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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최근 세 편이 모두 기준치인 대용량이었다는 것을!
이번 편도 한글파일 기준으로는 7천 4백자!
네 편을 합치면 대충 대여섯 편 분량!
네? 연참 아니면 변명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요?
...넹.
*
으음. '소재 찾기' 소제목을 바꿔야겠습니다.
이게 사실 정하연과 유지경의 심리묘사는 안 넣으려다가 몇 번이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한 끝에 결국 넣은 내용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기존에 계획했던 소제목과는 맞지 않게 되었네요.
무엇으로 바꿀지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소제목이 바뀌어도 다시 볼 필요는 없답니다.
*
있지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도 너무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오늘도 좋은 하루 되셨기를 바랍니다 :D
내 동정을 가져갔던 누나와 데이트
정소라가 휴가를 나온 것은 토요일이다. 덕분에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는 애타게 바라는 휴가일지 몰라도 정소라에게는 귀찮기만 한 것이었다.
‘휴가 같은 거 별로 필요 없는데.’
나가봐야 딱히 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귀찮은 일만 생길게 뻔했다. 그러나 휴가란 그녀 마음대로 쓰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일하겠다는데 왜 강제로 내보냐고!’
어딘가의 블랙기업은 정당한 휴가를 보장해 주지 않지만, 군인에게 휴가란 정해진 일수만큼 억지로라도 써야만 하는 것이었다. 벌써 5개월 째 휴가를 쓰지 않은 그녀는 결국 위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에 반강제로 휴가를 사용했다.
‘차라리 비오큐(BOQ:독신 장교 기숙사)에 있고 싶다.’
사실 휴가를 사용한다고 해서 꼭 부대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휴가 기간 동안 무얼 하든, 군법에 위반되지만 않는다면 본인의 재량이었으므로. 그리고 정소라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어디 인생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던가. 그녀는 휴가를 사용하기만 하면 귀신 같이 걸려오는 전화에 항상 언쟁을 벌여야만 했다. 그것은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 집에 한 번 내려오렴.
“나중에 갈게요. 저 바빠요.”
- 바쁘긴 뭐가 바쁘니? 몇 년 째 남자친구도 없는 애가.
“그 말이 왜 나와요!”
- 아이고, 귀 떨어지겠네. 엄마가 얼굴 좀 보자는데 그게 그렇게 싫니? 얼굴 잊겠다, 얘.
“잊긴 뭘 잊어요. 설에도 한 번 뵀잖아요.”
- 그랬던가?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 나이를 먹었더니 치매가 오나보다.
“후. 정말 치매였으면 전화를 안 했겠죠.”
- …쯧. 하여간 누굴 닮아서 한 마디를 안 지니.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이리 고집불통이니 내가 못 살겠어, 아주.
“제가 누굴 닮았겠어요? 그리고 제 고집은 엄마 지분이 팔 할은 될 걸요?”
- 됐고, 이번에 내려와. 지난 설에는 휴가가 아니라 공휴일이어서 온 거잖니. 아빠도 너 보고 싶다는구나.
“공휴일이나 휴가나 어쨌든 얼굴은 봤…”
- 엄마는 우리 딸만 믿고 있을게. 그럼 끊는다. 사랑해, 딸.
“아, 엄마!”
결국 정소라는 본가가 있는 대구로 향해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걸 보아하니 그냥 무시하면 다음에는 더 귀찮아질 것이 눈에 선했다. 그녀가 직접 말했듯, 어머니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아빠도 옆에서 거들었겠지.’
어쩌면 옆에서 어머니를 살살 꼬드긴 장본인일 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대놓고 싫은 말은 안 하지만, 사실 극성인 것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 쪽이었다. 아직도 어린애 대하듯 뽀뽀를 하려는 것하며, 틈만 나면 주변 인사들에게 자랑하는 것까지 딸 바보가 따로 없었다.
‘후우. 내일 출발하려고 했는데.’
약속이 있는 날은 일요일이다. 그 전까지 적당히 기숙사에서 뒹굴다가 출발하려 했건만, 그녀는 어느덧 본가에 도착하고 말았다.
*
저녁 시간은 아주 단란했다.
전화로 다투었던 것과 달리 정소라는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라고 오랜만에 보는 부모님이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잘 생활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얘. 처음 장교가 될 거라고 했을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지지해주셨잖아요.”
“네가 하고 싶다니까 그런 거지. 자식이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니? 어설픈 마음이었으면 모를까 너무 확고해서 말려도 소용없지 싶더라.”
“크흠. 난 처음부터 소라가 잘 해낼 줄 알았지. 아무렴, 누구 딸인데.”
“어머, 이이 말하는 것 좀 봐. 당신 엄청 반대했던 거 기억 안 나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건강하게만 있으라면서 아주 울고불고…”
“어흐흠! 내가 언제 울고불고 했어? 그냥 힘들까봐 걱정했던 거지.”
