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61화 (16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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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일요일 기습 연재!

...를 하는 바람에 월요일 연재가 늦을지도 모른다는 점 알아주세요......

가능하면 정시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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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lass님, 초코팡송이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choikim1371님, DAlSiM 님, 헬가문 님, 소셜사냥꾼 님, 판타지조아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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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내 동정을 가져갔던 누나와 데이트

“흐응. 주환이 대단한데?”

그리 말한 정소라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금 한 발작 떨어졌다. 자연히 어깨 위를 툭툭 두드리던 손도 되돌아간다.

“누나…?”

서주환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네.’

처음 정소라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쓸데없는 장면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 따윈 깔끔하게 지워졌다.

여자는 메이크업 전후가 다른 사람이라고 하던가. 제대로 화장을 한 정소라는 부대 내에서 봤을 때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소라 누나가 이 정도로 예뻤었나?’

이전에도 꾸민 모습을 보기는 했다. 그녀와 처음 몸을 섞었던 외박 때의 일이다. 당시 맞선을 나간 정소라는 검정 일색의 정장에 가까운 옷차림이었다. 예쁘긴 하지만 무척 사무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반면 지금은 아이보리색을 베이스로 한 끈나시와 치마를 입고 있다. 그 위로 걸친 흰색에 가까운 하늘색 린넨셔츠까지. 가벼운 차림과 밝은 색조의 옷이 5월에 걸맞은 싱그러운 느낌을 연출했다.

서주환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정소라는 킥, 하고 웃음을 흘리더니 짐짓 인상을 썼다.

“어쭈. 경례 안 해? 여자한테 번호 좀 따이게 됐다고 중대장이 막 우스워?”

그 말에 서주환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정소라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미소가 걸려있었다. 잠깐이나마 지레 찔려서 신경 썼던 게 바보 같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어이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경례는 무슨. 언제 적 중대장이야.”

“쓰읍. 군기 다 빠졌네?”

“군기? 그보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하던 사람은 어디 갔지?”

서주환이 짐짓 못 찾겠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자, 찔리는 게 있는 정소라가 몸을 움찔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웃음으로 때우시려고?”

“강철.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주환 병장님.”

“음. 오랜만이네, 정소라 대위.”

“…이게 건방지게!”

정소라가 서주환의 목으로 팔을 뻗었다. 헤드록을 걸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 자세가 이상해진다.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서주환의 키는 165cm에 불과한 그녀가 팔을 걸기에 여의치 않았다.

이내 불만스런 얼굴로 떨어진 정소라가 그를 아니꼽다는 듯 노려봤다.

“못 본 새 엄청 재수 없어졌네.”

“저기, 키 큰 거 가지고 재수 없다고 하시는 건 좀 어떨까 싶은데요.”

“쳇. 다섯 달 전만 해도 누나한테 막 좋아한다 그러고 엄청 귀여웠…”

“아니,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서주환은 얼른 손을 뻗어 정소라의 입을 막으려 했다. 첫 섹스에 첫 사랑을 느끼고 무지성으로 고백해버린 그날의 기억은 그의 강렬한 흑역사 중 하나였으니.

그러나 뻗어진 손목을 정소라의 손이 탁, 하고 잡아챈다. 그녀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말한다.

“누나 오늘 화장했으니까 조심하자.”

“어, 어어. 미안.”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씩 웃은 정소라는 붙잡은 서주환의 손목을 내리고 팔을 살짝 걸었다. 순간 팔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서주환의 눈이 조금 커진다.

“어?”

놀란 소리를 내니, 정소라가 킥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늦었으니까 서비스. 어때, 용서해줄 거야?”

“…용서 안 해줄 수가 없겠는데.”

“그치?”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웃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

‘여우가 따로 없네.’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렸다. 이거 도무지 이겨먹을 수가 없는 누나지 무언가. 과연 중대장님이셨다. 부대 사람들이 이 모습을 알면 놀라서 뒤집어지겠지.

그 혼자만 아는 모습이라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

두 사람은 역을 나와 길가를 거닐었다.

정소라가 한손으로 배를 쓸며 말한다.

“어디로 갈 거야? 나 배고픈데 밥부터 먹자.”

