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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 안으로 한 편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
한 번에 두 편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독자님들께 양해를 구할까 했지만...
암만 그래도 연속 지각은 아닌 것 같아서 먼저 올립니다
자세한 후기는 다음 편에서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쟁이라서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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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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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 많은 글을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위가 정해진 관계는
서주환은 갑작스런 욕설에 눈을 끔뻑였다. 뭐지, 잘못 들었나? 그리 생각하는 순간 한탄 섞인 꾸지람이 들려왔다.
- 이 모질아…….
“어, 어?”
- 내가 너니까 쌍욕은 안 하는 거야. 알았어?
“으응.”
- 아무튼. 그럴 거면 왜 사귄 거야?
“내가 사귀자고 한 거 아닌데…”
- 얼씨구. 그래서 너는 잘못이 없다? 맞춰 볼 생각도 없이 헤어지자고 한 그 애가 잘못이다?
“그게 아니라…….”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서주환은 억울해졌다.
‘나도 잘못했지. 당연히 잘못했으니까 헤어지자고 한 거겠지. 그런데 다짜고짜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건 아니잖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맞춰가야 할 거 아닌가. 그런 노력도 없이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욕까지 먹어야 하나?
그는 나름대로 관계를 잘 유지해보고자 노력했다. 임수희의 유혹도 뿌리쳤고 비밀로 해주겠다는 유지경의 장난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템은 좀 많이 썼던가? 어떻게든 기분 좋게 해주려고 섹스 할 때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템의 복종심 효과는 거의 쓰지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생각한 대로 휘두를 수 있음에도 명령조를 최대한 자제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하기만 하다. 그때 정소라가 차분해진 톤으로 말해왔다.
- 주환아, 네가 그 애 좋아했다는 건 알겠어. 항상 붙어 다녔다는 것도 알겠고.
“…응. 하루도 안 빠지고 같이 있었어.”
-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 속 장소가 항상 학교랑 집이야. 데이트는 한 번이 끝? 학교랑 집 말고 다른 데 간 적은 있니?
“…없는 것 같아.”
- 너 설마 연애랑 섹스 구분 못할 정도로 병, 아니 등, 아니… 바보는 아니지?
“…….”
구분한다. 연애랑 섹스가 다르다는 건 안다. 그런데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하연과 지낸 시간을 떠올려보면 다를 게 없어서.
- 혹시 여자친구가 뭐 좋아하는 줄은 알아? 취미, 음식, 하다못해 색깔. 아니면 반대로 싫어하는 거.
“대, 대충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 진짜? 그 애가 너한테 맞춰준 거 아니고?
“…잘 모르겠어.”
확신이 없다. 취미? 책을 좋아하는 건 안다. 당구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그 외에는? 모른다. 그나마 민트초코 정도일까. 싫어하는 행동은 과시하면서 돈을 막 쓰는 것. 그 외에는 뭘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막연하게 잘 맞는다고만 생각했다. 한데 그게 일방적으로 맞춰준 거였던가?
- 하아. 얘기 들어보니까 그 친구 성격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맞춰준 거 보면 너 많이 좋아했나 보다. 그런데 너는?
“다, 당연히 나도 많이 좋아했지! 처음 사귀어보는 거라 엄청 신경 썼어. 진짜 매일 같이, 매일 같이…….”
…시발, 매일 같이 섹스만 해댔다.
신경 쓴 건 정하연의 기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섹스를 할 수 있는가였다. 섹스를 통한 호감도 등급에 더 신경 썼고, 헤어지는 일 없도록 아이템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주환은 말문을 잃었다.
그의 말을 기다리던 정소라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주환아.
“…응.”