“흐응. 그런 걸로 쳐요, 그럼.”
“치는 게 아니라…….”
정소라는 부모님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참모총장’의 직위를 가진 국방부의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봐온 아버지의 모습은 그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자연스럽게 군인의 꿈을 키웠다.
정작 그 아버지는 그녀의 꿈을 반대했지만, 다행히도 친구처럼 지내온 어머니가 편을 들어주었다. 아내와 딸의 은근한 압박과 애교 공세에 아버지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렇게 정소라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고, 현재는 한 중대의 장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일이 년 전부터 문제가 하나 생겼으니.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의 어머니, 박선영이 은근한 어조로 말한다.
“소라야, 요즘 만나는 남자 없니?”
그에 옆에서 있던 아버지, 정기훈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반면 정소라는 올 게 왔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지금 연애 할 생각 없어요.”
“뭐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만날 수 있잖니. 왜, 요즘 애들 말로는 썸이라고 하던데.”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드라마에 나오더라. 썅마이웨이라고 요즘 재밌던데.”
“아, 그거 저도 재밌게… 아니지. 아무튼 그런 사람 없어요.”
“관심 있는 사람도?”
“없다니까요.”
단호히 대답하자, 박선영은 이내 혀를 찼다.
“얘는 근무지에 남자가 그렇게 많은데… 기껏 예쁘게 낳아줬더니만.”
“후우. 그만하세요.”
“얘, 네 나이가 벌써 스물여덟이야. 내년에는 아홉수고 내후년에는 서른이다. 여자 나이 서른이면…….”
정소라는 결국 수저를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아, 엄마!”
“어머,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담?”
“제가 이러니까 집에 오기 싫어하는 거라고요. 저 남자 관심 없다는데 계속 왜 그러세요.”
“헉. 너 설마 여자 좋아하니? 그럼 안 된다? 여자랑 여자는 지리적으로 불가능해. 그리고 엄마는 손주 보고싶은데 여자끼리는…”
“제발요, 엄마아!”
“아유, 귀 아파라. 딸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네.”
박선영이 귀를 막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고개를 젓고 싶은 건 오히려 정소라였다. 그녀는 울상을 짓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는 신호였다. 공공연연하게 딸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인 아버지라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딸의 눈빛을 본 정기훈은 짐짓 근엄한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에 일순 침묵이 감돈다. 평소에는 박선영이 실세였으나, 한 번 분위기를 잡은 정기훈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만한 기세가 있었다. 과연 육군참모총장에 어울리는 카리스마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소라야.”
“네, 아빠.”
정소라는 간절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머니를 말려주기만 한다면 수년 만에 애교를 피울 생각도 있었다.
그녀의 눈빛을 읽었을까. 정기훈은 알겠다는 듯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우묵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
“맘에 드는 남자가 없으면 내가 소개시켜주마.”
“…네?”
“크흠. 아빠도 가능하면 빨리 손주를 보고 싶구나. 사실 내일 자리를 하나 잡아 놓았다. 거 운성그룹 쪽 유력 후계자가 아빠 친군데, 그쪽 차남이 아주…”
“아빠!”
정소라는 절망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의 아버지는 딸 바보였지만 그보다 더 아내를 사랑하는 애처가였다. 그리고 결혼을 재촉하는 건, 그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애초에 지난 맞선 자리도 그가 만든 게 아니었던가.
‘그냥 자랑하려고 만든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는 게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소라는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할 생각이 없었다. 감정소모가 귀찮아서 친구도 몇 안 사귀었는데 연애라니! 차라리 독신으로 혼자 늙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소라야, 괜찮은 사람이니까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해봐라. 이 아빠가 보증하마. 꼭 결혼하라는 게 아니라 놀러간다는 마음으로…….”
“싫어요!”
휴가까지 나와서 맞선이라니 죽어도 싫다. 아니, 맞선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순간, 정소라는 내일 있는 약속이 떠올랐다. 마침 적절한 변명 거리가 있었다.
“저 내일 약속 있어요. 그러니까 그거 당장 취소해주세요.”
“약속?”
정기훈의 얼굴이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딸이 거절할 걸 알기에 빼도 박도 못하도록 자리를 마련해놓았거늘.
그때 옆에 있던 박선영이 남편을 지원했다.
“친구면 나중에 만나면 안 되니? 아빠 면 좀 살려주렴.”
“아, 안 돼요. 친구 아니에요.”
“친구가 아니야? 그럼 누구?”
“그건…….”
정소라가 말을 흐리자 박선영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 나가기 싫은 딸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라야, 거짓말까지 할 정도로 싫으니? 다음부터는 미리 말할 테니 내일만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정소라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다음부터 말해주긴 개뿔이!’
