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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새로운 일러스트가 나왔습니다.
정말 예쁘게 잘 뽑혔어요!
독자님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었기에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설정란에 가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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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선비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러브7 님, 탄산나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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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내 동정을 가져갔던 누나와 데이트
조금은 늦은 아침.
정소라의 부루퉁한 목소리가 서주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전역했으니까 중대장 취급 안 하는 건 좋아. 그런데 이제 누나 취급도 안 한다?”
“…….”
그는 엎드린 정소라의 몸 위로 올라가 전신마사지를 하는 중이었다.
“어쭈. 대답 안 해?”
“…말하지 말라면서요.”
“그런데 왜 말해? 안 다물어?”
“…….”
“이게 적당히 맞춰주니까 기고만장해서 아주 끝까지 가려고… 어? 잘못했어, 안 했어?”
“…했습니다.”
“말하지 말랬지. 내 말이 우스워?”
“…….”
“대답 안 해? 씹으니까 맛있나보다?”
“죄송하다니까요…….”
“또 말하네?”
현역 시절이 떠오르는 갈굼을 받으면서 말이다.
‘적당히 할 걸.’
지난 밤 정소라의 반응이 좋아서 너무 열을 내버렸다.
차갑고 도도했던 중대장, 머리 위에 서서 놀려먹기를 좋아하는 누나.
그런 그녀가 울먹이는 눈으로 칭얼대니 욕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깔아뭉개고 이리저리 뒤집어대며 줄기차게 박아댔다. 가장 기분 곳을 찔러 연신 신음이 터지도록 만들었고, 체위를 바꿔가며 자신에게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헐떡이던 숨결은 지금 떠올려도 몸이 달아오를 만큼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의 치기는 결국 PTSD를 불러일으키는 갈굼으로 돌아왔으니.
“똑바로 해.”
그나마 다행이라면 ‘성스러운 손길’을 이용한 마사지가 효과를 보였다는 것일까.
“넵.”
서주환은 재깍 대답하며 정성스럽게 그녀의 몸을 주물렀다.
도통 기분을 풀지 않는 그녀에게 제안한 마사지.
처음에는 어딜 개수작이냐며 눈꼬리를 치켜뜨는 그녀였지만, 반쯤 억지로 마사지를 진행하고 나자 곧 노곤하게 풀어져서 몸을 맡겨왔다.
물론 그 와중에도 드문드문 갈굼은 이어졌으나 나른하게 풀린 목소리 덕분에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하으으… 너 작가가 아니라 마사지사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하하. 그럴까?”
“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저는 죽을 것 같은데요, 정신적으로.’ 그리 입속말로 중얼거리니 곧장 반응이 돌아왔다.
“뭐야?”
“근육이 많이 뭉치셨다고요, 누님.”
대체 어떻게 알아들은 걸까. 도끼눈을 뜬 정소라가 슬쩍 고개를 틀어 그를 노려봤다. 그에 시선을 피하자,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풉. 아하하하!”
“…재밌어?”
“엄청 재밌는데?”
“거 너무하네. 결국 같이 즐겨놓고서는. 어제 누나 엄청 귀여웠…”
“진짜 혼난다, 너.”
차갑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에는 그리 웃더니만 순식간에 얼굴이 변해서 싸늘해졌다. 과연 현 등급 C+의 카리스마 재능. 간담이 서늘해지는 눈빛이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한 서주환은 흠칫 몸을 떨었다. 뱀 앞의 개구리…까지는 아니어도 중대장 앞의 말년병장이 느끼는 긴장감 정도는 된다.
“킥. 농담이야, 일로 와.”
정소라는 작게 웃음을 흘리더니 몸을 똑바로 뉘여서 팔을 뻗었다. 그가 뚱한 얼굴로 가만히 있자 직접 목을 잡고 제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다.
물컹.
“왜 그래. 삐졌어?”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으이구. 서운해써요, 우리 주환이?”
“아니, 서운한 게 아니라 누나는 엄청 놀려대면서 내가 하면… 아니다.”
서주환은 말하다보니 문득 자신이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것만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왜 말할수록 자괴감이 드는 거지.’
