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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닷!
그럼 이만 다시 글 쓰러 가보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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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회하는 수야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팬텀이미지 님, 도도한멜론 님, 날아라씨퉹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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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신작 연재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간다.
최미화는 아쉬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비싼 와인을 잔뜩 들이켜서 그런지 혀가 매끄럽게 돌아갔다.
“응. 나중에 꼭 내가 매니지먼트 세울 거야.”
“19금 위주로 취급하는?”
“아니, 장르는 안 가려. 뭐든 재미만 있으면 되니까.”
“그렇구나. 미화 너라면 잘 할 거야.”
“사실 마음 같아서는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어버리고 싶은데 그건 힘들겠더라고. 기존에 시장을 독점한 사이트가 있으니 돈을 엄청 풀어야 할 텐데… 그건 무리. 돈 없어.”
“하하. 그건 그렇지. 그래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서주환은 은연중에 확신을 담아 말했다. 미래에 실제로 ‘노벨다이스’라는 신생 플랫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노벨다이스는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운영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신생 플랫폼에 불과했던 노벨다이스는 불과 3년 만에 몸집을 불려 기존의 3대 플랫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된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재벌가 일원의 취미생활로 시작된 사업이라고 하는데, 진실은 관련자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서주환은 마지막 잔을 비우고 말했다.
“슬슬 일어날까?”
“아. 그, 그래. 이제 일어나야지…….”
최미화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취기가 제법 올랐었는데, 자리를 파하자는 말에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가자. 미화 너희 집 광명이지?”
“응. 왜? 데려다주게?”
“그럴까? 주말인데 나도 부모님 뵈러 가지 뭐.”
“아, 맞다. 너도 광명 사는구나.”
“지금은 안양에 자취하고 있지만.”
서주환의 본가와 최미화의 집은 거리가 무척 가까웠다. 차를 탈 필요도 없이 걸어서 15분 정도면 된다. 그렇기에 말년휴가를 나왔을 당시, 한수아 대신 최미화가 살인범 눈에 띈 것이었다.
서주환이 택시를 잡으려는 때, 최미화가 그의 옷을 끌어당기며 말한다.
“주환아, 버스 타자.”
“왜? 택시 안 타고.”
“도, 돈 아깝잖아.”
“내가 낼게. 아니, 그보다 경비처리 하면 되지 않나?”
서주환의 말에 최미화는 울컥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버스 타자고, 나쁜 놈아!”
“아,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러냐.”
“화낸 거 아니거든… 개새끼.”
“욕하면서 아니래.”
“흥.”
최미화는 불퉁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명백히 화가 난 태도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서주환의 옷깃을 살며시 쥐고 있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건가.’
고개 숙인 최미화의 입술이 비죽 내밀어진다. 그녀는 힐끗 서주환을 몰래 올려다보았다.
‘얘는 사람 옆에 두고 멍 때리네.’
신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는 게 괜히 얄밉다. 평소라면 작가로서 바람직한 태도라며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자신을 옆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게 못내 서운했다.
그러다 최미화는 문득 자신의 생각을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딴 바람둥이를…….’
누가 좋아한다고.
나쁜 새끼.
*
최미화는 외동으로 자라서 여중, 여고를 졸업했다. 덕분에 사적으로 이성을 만난 경험이 극단적으로 적다. 중학생 시절 남자친구를 사귄 경험은 있지만, 그 기간은 고작 일주일. 그걸 사귀었다고 카운트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일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미화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웹소설 출판 매니지먼트, ‘레드노벨’에 취직했다.
레드노벨은 로맨스와 BL을 주로 취급하는 여성 위주의 매니지먼트였다. 그녀가 레드노벨에 이력서를 넣은 것은, 경력 하나 없는 쌩 신입 고졸자를 뽑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
최미화는 특정 장르를 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취향이라는 게 있다 보니 BL소설을 작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경력을 쌓은 후 지금의 ‘퍼니북스’로 이직했다.
퍼니북스로 이직한 최미화는 적극적으로 능력을 증명했다. 애초에 학생시절부터 될성부른 소설을 알아보는 건 그녀의 특기였다. 특유의 속독을 이용해서 원석 같은 작가들을 발굴하여 계약했다. 이후에는 그간 공부하고 쌓은 지식으로 적극적인 피드백을 통해 작가들의 성장을 도왔다. 활자중독자인 그녀에게 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작가들을 돕는 것은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최미화의 직업적 동기는 온전히 자신의 취미를 위함이었다. 일과 취미의 일치도가 높기에, 어떻게 보면 그녀에게 일은 곧 취미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일에 단단히 미쳐 있는 중증의 워커홀릭(workaholic).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글을 읽고, 편집하고, 컨택하고, 작가와 피드백을 나눈다. 동료들과 이야기하기보다 글 읽기를 즐긴다. 외출은 업무 관련으로 관계자를 만나러 갈 때나, 작가들을 만나러 갈 때 밖에 없다. 덕분에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이었지만, 사적으로는 선 듯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최미화의 직장 내 인간관계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예쁜 외모와 능력 좋은 일처리로 그녀는 규모가 작은 퍼니북스의 대들보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다만, 특유의 이지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는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었고, 그 분위기에 이끌려 대쉬한 남성 사원은 대차게 까임으로써 짧은 사랑을 마무리 했다.
사실 이성과의 대화가 적은 그녀로서는 남자가 자신에게 들이대는 건 줄도 모르고 벽을 친 것이었지만…….
