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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연참
소문의 진실
김수지는 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짜증스런 마음을 누르고 문지민을 달랬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거 알잖아. 지민아, 우리 그거 들키면 진짜 끝장이야. 자퇴정도로 안 끝난다고.”
“…응. 알아.”
“너도 불안하지? 그래서 학교 나온 거잖아. 일단 오늘은 지켜보기만 하자. 그리고 내일 주말이니까 몰래 가져오면 돼.”
“으응. 알았어. 그런데 내일이라고 학교에 사람 없을까?”
“…조교는 있을 거야. 그래도 해야지. 몰래 숨기는 것도 했는데 빼는 걸 못하겠어?”
문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만 했다.
빨리 회수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도 편히 못 잘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수지야, 지민아.”
“…박도희?”
박도희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
김수지는 순간 박도희를 발견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어디까지 들은 거지? 알아챘나? 얘도 이제 우리 편이 아닐 텐데.’
정하연 그년에게 까톡 로그를 강제로 빼앗겼다.
그 때문에 학과에 소문이 모두 퍼진 것이다.
박도희도 소문을 들었을 게 분명했으니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온 건 욕이라도 하려는 거겠지.
그러나 박도희의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얘들아… 학과에 도는 소문 거짓말이지? 사실이어도 뭔가 오해가 있는 거지? 너희가 그럴 리가 없잖아.”
김수지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슬쩍 옆을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문지민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다시 박도희를 바라봤다.
“지민아, 수지야. 난 소문 같은 것보다 너희를 더 믿어. 우리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잖아. 그치?”
김수지는 빠르게 판단했다.
‘까톡을 못 봤구나. 소문만 들은 거야.’
생각해보면 학과에 퍼진 건 소문이었지 까톡 로그가 아니었다.
‘맞아. 개인정보유출. 그것 때문에라도 맘대로는 못 퍼트리지. 그렇다고 박도희에게만 따로 보여줄 정도로 정하연 그년이 친한 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정리가 끝났다.
김수지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곧 부드럽게 바뀌었다.
“물론이지 도희야. 우리가 너를 욕 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솔직히 몇 번은 했어. 그런데 조그만 불만 정도지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 정도는 아니야. 친구끼리라도 누구나 불만은 있잖아.”
“그, 그렇지? 우리 친구지?”
“당연하지. 그보다 미안해, 도희야. 우리 때문에 너까지…….”
“아, 아냐! 괜찮아.”
친구라는 말에 박도희는 안심한 듯 웃으며 다가왔다.
김수지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로그를 직접 본 게 아니라면 박도희는 아직 이용할 수 있다.
‘어차피 진짜 친구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년이야. 중학생 때부터 같은 레즈가 아니면 믿지 말라고 말해왔으니까.’
박도희는 사람 말을 잘 믿는다.
그런 박도희에게 5년 넘는 시간 동안 속삭여왔다.
또한 고립 됐을 때 구해준 게 자신들이었기에 박도희는 자신들을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도희야, 사실은 있지.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
박도희는 스마트폰의 녹음기를 재생했다.
- 뭐, 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게. 우리 친구잖아. 맞지?
- 당연하지!
- 맞아. 도희야, 우리 중학생 때부터 계속 친구였잖아.
- 응. 알았어. 친구니까 당연히 도와줘야지.
- 고마워. 그게 있지… 우리가 카메라를 회수해야 되는데…….
- 카메라?
- 으응. 여자 화장실 두 번째 칸이랑 네 번째 칸에…
- …화장실?
- 그게……
- 서, 설마 몰카야?
- 모, 몰카라니! 그냥 좀… 그런 거야. 아무 말 말고 도와주면 안 될까?
- …두 개만 가져오면 돼?
- 도와주는 거야?
- …친구니까.
- 그, 사실 남자 화장실에도…….
녹음기의 대화는 카메라가 화장실마다 두 개씩 설치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친구라는 명목 하나로 박도희에게 카메라 회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김수지와 문지민.
실행일은 학교에 사람이 적은 토요일이었다.
이윽고 음성이 끝나자 박도희는 폰을 내밀었다.
“여기요, 오빠.”
“고생했어.”
“고생… 그런 거 없었어요.”
박도희는 쓰게 웃었다.
실제로 고생이랄 게 없었다.
김수지와 문지민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모든 걸 털어놓았으니까.
5년간의 우정…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나를 믿기 때문에.’
멍청해서 자신들을 벗어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서주환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도희를 바라보다가 녹음파일을 전송받았다. 이후 그녀에게 폰을 다시 돌려주며 말한다.