- 너만 잘못했다는 건 아니야. 불만 있는 게 있으면 당연히 말을 해야 알지. 누가 그런 식으로 헤어지자고 하니? 네 말대로 연애는 서로 맞춰가는 게 맞아. 오히려 싸우고 나서 더 단단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게 진짜 정하연의 잘못인가? 아니,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이템의 효과 때문에 말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 주환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정답이 아니니까 알아서 걸러들어. 내가 뭐 연애학 교수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 연애하는 방법이야 가지각색이니까.
“알았어.”
알았다고는 했으나 정소라가 해줄 말이 더 없이 궁금했다. 그녀는 연애 경험이 많아 보였고, 지금도 단편적인 얘기만 들었는데도 모르는 새 요점을 짚고 있었으니까.
- 난 있지. 연인 관계에서 우위가 정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배려하고, 배려 받는 게 당연해지면 안 되는 거라고.
“…….”
- 그런데 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한 쪽만 맞추고 있는 게 보여. 물론 들었다고는 해도 세세한 부분은 모르겠지만. 뭔가 더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들은 것만으로는 그래. 이미 네가 갑이야. 갑을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오래 갈 수는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
- 다짜고짜 헤어지자고 한 거. 분명 그 애가 잘못한 거지만, 그걸 말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물론 차인 네가 그런 부분까지 헤아리라는 건 아니야. 단지… 나는 네가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거든. 상대방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 후회로 돌아올 거야.
“음…….”
서주환은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침음을 흘렸다.
‘맞춰주는 거라고 생각 안 해봤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듣고 나니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언제부터인가 정하연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까지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것. 모두 놀라울 정도로 자신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속궁합이 좋은 것처럼 취향도 잘 맞는 거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맞추어 왔던 것뿐이라면?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질문은 ‘정말로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에 대한 의심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편하다는 이유로, 닮은 점이 많다며 형편 좋게 생각했던 것뿐일지도.
확인이 필요했다.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있자 정소라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부른다.
- 주환아. 서주환?
“…어, 소라 누나.”
- 괜찮아?
“괜찮지 그럼.
- 미안해. 오늘 헤어져서 힘들 텐데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다.
“아니야.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랬어. 오히려 진지하게 상담해줘서 고맙지.”
-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누나, 나중에 내가 또 연락할게. 지금 해야 할 게 생각나서 끊어야 될 것 같아.”
- 어? 어어. 그래, 나중에 또 연락하자.
전화를 끊었다. 서주환은 잠시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읊조렸다.
“추억 보관소 사용.”
띠링.
[추억 보관소를 통해 지나간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기록을 열람하는 방식에는 직접 열람, 간접 열람, 일반 열람이 있습니다.]
[직접 열람을 선택하면 오감을 이용해서 기록을 다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다시 체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간접 열람을 선택하면 제 3자의 입장에서 기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반 열람을 선택하면 영상, 사진과 같은 시청각 자료 등으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생애를 기록하는 『추억 보관소』의 기능.
지금까지는 단순히 소설이나 과제 등 작업물의 백업 용도로만 사용하던 기능이다. 하지만 『추억 보관소』의 진가는 과거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원한다면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서주환은 시간을 돌려서 지나간 과거를 불러왔다.
*
전화를 끊은 정소라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아악! 남의 연애 참견하는 거 아닌데!”
마지막에는 알아서 걸러 들으라는 둥 말했지만 이미 제 생각을 다 나불거리고 난 뒤였다. 뭐 연애박사라고 그리 길게 말했는지.
“아으. 흑역사만 아니었어도.”
필요 이상으로 진지해져서 조언이랍시고 말을 건넨 이유는 서주환의 연애가 남 일 같지 않아서였다.
갑을 관계가 정해진 연애. 애매한 감정으로 시작해서 좋지 않게 끝맺은 과거.
이미 실수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몇 달 전 서주환의 고백도 단호하게 쳐낸 것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으으으.”
정소라는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라버린 탓이었다. 미련 같은 건 일말의 잔재도 없었지만 쪽팔리는 흑역사라는 건 분명했으니.
“캬아아악~!”
