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55화 (15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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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표지가 돌아왔습니다ㅎㅎ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정시연재를 할 수 있었네요 :D

아참, 일부 바뀐 소제목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용상의 변화는 없어요!

단지 교정 작업 할 때를 생각해서 소제목을 나눈 거랍니다.

*

Ekdmdb 님, 빨간침팬치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너무 감사합니다!

*

독자님들 모두 좋은 하루 되셨기를.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어수선한 마음과 마음

이른 아침에 거실로 나온 유소정은 소파 위에서 몸을 겹친 채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순간, 인기척을 느끼고 급히 일어나는 서주환.

그를 보고 유소정이 질린다는 얼굴로 말한다.

“오빠는 진짜 대단하다. 어제 그렇게 해놓고도 새벽에 또… 이 정도면 감탄만 나오네.”

“하하.”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었고, 유소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는 김미정을 깨워서 얼른 자리를 정리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도 별 탈은 없을 테지만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보이기에는 꽤나 부끄러운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씩 일어난 일행들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운전자는 이석찬이다.

“아, 왜 또 내가 운전이야!”

“그야 면허가 너밖에 없으니까.”

“면허 따라고, 개새끼야!”

서주환은 얄밉게 어깨를 으쓱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안 그래도 종강하면 여름에 면허를 딸 생각이었다. 그보다 지금은 확인할 게 따로 있었다.

‘어디 보자. 이번에 얻은 소득이…….’

포인트를 많이 수급한 것은 물론이고 재능까지 세 개나 얻었다. 비록 그가 원하던 재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발재간, 게임, 손재주.’

각각 유소정, 임수정, 김미정에게 얻은 재능이다.

내심 바라고 있던 ‘마술’이나 ‘상상’은 허공에 날아갔다. 특히 ‘게임’ 재능의 경우에는 명칭도 등급도 중복되어서 결론적으로 얻은 재능은 두 개였다.

그러나 서주환은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손재주면 쓸 데가 많겠네.’

바라고 있던 ‘상상’은 아니었지만 ‘손재주’ 또한 등급이 높고 범용성이 큰 재능이었다. 잘만 사용한다면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리라.

서주환은 곧바로 재능 등급을 한계까지 강화시켰다. 최근에 수급한 LP가 넉넉해서 아낄 이유가 없었다.

‘무지성 포인트 사용!’

새로 얻은 재능을 모두 B+로 만들었다. 이어서 곧장 ‘특수능력’을 개방했다.

띠링!

[20,000LP를 사용하여 특수능력을 개방합니다.]

[특수능력, ‘원숭이 발’을 습득했습니다.]

[특수능력, ‘럭키 핸드’를 습득했습니다.]

【원숭이 발】

▶ 효과: 발을 손처럼 다룰 수 있다.

【럭키 핸드】

▶ 효과1: 손재주가 관여한 일에 한하여 ‘낮은’ 확률로 재능 등급(+) 보정 효과가 붙는다.

▶ 효과2: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매우 낮은’ 확률로 행운이 일어난다.

특수능력의 설명을 본 서주환의 얼굴이 일순 찡그려졌다.

‘원숭이 발이라니… 완전 꽝이네.’

도저히 쓸 만한 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얻은 능력 중 제일 쓸모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어서 나온 ‘럭키 핸드’를 본 서주환의 얼굴은 다시금 활짝 펴졌다.

‘글 쓰는 거에도 적용 되려나?’

능력의 활용도는 곧장 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본 결과, 글과 손재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뭐, 어디에라도 쓰이겠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인데.’

넓은 범용성만으로도 ‘손재주’ 재능과 특수능력은 기대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

이석찬을 비롯한 정정정 세 자매와 펜션을 다녀온 지도 벌써 닷새가 넘었다.

서주환은 일상으로 돌아와서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 아니, 정확히는 몰두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강의 중에는 물론이고 밥을 먹을 때조차도 종종 사색에 빠져들었다.

서주환은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의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대고 있었다. 한참 펜을 놀리던 그는 이내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옆에 있던 장덕훈이 힐끗 서주환의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노트를 살펴 본 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형님, 신작 생각하십니까?”

“응. 그런데 딱 정하지를 못하겠네.”

“확실히 써 놓으신 게 좀 중구난방인 느낌입니다. 일단 판타지나 무협은 아니신 듯한데.”

