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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주말은 자유 연재!
사실 쉬려고 했는데 표지가 나와서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표지 너무 마음에 들어요ㅎㅎ
설정란에서 확대 된 크기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D
*
능불기발 님, 려차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도 너무 감사합니다!
시험 뒷풀이
깨진 술잔을 치우고 있으니까 알바가 급히 달려와서 말렸다. 괜히 손님이 치우다 다치면 안 된다나.
“제가 치울게요. 술잔 몇 개 깨졌어요?”
“두 개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그…”
알바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테이블을 쓱 훑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다른 테이블에도 손님이 몇 분 계시는데 너무 시끄럽다고 해서요.”
“아, 네. 제가 조용히 시킬게요.”
“감사합니다.”
“아뇨아뇨. 저희가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죠.”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답했다. 지하 1층은 거의 전세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몇몇 손님들이 있었다. 아무리 포차라도 너무 시끄럽게 놀았다.
그는 테이블의 학과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얘들아, 목소리 조금만 줄이자. 다른 손님들도 계신다. 너무 민폐야.”
“네에~!”
“알았어요, 형!”
다행히 대답들은 잘한다. 그래도 영 걱정 돼서 서주환은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취한 애들은 술 억지로 먹이지 마. 멀쩡한 애들이 옆에 애들 잘 챙겨주고. 덕훈아, 넌 더 마시지 마라.”
“형님, 저 멀쩡합니다.”
“넌 갑자기 훅 취해서 적당히 조절해야 돼, 인마.”
“예…….”
장덕훈이 시무룩하게 대답했지만 어쩔 수 없다. 장덕훈은 멀쩡한 듯하다가 갑자기 나사가 빠지는 타입이라 미리 경계를 해줘야 했다. 서주환의 집이면 모를까 학과생들 다 있는 앞에서 주량을 넘기는 순간 그냥 씹덕에서 극혐씹덕으로 거듭날 것이다.
서주환은 한 명 더 위험해 보이는 사람을 지목했다. 술판을 벌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박도희다.
“도희야, 너도 그만 마셔라.”
“오빠, 저 안 치해따니까요? 이거바여, 멀쩡하자나!”
박도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발로 깽깽이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비틀 중심을 잃고 쓰러지려해서 서주환은 얼른 박도희를 잡아챘다.
박도희가 품 안에서 얼굴을 비비더니 그를 올려다봤다.
“헤헤. 오빠, 고마워요. 나 이거 취해서 그런 거 아니다?”
“알았으니까 일어나.”
“치이.”
박도희가 볼을 부풀리면서 일어나려고 손을 휘저었다. 얘가 왜 몸을 더듬는 것 같지. 서주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얘들아, 양 옆에서 얘 술잔 뺏어.”
“예써, 과대님!”
“왜애! 주환 오빠 완전 보모야아. 과보호다 과보호!”
“주환아, 내가 챙길게. 도희야 가만히 있어.”
“네에~ 언닝.”
정하연이 박도희를 옆에 앉히고 케어했다.
서주환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내저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술 마실 때 가장 짜증나는 부류 중 하나가 바로 박도희 같이 취했으면서 안 취했다고 빽빽 우기는 사람이었다.
‘과보호가 아니라 뒷감당이 귀찮아서 그런 거거든.’
술잔을 깨먹은 것도 박도희다. 얼굴이 벌게져서는 고개가 까딱까딱 흔들리는 게 더 마시면 위험해 보였다.
‘얼굴 좀 예쁘면 뭐하냐. 하는 짓이 진상인데.’
박도희는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편이었지만 술판을 벌린 것부터 그를 여러모로 귀찮게 해서 그런지 관심이 안 생겼다. 사실 그간 워낙 눈이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 나옴?”
건물 밖으로 나가자 담배를 피우던 이석찬이 손을 들어올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담배 냄새 난다며 코를 막고 있는 유소정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학생이다.
서주환은 일단 유소정에게 아는 체를 했다.
“소정아, 담배도 안 피우면서 왜 나왔어?”
“바람 쐬려고요.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안 그래도 애들 조용히 시키고 나왔다.”
“우리 과대님, 굿.”
