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106화 (10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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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각한 만큼 분량을 더 담아 왔... 죄송함다 ㅠㅠ

오늘은 반드시 정시에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쩡순니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원고료쿠폰도 너무 감사합니다!

*

오늘도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우위가 정해진 관계는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의 주제는 서주환이 쓴 소설이었다. 정하연은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는 것처럼 뿌듯해 했고, 장덕훈과 유지경은 평소 즐겨 보던 소설의 작가가 지인이라는 게 신기한 듯 연신 서주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특히 장덕훈은 취미로 라이트노벨을 쓰고 있었기에 글로 돈을 벌고 있는 서주환에게 존경심마저 느끼는 중이었다.

‘주환 형님은 대단하구나!’

그가 생각하기에 서주환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형님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가 맞는 괜찮은 형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스물 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1학년이면서 13학번이라는 것. 하지만 보름 정도 함께 지내며 지켜 본 서주환의 진짜 특이한 점은 그게 아니었다.

서주환은 그 자신을 비롯한 학과 동생들에게 친구처럼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였는데, 간혹 드러나는 면모에서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얼굴이 엿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서주환이 무척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처럼 느껴지곤 했다. 시종일관 장난만 쳐대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이석찬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학과 엠티에서는 장기자랑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까지 추더니 과대가 되었다. 또 자신의 다친 다리를 마사지해주기도 했고, 백정기라는 꼰대를 손쉽게 제압하기까지. 여러모로 존경할 만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최근 자신이 가장 즐겨 보고 있는 웹소설의 작가라는 게 밝혀졌다. 이쯤 되면 거들먹거릴 만도 한데 그는 역시 멋쩍은 듯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서주환의 그러한 태도는 겸손이라기보다 아직도 전생의 쭈구리 기질이 남아있었기 때이었지만, 어쨌든 장덕훈에게는 대단하게 보였다.

이내 장덕훈의 안에서 생각이 하나로 귀결되었다.

‘역시 성공한 덕후는 대단하다.’

그는 서주환을 닮고 싶었다. 그리고 장 씨 가문의 사나이 장덕훈은 행동력이 무척 뛰어났다.

“주환 형님.”

“엉?”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뭐요?”

라면을 먹던 서주환이 눈을 끔뻑였다.

*

서주환은 자신을 스승님이라고 부르겠다는 장덕훈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쏟았다.

‘이 자식은 진짜로 스승님이라고 부를 거 같아.’

사실 둘만 있을 때는 어떻게 부르건 상관없다. 그런데 장덕훈은 때와 장소라는 걸 가리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였다. 187cm의 인상 빡센 거구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스승님이니 사부님이니 하는 날에는 쪽팔려서 학교 못 다닌다.

“나 누구 가르쳐본 적 없다, 덕훈아.”

“제가 첫 번째 제자군요. 기쁩니다.”

말이 안 통한다. 설득한다고 해서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네가 쓴 글 주면 적당히 감평 정도는 해줄게.”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니, 그냥 하던 대로 해. 안 그럼 얄짤없다.”

“알겠습니다, 형님.”

극적으로 타협을 맺은 그는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졸지에 원치도 않는 제자가 한 명 생겼다. 아니, 한 명이 아니었다.

“주환아, 나도 좀 가르쳐주라.”

“하연이 너도?”

“응. 과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아아. 과제. 그 정도야 뭐.”

“앗. 오빠, 저도요!”

유지경까지 합류했다. 네 사람은 강의가 모두 끝난 뒤 서주환의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반면 이석찬은 과제를 뭐 벌써 하냐며 한 발 뺐다. 대신 그는 은근하게 서주환을 불렀다.

“헤이, 쭈환. 내 베스트 뿌랜드.”

“응. 꺼지시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껄여봐.”

“맛있는 거 사줄게. 대신 과제로 제출하게 너 써둔 습작 있으면 아무거나 한 편만….”

“응. 꺼지시고.”

“쳇.”

*

오후 강의 시간.

이석찬은 뚱한 얼굴로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뭐지, 이 소외감은.’

라노벨이 어쩌니 웹소설이 어쩌니 알 수 없는 얘기만 해대니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평생 무리의 중심에서 주도하는 측이었던 그로서는 꽤 낯선 경험이었다.

‘아싸가 이런 기분인가?’

