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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페티시가 보여-116화 (11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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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은 후기가 많이 길어질 듯합니다.

본편과 이어지는 게 아니니까 생략하셔도 무방합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부족한 글쟁이 운달입니다.

그럼 못난 글쟁이의 주저리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제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인지라 후기가 많이 난잡할 수 있습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단 사과부터 박고 시작할까요.

죄송합니다. 제 능력이 모자랐습니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리메이크를 시작할 때부터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일전에도 반응이 많이 갈렸거든요. 재밌다, 어차피 헤어질 줄 알았다, 이 전개가 맞지 하며 그냥 보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이럴 거면 왜 사귀었냐고, 감정선 왜 이러냐고 쓴 소리를 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리메이크를 통해 연재하면서도 이 에피소드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습니다.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걸 알기에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기도 했지요.

1. 아예 정하연이란 캐릭터를 삭제할까.

2. 정하연 캐릭터를 유지는 하되 연애 에피소드를 없앨까.

3. 주인공 성격에서 우유부단함을 없애고 좀 더 혐성으로 바꾸어볼까.

4. 군대 에피소드를 없앤 다음 정말 가볍게 연애하고 헤어져서 독자님들도 웃으며 넘길 수 있도록 밀도를 낮춰볼까.

4번이 유력했습니다.

가장 처음. 그러니까 리메이크 전에 제가 생각한 정하연과 서주환의 구도는 정말 가볍게 연애했다가 헤어지고, 가끔 섹스도 하는 친한 친구였거든요. 절대 작품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아니었어요. 그러면서도 캐릭터의 매력은 살려서 히로인 후보 중 하나로 넣고 싶었지요.

하지만 중간에 욕심이 생겼고, 정하연이 고백하는 장면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구도가 아예 어그러졌죠. 그런 식으로 고백해서 사귀어 놓고 '2주만에 헤어졌다' 같이 한 문장으로 끝내기는 안 되겠더라고요. 개그 느낌의 에피소드가 진지해져버렸어요.

그 안에서 저는 중심을 못 잡았습니다.

개그로 갈 거면 개그로 가고, 진지하게 헤어지는 장면을 쓸 거면 그렇게 해야 하는데, 갈팡질팡하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군대 에피소드를 없애고 아예 첫 섹스, 첫 연애를 정하연과 정말 가벼운 분위기로 하고(원래 리메 전 정하연은 처녀가 아니었습니다) 본래 계획했던 대로 쓰려 했습니다.

그런데 안 되겠더군요.

이미 당시의 에피소드를 쓰면서 정하연의 이미지가 제 안에서 자리를 잡아버렸습니다. 아예 다른 캐릭터로 대체할까도 했지만 아쉬워서 포기했습니다. 사실은 군대 에피소드를 생략하면 소라 누나가 사라져야 하는데 그것도 아까웠어요...

그래서 다시 생각한 방법은 아예 '제대로 각 잡고 씁쓸하게 써보자' 였습니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어쩔 수 없이 글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게 되고, 독자님들이 한 편씩 읽을 때마다 답답함을 느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욕심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제대로 빌드업을 해서 납득시키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요.

네. 분에 넘치는 도전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쓰는 동안 눈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잠들기 전까지 쓰는 생활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역부족이었어요.

사실 이 정도 빌드업이면 그래도 꽤 많은 독자님들이 납득해주실 거야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전혀 아니었어요.

제 머릿속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서주환이 찌질하게 삽질을 하는 것도, 섹스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것도, 정하연에게 아이템을 써대며 복종심을 올리려 하는 것도.

반대로 정하연이 서주환에게 고백한 일이나, 연애 후 소심해지는 모습,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가 끝난 후 다짜고짜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까지.

저에게는 납득 갈 만한 이유와 개연성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걸 글에 자연스럽게 녹여서 전달하는 것은 전혀 별개였습니다.

저야 머릿속에 주석이 있지만 독자님들께는 본문에서 보이는 게 전부니까요. 그래서 필력이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서주환과 정하연.

독자님들께서 둘의 감정선이 납득되지 않았다면 순전히 저의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위 이야기와 별개로 재밌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사실 이 에피소드는 1~2편 정도 더 길어질 예정이었습니다. 쓰려다가 생략한 장면이 있거든요.

