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27화 (12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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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연차아아암!

시험기간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의 완결이 가까워졌다.

독자들도 이를 느꼈는지 댓글이 혼란했다.

- 완결내지 마 계속 써줘 다음 편 내놔 아니 조금 천천히 줘도 좋을 것 같아

- 요즘 완결 각 잡고 있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슬픔 ㅠㅠ

- 엔딩 절대 하렘

- 작가님 후일담 써주실 거죠? 외전도 써주실 거죠? 한 300편 쓰실 거죠?

- 작가양반... 이거... 돈.. 잘 벌릴 텐데... 1천편까지 늘려서 씁시다... 물 들어올 때... 바짝 벌어놔야지... 이거 연금 가능합니다... 작품성보단 돈을 우선으로...

마지막 댓글을 본 서주환은 실소를 흘렸다.

혹시 독자가 아닌 다른 작품의 작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댓글이었다.

실제로 웹소설 판에서 잘 된 작품은 분량을 당초 계획보다 늘리는 경우가 많다. 아니, 비단 웹소설 뿐만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팔리는 모든 창작물이 그랬다.

‘나도 회귀 전이었으면 더 늘려서 썼을지도.’

작품에 대한 애정도 중요하지만 궁핍한 현실을 생각하면 결국 어느 정도는 타협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좀 늘어지긴 했지.”

이야기가 늘어지는 건 꼭 돈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에 편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각 캐릭터들의 배경 이야기나 세부 설정, 별 거 아닌 소소한 일상, 내면 심리 묘사.

이런 저런 욕심을 내다보면 1천편이 아니라 3천편도 우습다.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내는 건 아닌지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작가는 언제나 경계하고 타협을 하는 존재였다. 적절한 완결이라는 게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늘려 쓰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현실은 따로 있었다.

“다음 주면 완결 편까지 올라가겠네. 조기 완결이 아니라 다행이야.”

차라리 잘 돼서 늘려 쓴 거라면 돈이라도 버니까 다행이다. 인기가 없어서, 돈 때문에, 준비한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조기 종결하는 경우야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서주환 또한 회귀 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작품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은 에필로그까지 최미화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한 시간 후 최미화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 주환아, 정말 이걸로 끝이야?

다짜고짜 묻는 최미화.

아쉬움 가득 담긴 물음에 서주환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그걸로 끝이야. 왜, 별로야?”

- 아니, 그건 아닌데… 완결은 진짜 좋은데…….

“그럼 왜?”

- 당연히 아쉬워서 그렇지! 아악! 더 보고 싶었는데!

편집자가 아닌, 독자로써의 최미화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 으으. 언제나 재밌게 보는 작품이 완결 나는 건 너무 기쁘고 아쉬워. 아, 가슴 먹먹해.

“어우. 야, 조심해라. 거기서 더 작아지면 아예 없어지잖…”

진담 같은 농담에 최미화가 발작했다.

- 개새끼야! 먹먹한데 왜 작아져! 그리고 나 안 작거든! 네가 봤어?!

“…봤는데?”

- 야 이… 나쁜 새끼, 좆 크면 다냐?

“아, 내 좆 더 커짐.”

- 미친, 그게 더? 구라치지 마.

“구라 같으면 한 번 확인해보던가.”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최미화와 농담 따먹기를 했다.

두 사람은 딱 한 번 관계를 가진 후 사귀지 않고 끝난 사이다. 서주환이 그녀의 처녀를 가져갔지만,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안 그녀가 먼저 욕설을 날리며 닥치고 박으라 했었다. 그렇게 섹스가 끝난 후 잠깐 어색해졌었지.

- 꼴리면 네가 오던가. 대딸 한 번 정도는 해줄게.

“참나. 막상 가면 문도 안 열어줄 거면서.”

- 당연하지.

한데 지금은 외설적인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참 이상한 광경이라 하겠으나, 그녀와 자주 연락하다보니 어느 순간 이런 사이가 되었다.

<최미화>

성별: 여성

나이: 24

키: 161cm

몸무게: 50kg

호감도: C+

현재 성욕: C+

페티시: Pictophilia(中), Narratophilia(下)

보유 재능: 안목(A/A+), 속독(B+/A+), 소통(C+/B+), 독설(C/B+)

그녀의 페티시인 Pictophilia(픽토필리아)는 음란 영상, 이미지, 글 등에 중독되고 흥분하는 현상이다. 또 다른 페티시인 Narratophilia(넬레토필리아)는 막말, 욕설, 선정적인 말 등에서 흥분을 느끼는 성적 기호였다.

페티시가 이렇다보니 두 사람은 대화를 할수록 말에 필터가 사라졌다. 이미 관계를 가진 남녀의 대화라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 너 그거는 진짜로 출판 안 할 거야?