“어지간하면 현대 배경으로 쓰려고.”

“헌터물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초능력이나 무공 같은 게 나오진 않아.”

“그럼 전문가물?”

“음. 전문가물은 나중에 써보려고. 철저하게 자료조사를 한 뒤에. 일단 지금은 현대 배경에서… 일종의 군상극 같은 걸 써보고 싶어.”

“군상극… 어렵겠군요.”

“그렇지. 일단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긴 하지만… 아, 교수님 보신다.”

교수의 눈치로 대화가 끊겼다.

서주환은 적당히 강의에 집중하는 척하다가 머리를 털었다. 시험이 끝난 뒤로 계속해서 고민을 해왔더니 생각이 이어질수록 실타래가 엉키는 느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군상극의 구조를 일부 빌린 일상물인데.’

다루고 싶은 인물상이 많았다. 사건과 서사보다는 인물의 생각과 삶을 위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상극이라는 구조를 떠올린 것이었다.

군상극이란 하나의 사건을 복수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작품 유형을 말한다. 다수의 등장인물과 여러 시점을 이용하는 만큼 각 인물의 성격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도 다르다. 때문에 사건 하나를 두고서 다양한 분위기를 낼 수 있고, 여러 캐릭터의 심리를 묘사하기에 용이했다.

‘그렇다고 군상극을 쓰고 싶은 건 아니야.’

군상극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독자가 어떤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서주환이 쓰려는 건 군상극이 아니었다. 우선은 웹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주인공을 명확히 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쓰려는 건 어디까지나 군상극의 형태를 일부 빌려온 일상물이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많아.’

그가 생각한 전개 방식은 웹소판에서 주류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남성향의 ‘캐빨’이나 로판에서의 ‘감성’ 위주의 전개라면 괜찮겠지만 그가 막연하게 쓰고 싶은 것은 그 둘과도 조금 달랐다.

애초에 군상극이라 함은 명확한 정의가 있지도 않았고, 형태만 빌려온다 하여도 실존하는 사건이 아닌 이상 다루기가 굉장히 어려운 스토리텔링 방식이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글이 난잡해지고 등장인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 될 때는 더할 수 없이 재밌지만, 잘못 조형한 인물의 시점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귀신 같이 재미없어질 수가 있었다.

“그럼 다음 주까지 과제 잊지 말고 해오세요~.”

“네엡!”

서주환은 하루 강의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려면 벌써 3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민해왔는데 갑자기 덜컥 답이 생길 리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으니.

그는 가까이 앉은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얘들아, 오늘 우리 집에서 술 한 잔 할래?”

“술? 나야 좋지.”

이석찬이 곧장 동의했다.

정하연과 유지경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주말이니까 오랜만에 마시자.”

“나도 오늘 알바 없어서 괜찮아, 오빠.”

“덕훈이 너는?”

“저도 당연 괜찮슴다.”

“오케이. 오늘 고기나 구워먹자.”

서주환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이 많을 때,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

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은 서주환은 적당히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다섯 명이서 8인분을 먹어치웠다.

그와 장덕훈이 거의 2인분씩을 먹었고 최근 다이어트를 포기한 유지경이 1.5인분을 먹었다. 정하연도 식탐이 꽤 있는 편이란 적잖게 먹고 나니 8인분으로도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서주환은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후식으로 국수 먹을 사람?”

이석찬만 고개를 젓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국수라는 소리에 입맛을 다셨다.

“난 패스.”

“나는 조금만.”

“형님이 해주시는 건 다 좋습니다.”

“나도, 나도! 나 비빔국수 많이!”

유지경이 손을 휘적휘적 흔들어대며 많이 달라고 어필했다. 한동안 다이어트 중 풀떼기만 먹던 그녀는 최근 식탐이 터져서 먹는 양이 굉장히 늘었다.

서주환은 옆에 있는 그녀의 배를 콕 찔렀다. 고기를 먹고 볼록 튀어나온 배가 귀엽다.

유지경이 눈을 부라렸다.

“만지지 마! 변태!”

“너구리 뱃살이 토실토실하네.”

“밥 먹어서 그런 거거든? 더 놀리면 물어버린다?”

“너 그러다 요요… 아악! 야, 야!”

서주환은 기겁하며 손을 흔들었다. 유지경이 정말로 손을 물어버렸기 때문이다. 간신히 떼어놓자 그녀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댔다.

