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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저는 슴살 때 이 무리, 저 무리 안 가리고 적당히 다 잘 지낸 편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귀동냥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성인 되고도 왕따시키는 걸 목격할 줄은...
여자 두 명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저희 쪽 남자들이랑 같이 다닌 기억이 있네요.
한 명은 제 친구랑 사귀었었죠.
물론 군대 가고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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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
“얘기 좀 하자. 내가 커피 살게.”
“커피 말고 달달한 걸로요. 비싼 거 골라야지.”
서주환은 시장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유소정을 룸카페로 데려갔다.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에서 그녀가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서 뭐하려고요?”
“소정아, 나 장난할 기분 아니다.”
“…알았으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오빠 안 웃으니까 좀 무섭네요.”
서주환은 얼굴에서 힘을 풀었다. 어느새 인상을 쓰고 있었나 보다.
유소정은 허니 캬라멜 어쩌고 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선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지만, 듣기만 한 거니까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 저는 남 얘기 듣는 건 좋아해도 뒷담은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냥 앞에서 대놓고 물어보지.”
서주환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뒷담이란 말에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하연이 욕을 했다고?”
“엑. 노려보지 말라니까. 저 말고 다른 애들이요.”
“여자애들?”
“당연히 여자들이죠. 우리 과, 우리 반에 남자라고 해봐야 오빠랑 석찬 오빠, 덕훈이가 끝이잖아요. B반은 저도 잘 몰라요.”
“그래서 무슨 뒷담을 했는데?”
“아까 말한 거랑 비슷해요. 하연 언니가 오빠를 갖고 놀다 버렸다. 착한 척하더니 순 여왕벌이다. 옛날에 일찐이었을 게 분명하다. 다 근거 없는 말들이에요.”
거기까지 말한 유소정은 다시 음료를 쪽쪽 빨았다.
서주환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올라오는 화를 꾹꾹 내리눌렀다. 목을 축인 그가 다시 질문했다.
“그런 뒷담을 왜 하는 건데? 나랑 하연이 헤어진 게 자기들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당연히 상관없죠.”
유소정은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과 조롱 섞인 웃음이었지만 그 대상이 서주환은 아니었다.
그녀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무슨 상관이 있어서 욕하겠어요? 그냥 하연 언니가 지들보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니까 질투 나서 열등감으로 씹는 거죠. 아, 언니가 몇 명 없는 우리 반 남자들이랑 다 친해서 그런 게 제일 크고요. 특히 오빠랑 석찬 오빠요.”
“나랑 석찬이?”
“네. 둘 다 잘생겼잖아요. 석찬 오빠는 유쾌하고 재미있다면서 좋아하고, 오빠는 엠티 때부터 은근히 인기 많았어요. 최근에는 갑자기 잘생겨진 것 같다면서 더 그렇고요.”
서주환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다른 사람 입으로 잘생겼다는 말을 듣는 건 꽤나 어색했다. 자신의 외모가 누군가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유소정이 픽 웃었다.
“요즘 언니가 마냥 착하게 구니까 만만해서 그러는 것도 있을 거예요. 제 경험상 착한 사람 뒤에서 입방아 찧는 건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하거든요.”
“…그래서, 이유가 그게 다야?”
유소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주환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개 같은 년들이… 고작 그딴 이유로 근거도 없는 뒷담을 까?”
호의는 몰라도 악의에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뭐 눈 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유소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야 애들이 오빠 앞에서는 착한 척 내숭 떠니까 모르죠. 사실 소문 돈 것도 며칠 안 된 것 같고, 들은 애들도 몇 명 없는 것 같아요.”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회귀 전 유지경에 대한 소문을 주도적으로 퍼트리던 년들이 떠올라서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것들이 이번 소문을 퍼트린 범인이 아닐까 생각됐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걔네들 이름이 뭐야? 뒷담하는 년들.”
“저도 잘 몰라요.
“왜 몰라? 너한테 그런 말 한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있죠. 그런데 이런 소문이 있더라 하는 거지 악의를 가지고 소문을 낸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물론이고 저한테 말해준 애도 하연 언니 좋아하는 쪽이에요.”