본래 둘의 헤어짐은 조금 다르게 찾아옵니다.

생략된 이야기 두 가지.

1. 서주환의 트라우마를 꿈으로 보여주다.

- 회귀 전의 서주환은 잘못 부여된 운명으로 인한 불행 때문에 대인 관계에 지장이 생깁니다. 어렸을 적에는 골목대장 노릇을 할 정도로 활발했지만, 타고난 불행이 터지면서 재수 없는 걸 넘어 불행을 가져오는 재앙 취급 당하죠. 이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6학년에는 남은 친구가 몇 없었죠.

중학교에 가서는 일진들에게 찍혀서 괴롭힘을 당합니다. 그 와중에 남아 있던 몇 없는 친구마저 곁을 떠나가지요.

고등학교도 비슷하고, 군대에서조차도 비슷합니다. 정소라를 제외하면 그를 편견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정소라만이 그를 호통치며 굴리면서도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대했기에 서주환의 첫사랑인 거겠죠.

이후에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군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한수아가 불행한 사건에 엮여 자살합니다. 단 하나 남아 있던 소굽친구조차 떠나가지요. 서주환의 트라우마가 깊어집니다.

대학을 다니고, 정신병원을 다니고, 4년 간의 생활을 보내며 조금씩 나아지는 서주환입니다만, 여전히 인간불신이 남아서 4학년 때 가까워진 유지경과도 연락을 끊게됩니다(유지경-외전). 그녀의 곁에 있으면 자신의 불행 때문에 취업하는 것조차도 힘들 거라는 이유도 있었죠.

2. 정하연과 헤어짐의 결정적인 이유.

정하연의 생리통이 조금 나아졌을 쯤, 몽마신의 축복을 얻은 서주환은 행운을 믿고 혐성 짓을 시작합니다.

정하연에게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성스러운 손길을 이용하여 흥분효과를 일으키는 거지요. 물론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를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생리 중 이미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던 정하연. 그리고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가 풀린 정하연은 서주환을 밀어내고 죽탱이를 후려치며 말합니다.

"이 씹새끼야, 너 나랑 떡치려고 사귀냐?"

그 후 하루 정도 시간을 갖고.

정하연이 이별을 통보합니다.

위와 같이 갔으면 이별 후 에피소드의 마무리가 조금 달라졌겠지요.....

이러한 장면을 보여드리려 했지만... 안 그래도 답답하고 힘든 에피소드가 더 암울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쳐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다가올 독자님들의 반응을 지례짐작하면서 혼자 지치는 바람에 빨리 에피소드를 끝내고 싶었던 것도 같아요.

음... 사실 생리 중 아이템 효과 부여하겠다고 섹스 시도 하는 장면을 쓰면 서주환 이 새끼 어떻게 해도 세탁 불가 쓰레기 새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미 쓰레긴데 뭘 고민했나 싶기도 하네요.

긴 이야기 들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

이제 댓글을 읽어보러 가겠습니다.

나름대로 라노벨 느낌을 내보고자 했는데 독자님들이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겠네요.

*

독자님들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배아어 님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심에 감사합니다!

*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조금만 쉬다가 오겠습니다...

절대 연중은 아니고, 잠깐 충전한다고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운달 드림.

*

언제나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작품 설정]

정하연

정하연

우위가 정해진 관계는

어떠한 일에 대해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운 법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한 법이다.’

‘끝이 좋아야 시작이 빛나는 법이다.’

시작, 과정, 끝.

법, 법, 법.

과연 어느 쪽의 비중이 클 것인가.

사실 이는 말장난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면 셋 중 중요하지 않은 게 무엇일까.

시작이 틀어지면 과정이 힘들고,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반면 시작과 과정이 좋더라도 결과가 나쁘다면 앞선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었으니.

결국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쏴아아아-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끝’에 비중을 두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서주환은 생각했다. 정하연의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면서였다.

‘끝맺음이 좋아야 다음이 있는 게 아닐까?’

어설프고 이기적인 연애는 서툴렀던 시작만큼이나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과거에 얽매인 서주환의 마음은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고, 아이템이라는 불량품까지 섞여 들어 엉망으로 구겨졌다.