“너구르르르…….”

“어우씨. 네가 짐승이야?”

“캬악!”

“아, 알았어. 밥 줄게. 국수 준다고!”

그는 얼른 주방으로 도망쳤다.

“어우, 아파.”

손가락 두 개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안 그래도 요즘 신경 쓰는 걸 알고 놀린 건지라 억울하다고 변명도 못한다.

“너구리 년, 살 더 찌워서 잡아먹어야지.”

헬스장에 데려가서 아주 죽어라 굴려야겠다. 그러게 말 할 때 제대로 운동해서 빼라니까 꼭 말을 안 듣고… 쯧쯧.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재료로 간단하게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당근, 호박, 양파 등 채소를 꺼내서 채썬다.

탁탁탁- 가벼운 칼질에 얇게 썰리는 채소들. 손재주 재능을 얻은 뒤로는 요리가 더 쉬워졌다. 얇게 썰고, 균등하게 썰어서 재료를 한 곳에 모아두었다.

이후 고추장과 간장, 설탕, 올리고당, 다진 마늘 등 여러 재료들을 한 데 때려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념장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비율도 중요했다.

[특수능력, ‘럭키 핸드’가 적용됩니다.]

“오.”

낮은 확률로 발동되는 특수능력이 적용되었다.

서주환은 양념장을 살짝 찍어먹어 보았다.

“크으.”

절묘하게 조합된 양념장의 맛이 예술이다.

황금비율로 만들어진 양념장은 맵고, 짜고, 단맛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한 데 어우러졌다. 마지막에 넣은 식초의 시큼한 맛이 살짝 더해져서 입에 침이 고였다.

“소면 삶고, 심심하니까 골뱅이도.”

냉장고에 있던 골뱅이 캔을 따서 흐르는 물로 씻어낸 후 먹기 좋게 잘라서 올린다. 채소 사이에 있는 골뱅이가 고기의 식감을 내줄 것이다.

서주환은 그릇에 소면을 먼저 넣고 채소와 골뱅이를 정갈하게 올려서 플레이팅 했다. 본래라면 신경 쓰지 않을 요소였으나 손재주가 생긴 뒤로 종종 플레이팅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어차피 비벼먹을 테지만 첫 눈에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었다.

“자, 국수 왔습니다!”

상에 국수 네 그릇을 내려놓자 정하연과 유지경, 장덕훈은 물론이고 먹지 않겠다던 이석찬까지 눈을 크게 떴다.

“와. 뭔 국수를 이렇게 예쁘게 담았어?”

“오빠, 나중에 가게 내게? 글 쓰면서 부업으로?”

“그러고 보니 형님네 부모님께서 요식업에 종사하신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흐흐. 반응 좋네. 일단 먹어봐. 맛은 더 끝내주니까.”

서주환의 손짓에 일행들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정하연과 유지경은 플레이팅이 예쁘다면서 아까워했지만 결국 음식은 감상이 아니라 먹기 위해 있는 것이었다. 이내 야무지게 비빈 두 사람도 장덕훈을 따라 국수를 입에 넣었다.

“후루루룩~!”

장덕훈은 말없이 고개를 처박고 면을 빨아들였다.

“후아. 이거 좀 맵다. 그런데 엄청 맛있어. 단맛이랑 신맛도 있어서 매운 게 오래 안 남네. 나중에 레시피 좀 알려주라.”

정하연은 맛을 분석하면서 레시피를 탐냈다.

반면 유지경은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입 안에 국수를 잔뜩 집어넣었다.

“호록, 호록. 이거, 엄청 마시써. 더 이썽? 움냐.”

“너굴아, 먹고 말해라.”

“꿀꺽. 더 있어?”

“너구리 말고 돼지로 전직하게?”

“…나 많이 살 쪘나?”

“더 찌워서 삶아먹으려고 그런다, 왜.”

“씨. 나 안 먹어.”

“프흐흐. 아직 괜찮으니까 더 먹어. 찌우면 내가 빼줄게.”

“빼준다고…?”

무얼 상상한 걸까.

얼굴을 붉힌 유지경이 그를 향해 남몰래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다. 입 모양으로는 ‘주인님 변태’ 라고 말한다.

‘죽어라 운동 시켜서 빼준다는 거였는데…….’

