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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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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진실
서주환은 자신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걷고 있는 박도희를 힐끗 바라봤다.
‘무슨 생각이지?’
유소정에게 듣기로 박도희는 그간 정하연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린 범인이다. 또한 최근에는 자신에 대한 악담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박도희가 어째서 집까지 데려다 달라며 달라붙는 걸까. 생각해보면 박도희는 과톡방에서부터 같이 술을 마시고 싶다며 판을 벌렸고, 술집에서도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지금은 팔에 매달리듯 붙어서 은근히 몸을 기대는 중이었다. 단순히 술에 취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서주환은 박도희의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박도희>
성별: 여성
나이: 20
키: 162cm
몸무게: 55kg
호감도: D
현재성욕: C+
페티시: Homophilia(下), Homilophilia(中)
보유 재능: 수용(B/S), 정리(C+/A), 망상(C+/B+), 글쓰기(C/B+)
‘설마 얘한테 S급 재능이 있을 줄이야.’
그가 굳이 박도희를 집에 데려다 주고 있는 이유였다. 박도희에게서 얻을 수 있는 ‘S급 재능 조각’이 아까워서라도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먼저 유혹하듯 몸을 비벼오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건데.’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인데 서로 마음이 맞아 떡 한 번 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다. 오히려 포인트 수급을 생각했을 때 깔끔한 관계는 그도 환영이다. 요즘 세상에 떡 친다고 꼭 사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 대상이 뒤에서 험담을 한 사람이라는 게 찝찝했다.
‘일단 페티시는… 다시 봐도 애매하네.’
박도희의 페티시는 각각 하급과 중급 하나씩이었는데, 둘 다 수집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아니, 하급 페티시 하나는 수집할 수가 없다.
루시가 말하길 Homophilia(호모필리아)는 동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동성성애였다. 그 말을 듣고 박도희가 레즈비언인가 했지만, 등급이 낮은 걸로 봐서는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루시의 의견이었다.
동성성애를 가진 경우라도 중급까지는 이성을 좋아하는 게 가능할뿐더러 하급의 경우에는 애초에 스스로의 성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럼 뭐, 설교라도 해야 하나?’
포차에서도 그랬지만 박도희는 평소에도 토론 같은 행위를 즐기는 듯했다. 조별과제나 발표과제가 있는 날이면 격렬하게 의견을 나누고는 했던 것이다. 이는 설교 기호증인 Homilophilia(호밀로필리아)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 설교 기호증은 자신이 흥미를 가진 것에 한하여 연설 또는 강연을 듣거나 하는 데에서 쾌락을 얻는 증후군이다.
‘어쩔 수 없지.’
페티시를 수집하기도 어려워 보이고, 이를 토대로 무슨 생각인지 추측하는 것도 무리다.
서주환은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결국 얼마 전에 얻은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제대로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용하는 건 3레벨이 된 이후 뽑기에서 얻은 새로운 스킬, 마안(魔眼)이다.
【마안(Rank: B+】
▶ 효과1: 시력이 2.0까지 좋아지며 더 이상 손상되지 않는다.
▶ 효과2: 동체시력이 상승한다.
▶ 효과3: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마안(魔眼)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그리 엄청난 능력은 아니다. 물론 시력이 상승된 것은 좋지만 이름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 심지어 두 번째 효과는 박투 재능의 특수능력과 일부 중복되고, 세 번째 능력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애매했다.
지금 서주환이 쓰려는 능력은 세 번째 능력이었다.
‘마안.’
속으로 읊조리자 약간의 두통과 안통이 일며 시야가 확장된다. 평소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었던 바람의 움직임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서주환은 다시 박도희를 바라봤다. 그녀에게서 색색의 기류가 작게 일렁이는 게 보였다.
‘붉은색 한 줄, 분홍색 한 줄… 노란색 두 줄?’
마안을 활성화하고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서주환 본인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색으로 판별할 수 있었다. 일전에 실험한 결과 붉은색은 적대감, 분홍색은 호감, 노란색은 존경에 해당한다. 분홍색은 보통 정하연과 유지경에게 많이 볼 수 있었으며 노란색은 장덕훈에게 가장 많이 보였다.
‘적대감이랑 호감을 동시에 갖는 건 그렇다 치고, 얘가 왜 날 존경하지?’
알면 알수록 모를 노릇이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목적지에 다다랐다.
박도희가 그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오빠, 데려다줬는데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아니면 해장할래요? 라면 끓여줄까?”
서주환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박도희의 집으로 들어갔다. 뭐가 됐든 박도희와는 얘기를 나눌 필요성이 있을 듯했다.