사실 앞뒤 상황만 보면 어린애처럼 구는 건 그가 아니라 정소라 쪽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놀려먹는 건 좋아하면서 정작 놀림 받으면 화난 척 인상을 쓰는 내로남불을 시전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그러할진대, 이상하게 말을 섞고 있으면 이쪽이 떼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완전히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버린 것이다.
“에이, 기분 풀어. 화내지 마.”
“…화 안 났어.”
“아하하. 가슴 만질래? 대신 삐지지 말기.”
“…….”
그건 사양 안 하지.
대답을 하는 대신 손을 뻗어서 봉우리를 덥석 쥐었다. 부드러운 느낌이 손 안을 가득 채운다. 이게 물방울 C컵인가. 말없이 조몰락거리고 있자니 말랑몰랑한 감촉이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런 걸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화가 날 때마다 만진다면 역사에 전쟁은 없지 않았을까…….
“흣. 주환이 너, 만지는 방법이 야하잖아.”
“어? 아, 실수.”
정말로 실수였다. 본능적으로 ‘성스러운 손길’의 흥분효과를 일으킨 건.
정소라가 콧소리를 내며 말해왔다.
“흐응. 실수라면서 왜 계속 똑같아?”
그야 지금은 실수가 아니니까.
서주환은 슬그머니 그녀의 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살살 비비며 물었다.
“누나, 할래?”
“…어제처럼 하면 죽어.”
“내가? 아니면 누나가?”
“…….”
정소라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했다.
‘나도 이길 때가 한 번쯤은 있어야 공평하지 않겠어.’
서주환은 평소에 좀 지면 어떠랴 싶었다. 침대에서만 이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
두 사람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호텔을 나왔다.
정소라는 옆에서 따라오는 서주환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라니까.”
“역까지만 데려다줄게.”
“괜찮대도.”
“걱정돼서 그래.”
“내가?”
정소라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서주환을 돌아봤다. 사복으로 치마를 입어서 착각하는 걸까? 자신은 군인이었고, 어지간한 괴한쯤은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반응에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였다.
“길 잃을까봐 걱정된다고. 올 때 전철 반대로 탔던 거 잊었어?”
“윽. 그건 오랜만이라 그런 거지. 그리고 택시 타고 가면 되잖아.”
“거 참. 데려다 준다는데 진짜 말 많네.”
“뭐야?”
“아니면 나랑 같이 있기 싫어서 그래?”
“아니, 그건 아닌데…….”
정소라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다른 여자들보다 기가 세다 뿐이지, 여자는 여자였다. 생각해서 챙겨주는 게 싫을 리 있겠는가. 오히려 예상치 못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래서 문제였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단 말이지…….’
서주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지난밤 한 번 떠올린 생각은 아직도 한편에 맴돌고 있었다.
‘연애, 결혼, 주환이.’
외모가 취향이고, 성격이 잘 맞고, 직업적인 특성도 부합한다. 살이 빠진 건 아쉽지만 그거야 나이가 들고서라도 찌우면 되는 일. 거기에 속궁합까지 좋았으니 서주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득 정소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랄.”
“응?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고개를 저으며 힐끗 서주환을 흘겨본다. 첫 경험 후 사귀자면서 그렇게 귀엽게 굴던 녀석이다. 한데 다시 만나서 보니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지금도 귀엽긴 한데.’
반응이 좋아서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동생이었다. 그러나 이제 마냥 귀엽게 볼 수만은 없다. 굳이 주도권을 빼앗겼던 밤일을 셈하지 않아도 그랬다.
‘확 그때 받아줄 걸 그랬나.’
서주환이 한 번 자신에게 고백했었다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이제 연애 경험도 생겼고, 어제 보니까 여자들을 잘 만나고 다니는 듯했다.
또한 본인은 안 들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강아지니 너구리니 하며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걸 얼핏 듣기도 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정소라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안 귀여워.’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면서 카사노바 짓을 하는 건 전혀 귀엽지 않다. 설마 그 순진했던 서주환이 이리 될 줄이야.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이면 뭐하나. 지금 하는 꼴을 보아하니 깊게 좋아했다가는 이쪽에서 마음고생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연애는 무슨. 일이나 하자.’
차라리 마음이 커지기 전에 다잡아서 다행인가. 그녀는 이내 한결 편해진 기색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슬슬 본가로 내려갈 시간이었다.