그깟 소설 따위가 뭐가 재밌다는 건지. 차라리 만화를 보고 말지 재미없게 글을 왜 읽는단 말인가. 그 시간에 강남 가서 헌팅을 하는 게 훨씬 재밌을 텐데.

‘한 번 보기나 할까?’

그래도 친구 놈이 글을 썼다니까 흥미가 동하긴 했다. 어차피 강의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시간 때우기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석찬은 아까 서주환이 말했던 어플을 다운 받았다.

‘뭔 회원가입까지 해야 돼.’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심지어 고작 글을 보는 데 결제를 해야 한다니. 그나마 무료분이 있는 게 다행일까. 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흥미도 없는 데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석찬은 시큰둥한 태도로 시간 때우기 겸 생전 처음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야, 석찬아. 담배 안 피냐?”

“어. 너희끼리 가셈.”

“꼴초가 웬일이래?”

“바쁘니까 말 걸지 마라.”

다시 한 시간 후.

‘와씨. 글 보고 발기하긴 첨이네.’

처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림도 한 장 없는 텍스트를 보고 꼴리는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대단하구나. 어렸을 적 강제로 읽었던 경제학이나 인간 철학에 대한 서적과는 전혀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는 어느덧 한 편마다 결제하는 게 귀찮아서 전편을 한 번에 구매하고 있었다.

이석찬은 의외로 글을 읽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어느새 책 두 권 분량을 독파 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설을 보는 동안 강의가 모두 끝났다.

“이석찬! 안 가냐?”

“으엉? 뭐야, 수업 언제 끝남?”

“뭐 하는데 정신이 빠졌어? 너는 어쩔래. 애들이랑 우리 집 가기로 했는데.”

“과제 때문에?”

“어. 덕훈이 글도 좀 봐주기로 했고. 넌 역시 그냥 빠질 거?”

점심시간에 얘기할 적 이석찬은 스터디에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었다. 그랬기에 서주환은 다시 물어보면서도 그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석찬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바로 갈 거임?”

“어? 그렇긴 한데.”

“고고. 아, 그런데 너희 집에 책 많음?”

“책? 없진 않지.”

“봐도 됨?”

“네가 책을?”

“내가 원래 다독가임. 어렸을 때 책을 옆에 끼고 살았었다.”

“헛소리 말고 갈 거면 빨리 가방이나 챙겨.”

이석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로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봤다. 그게 자의가 아닌 강제였고, 소설이 아니었을 뿐이다.

이석찬은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나중에 출판사나 하나 차릴까. 대충 오피스텔 괜찮은 거 사다가 맘에 드는 작가들 가둬두고 글이나 쓰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정산 비율 잘해주면 되겠지.’

돈은 적당히 아버지나 형들한테 뜯어내면 될 터였다. 굳이 자신의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안 주면 후계 싸움 참전한다고 협박해야지.’

물론 귀찮아서라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

서주환의 집에 온 이석찬과 장덕훈이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 뭐야. 쭈환이 투룸 산다더니 생각보다 더 넓은데?”

“형님, 혹시 저기는 작업실입니까? 딱 필요한 것만 있는 느낌입니다.”

“어, 맞아. 그래서 일부러 침대도 안 뒀어. 괜히 침대 있으면 눕고 싶잖아.”

“과연. 진짜 작가는 환경부터가 다른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제 서주환이 무어라 한 마디만 하면 의미를 부여하는 장덕훈이었다. 서주환은 이석찬을 돌아봤다. 이쯤에서 그가 태클을 걸 타이밍이었는데 잠잠했기 때문이다.

이석찬은 딴죽을 거는 대신 난데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열심히 쓰셈.”

“?”

“이럴 때 건필하라고 하는 거 맞지? 후원금 보냈다.”

“강의 시간에 뭐하나 했더니… 여튼 고맙다.”

서주환은 헛웃음을 흘렸다. 담배도 안 피고 폰만 본다 싶더니 소설을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오빠, 밥부터 먹을 거지? 상 펼까?”

거실에서 유지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뭔지 알지?”

“넹.”

서주환은 배달 어플을 켰다. 평소에 직접 차려먹는 편이었지만 역시 다섯 명분은 귀찮았다.