졸지에 흑역사 발작 버튼이 눌린 정소라가 베개를 집어던지며 발광했다.
*
사람인 이상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란 힘든 일이다. 특히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왜곡되는 기억일수록 더욱 그렇다.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덧씌워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서주환은 『추억 보관소』를 사용했다. 지난 기록을 확인 한 서주환은 손으로 메마른 얼굴을 쓸었다. 자신의 병신 짓거리 가득한 흑역사 모음집을 확인하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스스로에게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연신 씨근덕댔다.
『추억 보관소』의 기록을 통한 직접 체험은 그 당시의 감정까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주일 전의 자신은 이미 미미하게나마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마주하기 싫어서, 스스로 편하고자 외면한 것이다. 충분히 눈치 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게 좋아.’
‘오늘 애들이랑 술 안 마실 거야?’
‘이거 입어달라고? 불편한데… 알았어.’
‘그래. 그게 더 좋겠다.’
‘나 프사로 티내는 거 진짜 싫은데.’
‘알았어. 바꾸면 되잖아.’
기록 속에는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답하던 정하연이 있었다. 애매한 표정이다가도 그가 ‘이게 더 낫지 않아?’ 하고 물어보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별 거 아닐지도 몰랐다. 서주환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복종심 효과를 경계하여 그녀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일이 없었다.
고작해야 음식메뉴나 드라마, 영화 등 뭐 볼지에 대한 선택.
뭐가 더 예쁘다며 별 생각 없이 흘린 칭찬 한 마디.
취향에 대한 사소한 의견 갈림과 말장난식의 토론.
이석찬을 비롯한 친구들이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지만 아이템 효과를 채우기 위해서 거절했던 일. 그리고 술자리에 참가하려 하다가도 당연한 듯 그를 따라왔던 정하연.
싫다는 걸 졸라서 바꾸었던 프로필 사진.
서주환은 절대로 그녀의 행동을 강제하지 않았다. 그나마 고집을 부렸던 건 프로필사진 정도일까. 대부분의 경우 그는 이게 더 낫지 않느냐고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결론은 언제나 그의 생각대로였다.
그걸 보고 취향이 비슷하다고 형편 좋게 납득했다. 그러나 기록 속 정하연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단지 복종심 효과 때문에 그가 강제하기도 전에 알아서 맞춘 것이었으니.
우위가 정해진 관계.
서주환과 정하연의 우위는 그가 아이템을 사용한 시점에 이미 정해졌다. 『페로몬 부스트』의 중독과 복종심은 그녀를 점점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녀에게 배려를 강요했다. 설령 서주환 자신이 직접적으로 명령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다. 심리적인 갑을의 위치가 명백했다.
‘시발. 약한 효과라는 말에 방심했어.’
아이템의 효과는 결코 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티 나지 않게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효과를 발휘했다. 그래서 평소의 정하연과 다름없다고 자기위안 삼았다.
사실은 어느 순간 눈치 채고 있었으면서. 경계한다 해놓고 크게 바뀐 건 아니니까 별 상관없겠지 형편 좋게 넘어갔다.
“씨발! 좆같이 굴 거면 처음부터 제대로 쓰레기 짓을 하던가! 좆병신 같은 게!”
차라리 크게 선을 넘었더라면 정하연 쪽에서 진즉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아이템의 효과는 ‘약한’ 복종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애매하게 착한 척, 좋은 남자친구인 척 한답시고 배려 같지도 않은 배려를 해서 그녀가 떠나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래서야 대놓고 쓰레기 짓을 하는 것보다 더 악질이지 않은가.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이템의 효과가 끊기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그랬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시간 전, 정하연이 헤어지자며 한 말들이 있다. 혼자 삽질하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했던 그 말들을 기록으로 다시 확인한 참이었다.
‘주환아, 우리 헤어지자.’
그녀가 한 말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많이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나는 우리가 친구였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아.’