*
플랫폼 안, 기차가 출발하기까지는 꽤 남은 시각.
서주환과 정소라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역시 군대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도 없네.”
“응. 전국 각지에서 다르게 살다 온 사람들이 한 부대에 모였으니까. 그냥 태생적으로 서로를 이해 못하는 애들도 있고… 그런데 24시간을 매일매일, 1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내야 되니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지.”
“흠. 확실히 군대라는 환경이 특수하긴 해. 살면서 좀처럼 그런 경험을 할 일은 없으니까. 다른 특이한 일은 없었어, 누나?”
“으음. 아, 이건 장교들 이야긴데…….”
남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는 정소라.
서주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이야기가 재밌기도 했지만, 계속 고민해왔던 게 머릿속에서 점차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정소라는 문득 주변을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시간 됐다. 주환아, 나 이제 가볼게.”
“응.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누나.”
“나도. 나중에 또 보자.”
정소라는 손을 작게 흔들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는다,
“누나, 잠깐만.”
“어? 왜?”
서주환은 조금 망설이며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그, 좀 자주 연락해도 돼?”
“…어?”
정소라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순간 서주환의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하나 판단이 서지 않아서였다.
‘얘가 혹시?’
아직도 날 좋아하나?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젓는다. 고백을 거절한 지가 벌써 5개월도 넘었다. 이제 와서 무슨.
그녀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되지. 새삼스럽게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하하. 누나는 연락을 잘 안 하는 편이니까.”
“먼저 연락하는 건 잘 받아. 네가 먼저 연락해.”
“아, 정말? 알았어.”
서주환이 밝게 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보는 정소라의 표정이 애매해진다.
…단순히 친근감의 표현 맞지? 일단 그냥 누나 동생 사이라기에는 몸을 섞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기이도 했으니까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거기에 감정이 깃들었냐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때 서주환이 다시 말했다.
“맞다. 누나 사진 몇 장만 보내 줄 수 있어? 군복 입은 걸로.”
…아닌가? 이제 사진까지 달라고 하니 그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과 한 시간 전 홀로 정리했던 마음이 불쑥 고개를 치켜들려 한다.
“그건 왜? 나 사진 잘 안 찍는데…….”
“아, 곤란하면 안 줘도 돼. 꼭 필요한 건 아니라서.”
“…곤란한 건 아니고, 이유를 말해봐.”
“이유? 아, 미안. 내가 깜빡하고 말 안 했구나.”
서주환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혼자 속으로 결정을 내려놓고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잊지 않으려다보니 너무 자기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번에 군대 배경으로 신작을 쓰려고 하거든.”
“…신작? 군대 배경?”
“어. 고민이 좀 많았는데, 배경을 군대로 하면 해결 될 것 같아. 누나 덕분에 떠오른 거야.”
서주환의 말이 이어질수록 정소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녀는 이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한다.
“너 그럼 연락 자주 하겠다는 게 그거 때문?”
“응. 누나한테 자문 좀 구하고 싶어서. 병사는 내가 직접 경험했으니까 그렇다 쳐도 장교는 잘 모르니까. 아, 혹시 괜찮으면 부사관들은 어떤지 물어봐줄 수 있을까?”
“…사진은?”
“누나를 모티브로 중대장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아, 물론 이름은 바꿀 거야. 괜찮아?”
“…….”
“사진을 보면 아무래도 이미지가 잘 잡히거든. 그런데 꼭 줄 필요는 없어. 전역할 때 찍은 사진도 있으니까.”
“…….”
정소라는 말없이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누굴 놀리나.’
갑자기 성질이 확 올라온다.
망설이며 연락을 자주 해도 되겠냐는 말, 사진을 달라던 요구.
거기서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한데 그게 다 신작을 쓰기 위한 자문과 자료를 위함이었다니. 놀림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나를 보고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해놓고? 나만 혼자서… 좀 짜증나네?’
이제 현실적으로 연애니 결혼이니 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다.
이내 고개를 든 그녀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린다.
흠칫.
그 미소에서 불길함을 느낀 서주환이 움찔 한 걸음 물러났으나, 이미 그녀는 계단을 두어 걸음 내려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주환아.”