유소정이 양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서주환은 픽 웃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자 유소정이 질색을 하며 떨어졌다.
“으엑. 담배 냄새.”
“냄새 많이 싫어해? 그쪽으로 바람 부니까 반대로 가.”
“냄새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요.”
“그럼 왜?”
“사실 금연 중이라서… 히히.”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스무 살인데 금연 중이라니 대체 몇 살 때부터 피웠던 거냐. 생각해보면 흡연자 중에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피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때 이석찬 옆에 있던 여자가 말해왔다.
“주환 오빠, 저도 관심 좀 줘요. 왜 무시해요?”
“응? 에이, 무시한 거 아니야. 그, 어… 같이 펜션 가기로 했지? 재밌게 놀자.”
“뭐야, 말하는 거 왤케 어색해요?”
“푸하하학. 쭈환, 너 얘 이름도 모르지?”
“헐. 진짜요?”
여자가 눈가를 찡그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정하연보단 좀 작지만 여자치곤 상당히 큰 키다. 자세히 보니까 입술 아래 점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색기가 있어 보였다.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 내가 B반 애들은 잘 몰라서.”
“와. 진짜 몰랐네? 나 기분 상했어. 석찬 오빠, 나 펜션 안 갈래요!”
“야야, 미안하다니까. 그래서 이름이 뭔데?”
“김미정이요.”
“아, 미정이! 이제 기억났네.”
“사실 수정인데요?”
“…뭐가 진짜냐?”
“임수정이에요. 미정이는 같이 가는 친구 중 한 명이고. 푸흐.”
“으하하하학!”
이석찬이 박장대소했다. 개새끼, 미리 좀 알려주지. 그가 아니꼬운 눈길로 꼬라보자 이석찬은 엿 먹으라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확 꺾어벌라.
“아, 수정이 너 석찬이랑 엠티 때 춤 췄었지?”
“이제 기억났어요?”
“섹시 댄스 잘 추던데?”
“풋. 오빠도 한 곡 출래요?”
서주환은 내심 감탄하며 웃었다.
‘도발적인 거 보소.’
사람마다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임수정은 외모가 그리 특출나지 않았음에도 어딘가 요염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임수정>
성별: 여성
나이: 20
키: 170cm
몸무게: 58kg
호감도: D+
현재 성욕: C
페티시: -
보유 재능: 표정연기(C+/A), 마술(F+/A), 게임(E/B+), 춤(D+/B+)
‘마술?’
궁금해서 상태창을 열어보니까 특이한 재능이 보였다. 한데 잠재등급이 무려 A급인 것에 비해 현재등급은 F+밖에 되지 않았다. 재능이 있어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겠지.
‘마술이면 나중에 여자 꼬실 때 좋겠네.’
서주환은 임수정에게 얻을 재능이 마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딱히 흥미 있는 재능이 안 보였다.
‘페티시도 없네. 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집할 수 있는 거도 아니니까.’
페티시가 특이할수록 수집도 어렵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특이하거나 등급이 높은 것보다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때 유소정이 그의 팔을 툭툭 쳤다.
“오빠, 듣고 있어요?”
“응? 미안, 뭐라고 했어?”
“이 오빤 가끔 멍 때린단 말이야. 뒤에서 하연 언니 소문 퍼트린 애 알았다고 했잖아요.”
“뭐? 누군데?”
서주환은 눈을 번쩍 떴다.
유소정이 픽 웃으며 말했다.
“박도희에요.”
“박도희? 박도희면…….”
서주환의 눈이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걔.”
“진짜야? 아까 보니까 걔 하연이한테 달라붙어서 친한 척 하던데?”
비단 이번 술자리에서 뿐만이 아니다. 박도희는 평소에도 정하연에게 먼저 말을 걸고 간식거리를 나눠주는 등 친근하게 굴었다.
서주환의 말에 유소정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요. 걔가 소문 퍼트린 건 확실한데.”
“유소정 밥팅아. 앞에서는 친한 척 하고 뒤에서는 까는 거지. 그게 뭐가 이상해? 그런 애들 한둘인가.”
임수정이 딴지를 걸었다. 그에 유소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내가 그거 구분 못할까봐? 앞에서는 진짜 하연 언니 좋다고 따라다닌다니까? 그게 연기면 걔는 과 선택 잘못한 거야.”