“…….”
“그런데 오빠는 소문 처음 낸 사람 알면 어쩌려고요?”
“그야 당연히…….”
서주환은 입을 다물었다. 이름을 듣고 나면? 찾아가서 쥐어 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점잖게 타이른다고 들을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십중팔구는 무슨 소리냐고 잡아떼겠지. 현장을 적발하는 게 아니고서야.
“씨발.”
또 다시 욕설을 내뱉자 유소정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오빠, 제가 괜한 말해서 신경 쓰이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요.”
“…그건 괜찮아.”
“고마워요. 그런데 뒷담 같은 건 그냥 신경 끄세요. 하연 언니가 진짜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다 헛소문이잖아요? 근거도 없는 소문이니까 가만히 두면 소문 퍼트린 애들만 병신 되는 거예요. 언니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럼 다행이지만, 헛소문 하나 잘못 퍼지면 나중에 가서는 수습 못할 수도 있어. 사람 한 명 바보 만드는 게 존나 쉽거든.”
서주환은 직접 당하기도 했고, 당한 사람을 보기도 했기에 소문이란 게 어떻게 변질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유지경만 해도 회귀 전에는 소문의 피해자였지 않던가.
말이란 게 그렇다. 어떤 근거도 없이 내뱉은 말들이 입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살이 붙는다. 그게 눈처럼 불어나고, 어느 순간에는 근거 하나 없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
유소정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다시 음료를 마시고 말했다.
“그래도 하연 언니는 괜찮을 거예요.”
“어째서?”
“오빠들이랑 덕훈이, 지경이 있잖아요. 친한 사람들이 네 명이나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그리고 오빠, 아싸랑 인싸 차이가 뭔 지 알아요?”
서주환은 명확하게 할 말이 없어 그냥 유소정을 바라봤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변호해줄 사람이 있냐, 없냐에요. 알진 모르겠는데 오빠네는 우리 과에서 제일 유명하거든요.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물론이고 특이한 사람까지 다 뭉쳐 있으니까.”
“특이한 사람?”
“덕훈이요.”
“아.”
서주환은 어쩐지 장덕훈한테 미안해졌다. 그 반응에 유소정이 웃음을 터뜨렸다가 다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그런 소문 안 퍼지게 도와줄게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하연 언니 좋거든요.”
“…그래. 고마워.”
“풋. 고마워 할 거 없어요. 어차피 그런 애들 눈에 띄면 지경이가 말로 다 패고 다닐 걸요? 제 생각에는 지금도 이 갈고 있을 것 같은데.”
“하하… 그건 그렇겠다.”
서주환은 떠오르는 게 있어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알기로도 유지경은 강단이 제법 센 편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독설을 내뱉는다. 지금이야 그의 앞에서는 한 마리 귀여운 너구리였으며, 주인님 주인님 하는 노예였지만, 솔직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그나 정하연보다 훨씬 나았다.
그가 웃자 유소정도 마주 웃었다. 그녀가 이제야 살겠다는 듯 말한다.
“오빠는 인상 쓰면 안 되겠다. 진짜 무서워요.”
“아프니까 그만해라. 그래서 웃고 다니잖냐.”
“아하하. 어쩌면 인상 쓰고 다니는 게 더 나을 수도? 수요가 꽤 있을 것 같거든요.”
“참나. 어쩌라는 거야?”
어이없다는 듯 되묻자 유소정이 깔깔거렸다.
그녀가 한참 웃다가 말했다.
“저도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어.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면.”
유소정은 이내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흐음. 하연 언니랑은 어떻게 헤어졌… 아니다. 왜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로 지내요? 보통은 헤어지고 나면 얼굴도 안 마주치잖아요. 얼굴 봐도 예전처럼은 대화 못하고.”
서주환은 잠시 말을 골랐다. 이내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까 하연이가 나 갖고 놀았다는 소문 있다고 그랬지?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잘못해서 끝난 거거든. 자세히 말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어.”
“알았어요.”
“친구로 지내는 건 하연이가 그러길 원하니까야. 내 잘못으로 끝난 건데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지. 그리고… 애초에 난 헤어졌다고 바로 쌩 까는 짓 못해. 난 오히려 그게 더 이해 안 되고.”