“흠. 밥 먹는 건 괜찮은데… 생각했던 곳으로 가도 되려나 모르겠네.”

“왜?”

“누나 옷차림이 좀…….”

“옷?”

정소라가 이해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옷차림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원해서 입고 나온 옷은 아니었지만 옷 자체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정소라는 혹시 별로인가 싶어 새삼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며 말했다.

“안 어울리나? 워낙 군복만 입었더니 어색하긴 한데…….”

“뭔 소리야. 엄청 잘 어울려. 오늘 너무 예뻐서 보자마자 잠깐 멍 때렸잖아. 연예인 본 줄 알았어.”

서주환은 손을 저어가며 말했다. 그러자 정소라가 그를 가늘게 뜬 눈으로 빤히 올려다봤다.

“…너 주환이 아니지?”

“갑자기?”

“흐음. 겉모습만 달라진 줄 알았는데 성격도 바뀐 것 같단 말이야.”

“그래?”

“좀 느끼해졌어.”

“으엑.”

서주환이 그럴 리 없다는 듯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쁘다고 칭찬 좀 했다고 느끼하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정소라는 장난이라는 듯 웃더니 말했다.

“사람이 여유가 좀 생긴 것 같아. 옛날에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듬직해졌네.”

“큭큭. 다시 귀엽게 굴어줄까?”

“…아, 좀 재수 없어진 것도 있네.”

“너무해.”

“킥. 어쨌든, 내 옷차림이 왜?”

“아, 그거. 원래 가려던 식당이 좀 뭐라고 해야 되나. 쌈마이한 곳이라 지금 누나가 입은 옷이랑 안 어울리지 싶어서.”

그 말에 정소라는 픽 웃음을 흘렸다. 쓸데없는 걸 신경 쓰고 있었구나. 부유한 집에서 자라왔지만, 격식 같은 걸 따질 거라면 애초에 군인이 되지도 않았다.

그녀는 서주환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에이. 난 또 뭐라고. 그냥 가. 옷이 무슨 상관이야. 맛은 있지?”

“맛은 보장하지.”

“그래서 뭐 먹을 건데?”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국밥.”

“…….”

정소라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그래도 나름 데이트 비슷한 건데, 낮부터 국밥은 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앞서 꺼낸 말이 있기에 정소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맛없으면 죽어.”

“하하…….”

*

“진짜 잘 먹었다. 웬 국밥집을 가나 했는데.”

“맛있었지?”

“응. 그래서 두 그릇이나 먹어버렸잖아.”

“누나라면 좋아할 줄 알았어. 사실 따로 맛집을 알아보긴 했었는데, 역시 여기가 좋을 것 같더라고.”

“진짜, 안 왔으면 서운할 뻔했어.”

서주환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게 웃는 얼굴을 보니 다행이다. 안양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알고 있는 맛집이었는데, 데려온 보람이 있었다.

‘지경이한테 고맙네.’

이 국밥집은 회귀 전 졸업식 날 유지경에게 끌려온 곳이었다. 워낙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이후에도 가끔 찾아오곤 했었다.

“맛은 있었는데 입이 좀 텁텁하다. 양치하고 싶네.”

확실히 낮부터 국밥을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국밥의 진한 맛이 입가에 맴돌아 찝찝했다.

서주환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이템을 불러냈다.

“대신 이거 먹어.”

“사탕?”

“그거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야.”

정소라에게 ‘달콤한 사탕’을 준 서주환은 그 자신도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달콤한 사탕’은 그가 꽝으로 취급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 계속 입에서 굴리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맛을 자랑했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고, 진짜 쓸모 있는 효과는 ‘구강 청결’이었다.

‘이렇게 보면 또 아주 꽝은 아니란 말이지.’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자 화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한다. 국밥의 진한 냄새도 사라지고, 방금 양치를 마친 것처럼 입안이 개운해졌다.

“오, 이거 맛있다. 입도 개운해지고.”

정소라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사탕을 입 안에서 굴렸다. 오물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사람이 과연 악명 자자했던 4중대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일 할 때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무척이나 달랐다.

“아, 주환아. 저기 가볼래?”

“응?”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사격장이 보였다.

