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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스무 살, 스물한 살 때 대학을 진짜 재밌게 다녔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 저는 대학에 가기 싫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글이나 쓰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집에서 대학 안 가면 연을 끊어버린다고 협박해서 어거지로 갔었죠. 그래서 1학기 내내 자퇴할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버렸어요.
매일 같이 낄낄대면서 다니다가, 시험 기간에는 같이 공부하고, 중간에는 야식 시켜 먹고, 겨울에는 눈 온다고 애새끼처럼 눈 던지면서 놀고, 축제에서 미친 듯이 소리 질러대고, 술 처먹고 개떡 돼서 흑역사 만들고....
몇 년 안 됐는데 엄청 먼 옛날 같네요.
오늘 진짜 별 거 아닌 장면을 썼는데 갑자기 스무 살 때가 그리워서 주절대봤습니다ㅎㅎ;;
나이 먹을수록 친구 만날 시간이 줄어드는 게 참 아쉬워요.
혹시 스무 살 초반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존나 열심히 노시는 걸 추천드립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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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오리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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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시험기간
본래 시험 기간에는 공부 빼고 다 재밌는 법이다. 거기에 함께하는 친구들까지 있다면 안심하고 정신줄을 놓게 된다. 결국 서주환을 비롯한 일행들은 동틀 무렵까지 불태우고서야 잠에 들었다.
네 시간 후, 잠에서 깬 서주환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이템 만세다.”
그는 멀쩡한 신색으로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잠에 들기 전에 복용한 『달콤한 숙면제』 덕분에 네 시간 밖에 자지 않았음에도 한나절은 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함께 밤을 지새운 친구들이 알면 불공평하다고 비난할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꼬우면 아이템 쓰시던가.”
인생 그거, 원래 불공평한 법이더라.
*
시험이 한 과목 끝나고 나면 으레 그렇듯 학생들끼리 정답을 맞춰보기 마련이다.
명목상 과대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아니면 가장 먼저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왔기 때문일까.
어쩐지 자연스럽게 서주환을 중심으로 모인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이 쓴 답안을 말하며 정답을 유추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군가 소리쳤다.
“불공평해!”
억울함 가득 담긴 유지경의 외침이었다.
“주환 형님이랑 하연 누님은 몰라도 어떻게 석찬 형님까지… 실망입니다, 형님.”
장덕훈이 배신당한 눈빛으로 이석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석찬이 낄낄댔다.
“나 공부 못한다고 한 적 없는데? 인마, 내가 여기 말고 경영과 갔으면 공부 전혀 안 해도 과탑이었어.”
“망상이 심하십니다.”
“…내가 씹덕한테 그런 말 들어야 돼?”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이석찬.
“언니, 어제 같이 놀았으면서! 말도 안 돼!”
“난 평소에 강의를 열심히 들었잖아.”
“그래도!”
“아하하. 음… 흐아암~.”
피곤하다는 듯 하품하며 눈가를 비비는 정하연.
이미 두 사람의 성적이 좋으리란 걸 알고 있던 서주환은 어깨만 으쓱였다.
‘석찬이 놈은 공부도 별로 안 하면서 성적이 좋았었지.’
이석찬은 공부하는 걸 질색하고 실제로도 별로 안 하면서 벼락치기로 성적을 내는 케이스였다. 다른 학생들에게 기만자라고 비난 받는 부류. 회귀 전에는 그도 참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의 그는 남들이 보기에 이석찬과 다를 바가 없었나 보다.
“주환 오빠, 왜 시험 잘 봐요?”
“과대님 배신자!”
“맨날 자거나 딴 짓만 하면서… 억울해.”
유소정을 비롯한 A반 학생들이 배신감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꼬우면 너희도 회귀해라.’
속마음을 말 할 수는 없었던지라 서주환은 그냥 뻔뻔하게 웃었다.
“내가 그래도 나름 과대 아니겠냐.”
“쳇. 솔직히 말해 봐요. 선배들한테 족보 얻었죠? 오빠 선배들이랑 친하잖아요. 저도 공유해주면 안 돼요?”
“물어는 봤는데, 우리 과는 그런 거 없더라.”
사실 있어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머릿속에 족보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석찬이 그를 불렀다.
“야, 주환아, 오늘도 모일 거냐?”
“도서관?”
“어. 내일 건 공부 안 하면 좀 힘들 듯?”
“그래. 몇 시에 모일 건데?”
“일단 집 가서 한숨 자고 모이자. 졸려 죽겠다.”
“오키. 너희들도 올 거지?”
“물론임다, 형님.”
“응. 나도 알바 끝나고 올게!”
다섯 명은 오늘도 모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
서주환 일행은 첫날과 달리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성실히 공부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또 하루는 도서관 예약에 실패하는 바람에 학과 강의실에서.