서주환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를 이석찬이 붙잡았다.

“야, 나도.”

“안 먹는다면서?”

“나도 줘! 배고 파!”

“배부르다면서 새끼야.”

“아 몰라! 배고파!”

“아오. 식충이 새끼.”

결국 이석찬에게도 한 그릇을 내어주었다.

사실은 달라고 할 줄 알고 미리 만들어 놓았다.

*

한 명도 빠짐없이 과식을 하고 저마다 바닥에 축 늘어졌다. 과도한 포만감은 인간을 게으르게 만들었다.

“으아아. 배불러. 그리고 심심해. 내일 쉬는 날인데 뭐 하지?”

이석찬이 바닥을 뒹굴면서 소리쳤다.

서주환은 남은 술을 한 잔 비우며 이석찬을 발로 밀었다.

“먼지 나, 인마. 그만 굴러다녀.”

“노노. 그 먼지, 내가 옷으로 닦아주고 있는 거임.”

그리 말하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계속 누워 있으면 숟가락으로 때리려고 했는데 눈치가 좋다.

이석찬이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쳤다.

“내일 벚꽃 구경 가쉴?!”

“미친놈아. 이미 다 떨어졌어.”

“엑.”

“엑은 무슨. 5월에 벚꽃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이석찬은 자신이 빡통대가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어거지를 써댔다.

“5월에 벚꽃 있음!”

“어디?”

“일본!”

“에라이 미친놈아. 일박으로 일본을 갔다오랴?”

“아무튼 있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

대화하기를 포기한다.

서주환은 이석찬의 뒤통수를 후리고 다시 마지막 남은 술을 비웠다.

“크. 취한다.”

그 말을 다시 바닥에 누운 이석찬이 잡아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가면 안됨?”

“뭐? 너 집까지 얼마 안 걸리잖아.”

“그래도 귀찮음.”

“형님, 저도 여기서 자면 안 됩니까? 움직이기 싫슴다.”

장덕훈까지 가세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서주환은 중지를 곧게 펼쳤다.

“꺼져. 이 새끼들이 오늘 왜 이래?”

“매정한 새끼.”

정다운 욕설이 오갔다.

그 사이로 불쑥 유지경이 참여했다.

“나도 움직이기 싫당. 나도 자고 싶당. 언니는 괜찮아요?”

“응? 나도 움직이기 싫긴 한데…….”

“오케이. 그럼 하연이랑 지경이만 자고 가. 나머진 꺼져.”

정하연이 썩은 얼굴로 중지를 들었다.

“조까.”

“네, 누나. 지금 깔까요?”

“…주환이 너 점점 이석찬 닮아 간다? 한 번 까봐. 어떻게 되나 보자. 마침 저기…….”

그녀의 눈길이 향한 곳에는 가위가 있었다.

설마 자르겠다는 소린가?

서주환은 입을 닥치기로 했다.

‘성깔 어디 안 갔네.’

정하연이 비교적 얌전할 때는 침대 위에서 뿐이다. 그나마 이제는 침대조차도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시험기간 때를 마지막으로 그녀와 몸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어색하진 않은데, 이제 어렵단 말이지.’

정하연과 있는 시간이 어렵다는 게 아니다. 그녀와는 미묘한 관계가 된 이후 오히려 편해졌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대화를 나눈 그 날 이후의 정하연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그가 유혹해도 간단하게 넘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한 번은 은근히 분위기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하연은 잠깐 당황하는 듯하다가 오히려 먼저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이후 한 말이 가관이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거야. 너도 나 맘대로 했었으니까.’ 라고 말하던 게 아직까지 선명했다.

그 날을 떠올리며 정하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그녀는 샐쭉한 미소를 짓더니 작게 혀를 내밀었다.

서주환은 그를 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술잔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더 따를 술이 없었다. 대신 한 쪽에 던져두었던 폰이 진동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이석찬이 폰을 넘겨주며 묻는다.

“야, 소라 누나가 누구냐? 예쁨?”

“어? 소라 누나?”

서주환은 얼른 폰을 건네받았다. 액정을 보니 진짜 정소라의 연락이었다. 심지어 영상통화였다.

화면을 터치하자 군복을 입고 있는 숏컷의 매력적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 주환아, 오랜만.

정소라가 화면 안에서 손을 흔들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 어쭈, 빨리 경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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