서주환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뭐 어떠랴. 오랜만에 휴가를 나와 즐겁게 놀고 싶은 모양이니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휴가까지 나와서 총을 쏘려고?”

“나 총 쏘는 거 좋아해.”

“푸흐. 누나답다.”

“어? 그거 무슨 뜻?”

서주환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사격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눈살을 찌푸린 정소라가 옆구리를 푹 찔러온다. 군대 안에서 이 성격을 숨기고 있었을 테니 오죽 답답했을까.

*

“여기 그냥 게임장이 아니네?”

“그러게.”

“누나도 몰랐어?”

“나도 그냥 게임장인 줄 알았어.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한 번 해보자.”

슈터스클럽.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사격 게임장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전문적으로 운영을 하는 곳인듯 제법 구색이 잘 갖추어져 있다. 종류가 양궁, 권총, 소총, 저격총까지 다양하다.

타앙-!

“오. 비비탄인데도 소리가 꽤 크네.”

실탄처럼 귀가 먹먹할 정도의 총성은 아니다. 하지만 흔하게 보던 비비탄과는 격발음이 전혀 달랐다.

두 사람은 직원에게 가서 사격을 신청했다.

“계산할게요. 우선 소총을 쏘고 싶은데요.”

“처음이시면 간단하게 사격 방법을 코칭해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 괜찮습니다. 그냥 할게요.”

“아하. 군대 다녀오셨나 봐요?”

“네.”

“여성분은 어떻게? 남자친구분이 알려주실 건가요?”

그 말에 서주환은 정소라를 돌아보고 큭큭 웃음을 흘렸다.

“어때, 누나. 남자친구가 알려줄까?”

“…하. 서주환 많이 컸네? 이등병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누나 처음 봤을 때 나 일병이었거든?”

정소라가 중대장으로 온 건 그가 일병 때였다. 이등병 시절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정소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쨌든! 저기요. 저도 그냥 할게요.”

“어… 손님, 죄송한데 여기 총은 밖이랑 달리 반동이 좀 세거든요.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어서 남친 분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예요.”

“…….”

“푸하하학!”

서주환은 더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정소라의 입매가 부들부들 떨리는 게 그리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째릿, 노려보는 눈빛에 얼른 입을 다물고 웃음을 참으며 말한다.

“큭큭. 걱정 말고 그냥 해주세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알려줄게요.”

그제야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내를 해주었다.

바로 옆 사로에 선 정소라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한다.

“웃겨?”

“미안하다니까.”

“미안하면 내기하자.”

“무슨 내기?”

“저녁?”

“아, 저녁은 미리 예약해놨어. 좋은 데로.”

“어? 진짜? 점심도 네가 샀잖아.”

“괜찮아, 내가 누나보다 잘 벌 걸?”

“…그럼 아이스크림 내기나 하자.”

“고작?”

기껏 생각해낸다는 게 아이스크림이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니 정소라가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진지하게 말한다.

“베라 제일 큰 걸로.”

“푸하하. 누나 오늘 왜 귀엽냐?”

“어, 얘 봐라. 베라 무시해?”

“아니. 베라는 인정이지.”

그러고 보니 부대에 있을 때 달달한 걸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안에서 정소라는 어른스럽고 카리스마 있는 누나였는데, 지금 보니까 은근히 귀여운 면도 있었다. 공석에서의 정소라와 사석에서 보이는 그녀의 이미지가 점점 섞여간다.

- 슈터스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기계음이 들려오고,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직원이 설명을 시작했다.

“옆에 패널을 보시면 점수가 표기 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점수는 맞추면 자동으로 올라가고 탄창은 총 스무 발입니다.”

“네.”

“사격에 앞서 안전수칙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공기총이라 해도 사격이니만큼 안전수칙은 필요한 절차다.

설명을 마친 직원이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안전에 유의해서 쏴주세요.”

직원의 말 뒤로 다시 한 번 기계음이 울린다.

- 잠시 후 사격을 시작합니다.

- 준비해주십시오.

- 3, 2, 1.

- 삐익!

타앙!

*

실탄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사격을 하니까 제법 재밌었다. 서주환과 정소라는 소총뿐 아니라 저격총과 권총에 이어 양궁까지 모두 한 번 이상 쏘고서야 밖으로 나왔다.