시험지를 맞출 때마다 정답률이 제일 높은 건 서주환과 정하연, 이석찬이었다. 출콘과 학생들은 나이를 괜히 먹은 게 아니라며 세 사람을 공부 잘 하는 늙은이로 취급해댔다.
서주환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작년까지 수능 보던 현역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안 그냐, 석찬?”
그에 이석찬 역시 뮤지컬 배우라도 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받았다.
“비겁한 변명일 뿐이지. 그래도 이해해주자, 내 친구 쭈환. 우리가 잘난 걸 어쩌겠음?”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질투의 대상이 되곤 하지. 나도 이해한다, 친구야.”
서주환과 이석찬은 어깨동무를 하고 낄낄대며 헛소리를 마구 지껄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서 정하연이 슬금슬금 떨어지며 말했다.
“얘들아, 이 바보들이랑 난 엮지 말아줄래?”
다른 학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언니가 제일 사기캔데.”
“예쁘지, 몸매 좋지, 키 커서 모델 같지. 거기에 공부까지 잘하니까 좀 재수 없어요.”
“그런데 저 오빠 둘이 더 재수 없어서 이제 별 생각 안 들어.”
“맞아. 잘생겼는데 얼굴값 못하는 또라이들이야…….”
그때 누군가 말했다.
“잘생겼다고 하니까 덕훈이도 꽤 잘생기지 않았어? 좀 우락부락하지만 남자답잖아.”
“맞아. 성격도 착하고 순둥순둥한 게 좀 귀엽더라.”
한 구석에 앉아 있던 장덕훈의 귀가 움찔거렸다. 입버릇처럼 투디 캐릭터가 좋다고 말했지만, 그도 혈기왕성한 스무 살 청년. 여자들의 칭찬이 고픈 남자였다.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
“그런데 덕훈이는 오타쿠잖아.”
“하긴, 그냥 오타쿠도 아니고 엄청난 씹덕이지.”
“저번에 나한테 페스? 페… 아무튼 뭔가 이상한 애니 추천해주더라. 아하핳.”
가만히 있다가 맞은 장덕훈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역시 나한테는 세x버 쨩 뿐인가…….”
“덕훈아, 힘내. 여자들 중에도 애니 좋아하는 사람 많아.”
유지경이 그런 장덕훈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현실을 직시한 장덕훈은 냉정했다.
“하지만 그게 내 여자는 아니지.”
“그, 그건 그래.”
“크흑. 난 어차피 현실 여자 따위엔 관심 없으니까 괜찮다.”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세x버쨩…….”
*
마지막 시험 전날.
서주환은 희한한 아이템을 하나 뽑았다.
【☆럭키 스케베☆】
▶ 효과: 문신이 새겨진 하루 동안 의도치 않은 에로한 상황이 일어난다.
※ 문신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럭키 스케베란 주로 일본의 남성향 하렘물 애니에서 쓰는 용어다. 스케베란 단어는 치한이란 뜻으로, 주인공이 길거리를 달려가다가 여자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거나, 중심을 잃고 넘어졌는데 절묘하게 여자를 껴안는 등의 상황을 일컫는다.
서주환은 황당한 눈으로 손등에 새겨진 별 모양 문신을 바라봤다.
“이거 그냥 몽마신의 축복 하위템 아닌가?”
아무리 봐도 축복보다 나은 점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마저도 축복이 없는 지금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쩝. 어차피 시험 기간이니까 상관없지만.”
아이템이라고 항상 쓸모 있는 것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개중에는 극소수 포함된 꽝의 개념으로 『달콤한 사탕』같은 전혀 쓸모없는 아이템도 있었으니.
그는 아이템에서 관심을 끄고 학교로 향했다. 오늘 시험이 끝나면 내일이 마지막이다.
등교하는 동안 문신이 세 번 빛났다.
서주환은 갑작스런 돌풍을 두 번 만났고, 여자들의 팬티를 두 번 구경했으며, 갑자기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거유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거 좋은 아이템일지도…….’
세상에 나쁜 아이템은 없다.
*
교양 시험이 끝난 후.
이석찬이 말했다.
“쭈환, 오늘은 너희 집에서 모이자.”
“우리 집? 왜?”
“도서관 예약 실패했잖아. 그렇다고 학과 강의실에서 하면 어제처럼 엄청 시달릴 걸. 생각만 해도 귀찮음.”
“아, 그렇긴 하겠다.”
학과 강의실은 도서관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다. 덕분에 학생들끼리 서로 모르는 걸 물어보며 공부하곤 했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상대적으로 모르는 게 많은 사람에게 이득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성적이 좋은 서주환 일행은 어제 밤을 새는 동안 공부를 하는 건지, 가르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시달렸었다.
그 중 특히 시달린 사람은 바로 정하연이다. 이석찬이 그녀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으이그. 찐따쉑.”
“뭐, 뭐! 내가 뭐!”