“어떤 거? 색마회귀?”

- 응. 그것도 연재분 꽤 쌓였잖아. 항상 성인물 베스트 3위 안에 들고. 출판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진짜 취미라니까.”

- 유료로 돌리면 꽤 벌 텐데. 오히려 주목도 많이 받고. 너무 아까워서 그래.

색마회귀란 서주환이 부계정으로 몰래 쓰고 있는 야설이었는데, 간단한 설정 하나 가지고 아무런 플롯도 없이 즉흥으로 쓴 취미 소설이었다. 한데, 이게 생각보다 보는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말하지도 않았는데 최미화가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겸사겸사 간단한 평을 주고는 했었는데, 19금물인지라 항상 자지니 보지니 하는 대화를 나누다가 외설을 트게 된 것이다.

“그건 완결 나면 생각해볼게. 지금은 연재주기도 들쭉날쭉 하잖아.”

- 으음. 그건 그렇지. 나중에 완결 나면 다른 데 가지 말고 나한테 와야 돼?

“당연하지.”

- 아, 맞다. 그보다 차기작은 생각해 봤어?

“어… 그냥 막연하게 현대물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중이야. 아직 소재를 못 잡았어.”

사실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뭔가 하나를 정하자니 팍 꽂히는 게 없어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 판타지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지고 있었는데, 헌터물 요소를 제외하자니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고민이었다.

- 전문가물을 쓰고 싶은 거야?

“가능하면 그러고 싶은데 좀 어렵네.”

- 확실히 난이도가 높지. 고증 문제 때문에 자료조사 해야 할 것도 많고.

“그러니까.”

- 덕질할 정도로 파고든 취미 같은 건 없어? 보통 전문가물이라고 하면 자기 직업이 아닌 이상 취미 생활에서 출발하거든. 아무래도 관심 분야니까 베이스가 잡혀 있기도 하고.

“흐음. 취미라… 당장 떠오르는 건 없네. 생각해볼게.”

그는 취미라고 해봐야 책 읽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는 게임이나 인터넷 방송을 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깊은 수준은 아니었다. 이처럼 베이스가 없는 상태였기에 전문가물을 쓰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조사해야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고 하던 때였다.

- 그, 주환아?

“응?”

- 완결까지 다 쓰기도 했고, 다음 주면 업로드도 끝나는데… 한 번 만날래?

“어? 진짜?”

서주환은 조금 놀라서 물었다. 최미화와 연락은 자주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만난 적은 계약했을 때를 제외하면 없었다. 아, 이전에 한수아랑 동생 년과 있을 때 잠깐 마주쳤었나.

- 내, 내가 담당 편집자니까 작가님 대접해야지.

최미화가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서주환은 괜히 머쓱한 마음이 들어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조만간 한 번 만나자.”

- 어, 언제 만날까? 이번 주? 내가 시간 맞춰볼 테니까 너 편한대로…

“아, 미안.”

서주환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최미화의 말을 끊었다.

“좀 나중에 만나자.”

- …부담스러워서 그래? 나 별로 감정 없으니까 괜찮은데.

“아니, 그게 아니라.”

서주환은 책상 옆에 걸려있는 달력을 확인했다. 날짜를 본 그가 쓰게 웃으며 말한다.

“나 곧 시험이야.”

- 아… 너 대학생이었지.

중간평가.

대학생활 첫 시험이었다.

*

사실 그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그는 배움을 위해서 대학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굳이 배운다면 인간관계일까.

그래서 서주환은 강의 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때우거나 소설 설정을 짜는 시간으로 이용했다. 노트북 켜고 타자 두드리니까 필기하는 줄 알고 교수님들이 기특해 하시더라.

그럼에도 오밤중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는 것은 역시나 흥미 위주였다.

그가 대학에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회귀 전에 동경하던 즐거운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보고 싶어서다.

항상 혼자서만 공부해왔던 그는 이렇듯 친구들과 밤샘 공부를 하는 것마저 동경했었다.

사각사각.

강의실 안에 학생들의 공부하는 소리가 나직이 깔렸다. 대안대학교는 시험기간에 한하여 24시간 동안 도서관을 개방한다. 그리고 의외로 도서관 자리 경쟁은 무척 치열했는데, 이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본인의 학과 강의실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서주환은 다행히 1일차 도서관 자리를 무사히 예약했다. 그 뿐만 아니라 정하연과 유지경, 장덕훈은 물론 이석찬까지 모두 도서관 예약에 성공하여 죽어라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어으. 숨 막혀.’

갑갑함을 버티지 못한 서주환은 조용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미 내일 있을 시험의 대략적인 공부를 끝마친 터라 마음이 여유로웠다.