“이제 들어가서 쉬고 있어. 오래 안 걸릴 테니까.”
“네… 고마워요.”
“혹시 그년들 전화와도 받지 말고, 찾아와도 문 열어주지 말고.”
“헤헤. 그 정돈 알아요.”
“들어가라.”
“네에.”
대답과 함께 몸을 돌리는 박도희.
그녀는 두어 걸음 걷다가 움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서주환을 마주보고 말한다.
“오빠.”
“왜?”
“저 조만간 자퇴할게요.”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서주환은 처음과 달리 박도희에게 학교를 떠나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처음에 알던 것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박도희는 고개를 저었다.
“학과에 이미 소문 다 난 거 알잖아요.”
“너는 피해자라고 되어 있던데.”
“그거 말고요.”
서주환은 박도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학과에 난 소문은 뒷담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김수지와 문지민이 나눈 대화 외에도 박도희가 포함된 단톡방에는 동성애에 대한 말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이미 학과에는 세 명이 레즈비언인 게 모두 퍼진 상태였다.
“애들이 저를 욕하지는 않는데 다들 피하는 느낌이에요.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고.”
“그럼 우리랑 다니면?”
그 말에 박도희의 눈이 커졌다.
설마 서주환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젓는다.
“오빠한테 못된 짓 했는데…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됐어. 나도 좀 오해해서 심하게 굴었으니까. 그보다 진짜 자퇴하려고?”
“네… 챙겨주는 건 고마운데 역시 못 다니겠어요. 다른 사람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뭔가 좀, 의욕도 떨어져서요.”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종도가 5중첩 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온 거절이다.
이미 마음을 정한 듯한데 그가 더 말리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그는 다른 제안을 했다.
“정 그러면 자퇴는 하지 말고 휴학만 해놔.”
“…그래도 돼요? 저 오빠 협박 했었는데.”
“아까부터 괜찮다고 하잖아. 그 얘긴 그만하자.”
“…알았어요. 고마워요, 오빠.”
박도희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환은 그녀가 돌아서기 전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 재능 있더라.”
“네?”
“필명이 능소화라고 했지?”
박도희는 웹소설을 쓰고 있다. 서환이라는 필명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녀는 일전에 식당에서 서주환네 일행이 얘기하는 걸 듣고 그때 서주환이 서환과 동일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존경심을 뜻하는 노란색이 두 줄이나 떠올랐던 것이다.
‘박도희가 능소화일 줄이야.’
재능이 있다는 게 비단 상태창만 보고 한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능소화’는 훗날 로맨스판타지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능소화는 본래 GL물을 쓰던 작가였는데 어느 순간 로판으로 전향했었다. 짐작일 뿐이지만 본래 그가 있던 시간 선에서도 박도희는 그 두 사람과 틀어진 게 아니었을까.
“열심히 해봐.”
박도희는 눈을 깜빡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어… 제가 쓴 건 백합물밖에 없는데요?”
“나도 백합물은 처음 읽어봤다.”
“아하하. 서환 작가님이 괜찮다니까 기분 좋네요.”
그녀는 위로가 되었다는 듯 웃었다.
서주환은 고개를 젓고 진지한 낯으로 말했다.
“너 진짜 재능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써봐. 물론 네가 내켜야겠지만.”
“…….”
“글 쓸 때는 다른 생각 좀 덜 들더라. 쓰느라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거든. 아, 백합물 말고 로맨스나 로판 써보는 것도 좋을 거야.”
“…참고할게요, 서환 작가님.”
박도희가 물기 어린 눈으로 웃었다.
‘이제 좀 예뻐 보이네.’
다 벗었을 때보다 예뻐 보이더라.
*
박도희가 자리를 뜨자 이석찬이 말했다.
“왜 쓸데없는 짓 시켰음?”
“뭐가?”
“카메라 있는 거 짐작했으면 굳이 쟤 도움 없어도 되잖아.”
“그렇긴 하지.”
이석찬의 말대로 굳이 박도희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이미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충 경찰에 신고하고 이석찬이 지닌 연줄로 일을 키우면 되니까.
그 과정에서 녹음파일 같은 건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이었다.
아무려면 경찰이 초소형 카메라라는 증거물을 갖고도 범인을 못 찾을까.
정말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뒤에서 슬쩍 힌트를 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그냥 뭐…”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복수는 남이 해주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통쾌하잖아.”
*
다음 날 출콘과, 아니 대안대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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