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12화 (112/501)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연참이 필요한 구간 같군요...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연참 할 수 있도록 힘을 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피임 다 해서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갑자기 여친이 '자기야, 나 생리가 안 와...' 하면 어떤 기분일까요?

솔직한 말로 기쁘거나 여친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 이전에 공황부터 오지 않을까 싶네요.

작정하고 가임기 맞춰서 해도 안 생기는 경우가 허다한데 피임 섹스에 임신이라니ㄷㄷ

*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오늘은 쿠폰이 특히 많이 들어와서 아메리카노를 제일 큰 걸로 시켰습니다. 덕분에 폭염 주의보가 뜬 날인데도 시원하게 글 쓸 수 있었어요 :D

*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우위가 정해진 관계는

여성의 생리(生理)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굉장히 크다.

어떤 여성은 생리 중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뿐이지만, 생리통이 심한 여성은 내장을 긁히는 느낌이라 말하며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드물게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단순히 예민해지는 것을 넘어 우울증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밑바닥까지 처박히는 사람도 있었다. 오죽하면 생리와 관련해 ‘불쾌기분장애’라는 용어까지 있겠는가.

반면 정하연은 비교적 생리기간을 평탄하게 보내는 편이다. 생리가 찾아오는 주기가 매우 일정했고, 생리통 또한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여성으로서는 꽤나 복 받은 체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생리주기가 망가지고 격한 통증이 찾아오는 게 너무 낯설어서.

“윽.”

또 다시 시작된 통증에 정하연은 약하게 침음하며 표정을 구겼다. 오늘 아침 갑자기 시작된 월경 때문에 강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을 간신히 참고 있으려니 밑에서 스물스물 무언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드르륵.

정하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대학의 몇 없는 좋은 점은 강의 시간에 마음대로 나가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변기에 앉은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생리대에 묻은 피의 양이 상당했다. 그녀가 주머니에 미리 챙겨둔 생리대를 꺼내며 중얼거린다.

“아씨. 이거 피만 나오는 게 아닌 거 같은데…….”

희고 찐득한 게 생리혈에 섞여 나왔다. 생각할 것도 없이 서주환의 정액이다. 밤새 안쪽 깊숙이 쏟아부은 정액의 잔여물이 생리혈과 섞여서 나온 것이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나오더라니.

아직 하루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앞으로가 걱정 되는 순간이었다.

“짜증나…….”

낯선 통증과 짜증에 씨근덕거리는 정하연. 전에 없이 불쾌한 기분이 올라와 신경이 예민해진다.

‘임신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울컥 올라왔던 짜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지난 며칠 간 혼자서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오늘 아침 생리가 시작됐을 때는 귀찮기만 하던 월경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하연은 깔끔하게 생리대를 교체하고 다시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해야지.’

이번 월경 중 스스로도 특히 예민해진 걸 느꼈다. 그렇다고 짜증을 다른 사람에게 푸는 건 질색인지라, 그녀는 평소보다 조심하기로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

서주환은 싱싱한 나물 무침을 정하연의 밥 위로 올려주었다.

“하연아, 이것도 좀 먹어.”

“어? 아, 고마워.”

작게 웃으며 받아드는 정하연.

그런 둘을 보며 이석찬이 눈꼴시다는 듯 투덜거린다.

“밥은 좀 그냥 각자 먹자. 아오, 이것들이 오늘따라 더 밥 맛 없게 구네.”

“맞아. 어디 커플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어? 치.”

유지경도 적극 동의하며 맞장구쳤다. 하지만 막상 제일 밥을 잘 먹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묵묵히 식사하고 있는 장덕훈보다도 빠른 속도다.

반면 정하연은 오늘따라 영 입맛이 없는 듯 밥을 깨작거리는 중이다. 내숭 따위 없이 복스럽게 잘 먹던 그녀답지 않았다. 그가 안 하던 짓을 하며 정하연을 챙기는 이유였다.

서주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하연을 바라봤다. 그 걱정은 비단 그녀가 생리로 고생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임신한 게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책임지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애초에 가능성이 무척 희박했다. 콘돔을 사용한 건 단 한 번 뿐이고, 다른 때는 100프로의 피임률을 보장하는 아이템을 사용 했었으니까.

다만 하나 걸리는 사실이 있었으니.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가 얼마 안 남았어.’

내일 저녁쯤이면 효과가 끝날 것이다. 서주환은 그게 걱정이었다. 상태창의 떨어진 호감도를 보니 더욱 그랬다.

‘벌써 B로 내려왔네.’