‘대충 해도 3.5 이상은 나오겠지 뭐.’

회귀 후 성실히 강의를 들은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그는 꽤 자신이 있었다. 사실 3.5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고, 최대 학점은 4점대 이상도 노려볼만했다.

‘회귀 전에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이거야.’

당시에는 지금처럼 돈이 풍족하지도 않았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졸업 당시 평균 학점이 무려 4.1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전형적인 아싸 범생이었다.

그래도 10년 전 일이라 다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두어 번 교재를 훑어보니까 출제 됐던 문제까지 몇 개 떠오르더라.

“어디 보자.”

서주환은 담배를 물고 떠오르는 사람들을 한 명씩 헤아렸다.

“지경이, 미화, 소라 누나. 아, 5월에는 회식 참여하고 수희 누나도 봐야지.”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야, 서주환 많이 컸네.’

회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몇 명의 여자와 떡을 친 건지. 그것도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만큼 예쁜 여자들과 말이다. 이쯤 되니 스물스물 죄책감마저 올라오려 했다.

“프흐. 이제 와서 무슨.”

그는 픽 웃어버리고 담뱃재를 털어냈다. 이런 걸로 죄책감을 가지기엔 너무 늦었다.

‘죄책감 가진다고 섹스를 안 할 것도 아니고. 다시 연애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욕망 시스템이 있는 이상 섹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다면 차라리 마음 편히 즐길 생각이었다. 이번 생까지 여기저기 눈치 보며 살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물론 그 과정에 잡음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하연이랑 연애하면서 배운 게 있지.’

애매하게 착한 척 하지 말란 것이다. 오히려 그게 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 차라리 대놓고 쓰레기가 되는 게 나았다. 그리하면 감당 될 사람만 남을 게 아닌가.

물론 진짜 쓰레기처럼 살겠다는 건 아니고, 그런 마인드로 좀 마음 편히 살겠다는 말이었다.

“푸우. 왜 한국은 일부일처제지?”

일부다처제면 확 하렘이나 차리는 건데 말이다. 떡 줄 여자들은 생각도 없건만 서주환은 혼자서 낄낄거렸다.

“시발, 야설은 절대 현판에서 안 써야지. 야설에서 히로인 하나는 좀 아니지.”

그렇게 미친놈처럼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 미친놈 아까부터 뭐래?”

“몰?루. 일부일처가 어쩌고 야설이 어쩌고 하던데? 공부하다가 돌아버린 거 아님?”

“아닙니다. 형님은 지금 신작을 쓰기 위한 사색에 잠겨 있는 겁니다. 역시 주환 형님…!”

“아놔, 이 덕후 새끼 나랑 주환이 놈 취급하는 게 너무 다르지 않냐?”

“나한테도 잘해. 너한테만 그러는 거일 걸?”

“오빠! 저 연초 하나만요!”

어느새 네 명의 친구들이 등 뒤에 서 있었다.

정하연과 이석찬은 그를 미친놈 취급했고, 장덕훈은 난데없는 존경을 보였으며, 유지경은 언제나처럼 그에게 연초를 삥 뜯었다.

한데 의아한 점이 있었으니.

서주환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너희 왜 가방 메고 있어?”

가만 보니까 그의 가방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

정하연이 씩 웃으며 가방을 던졌다.

얼떨결에 그를 받아든 서주환.

이석찬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야, 주환아!”

“엉?”

“공부하기 좆같다, 안 그냐?”

“거야 당연하고.”

“좆같을 땐 뭐다?”

“섹스.”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엄지를 들이밀며 답했다.

이석찬이 미친 듯이 웃고, 정하연과 유지경이 질색했다.

“으하하학! 역시 내 친구!”

“서주환 색마 새끼!”

“오빠, 변태!”

서주환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너구리 셧업!”

“너굴…….”

너구리가 침묵했다.

이석찬이 한참 낄낄대다가 말했다.

“뭔 섹스야, 미친놈아! 좆같으면 째야지! 야, 당구나 치러 가자!”

“야, 난 공부해야 된다고!”

“그래서 안 갈 거임?”

“…한 시간, 아니 두 시간만 할 거야.”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경아?!”

“헤헤. 언니, 공부 싫어요. 그냥 같이 놀아여!”

“너 이석찬 닮아간다?”

“언니! 어떻게 그런 말을!”

“야 이 텐련들아, 내가 뭐!”

“석찬 형님은 확실히 좀 심했습니다.”

“이 씹덕 새끼가?”

서주환은 투닥대는 정겨운 친구들을 보며 생각했다.

‘음. 어쩐지 회귀 전에 성적이 잘 나오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날 밤 다섯 명은 1번가에서 새벽 4시까지 놀다가 집으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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