정말 대판 싸우고 끝났다면 모르겠다. 한쪽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폭력이라도 휘둘렀다면 아예 연을 끊어버렸겠지.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헤어졌다고 해서 바로 쌩판 남인 것처럼 굴 수 없었다. 그래도 한때 좋아해서 사귀었던 사람인데 어떻게 바로 무시한단 말인가? 서주환으로서는 그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정답이 없는 문제여서일까. 유소정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어색한데도요?”
“…티 났어?”
“하연 언니는 모르겠는데 오빠는 조금 티 나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땐 괜찮은데 언니랑 둘이서 말할 때는 어색하더라고요.”
서주환은 쓰게 웃었다. 잘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티가 났었나 보다. 아무리 친구로 지내겠다고 했지만 몸을 몇 번이나 섞은 사인데 어색함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다만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했다.
유소정이 문득 물었다.
“오빠, 아직도 하연 언니 좋아해요?”
서주환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좋아하지. 친군데.”
“…으엑. 그럼 하연 언니는 오빠 좋아해요?”
“글쎄. 그것도 친구니까 당연하지 않을까?”
유소정이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하긴 쫌 그런데… 못 참겠다. 욕해도 돼요?”
“푸흐. 해봐.”
“미친놈. 미래의 여자친구가 불쌍하다.”
그 말에 서주환은 그냥 어깨를 으쓱였다.
여자친구를 또 만들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
서주환은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좀 이따 준비하자.”
알람을 맞춰두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낮잠이나 잘 생각이다. 시험기간에 자는 낮잠이 또 보약이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 유소정: 덕분에 당 보충 잘했어요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렸다. 미친놈이라고 욕하더니 번호를 따가더라. 그 이전에도 까톡 친구는 등록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 유소정: 오늘 못한 건 나중에 펜션 가서 해요
- 나: 펜션?
- 유소정: 석찬 오빠가 가자고 하던데요? 오빠 가면 저도 가려고요ㅎㅎ 오빠도 갈 거죠?
- 나: 걔 그거 아직 포기 안 했대? 난 일단 생각 좀 해보고.
- 유소정: 헐 되게 비싼 과대님이네 저 자존심 상할라 그래요
- 나: ㅋㅋㅋㅋㅋㅋㅋ.
서주환은 잠시 유소정과 까톡을 나누다가 눈을 감았다.
*
서주환은 슬슬 약속시간이 다 되어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상하게도 손등의 문신이 계속해서 빛났다. 사람도 없는데 무슨 일로 빛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유지경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알바를 마감까지 하게 되어서 올 수 없다는 연락이었다. 아쉽지만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힘내라는 말만 전해주었다.
한데 오지 않는 것은 유지경 뿐만이 아니었다. 약속 시간인 7시가 다 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먼저 이석찬과 장덕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둘 다 받지를 않았다. 마지막으로 정하연에게 전화를 걸려는 때였다.
딩-동 하는 벨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까 정하연이 손을 흔들었다.
“늦어서 미안. 깜빡 졸아버려서.”
서주환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혼자 왔어? 석찬이는?”
“어? 걔 먼저 온 거 아니었어?”
“아직 아무도 안 왔는데.”
“…아. 그, 원래 7시까지 아니었나? 늦은 줄 알았는데 내가 제일 빨리 왔네. 아하하.”
어쩐지 정하연의 웃음소리가 어색하게 들렸다.
서주환도 마주 어색하게 웃다가 눈꼬리를 긁적였다. 헤어지고 나서 단 둘이 있는 건 처음이던가. 어색함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서주환이 말했다.
“…일단 들어와. 좀 있으면 오겠지.”
“어, 어어. 야아, 냄새 좋다. 뭐했어?”
“닭도리탕 했어. 후식으로 먹게 국수 재료도 좀 사놨고.”
간단한 대화가 어딘가 힘겹게 오갔다.
‘눈을 못 마주치네.’
지금 보니까 정하연은 시선을 다른 데 두고 말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그를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자신보다 더 어색해하는 게 보였다.