그런 최미화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아직 찬바람이 쌀쌀한 1월이다.
여느 때보다 조금 늦은 시각,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괴한에게 폐건물로 끌려갔다.
괴한의 정체는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는 연쇄살인범. 여성을 강간한 후 몸을 토막 내 죽인다는 흉악범이었다. 흉악범은 그녀의 팔다리를 묶고, 청테이프로 입을 봉했다. 이후 바지를 내리고 다가오는 흉악범을 보며, 그녀는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공포에 눈물을 흘렸다.
아무나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죽고 싶지 않아!
속으로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들이다. 인적 없는 폐건물에 누군가 올 리도 없었으니 이대로 유린당하고 죽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야! 이 개새끼야!”
속으로 외친 비명을 어찌 들었던 걸까.
거짓말처럼 나타난 남자 한 명이 흉악범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쇠파이프 하나를 들고 톱을 지닌 흉악범에게 맞섰다.
“너, 너 뭐하는 놈이야! 왜 갑자기 나타나서 방해냐고!”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다! 이 씹새야!”
최미화는 남자의 외침에서 그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육군 병장이라 밝힌 남자는 흉악범을 때려눕히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다 끝났으니까 안심하세요.”
살벌하게 싸우던 것과는 달리 안심이 되는 자상한 목소리. 본 적도 없는 얼굴이건만, 남자는 어째서인지 진한 슬픔과 안타까움 어린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자상한 목소리와 눈빛에 너무나 안심이 된 나머지, 그녀는 세상 서러움을 느끼며 그의 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이후 알게 된 남자의 이름은 서주환이었다.
최미화는 은인인 그에게 나중에라도 보답하고 싶어 번호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군인 신분으로 사건에 휘말렸기 때문에 복귀했다. 그녀는 언제인지도 모르는 은인의 전역 후를 기약하며 보답할 날을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은인을 다시 만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전역일이 언제인지 몰라 연락만 기다렸는데, 눈여겨보던 작가를 컨택하기 위해 연락하자 은인이 받은 것이다.
‘와, 이게 운명인가? 소설 같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요즘 눈여겨보고 있던 작가라니! 드라마틱한 전개에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소설 같은 일이 아닌가. 중증의 활자중독자인 그녀에게 서주환이란 남자는 그야말로 판타지가 현실로 이루어진 것과 같았으니.
그렇게 최미화는 서주환을 만났다. 식사를 대접하고, 감사를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그와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본래라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생명의 은인인 서주환 앞에서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2차로 칵테일바까지 따라갔던 것이다.
취기가 올랐다. 알딸딸한 기분에 잠긴 최미화는 그의 은근한 유혹을 알면서도 넘어가기로 했다. 야한 일에 무척 관심이 많았지만, 여지껏 인연이 없었던 그녀다. 생명의 은인인 그에게라면 처음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쁜 새끼! 쓰레기 새끼! 개새끼! 바람둥이!’
최미화의 안에서 은인에 대한 평가가 변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이라고 밝히자 곤란한 표정을 짓던 그를 기억한다. 남자는 처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은 상처로 되돌아왔다.
격렬했던 하룻밤이 지나갔다.
최미화는 그를 남자가 아닌 작가로 대하고자 마음먹었다. 하룻밤 기분 좋았으니 된 거라고, 성인 남녀가 마음 맞으면 섹스 좀 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며 덤덤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생각대로 되는 것이던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던 여자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남자의 흔적은 상처보다 몸에 더욱 깊게 새겨졌다. 이제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성욕의 문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는 맛이 더 참기 힘들다더니.’
원래도 야한 일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지는 못했기에 텍스트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으로 알고 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몸에 강렬하게 새겨진 밤은 문득문득 떠올라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순간, 하루걸러 하루는 그를 생각하며 밤을 보내게 되었다.
‘아, 섹스하고 싶다.’
이제는 그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섹스를 다시 해보고 싶은 건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다. 남자는 한 번 빼고 난 후 현자타임을 가지면 구분이 가능하다던데, 그녀는 하루가 지날수록 만족하지 못한 욕구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 이게 미련인가 싶기도 했다.
“어디야? 앞까지 데려다 줄게.”
버스에서 내린 후 그가 한 말이다.
최미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았다.
“…서주환.”
“응?”
“너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거지?”
“…….”
침묵이 낮게 깔린다.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최미화는 짐작했던 바가 맞음을 알고 낮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개새끼…….”
“…….”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건 이 남자가 악질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 나름의 배려인 걸까.
“집, 들어가지 마.”
최미화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집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도저히 그냥은 보내질 못하겠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하면…….”
- 거절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말이 이어지기도 전이었다.
“…미안, 미화야.”
“…….”
아, 거절인가. 그리 생각할 때였다.
큼지막한 손이 그녀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살며시 겹쳐졌다가 떨어진다.
“먼저 말하게 해서 미안. 싫어할 줄 알았어.”
“…싫어. 너 엄청 싫거든.”
“미안해, 누나.”
“너, 비겁하게 지금 누나라고…….”
최미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 열기가 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 지금 무슨 표정이었지.’
분명 새빨개진 얼굴이었을 것이다. 앞이 잘 안 보이는 걸 보아하니 눈물도 고여 있었겠지.
‘괜히 말했어. 죽고 싶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그때 서주환이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 어디로 갈까? 모텔?”
도리도리.
“어… 그러면 누나 집으로?”
최미화는 쪽팔려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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