 모르겠어. 그쵸, 오빠?”

“그러게 말이다. 아주 깨가 쏟아지네.”

“우리도 재밌게 놀아요. 오빠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민가희가 빨리 말해달라는 듯 몸을 앞으로 살짝 내밀었다. F컵의 거대한 가슴이 테이블 위에 걸쳐졌다.

“크흠.”

서주환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워낙 눈에 띄는 크기다보니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해도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나는 뭐 글 쓰면서 지냈지. 몇 주 뒤에 기말이라서 가끔 공부도 좀 하고. 가희도 기말 아니야?”

“저희는 거의 실기예요.”

“그래? 하긴, 예체능 쪽은 그렇겠다.”

“그런데 고민이 좀 많아요. 전공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라서.”

“전공을? 아, 작곡 쪽으로?”

“네. 오빠 얘기 듣고 독학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재밌더라고요.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그런데…….”

웃으며 말하던 민가희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재촉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기다려주었다. 이내 그녀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전공을 바꿔도 될 지는 확신이 안 서요. 사실 노래나 피아노도 처음엔 재밌었거든요. 배우는 것도 빨랐고.”

요컨대 작곡 또한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는 뜻이었다.

“음.”

서주환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의 입장에서야 상태창이 보이니까 민가희의 재능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가희는 그렇지 않다. 당장 재밌고 적성에 맞는다고 해서 전공을 바꾸기에는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앞선 실패들이 있었다.

루시가 말했다.

[시스템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올바로 찾기란 상당히 어렵지요. 평생 재능을 못 찾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루시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가진 재능의 종류는 가지각색이고, 가진 바 재능의 한계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간혹, 잠재등급과 성장속도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잠재등급 B급의 재능이더라도 한계에 도달하기까지의 성장속도는 무척 빠를 수 있다.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은 뭇 사람들에게 영재나 천재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등급에 도달하면 결국 실력 상승의 정체를 맞이하게 된다.

반면 S급의 잠재능력을 갖고 있더라도 성장속도는 B급보다 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체기를 극복한다면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의 재능이었다.

서주환은 진지해진 낯으로 민가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희야, 너 최근에 팔로우 많이 늘었다고 했지?”

다소 뜬금없는 말에 민가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빠가 소설에 제가 만든 곡 홍보해줬잖아요. 덕분에 저 팔로우 엄청 늘었어요! 진짜 고마워요, 오빠.”

일전에 민가희는 그가 쓴 소설을 보고 만들었다면서 곡을 보내온 적이 있었다. 한데 그 곡이 너무 좋았다. 단순히 좋은 게 아니라, 그가 생각하며 쓴 장면과 곡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서주환은 새삼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웃음을 흘렸다.

“그건 오히려 내가 고맙지, 가희야. 독자님들이 다 네 곡 좋다더라. 몰입감이 몇 배는 올라갔다면서 칭찬이 자자해.”

“에헤헤. 정말요?”

“진짜로. 너 댓글 확인 안 했지? 이것 좀 봐봐.”

그가 한 말은 과장 하나 섞이지 않은 순도 백 프로의 진실이었다. 직접 사이트에 접속해 댓글을 보여주자, 민가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귀환병: 브금 미쳐따. 이미 본 건데도 브금 들으면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름. 진짜 개쩐다.

- 야스는○○야스: 쥬지가 웅장해지는 곡이네요. 작가님 지인이라고 했죠? 얼굴도 완전 예쁘신데 작곡까지… 갑자기 작가님을 향한 빡침이 올라오는 건 왜죠?

- 종강언제해: 브금 갬성 진짜 오짐. 이건 마치 종강 후 집에 돌아가는 희망차고 그립고 쓸쓸한… 그런 느낌이랄까. 나 종강 언제 하지?

- 보노보농: 작곡가 언니 너무 멋져ㅠㅠ 별스타에 사진 있으시던데 그림으로 그려서 드리면 좋아할까요? 사실 이미 연성 중이지만…!

독자들은 하나같이 극찬을 보냈다. 그런 댓글들이 한두 개도 아니고 수백 개가 넘게 달렸다. 위튜브에 따로 댓글을 단 사람도 적지 않았고.

“이미 지나간 회차인데도 다시 와서 보는 독자님들이 많았어. 어디 커뮤니티 같은 데 소문이 났나보더라고.”

사실 민가희가 보내준 BGM은 꽤 지난 회차의 것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들은 독자들은 기꺼이 다시 보는 귀찮음을 감수했다. 이미 최신화를 따라오던 독자들도 몇 십 편 전의 회차에 댓글을 남길 정도였다.

“덕분에 그 편 조회수만 유독 더 높더라. 네 별스타에도 댓글 꽤 달렸지?”

“네에. 그런데 댓글 일부러 안 봤어요. 좀 무서워서…….”

민가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최근 별스타 댓글을 잘 확인하지 않아서 이런 반응인 줄 몰랐다. 절친인 윤슬기에게 반응이 좋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칭찬만 가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데 막상 확인한 댓글 반응은, 혹시 혹평이 달리면 어쩌나, 기껏 다시 찾은 희망마저 자신감을 잃게 되면 어쩌나 무서워하던 게 바보 같아질 정도였다.

“저 바보. 내가 그렇게 좋다고 했는데.”

“가희가 만든 음악 좋지. 특히 주환이한테 만들어준 퀄리티 정도면 나중에 우리 게임 브금도 부탁하고 싶을 정도야.”

윤슬기와 이정훈의 말이다. 둘은 어느새 애정행각을 멈추고 민가희를 보고 있었다.

서주환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소설 댓글창도, 내가 따로 올린 위튜브도 전부 칭찬밖에 없어. 생각 같아서는 가희 너한테 곡 사서 BGM으로 삽입하고 싶었다니까? 웹소설은 왜 음악 삽입이 안 되는 건지… 그래서 링크만 올렸잖아.”

서주환은 너무 안타깝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민가희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한 편으로는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BGM 삽입이 제법 자유로운 웹툰에 비해 웹소설 쪽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따로 위튜브 계정에 음악을 올린 후 작품 서문에 링크와 공지를 남기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민가희는 칭찬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이내 빨개진 얼굴로 예의 빙구 같은 웃음을 흘린다.

“에헤헤. 어쨌든 맘에 들었다는 거죠? 저 곡 잘 만들었죠?”

드디어 자신감을 찾은 건가.

서주환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나 그거 멜로디까지 외웠어.”

그 말에 민가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곡 오빠 줄게요. 다른 곡도 드릴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서주환은 눈을 끔뻑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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