찔리는 게 있는 정하연이 발작했다.
이석찬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너는 그걸 뭐 일일이 다 받아주고 있음? 적당히 알려주고 쳐낼 것이지.”
“…동생들이 물어보는데 어떻게 그래?”
“그러니까 네가 찐따라는 거임. 그저 친한 척 하면 좋다고. 으휴.”
옆에 있던 유지경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연 언니가 좀 심하긴 해요. 언니 얼굴값 반만 해도 못 물어볼 텐데.”
“…지경이 너, 지금 돌려 까는 거지?”
“앗, 들켰다.”
“나 화낸다?”
“히익. 언니, 나한테 화내는 것처럼 하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유지경이 짐짓 무섭다는 듯 물러나자 정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처럼 막 친한 애들이 아니니까 어떻게 거절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랬다가 재수 없어 보이면 어떡해? 내가 조금만 화내도 무서워할 걸.”
방금 한 마디로 정하연의 찐따력이 상승했다. 인상은 서주환 못지않게 빡세게 생겼으면서 하는 말은 소심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유독 인간관계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문득 학기 초에 여학생들이랑 친하게 지내겠다며 되도 않는 화장을 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이석찬은 여전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꼽을 줬다.
“뷰웅~신. 그런 생각이 찐따라는 거야. 꼭 다 친하게 지내야 됨? 무서우면 꺼지라고 해. 어차피 잘해줘도 뒤에서 욕할 새끼들은 다 욕함.”
“…나도 머리로는 알아. 아, 너한테는 쌍욕 다 박을 수 있는데.”
“미친련아.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박으라고. 그런데 박아? 어우, 야해.”
“미친 새끼.”
서주환은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랬었지. 조별과제 같은 거 하면 그지 같은 놈들만 걸려서 따지지도 못하고 혼자 다했었는데.’
솔직히 그의 입장에서는 정하연의 말이 남일 같지 않았다. 지금이야 달라졌다지만, 회귀 전에는 정하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연이 얘도 뭔가 사연이 있나.’
개강 첫날이었던가? 같이 담배를 태우다가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분명 일찐이니 걸레니 하는 오해를 받았었다고.
서주환은 어쩐지 정하연에게 자신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참.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무슨 소리야?”
정하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옆에서 유지경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하긴. 오빠도 애들 엄청 가르쳐 줬죠?”
“야야, 그건 다르지. 쟤는 여자들 꼬시려고 그런 거고, 이 찐따랑은 경우가 다름.”
“인마, 내가 꼬시긴 누굴 꼬셔. 그건 네 얘기지.”
“난 꼬시려고 한 거 맞는데?”
태연하게 인정하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언덕을 거의 내려왔을 때였다.
서주환이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오며 말했다.
“난 버스 타고 간다. 여기부턴 너희끼리 가.”
“엉? 너 집 가까우면서 뭔 소리임? 버스를 왜 타?”
“우리 집에서 공부하자면서.”
“그런데?”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였다.
“미리 장 좀 봐놓게. 시내는 셔틀버스 타는 게 빠르거든.”
“오, 뭐야. 네가 요리하게?”
“마침 반찬 떨어진 김에 가는 거야. 배달 음식이 좋으면 시켜 먹어도 되고.”
“노노. 딱 기다려라. 일단 한숨 자고 7시쯤 찾아감.”
이석찬이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시험을 오전에 10시에 봐서 아직 아침이었지만, 밤을 샜기 때문에 이석찬을 비롯한 일행들의 눈가에는 다크써클이 짙게 나있었다. 멀쩡한 건 아이템 빨을 받은 서주환 뿐이다.
그가 요리한다는 소리에 정하연과 유지경이 입맛을 다셨다.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겠다. 기대하고 있을게.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츄릅. 헉, 침. 아, 나 다시 살찌면 오빠 때문이야.”
“형님 이따 뵙겠습니다.”
네 사람은 기대하겠다면서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서주환은 마주 손을 흔들다가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 뒤로 갔다.
‘오늘따라 사람 더럽게 많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에 남는 사람이 많아서 한산했는데, 시험이 거의 끝나가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줄이 길었다. 이래서야 한 번에 탑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바로 앞에 줄을 서 있던 사람이 그를 돌아봤다.
“주환 오빠? 와, 맞네?”
“누구? 아, 소정이구나.”
“오빠도 원래 셔틀버스 탔어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유소정은 출판콘텐츠학과 학생으로, 엠티 때 같은 조를 하기도 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안 타는데 시내 좀 가려고. 시장 보게.”
“시장요? 헐, 왠지 우리 엄마 같다. 아니, 아빤가?”
“얌마, 너는 엠티 때 무슨 빠니라고 부르더니 이젠 아빠냐?”
“아하하. 환이 언니가 너무 예뻤는데 어떡해요.”
잠시 후 셔틀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손등의 문신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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