“어, 어? 으읍?!”
당황하는 사이 턱을 붙잡혔다. 서주환은 붙들린 채 그녀와 입술을 맞춰야 했다. 순간 쏙 하고 들어온 혀가 입안을 훑고 빠져나간다. 플랫폼 안에서 그러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주위의 시선이 모였지만, 정소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당당함을 견지했다.
“…누나?”
“쉿. 조용히 해.”
할 걸음 계단 위에 선 정소라가 그와 눈높이를 맞춘다. 그녀는 양손으로 그의 뺨을 붙들었다.
“주환아.”
“어어.”
“자문, 해줄게.”
“아, 진짜? 고마워. 역시 누나밖에…”
“대신, 전화 걸 때는 재밌는 이야기 하나씩 준비해올 것.”
“엉?”
이해할 수 없는 조건에 서주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아무거나 괜찮아. 뭐 시를 읊어도 상관없고, 노래를 불러도 괜찮으니까 뭐든 재밌는 거 준비해와.”
“…그냥 자문료 주면 안 돼?”
“어머, 누나를 돈으로 사려고?”
“아니, 그건 말이 좀 이상…”
“쉿.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정소라는 눈매를 반달처럼 접으며 웃었다. 그리고 아, 하고 탄성을 토하더니 다시금 예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너도 사진 보내. 그럼 되겠다.”
“…내 사진?”
“사진도 아무거나 상관없어. 웃긴 사진이든 각 잡고 찍은 사진이든.”
“그냥 자문료…”
“안 그럼 자문 안 해준다?”
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은 만큼 단호한 어조다.
서주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KTX 열차 안.
정소라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돌겠네.’
좀 전의 행동이 후회막심했다.
‘억울할 계제가 아닌데.’
애초에 그런 생각이 들 여지조차 주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했던 게 과거의 자신이었다. 한데, 조금 전 한 행동은? 이제 와서 본인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태연하냐고 투정을 부린 꼴이다.
정소라의 이성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사람의 감정이 어찌 냉철한 이성과 타당한 논리로만 귀결될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 감성의 영역이란 수학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크지 않을 때 접자. 아니면 앞으로는 만나서 떡을 치지 말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감정이 커지리라.
정소라가 마음을 또 한 번 다잡을 때였다.
지잉!
“힉?!”
진동음을 토하는 핸드폰.
정소라는 황급히 음량을 무음모드로 바꾸고 까톡을 확인했다. 어머니인 박선영에게 온 것이었다.
- 엄마: 오늘 온다고 했지? 남자친구랑 바쁘면 안 들어와도 돼 ^^
“이 아줌마가…….”
사람이 심란해죽겠는데 약이라도 올리는 건가? 앞으로 또 이런 문자를 받지 않으려면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확실히 못을 박아야 할 듯싶었다.
그러나 정소라의 그런 생각은 다음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엄마: 아참, 엄마가 네 아빠한테 말해서 앞으로 맞선 잡지 말라고 해놨어~
- 엄마: 그런데 남자친구 이름이 뭐니? 아빠가 얼굴 시뻘게져가지고 얼굴 봐야겠다고 막 난리를 치지 뭐니.
- 엄마: 이이는 너 빨리 결혼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애인 생겼다니까 엄청 화내더라ㅎㅎ
메시지를 확인한 정소라의 표정이 멍해졌다.
‘…맞선 잡지 말라고 했다고?’
정소라의 얼굴이 골몰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변한다. 이거… 적당히 둘러대기만 하면 앞으로도 계속 맞선을 피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주환이한테 알릴 필요도 없지. 굳이 이름 말하지 않아도 적당히 있는 척만 하면…….’
혹시 얼굴을 보여 달라거나 한다면 서주환에게 부탁해서 영상통화로 잠깐 남자친구인 ‘척’하면 된다. 자문까지 해주기로 했으니까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까?
정소라는 열차가 출발한 뒤에도 계속해서 갈등하다가 한참 뒤에 문자를 보냈다.
- 나: 아직 사귄 지 얼마 안 됐어
- 나: 나중에 확실히 결정되면 알려줄게
- 나: 괜히 알려고 하면 부담스러워서 도망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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