서주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둘이 있으니까 다르구나.’
헤어진 이후 단 둘이 대화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때는 주변에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있었다.
이렇게 밀폐 된 공간 안에 단 둘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어색함이 크게 느껴졌다.
서주환과 정하연은 잠시 식탁에 앉아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20분 정도가 지났을 쯤 서주환이 말했다.
“…먼저 밥 먹을까? 애들 전화도 안 받네.”
“지경이는 알바 때문에 못 온다고 했지?”
“어. 잠도 얼마 못 자고 갔으니까 마감까지 하면 힘들 거야.”
정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환은 미리 볶아둔 닭도리탕을 내왔다. 이내 둘은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다. 후식으로 준비해둔 콩국수는 먹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없다보니 닭도리탕만으로도 양이 충분하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정하연이 말했다.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었네. 아, 과식하면 공부하다가 졸 텐데.”
“너 안 그래도 눈 밑이 까맣다. 낮에 안 잤어?”
“마지막 날이라서 오늘은 안 잤어. 내일 두 과목 시험이잖아.”
“쯧. 오늘만 안 잔 것처럼 말하긴. 엊그제부터 다크써클 진하던만. 너 그러다 쓰러진다.”
“걱정은. 야, 내가 이래도 중딩 때는 유도 선수였어. 알아?”
“말을 안 해줬는데 어떻게 아냐. 그냥 배웠다는 것만 알지.”
“멍청이. 한 달을 사귀었으면서 그것도 모르…….”
정하연이 입을 다물었다. 포만감에 생각 없이 말하다가 말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서주환도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한 달을 사귀어놓고도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다. 마찬가지로 정하연 또한 그에 대해 아는 게 적기는 마찬가지였다.
…….
어색함이 맴도는 가운데, 서주환이 문득 진지한 낯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연아.”
“…응.”
“나랑 왜 사귀자고 했던 거야?”
*
정하연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어색함 때문이다. 같이 있는 것도 무척 어색했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다음에 만날 때 더 어색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내뱉었는데, 어색하다고 돌아간다면 그건 친구가 아닐 테니까.
사각사각.
필기하는 소리가 나직이 깔렸다.
두 사람은 책상에 마주 앉아 말없이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말이 없는 이유는 집중하기 때문이었으나, 어색함을 잊기 위함이기도 했다.
정하연은 공부를 할 때 손을 움직이는 편이었다. 요약정리를 한 번 했음에도 핵심 키워드를 손으로 되쓰며 외웠다. 반면 서주환은 핵심 내용을 요약한 프린트를 보며 형광펜으로 다시 한 번 밑줄 그었다. 요약한 내용을 다시 요약하는 셈이다.
그렇게 잠시 공부를 이어가던 서주환은 문득 조금 전에 정하연이 한 말을 떠올렸다.
‘어쩐지 나랑 비슷해보였거든. 그래서 끌렸던 것 같아. 그리고 또 나랑 달라보여서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
알 듯 말 듯한 말이었다. 끝내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화제를 돌렸기 때문이다.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거 맞나.’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한 끝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싫어져서 헤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헤어진 걸 후회 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대로 사귀었더라면 더 안 좋은 끝을 맞이했을 테니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하나 시간은 흘러야 하는 법이고, 당장의 어색함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당분간은 이러한 어색함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는데,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 갈지도 문제였다.
그렇게 집중하지 못하고 상념만 깊어질 때였다.
툭. 데구르르-
책상에서 검정펜이 굴렀다.
서주환은 제 앞까지 굴러온 펜을 보고 정하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까만 생머리가 작게 물결치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 좀 자라.”
서주환은 깨우기보다 자게 두었다. 눈 밑이 까만 게 이대로 공부하면 내일 시험 시간에 잘 판이었다. 그는 얇은 이불을 가져와서 정하연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템, 교접몽의 사용 가능한 대상자를 찾았습니다.]
[호감도 A를 달성한 적합자는 정하연, 유지경 입니다.]
[사용자의 꿈을 꾸고 있는 대상자는 ‘정하연’ 입니다.]
[정하연의 꿈속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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