허나 끝맺음만큼은 뒤늦게나마 제대로 매듭짓기 위해 빗속을 내달렸다. 그리하여 풀고, 덧대고, 기워서 간신히 제자리를 찾았음에, 연인으로써의 헤어짐은 곧 두 인연의 끝을 의미하지 않으리.

“서주환.”

정하연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붉어진 눈시울로 그를 노려보면서였다.

“이제 다시 친구야. 알겠지?”

“응.”

“학교에서 어색해하지 마.”

“응.”

“어색하다고 피하면 죽일 거야. 엠티 가기 전처럼 해야 돼.”

“응.”

“…예스맨이야? 뭐 죄다 쉽게 알겠대. 씨이…….”

제 말에 긍정했음에도 무엇이 불만인지 정하연이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잇소리를 흘리는 입매에서는 자못 억울한 기색마저 보였다.

서주환은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그에 움찔 뒤로 물러나려는 정하연이었으나 이내 손이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그 모습이 마치 경계하는 고양이와 같아서 그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푸흐. 하연이 네가 더 어색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전처럼 친구할 수 있는 거 맞지?”

헤어진 연인은 생면부지의 관계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대개 헤어짐이란 충분한 대화 끝에 이루어지기가 더 힘든 법이었으니… 아니, 좋게 헤어진다 하여도 한때의 연인이 평범한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있는 경우란 많지 않을 것이다.

정하연은 잠시 말없이 그의 손에 머리를 맡기다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미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뇐 그녀가 흔들림 없이 말한다.

“…내일부터는 친구로 대할 수 있어. 너도 내일부터는 이런 거 하지 마.”

“이런 거?”

“머리 쓰다듬는 거.”

“그럼 지금은?”

“…닥쳐.”

닥치고 쓰다듬으란 뜻인가.

서주환은 쓰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스며든 물기가 느껴졌다.

똑, 또로록- 또록….

폭포처럼 쏟아지던 빗방울이 점차 가늘어졌다. 장마철 장대비 같던 게 이제는 제법 봄비라 부를만했다.

서주환은 우산을 펼치며 말했다.

“하연아, 들어가자. 데려다 줄게.”

잠시 고민하던 정하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서주환이 펼쳐 든 우산 안으로 들어갔다. 바짝 붙은 그녀가 괜히 불퉁한 목소리로 툭 내뱉는다.

“…그럼 갈림길 까지만.”

“집까지 데려다 줘도 되는데.”

“그건 내가 싫네요.”

싫다는 데 무얼 어찌하리오.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이곤, 티 나지 않게 우산을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덕분에 한 쪽 어깨 위로 빗방울이 고스란히 떨어졌지만, 이미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쫄딱 젖은 뒤였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때 말없이 있던 루시가 의아하다는 듯 말해왔다.

[주인님, 정하연에게도 우산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석찬이 잘못 알려준 모양이에요. 어깨가 더 젖으시기 전에…]

서주환이 루시의 말을 끊었다.

‘쉿. 그건 나도 알아, 루시.’

[…아는데 굳이 왜 우산 하나로 같이 쓰는 거죠?]

‘으음. 루시, 아무래도 감정을 좀 더 배워야겠는 걸.’

[???]

‘하하. 지금은 이게 더 효율적이란 뜻이야. 여러모로 말이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만 쓰는 게 효율적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난제를 만났다는 듯 의문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서주환은 그런 루시의 변화가 우스워서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다가, 왜 비웃냐며 얼굴이 빨개진 정하연에게 옆구리를 찔리고 말았다.

“어윽! 아, 아파. 하연아.”

“아프라고 한 거거든!”

그녀의 매운 손맛이 어찌나 반갑던지.

*

“조심해서 들어가.”

“주환이 너도.”

서주환과 헤어진 정하연은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신기하게도 매듭을 제대로 지은 것 하나로 몸 상태마저 괜찮아진 듯했다.

‘우산 있는 거 알았겠지?’

정하연의 손에는 당연하게도 우산이 들려 있었다. 애초부터 가지고 나왔던 우산이었으나 모르는 척 서주환과 우산을 같이 썼다. 작은 접이식 우산이라지만 분명 눈치 챘을 것이다. 속내를 뻔히 안다는 듯 웃는 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

하지만 이내 아무려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친구.