“누나, 어깨 안 뻐근해?”

“이 정도로 무슨. 그보다 너 실력 다 죽었더라. 만발을 어떻게 한 번도 못 쏴? 흐흠. 중대장이 그렇게 가르쳤나?”

정소라가 짐짓 목소리를 깔며 위협하듯 말했다.

목소리 톤이 갑자기 확 변해서 순간 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조건반사로 서주환의 몸이 움찔 떨렸다.

“어우. 그 목소리 하지 말자, 누나. 그냥 오랜만에 쏘니까 실력이 안 나온 거야.”

“변명은.”

“아, 억울해. 내가 못 쏜 게 아니라 누나가 잘 쏜 거라니까? 당장 사격 선수로 나가도 되겠더구만.”

빈말이 아니라, 정소라가 이대로 군인을 하는 건 국가적으로 손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을 몇 개는 따올 것 같은데.

그러나 정소라는 관심 없다는 고개를 저으며 씩 웃을 뿐이다.

“이따 베라 사는 거 잊지 마?”

“쩝. 알았어. 민트초코 골라도 돼?”

“서주환 미쳤어? 당장 대가리 박아.”

“아니, 민초가 어때서.”

“얘 봐라? 너 저녁 어디 예약했어. 이상한 데 예약한 거 아니야?”

확 진짜 이상한 곳 데려갈까 보다.

서주환은 한동안 억울한 이유로 갈굼을 받으며 길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중, 스쳐 지나간 사람 한 명이 그를 부른다.

“어? 주환 오빠?”

*

Cookie.

<총 잘 쏘는 여자>

모태솔로 박강진은 요즘 일을 할 때마다 허탈함이 들고는 했다. 그가 일하는 ‘슈터스클럽’이 최근 이색 데이트 코스로 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역시 어김없이 한 커플이 찾아왔다.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야말로 선남선녀 커플이 따로 없다.

“베라 제일 큰 걸로.”

“푸하하. 누나 오늘 왜 귀엽냐?”

“어, 얘 봐라. 베라 무시해?”

“아니. 베라는 인정이지.”

슈터스클럽의 직원 박강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격장에 왔으면 총이나 쏘라고.’

아니, 애초에 왜 사격장에 왔는지도 의문이다.

여자가 무슨 총을 쏜다고.

길거리에 흔히 있는 사격이야 이해하지만 슈터스클럽은 일반 사격장과 다르다. 탄만 실탄이 아닐 뿐이지 사격 시 반동을 실제 총기와 다름없이 구현했기 때문에 실사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잡아보는 여자가 쏠 게 못된다.

물론, 최근 수백의 커플들을 보고 질려버린 박강진의 생각일 뿐이었다.

‘또 어깨 아프다고 징징대겠지.’

남자가 자세를 잡아주겠다며 여자 몸에 접촉을 하고 여자는 총을 쏜 후 어깨가 아프다며 애교를 부린다. 사격장에 온 커플의 뻔한 패턴이었다. 어디 공식이라도 나돌아 다니는지 백이면 백이 다 그랬다.

‘총이 우습나.’

이번에 온 커플은 특히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잘생기고 예쁜 외모에 질투했기 때문이 아니다. 알려준다는데도 필요 없다면서 총을 우습게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 타앙! 타앙! 타앙!

- 타앙! 탕, 탕, 탕, 탕, 탕!

남자가 총을 쏘기 시작하고, 여자가 뒤이어 방아쇠를 빠르게 당겨댔다.

맞출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한 발씩 신중하게 쏘는 남자와 대비되어 더욱 튀는 모습이다.

‘제대로 조준도 안 하고. 어휴.’

박강진은 속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염장질을 하는 게 낫지 대충 총을 갈겨대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었다. 10년차 밀덕으로써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태였다.

이래서 여자는 총을 쏘면 안 된다.

박강진은 당장이라도 총을 뺏은 후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일개 직원이고 저쪽은 손님. 뭐라 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대신 다 쏘고 나면 단단히 주의를 주마. 총기가 고장 날 수 있다는 핑계를 들어야겠다.

- Perfect Shot!