아이템을 사용하고 이틀 차까지는 보통 호감도 A등급이 유지된다. 3일~4일에는 B+가 되고, 효과가 끝나는 날 B로 떨어지고는 했다. 한데 이번에는 아직 4일 차였음에도 벌써 B까지 떨어진 것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서주환의 마음이 불안으로 물들어간다. 그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 옛날의 어렸을 적을 떠올리고 있었다.

*

“섹스하고 싶다.”

놀랍게도 서주환이 아닌 정하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녀는 홀로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서주환과 함께 있었을 테지만, 극심한 생리통 때문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벌써 이틀 째였다.

멍하니 있던 정하연은 이내 스스로 중얼거린 말을 깨닫고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완전 변태 다 됐네.”

살면서 딱히 성욕이란 걸 강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자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딱 서주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단 소리다.

정하연은 문득 양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딱 이정도 크기였었지?’

근 한 달간 무던히도 관계를 가졌던지라 눈앞에 있지 않음에도 선명했다. 한 손으로는 다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커다란 물건. 쇠막대기 같은 그것이 몸 안을 뻔질나게 들락거렸고, 그녀의 속내는 처음 들어온 물건의 모양에 맞춰 변했다. 아니, 애초부터 놀라울 정도로 궁합이 좋았으니 변했다기보다도 익숙해졌다는 말이 맞겠다.

그렇게 자지 모양을 상상하던 정하연은 문득 한심한 감정이 들어 손을 내렸다. 힘없이 떨어진 팔이 침대 매트에 잠긴다.

‘이대로 지내도 되는 걸까.’

최근 자주 드는 생각이다.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연애는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첫 데이트 때를 제외하면 오로지 섹스만 하는 생활이었다. 이게 연인을 만든 건지 섹파를 만든 건지 모를 지경이다.

‘문제는 그게 마냥 싫지 않다는 건데.’

정확히는 싫다가도 좋아졌다. 불만이 고개를 치켜들다가도 서주환과 막상 몸을 섞고 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가 파정한 정액이 자궁 안을 가득 채울 때는 더 할 수 없이 진한 만족감이 올라온다.

그런 주제에 거부하는 것도 바보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항상 섹스 삼매경이었다.

“윽!”

정하연의 입에서 돌연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흐으.”

내장이 쓸려 내려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어제 아침부터 시작된 월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를 더해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고통에 잠시 올라왔던 성욕이 함께 쓸려 내려간다. 하루 종일 울적했던 기분은 더욱 침잠했다.

“모르겠다…….”

더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그녀는 고통을 잊기 위해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 수 있었다.

새근- 새근-.

나직한 숨소리가 방 안으로 낮게 깔린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다.

띠링.

[『페로몬 부스트』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미묘하게 억눌려 있던 감정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

서주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정하연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기겁을 했다. 호감도가 C와 C+를 오가고 있었다.

‘큰일 났네. 빨리 아이템 써야 될 것 같은데.’

어제부로 『페로몬 부스트』의 효과도 끝났다.

내려가기만 하는 등급을 보니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모를 정도로 조급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불안은 곧 예기치 못한 행운으로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띠링.

[축복, 『몽마신의 축복(x7)』이 지급되었습니다.]

아이템을 뽑은 서주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한 동안 구경도 못해 본 축복이 나온 것이다. 『몽마신의 축복』이 가져다주는 행운은 다른 어떤 아이템보다도 든든했다.

‘오늘은 뭔가 될 것 같다.’

축복을 뽑으니까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다. 언제나 그를 행운으로 인도했던 축복이다.

‘금방 다시 올라갈 거야.’

호감도는 잠깐 떨어진 것뿐이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사소한 일에도 이리저리 변하곤 하지 않던가. 심지어 정하연은 지금 감정 기복이 심할 시기였다. 서주환은 애써 불안감을 눌렀다.

곧 학교에 도착한 서주환은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어쩐 일인지 항상 10분 먼저 도착하는 정하연이 보이지 않았다.

‘늦잠이라도 잔 건가?’

하지만 정하연은 강의가 시작 될 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정하연이 나오지 않자 무슨 일인가 걱정이 들었다. 까톡을 보내고 연락도 해봤지만 받지를 않는다. 혹시 이석찬이 알까 싶어 물어봤으나 그도 아는 게 없었다.

정하연에게 연락이 온 것은 남은 강의를 자체공강 해버릴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 주환아, 나 늦게 일어나서 못 갔어. 오늘은 그냥 쉬려고.

“많이 안 좋아? 연락도 안 받아서 걱정했어.”