마지막 날 우산 좀 같이 쓴 게 그리 큰 사치는 아닐 터다. 또한, 그도 웃음만 흘렸을 뿐 말없이 넘어갔으니 본인만의 욕심은 아니리라.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자취방 건물 난간에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가장 오래된 친구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왔냐?”

“이석찬?”

“주환이는? 만났음?”

그 질문에 정하연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서주환은 이석찬의 말을 듣고 찾아 온 것이라 했었다.

이석찬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묻는다.

“잘 풀었냐?”

“…어.”

“다행이네. 이제 짜는 소리 안 듣겠구만.”

“야, 너는 말 좀 곱게 못 하냐?”

“지랄. 곱게 말해줘도 못 들어먹는 년이.”

이석찬이 황당하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 같으면 한 대 때려줄 만한 어투였으나, 정하연은 찔리는 바가 있어 시선을 피했다.

얼마 전, 보다 못한 이석찬이 조언을 했을 당시, 그녀는 괜한 말 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쳐냈었다. 이미 복종심 효과가 5중첩까지 적용된 그녀에게 자신과 서주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정하연은 이제야 제 잘못을 인지하고 이석찬에게 사과했다.

“그때는 미안해. 생각해서 해준 말일 텐데…….”

“윽. 야, 됐어. 소름 돋으니까 사과하지 마.”

“…고마워.”

“으. 그것도 소름 돋기는 마찬가지네. 됐고, 고마우면 나중에 주환이 놈한테 말이나 잘 해주셈. 아까 만났을 때 내가 말을 좀 막 해버려서… 아오씨.”

이석찬은 후회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서주환에게는 남의 연애에 끼어들기 싫다 말했지만, 실상은 이미 정하연에게 한 번 조언을 건넸다가 퇴짜를 맞은 뒤였던 것이다.

‘주환이 녀석한테도 말할 걸 그랬나. 아니 씹, 내 주제에 연애 조언은 개뿔.’

이석찬은 혀를 찼다. 연애는 많이 해봤지만 실상 진지하게 사귄 적은 없었다. 적당히 기분 맞춰주고 오래 가는 방법이야 알지만, 성격상 오래 가본 적도 드물었으니 둘에게 연애 조언 따위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애초에 연애라는 것에 제 삼자가 참견하는 걸 질색했다. 정하연이 아니었다면 깨지든 말든 신경도 안 썼으리라.

그런 이석찬의 반응에 정하연은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녀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맞다, 너! 주환이한테 나 집 나간 지 두 시간 됐다고 구라쳤더라? 내가 십 분 됐다니까 표정 완전 구겨지던데?”

“으엑. 많이 화남?”

“학교에서 만나면 어디 한 군데 부러트려버리겠다고 하더라.”

“좆됐네…….”

이석찬의 얼굴이 똥 씹은 듯 구겨졌다.

정하연은 그 표정을 보고 깔깔대며 말했다.

“킥킥킥. 구라야.”

“…이런 텐련이?”

“삔또 나간 건 맞는데?”

“미친. 아, 그 새끼 은근 소심해서 진짜 화났을 거 같은데. 소설에 후원금 한 백만 원 박을까?”

“얼씨구. 네가 잘도 그러겠다.”

“야, 미안하고 고맙다매. 좀 도와줘.”

“킥킥. 누나라고 불러봐.”

“미친련이?”

“뭐, 내가 누나 맞잖아.”

“꺼져. 원래 내가 알아서 하려고 했음.”

“그러시던가요.”

깔깔거리며 하는 말에 이석찬은 표정을 구겼다.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됐고. 야, 술이나 마시자. 오빠가 와인 사왔다.”

“오빠는 무슨 지랄?”

“그래서 안 마실 거?”

“와인 맛있는 거야?”

*

집에 돌아온 서주환은 쫄딱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찝찝해서 일단 씻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이석찬에게 온 까톡이었다.

- 이석찬: 야, 미안.

- 나: 넌 낼 뒤짐ㅇㅇ.

- 이석찬: ㅋㅋㅋㅋㅋ살려주셈;;

- 나: 내가 널 살려줘야 할 이유 세 가지만 대봐.

- 이석찬: 1. 정하연 흡연장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줌.