‘분명 더 가까워졌는데 더 멀어졌어…….’
‘고쳐서 되는 게 아니야. 문제는 주환이 네가 아니라 나한테 있는 거니까.’
아니다. 문제는 하연이가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그녀가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말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지금은 괜찮은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 그냥 네가 하는 말이면 다 좋다고 따를 것 같아서… 나는 있지. 사귄 이후로 오히려 네가 불편해졌어.’
‘미안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네. 이상한 말인 거 아는데… 정말, 이런 식으로 헤어지자고 해서 미안해.’
제 감정을 다 말로 표현하지 못해 슬픈 얼굴로 바라보던 그녀가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템의 존재를 모르는 하연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걸지도 몰랐다. 다시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가 적용된다면 이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것을.
나는 그녀가 야속하다고만 생각했다. 먼저 고백했으면서, 에둘러 거절하던 나를 설득했으면서 그리 쉽게 헤어지자 말하는 하연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씨발, 애초에 이해하려고 노력도 안 한 주제에! 제 감정만 중요해가지고 상대를 헤아리려는 시도조차 안 해본 주제에 연인관계는 맞춰가는 게 아니냐는 팔자 좋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었다.
‘먼저 고백해놓고 헤어지자고 해서 미안해.’
‘나는 남자친구가 아닌 너도 좋아해. 그냥 친구로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리일까?’
나에게는 지난 생의 트라우마라는 형편 좋은 핑곗거리가 있었다. 모두가 떠나가던 그 시절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게 괴로워서, 그래서 하연이에게 『페로몬 부스트』를 사용했다. 아이템의 효과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절대로 나를 떠나가지 않을 테니까.
하루도 쉬지 않고 해왔던 섹스도 그 때문이었다. 욕망 시스템을 얻고 짧은 시간 여러 여자와 섹스를 해온 나는 여자란 섹스만 잘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각종 아이템을 사용해 매일 같이 그녀가 절정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정력이 딸려서 힘들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섹스했다. 그럼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당연하게도, 병신 같은 착각이었다.
‘이기적인 소리라는 걸 알아. 난 그래도… 친구로라도 너랑 잘 지내고 싶어.’
‘주환아, 정말 가려고? 주환아! 야, 서주환!’
도대체 누가 이기적이란 건지.
나는 혼자 세상 불쌍한 척, 나만 괴로운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감정에 매몰됐었다. 또 내 사람이 떠나간다는 옛날 기억에 괴로워하면서 하연이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병신 새끼.”
서주환은 지갑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첫 데이트 때 정하연과 찍은 스티커 사진이다. 사진 안의 그와 정하연이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며 웃고 있었다.
“어떻게 같이 사진 찍은 게 이거 하나밖에 없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등신 같은 게… 이러니까 헤어지자고 하지.”
아이템의 효과가 없었으면 따귀를 처맞아도 진즉 열댓 번은 더 맞았으리라. 아니, 정하연 성격에 죽빵을 갈겼으려나.
“내가 하연이었으면 시발.”
내가 네 좆집이냐면서 거시기를 까버렸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서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하연의 집으로 가기 위함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해결 되는 건 없었다.
‘지금 가만히 있으면 친구도 못해.’
헤어지는 것도 아주 엿같이 헤어져 버렸지 무언가. 그녀가 진지하게 하는 말을 혼자 땅굴 판다고 제대로 대답도 안 했다.
정하연의 집을 나오며 지껄였던 말이 떠올랐다.
‘알았어, 하연아. 몸 조리 잘해. 나 이만 가볼게.’
알긴 뭘 안단 말인가. 그저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 대충 아무 말이나 던지고 자리를 피했을 뿐이었다. 그 따위로 하면서 뭘 어떻게 친구로 지낸다는 건지.
서주환은 대충 침대에 던져두었던 후드를 챙겨 입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술병은 무시했다. 정리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는 대충 신발을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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