“네가 뭔가 착각한 거 아님? 사실 소문 낸 사람이 박도희가 아니라던가.”
“아니에요, 석찬 오빠. 걔 맞아요. 그리고 더 웃긴 건 걔 요즘 주환 오빠 욕하고 다녀요.”
“나? 나를 왜?”
서주환은 스스로를 가리키며 의문을 표했다. 정하연 욕을 하던 애가 갑자기 자기를 왜 욕한단 말인가?
유소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진 저도 모르죠. 어쨌든 걔 좀 이상해요. 처음에는 언니 욕하더니 나중에는 오빠가 이상하다고 욕하고, 말이 계속 이리저리 바뀌니까 같이 뒷담하던 애들 몇 명도 걔랑 거리 두던데요? 저도 그래서 알게 된 거예요.”
유소정의 말대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문을 퍼트린 건지도, 갑자기 대상을 바꾼 이유도 말이다.
그때 이석찬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무튼 더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 아님? 뭐 할 것도 없이 지 혼자 자빠졌네.”
“맞죠. 사교성은 좋은 애라서 아직은 괜찮은데, 또 그런 근거 없는 소문 퍼트리면 순식간에 아싸 될 걸요?”
“흠. 그럼 신경 끄고 들어가자.”
의문이 다 풀리진 않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소문을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서주환을 비롯한 일행은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
서주환은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을 때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정하연이 어떤 남자의 손을 잡았는데, 남자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댔던 것이다.
“아악! 손, 손목! 씨, 씨발련아, 손목!”
정하연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너 나랑 손잡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잡아준다니까? 어때, 좋냐?”
“아악!”
남자는 비명만 질렀고 대답은 옆에 전봇대처럼 서 있던 장덕훈이 대신 했다.
“누님, 그건 잡는 게 아니라 비트는 거잖습니까.”
“덕훈아?”
“네.”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고 닥쳐봐.”
“네, 누님.”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리며 계단을 내려와 걸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끼어들 것도 없어보였다. 테이블에서 급하게 일어서는 남자의 일행이 있었지만, 산만한 덩치의 장덕훈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스포츠머리 남자가 혼자 욕설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어째 안절부절 못하고 머리를 짚는 게 골치 아프다는 모양새였다.
“아니, 미친 새끼. 술 좀 적당히 처마시라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네? 누구세요?”
“저쪽 일행인데요. 지금 이걸 신고를 해야 되나 말로 해결해야 되나 고민 중입니다.”
서주환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잠깐 구겨졌다가 펴졌다. 남자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저 새끼가 제 선밴데 술 처먹고 실수를 했어요. 저기 여자 분이 마음에 든다고 번호를 따려다가.”
“실수?”
“그, 어깨를 만진 모양인데요. 막 더듬은 건 아니고 어깨동무…….”
“아하. 성추행이네요?”
서주환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아니, 그게 그렇게도 볼 수는 있는데 그냥 잠깐 터치한… 하아. 내가 왜 저 새끼 변명을… 맞습니다. 저 개새끼가 성추행범 씹새끼죠.”
스포츠머리 남자는 이내 말하기도 지치는지 머리를 붙잡았다. 혹시 같이 달려 들까봐 다가간 건데 이쯤 되니 불쌍해 보였다. 아무래도 친한 사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는 사이 정하연이 꺾고 있던 남자의 손을 털었다. 이내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볼썽사납게 자빠졌다. 엠티 때의 누군가가 생각나는 듯하다.
자빠진 남자가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너 이 씨발! 폭력으로 고소…”
스포츠머리 남자가 재빨리 달려 나가서 선배라는 남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준기 선배! 그냥 사과하고 갑시다, 좀!”
“아니, 내가 왜! 맞은 건 난데!”
“성추행으로 고소당하고 싶어요? 여기 증인이 몇 명인데. 아니면 뭐 싸우시게?”
“그래, 싸우자!”
“아니 이 미친 새끼. 대가리가 돌았나? 좀 닥치고 사과나 하라고 선배새끼야.”