- 최고 점수를 달성했습니다!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격을 마친 여자 쪽에서 만발을 상징하는 ‘퍼펙트 샷’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기계 오류인가 생각했다. 성별을 떠나서 퍼펙트 샷은 쉬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으니까.

‘미친. 저걸 다 맞췄다고?’

슈터스클럽의 과녁은 재미를 위해 일반 사격장과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과녁이 크기 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가장 작은 과녁은 일반 사격지의 중앙 수준으로 지름이 손가락 한 마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 하, 좌, 우,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과녁들이 적잖이 섞여 있었고, 특히 가장 작은 과녁 두 개는 다섯 가지 방향으로 랜덤하게 움직여서 만발을 달성하기란 프로 사격 선수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국대 출신 사장 또한 세 번을 도전해서 한 번 달성하면 다행인 게 퍼펙트 샷이었다.

그래서 순간 기계 고장을 의심했는데…….

- Perfect Shot!

- 최고 점수를 달성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기록이 의심을 불식시켰다.

소총에서 저격총으로 넘어가더니 또 다시 퍼펙트 샷을 달성한 것이다. 이어서 권총을 쥐고 다시 여지없이 퍼펙트 샷을 달성한다. 양궁에서는 퍼펙트 샷을 달성하지 못 했으나 그마저도 한 발 놓쳤을 뿐이었다.

“쓰읍. 이거 잘 안 맞네.”

“똑바로 안 쏴?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똑바로 쏘고 있는 건데…….”

“현역이었으면 바로 얼차려였어!”

“쩝.”

기세등등해서는 남자친구를 갈구는 여자.

박강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남자 쪽도 결코 못 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평균 15발 이상의 뛰어난 사격 실력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슈터스클럽의 월간 랭킹 10위권 안에 기록 되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여자 쪽이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나서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되었다.

박강진은 남자의 눈치를 보며 여자를 응시했다.

예쁘고 털털해 보이는 성격에 총까지 잘 쏘는 여성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격에 집중 할 때 눈빛은 또 어찌나 섹시하던지.

아까부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초’자가 세 번은 들어갈 한정판 프리미엄 레어 모델건을 조립했을 때보다도 강렬한 울림이었다.

‘분명 커플일 텐데…….’

심지어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잘생기고 예쁜 선남선녀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속으로 갈등하던 그때.

“누나, 나 잠깐만.”

“응? 어, 갔다 와.”

남자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닐까?

꿀꺽, 침을 삼킨 그는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손님?”

“네?”

“아, 그게. 두, 두 분 커플이세요?”

아니 이걸 왜 물어봐.

당연히 커플이겠지! 알고서 말 건 거잖아!

…그런데 여자가 고개를 젓는다?

“아닌데요.”

“저, 정말요?”

“네. 왜요?"

“그, 그게. 너, 너무 예쁘시고 초, 총도 잘 쏘시고 멋있으셔서… 버, 번호 좀 주실 수 있나요……”

망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제 발로 까버렸다.

말더듬이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자신이 여자였어도 웬 병신인가 싶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박강진은 10년차 밀덕이었고, 24년차 모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곤란한 얼굴로 말한다.

“죄송해요.”

“아, 아뇨.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박강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주제에 맞지도 않은 꿈을 꾸고 이게 무슨 쪽이냐…….

그런데 이미 쪽을 팔았기 때문일까.

박강진은 최소한 궁금증이라도 해결하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저, 저기!”

“네?”

“혹시 사격 선수이신가요? 총을 굉장히 잘 다루시던데… 한 번도 못 뵌 것 같아서요.”

“아뇨. 사격 선수는 아니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는데 선수가 아니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실력이라면 올림픽 금메달도 꿈이 아닐 터인데.

그때 여자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현역 육군 대위입니다.”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정도로 쾌활한 미소였다.

잠시 후 여자는 화장실에서 돌아온 남자와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박강진은 멍하니 생각했다.

‘여군은 멋있구나. 직업 군인이나 할까…….’

훗날 그는 늦은 나이에 삼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기적적으로 50사단 울진 부대로 발령받는다.

안타깝게도 정소라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간 후였지만, 박강진은 또 다른 ‘총 잘 쏘는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본래라면 ‘슈터스클럽’의 전속 건스미스가 되어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을 박강진의 운명이 바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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