- 이석찬: 2. 나 네 소설 독자임. 독자 때릴 꼬야?

- 이석찬: 3. 내가 지금 좆같은 마침표를 붙이고 있음ㅎㅎ.

- 나: 미친 새끼ㅋㅋㅋㅋㅋ.

- 이석찬: ㅋㅋㅋㅋㅋㅋㅋ

- 나: 살려드림. 나도 미안했다.

- 이석찬: 맞아 네가 잘못함 시발롬아

- 나: ?

- 이석찬: 뭐요

“큭큭큭. 하여간 또라이 새끼.”

서주환은 낄낄대며 웃음을 흘리곤 욕조에 몸을 담갔다.

애초에 그는 이석찬에게 별로 감정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처음에는 좀 화가 났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이석찬의 마음도 이해가 갔던지라 금방 화가 풀렸다. 아무려면 8년 동안 가까이 지내 온 친구가 우는 걸 봤는데 이석찬이라고 화가 안 났겠는가.

“오히려 고맙지.”

먼저 메시지를 보내준 게 고마웠다. 학교에서 보고 어색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덕분에 소심한 고민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목욕을 마친 서주환은 욕실 거울을 바라봤다.

“피부가 많이 좋아졌네.”

그간 뽑기에서 나온 페로몬 입욕제를 꾸준히 사용했더니 얼굴 곳곳에 나 있던 여드름 흉터가 거의 다 사라졌다. 피부만 좋아도 인상이 바뀐다더니 이 정도면 나름 잘생겨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 위로 선물.”

잘생겼다고 하니까 ‘이별 위로 선물’이라면서 지급된 아이템이 떠올랐다.

서주환은 인벤토리에서 지급받은 아이템을 꺼냈다. 특이하게도 이번 아이템은 종이 형태였다. 루시가 말하길 찢어서 사용하는 쿠폰이라나.

아이템의 설명창이 나타났다.

【얼굴 개연성(B)】

▶ 효과: 잘생겨진다.

※ 본래 외모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다.

※ 인과율이 충족된다.

“거 되게 심플하네. 그런데 이거 그냥 사용해도 되나?”

갑자기 외모가 많이 바뀌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루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해왔다.

[인과율이 충족된다는 문구가 있죠? 외모가 아무리 바뀌어도 잘생겨졌다고 생각할 뿐 특별한 의심은 없을 거랍니다.]

“아, 그게 그런 뜻이었어? 땡큐, 루시.”

서주환은 그제야 안심하고 아이템을 사용했다. 거침없이 종이를 찢자, 종이가 빛으로 바스러지며 얼굴에 스며들었다.

“오오! 와, 이게 뭐야?”

서주환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다더니 크게 달라진 게 없어보였음에도 한 눈에 잘생김이란 게 묻어나왔다.

자세히 뜯어보니까 이목구비의 위치가 미세하게 조정 됐다. 더해서 눈썹이 한층 찐해지고 얼굴 혈색이 좋아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든 변화는 남들보다 다소 째져 있던 눈매가 조정된 것이다. 이전에는 야비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보였다면, 이제는 날카롭다거나 카리스마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캬~.”

거울을 보니 그저 감탄만 나왔다. 잘생겼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얕게 남아 있던 울적한 마음의 잔재조차 싹 날아갔다.

서주환은 괜히 거울을 보고 몸에 힘을 줘보았다. 그러다 내친김에 임수희에게 얼핏 배웠던 포징까지 여러 자세로 바꿔가며 잡아본다. 그간 살이 좀 쪘지만 억지로 쥐어짜자 나름 태가 잡혔다.

서주환은 스스로에게 심취했다.

“이 정도면 존잘 아닌가? 얼굴 되지, 몸 되지, 고추 크지. 연예인도 안 부럽다. 크으.”

사실 연예인에 비하면 꽤나 손색이 있었지만, 알게 무언가. 그는 지금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때 루시가 그를 불렀다.

[주인님.]

“응?”

[이게 쪽팔림이란 감정인가요?]

“…….”

서주환의 얼굴색이 급격하게 빨개졌다.

[왜 제가 수치스러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침을 바랍니다.]

“…….”

서주환은 루시에게 감정이 생겼다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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