“뭐, 뭐? 너 선배한테…”
스포츠머리 남자는 선배라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한 건 아니고 이 새끼랑 엮이고 싶지도 않은데 일단 제가 후배라서 죄송합니다!”
“네? 어, 아뇨. 그쪽이 왜 죄송해요.”
“아이고, 얼굴도 예쁜데 마음도 넓으십니다. 뒤에 계신 학생 분들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이 새끼가 다신 이런 짓 못하도록 하겠다는 건 솔직히 무리고 그냥 손절 치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엮이기 싫어서 그러는 거니까 한 번만 살려주십쇼.”
“어… 그쪽을 고소할 생각은 없는데요.”
“하하.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여지가 있어서… 그럼 용서해주시는 걸로 알고 가도 되겠습니까?”
스포츠머리 남자의 말에 정하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녀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서주환의 눈에 남자를 쫓아 계단을 올라가는 이석찬이 보였다. 그는 잠시 계단 쪽을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일어났던 소란에 다들 대부분이 어벙한 얼굴이었다.
그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얘들아, 분위기 다 깨졌는데 정리하고 일어나자.”
*
서주환은 포차를 나와서 이석찬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아까 따라가서 뭐했냐?”
“하긴 뭘 해?”
이석찬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씩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이름이랑 학과 정도만 알아놨어. 우리랑 같은 대학이고 연영과 3학년 김봉석이라더라. 스포츠머리는 2학년 배준호고.”
이미 포차 안에서 두 시간은 마셨던 터라 모였던 인원 반절 이상이 집에 돌아갔다. 남은 사람은 서주환 일행을 제외하고 열 명 남짓이었는데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이 정하연을 둘러싸고 재잘거렸다.
“언니, 아까 엄청 멋졌어요!”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막 확 잡아채가지고 휙 하니까 우당탕!”
“하연 언니, 운동 배웠어요? 엠티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대박 걸크러쉬!”
한동안 마냥 조용하고 착한 이미지만 보였던 정하연의 반전된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다. 여학생들은 엠티 때의 일까지 말하며 새삼 정하연에게 모여들어 짹짹거렸다.
“언니, 저희랑 2차가요, 2차!”
“노래방 가자!”
“술 되는 곳으로!”
“어, 어? 얘들아, 나 이제…”
“언니 빨리 가요! 더 갈 사람 없죠?”
정하연은 대여섯 정도 되는 여학생들에게 끌려가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며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서주환은 물론 이석찬과 장덕훈도 깔끔하게 무시했다.
유지경만이 조금 망설였는데, 어느덧 멀리 떨어진 정하연이 비명처럼 유지경을 불렀다.
“지경아! 지경아아!”
유지경은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태세를 전환해 서주환과 이석찬, 장덕훈을 비난했다.
“어휴. 오빠들 진짜 안 가요? 저 혼자 가요? 진짜? 덕훈이 너도? 와 나빴다!”
“가서 챙겨줘라, 너굴아.”
“뭐래! 콱 물어버릴까 보다!”
진짜 물어버리겠다는 듯 송곳니를 보이는 유지경. 하지만 다시 들려온 정하연의 외침에 곧 한숨을 푹 내쉬고 달려갔다.
“야 이씨! 이년들아! 언니가 싫다잖아!”
유지경이 떠나고 장덕훈이 말했다.
“형님들, 저도 좀 어지러워서 먼저 가보겠슴다.”
“옹야. 안 데려다 줘도 되지?”
“그야 물론임다.”
장덕훈이 비틀비틀 떠났다. 걷는 모양새가 좀 걱정됐지만 이내 저런 덩치한테 시비 걸 사람도 없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주환 오빠, 나중에 봐요. 저는 석찬 오빠랑 갈게요.”
“잘 드가셈. 나 먼저 간다.”
“어, 가라.”
이석찬은 임수정과 함께 걸어갔다. 둘이서 뭘 할 지는 뻔하다. 벌써 임수정의 엉덩이를 주물렀다가 구박 받는 이석찬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럼 남은 건…….’
서주환은 힐끗 뒤를 돌아봤다. 벽에 등을 기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여자는 이내 비틀비틀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헤헤. 오빠, 저 못 걷겠어요. 데려다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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