전혀 신용 없는 약속이었다. 속은 게 벌써 한두 번이던가.
정기훈은 분명 존경해마지 않는 아버지였고, 박선영은 그녀를 이해해주는 친구이자 어머니였지만, 연애와 결혼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다음은 다음이고, 일단은 평안한 내일을 위해서라도 지금 확실히 거절해야만 했다.
‘주환아, 미안.’
속으로 그리 사과하며,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저 내일 남자 만나러 가요!”
순간, 정적이 일었다.
“…뭬야?”
“뭐라고 했니?”
정기훈의 얼굴이 구겨졌고, 박선영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정소라는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
“나, 남자 만나러 간다고요…….”
그 남자는 썸남도 연인도 아니었지만, 일단 거짓말은 아니었다.
*
다음 날, 정소라는 샤워를 마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어머니, 박선영은 미심쩍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한 마디를 했다.
“딸, 역시 친구 만나러 가는 거지?”
“…남자 만나러 간다니까요?”
“거짓말 하지 마. 남자 만나는데 누가 그러고 가니?”
“뭐, 뭐가 어때서요.”
정소라는 움찔하면서도 짐짓 몸을 곧게 폈다.
하얀 반팔과 그 위에 걸친 베이지색 가디건, 바지는 무난한 청바지를 입었다. 워낙 몸매가 좋으니 그것만으로도 군복을 입었을 때와 비교하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박선영의 눈에 어린 의심은 더더욱 짙어졌다.
“옷도 대충 입어, 화장도 안 해. 관심 있는 남자를 꼬시러 가는데 그러고 간단 말이니?”
“누, 누가 누굴 꼬신다는…”
“응? 뭐니. 설마 그냥 친구?”
“…….”
정소라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아무런 감정 없는 친구라고 한다면 분명 또 딴지를 걸겠지. 이런 주제로 더 이상 말이 길어지는 건 사양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계산을 마친 후 가볍게 코웃음 치며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위장했다.
“꼬실 필요도 없다는 말이었어요.”
“어머, 혹시 벌써 넘어왔어?”
“…맞아요.”
이 또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벌써 과거에 고백을 거절했고, 지금은 친한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낸다는 사실을 숨겼을 뿐.
자신의 딸을 미심쩍게 바라보던 박선영은 이제 정말로 헷갈렸다.
‘흐음. 변명하는 건 줄 알았는데.’
말하는 걸 보아하니 남자를 만나러 간다는 말 자체는 맞는 모양이었다. 정소라가 마냥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면, 그녀를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서주환이 박선영을 보았다면 잠재등급 S 의 ‘눈치’ 재능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을 터였다.
“그래도 좀 꾸미고 가렴. 있던 정도 떨어지겠다, 얘.”
“아니, 괜찮다니…”
“너 설마 그 남자 갖고 노는 건 아니지?”
“…네?”
“그렇잖니. 잡은 물고기라고 꾸미지도 않고 나간다니. 그건 상대에 대한 매너가 없는 거란다, 딸?”
“…….”
정소라는 차마 어머니에게 ‘잡은 물고기가 아니라, 섹스도 하는 친한 동생’이라고 진실을 고할 수 없었다.
“화장, 하면 되잖아요.”
“당연하지. 엄마가 옷도 사놨으니까 다시 갈아입어. 여러 벌 있으니까 골라보렴.”
“…알았어요.”
“제모는 했니?”
“아, 엄마!”
“어머, 너 그거 중요한 거다? 남자들이 여자한테 갖는 환상이 얼마나 큰데. 엄마는 지금도 네 아빠 때문에…”
“제발 좀! 엄마 나이가 벌써 오십이에요!”
그마저도 28살이나 되는 딸이 있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였지만, 박선영은 조금 충격을 받아버렸다. 그녀는 자존심 상한 얼굴로 반박했다.
“얘, 밖에 나가면 엄마 삼십대로 봐! 그것도 초반!”
“삼십은 무슨, 엄마는 딱 쉰이거든! 이제 아주 쉬어버린 나이… 아악!”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옷이나 갈아입어!”
“왜 때려요! 헛소리를 누가 했는데!”
“소라 아빠! 소라가 나더러 늙은 할망구래!”
“아니,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
쿵쿵쿵!
정기훈이 달려왔다.
“딸.”
“…나 억울해, 아빠.”
“엄마 말 듣자.”
정소라는 울고 싶었다. 남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나이 오십 먹고 딸을 놀리면 재밌느냔 말이다. 진짜 화난 것도 아니면서!
‘꼬우면 결혼하라는 거겠지.’
이렇게 나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정소라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옷을 갈아입었다. 이어서 실로 오랜만에 화장을 시작했다.
‘…가서 주환이나 놀려줘야지.’
그녀는 결국 외출 전, 풀 착장과 풀 메이크업을 마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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