*
박도희의 자취방은 원룸치고 제법 넓은 편이었다. 서주환은 방 안을 둘러보다가 책장을 발견하고 말했다.
“도희야, 책 좀 봐도 돼?”
“아, 오빠 책 좋아하죠.”
“응? 그렇긴 한데 그걸 어떻게 알아?”
서주환은 눈을 끔뻑였다. 별로 책을 좋아한다고 떠든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박도희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첫 날 자기소개할 때 취미가 독서라도 했었잖아요.”
“아, 그랬지. 너도 책 좋아하나 보다. 딱 보니까 소설이랑 만화책이 많네.”
“헤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럼 저 커피 끓일 테니까 구경하세요. 아, 구겨지거나 하면 안 돼요!”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살펴봤다. 아무래도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다보니 이쪽에 시선이 먼저 갔다.
“오.”
책을 하나 집어든 서주환은 살짝 감탄했다. 역시 헛본 게 아니었다.
‘드래곤 x자라니. 근본이네.’
1세대 장르소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명작 중 하나다.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1세대 소설들이 꽤 보였다. 심지어 대부분이 초판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1세대를 제외한 책들은 대부분이 로맨스 계열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았지만 판타지와 현대, 무협 쪽을 더 선호했다.
그렇게 책을 둘러보던 중 서주환의 눈에 노란색 끈 하나가 들어왔다. 침대 밑에서 삐져나온 노끈이다.
“이게 뭐지?”
“뭐가요? 아, 자, 잠깐만요! 오빠, 그건!”
“…BL물?”
“꺄아악!”
노끈을 잡아당기자 나온 건 차곡차곡 쌓인 책들이었다.
“GL도 있네. TS도…….”
서주환은 조금 충격 받아서 중얼거렸다.
‘페티시에 동성성애가 있더라니 그게 장르 쪽으로 발현된 건가?’
심지어 19금이라고 쓰여 있는 책들도 보였는데, 이건 고작 한 묶음일 뿐이었다. 침대 밑을 뒤져보면 뭉텅이로 나오지 않을까.
박도희가 후다닥 달려와서 몸으로 침대 밑을 가리며 소리쳤다.
“왜, 왜 맘대로 봐요!”
박도희의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분노와 당황, 수치가 범벅된 표정이었다.
서주환은 어색한 표정으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으니.
‘아니, 그래도 남자끼리 하는 건 좀.’
그는 남자는 물론 여자끼리 물고 빠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걸 왜 보냐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숨겨 놓은 걸 맘대로 본 건 명백히 그의 실수였다.
“미안, 도희야. 나는 그냥 뭐가 떨어져 있길래.”
“…….”
박도희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그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지 입을 달싹거리기는 하지만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더 큰 듯했다. 저건 절망이 깃든 얼굴이다.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서주환은 어쩔 수 없이 박도희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그, 도희야?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진짜?”
“어어. 야, 나 어디 그런 거 말하고 다니는 사람 아니야. 그리고 본인 취향인데 뭘 그러냐. 그, 남들한테 보라고 강요만 안 하면 되지.”
서주환은 남의 취향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 본인부터가 떡만 주구장창 치는 떡협지를 쓴 적도 있지 않던가. 그게 십여 년 전이라지만 아무튼. BL이든 GL이든 TS든 조용히 혼자 즐긴다면 무슨 상관이랴.
한데 박도희는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입을 오물거렸다.
“그, 그런 거… 윽.”
“…강요한 적 있어?”
“가, 강요는 안 했어요! 그냥 권해보기만… 그런데 취향 이상하다고 따돌림 받아서…….”
거기까지 말한 박도희가 울먹거렸다.
울기 직전이다!
서주환은 다급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궈, 권해볼 수 있지! 걔네 진짜 나쁘다. 취향 안 맞으면 그냥 안 보면 되는 건데. 그치?”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아니, 시발. 당연히 싫어하지. 그런 건 떠벌리지 말고 혼자 즐기라고.’
마이너가 마이너인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도 어디 가서 야설을 보거나 쓴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도 이해해줄까 말까한 마당에 어디 가서 말한단 말인가. 물론 말 할 친구도 없었지만.
“흐윽.”
“우, 울지 마, 도희야! 어디 안 말한다니까? 나 믿어도 돼!”
“허엉…….”
왜 뒷담했냐고 따져야 되는데 우는 건 반칙이지!
서주환은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일단 박도희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내가 울린 건 몰라도 갑자기 이러는 건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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