- 미안.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어. 지금은 그냥 좋아진 김에 쉬려고 누워 있는 중이야.

서주환은 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됐다. 크게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그때 정하연이 어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주환아, 이따 우리 집에 와줄 수 있어? 아니, 그냥 내가 갈까.

“어? 아냐, 내가 갈게. 아픈데 뭘 움직이려고 그래. 아예 지금 갈까?”

-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고, 수업 다 끝나면 와. 그럼 이따 봐.

“어어, 그래. 이따 갈게.”

서주환은 연락이 끊어진 스마트폰을 잠시 바라봤다.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목소리에 기운이 없는 걸 보아선 아직 상태가 안 좋은 듯했다.

‘죽이라도 사서 가야겠다. 스킬로 배도 좀 쓸어주고.’

손길의 치유 효과를 사용하면 일시적이지만 고통이 좀 완화될 것이다. 지난 이틀 동안은 한사코 혼자 있겠다는 말에 스킬을 사용해주지 못했었다.

[성(性)에 대한 강력한 행운이 작용합니다.]

음. 역시 느낌이 좋다.

*

정하연은 침울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조금 전 늦잠을 잤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녀는 오히려 평소보다 빨리 일어났다.

다만 몇 시간이고 생각할 게 있어서 학교를 빠진 것이었다.

‘몸 상태는 좋아졌어. 나오는 피도 훨씬 줄었고. 그런데…….’

몸과 달리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 이틀 동안보다도 오히려 더욱 복잡한 기분이다.

‘생리 때문인가?’

생리 기간 중에는 많은 여성들이 예민해지곤 한다. 그녀는 이때까지 그런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제 기분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하연은 이내 고개를 저어 스스로 떠올린 생각을 부정한다.

‘생리 같은 거 때문이 아니야.’

정하연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의 복잡한 마음과 불쾌한 기분은 다른 곳에서 온 것이다. 생리 탓을 해봐야 단순히 힘겨운 일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일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라며 회피하는 건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다.

‘내가 얼간이처럼 왜 그랬을까.’

서주환의 눈치를 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제대로 의견도 내지 못하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따르기만 하던 게 기억났다.

“병신 같이.”

서주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화가 났지만, 충분히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따른 건 자신이었다. 딱히 그가 명령하듯 말한 것도 아니었으니.

첫 연애여서 그랬던 걸까.

어쩌면 자신이 먼저 고백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럴 거면 안 사귀는 게 나았어.’

일방적으로 맞춰주기만 하는 연애라니. 그딴 걸 하려고 먼저 고백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한 쪽만 배려하고 희생하는 관계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런 사람은 엄마만으로도 충분해.’

일방적인 배려 따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결국은 상처를 입게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정하연은 그 사실을 옛적에 이미 깨달았다.

…한데 지금 그와 자신의 관계는 어떠한가.

육체적으로는 분명 가까워졌다. 몇 번이고 시도 때도 없이 해댔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은?

차라리 친구로 지냈을 때가 더 설레고 가까운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과 친구.

어떤 형태가 더욱 단단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정하연의 눈빛에 결심이 깃든다.

‘돌아가자.’

더 좋았던 때로.

*

[성(性)에 대한 강력한 행운이 작용합니다.]

서주환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죽을 사들고 정하연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이 열려 있어서 바로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연아.”

“아… 왔어?”

침대에 앉아 있던 정하연이 그를 맞았다. 그는 봉지를 내밀었다.

“죽이야. 이거 먹고 기운 좀 차려.”

“아… 미안하게. 많이 괜찮아졌는데.”

“그래도 사왔으니까 좀 먹어. 너 요즘 밥도 잘 못 먹었잖아.”

서주환은 한쪽에 있는 작은 상을 찾았다. 상에 죽을 놓고 수저를 꺼내드는 그를 정하연이 말렸다.

“주환아, 나 할 말 있어.”

“일단 먹고 나중에…”

“아니야. 지금 말하려고. 나 지금 아니면 말 못 할 거 같아.”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

서주환은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왜인지 그녀가 고백했을 때의 밤이 떠올랐다.

“…알았어.”

그는 죽을 상 위에 내려두고 정하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눈으로 응시하며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소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설마.’

그러나 이미 말을 들은 듯한 기분은 어째서일까.

서주환이 다급하게 입을 연 이유는 어떤 말이 나올지 이미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연아, 역시 죽부터 먹고 이야기하자.”

“…아니. 주환아, 미안.”

안 좋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던가?

“우리 헤어지자.”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