그때 정하연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지경이 너 주환이 집 온 적 있어? 상 그거 냉장고 뒤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정하연. 동시에 서주환과 유지경의 움직임이 약속이라도 한 듯 멎었다.

‘엿 됐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사람들이 알기로 유지경은 이곳에 오는 게 처음이었다. 유지경이 술에 취했을 때도 그가 집에서 재운 게 아니라 데려다 준 걸로 되어 있었다. 학과에 엄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굳어 있는 사이 유지경이 얼른 말했다.

“헤헤. 배고파서 먹을 곳부터 찾다 보니까 눈에 딱 들어오던데요?”

“그래? 배 많이 고팠나 보다.”

“네. 저희 저녁 뭐 먹을까요? 언니는 뭐 좋아해요?”

“나? 나는 아무거나 괜찮은데… 그보다 말 편하게 하라니까 지경아.”

“네, 아니 응.”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주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실 밥상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 그가 유지경과 잔 걸 알아 챌 리가 없다.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그때 이석찬이 재수 없는 얼굴로 옆구리를 찔러왔다.

“야, 너 지경이랑 했음?”

“뭐, 뭔 개소리야?”

“이 새끼 했네. 엠티 후? 엠티 전?”

“미친놈아!”

“흐음. 네 성격에 사귀고 나서는 아닐 거 같고. 그럼 엠티 전인데… 아, 너 지경이 집에 데려다 준 적 있다고 했지? 그때 데려다 준 게 아니라… 읍?”

서주환은 식겁해서 이석찬의 입을 막았다.

“야 닥쳐. 네가 탐정이야? 웬 헛소리를 장황하게 하고 있어.”

“헛소리? 흠. 그래, 우리 작가님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니까 내가 한 번 봐준다.”

“…….”

“그래도 바람은 피지 마셈. 저 괴물 같은 년 은근히 맘 약함.”

“…안 펴.”

“큽. 푸흐하하핳!”

이석찬이 얄밉게 웃어재꼈다. 그에 다른 사람들이 돌아보자 그가 큰 소리로 외친다.

“얘들아, 오늘 저녁 주환이가 쏜대!”

“진짜? 주환아, 돈 너무… 아, 상관없나?”

“오. 진짭니까, 형님?”

“오빠가 사는 거야?”

서주환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사려고 했었지만 이석찬의 얼굴을 보니 배가 아팠다.

‘미친놈.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

서주환은 친구들에게 글 쓰는 방법을 간단하게 알려줬다. 사실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단 주제부터 잡고 아무거나 써보라고 시켰다. 이후 감평 또는 약간의 첨삭을 해줬다.

“아, 못하겠다. 난 포기! 적당히 써서 내야지.”

이석찬은 금방 나가떨어졌다. 반면 장덕훈과 유지경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곧잘 글을 썼다. 한 번 첨삭을 해줬더니 상당히 그럴 듯했다. 특히 장덕훈의 글 솜씨가 좋았다.

‘덕훈이 재능이 괜찮네. 나중에 진짜 글밥 먹고 살 수도 있겠는데?’

남자 상태창을 보는 취미는 없었지만,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해서 재능을 확인했다.

장덕훈에게는 A등급과 B+등급 재능이 몇 개 있었다. 글과 관련된 것도 있었고, 덩치에 맞게 격투기와 관련된 재능도 있었는데, 『공예』와 『조각』이라는 특이한 재능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건 페티시였다.

[Agalmatophilia(아갈마토필리아)는 조각 기호증이라 하여 조각, 인형, 마네킹 등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증후군입니다. 해당 페티시와 오타쿠 기질이 섞이면 피규어에 성욕을 보이곤 하지요.]

‘덕훈이 넌 진짜구나….’

나중에 축하할 일이 생기면 피규어라도 하나 선물해줘야겠다.

“주환아, 잘 먹었다. 낼 보자.”

“오빠, 내일 봐요.”

“형님, 다음에 또 가르쳐 주시기로 한 겁니다!”

세 사람이 돌아갔다.

서주환은 자연스럽게 집에 남아 있는 정하연을 보고 씩 웃었다.

“자고 가게?”

“아, 아니? 그냥 난 좀 더 배우고 싶어서.”

“그럼 하고 싶어서?”

“배우고 싶어서라니까….”

정하연은 말끝을 흐렸다. 더 배우고 싶어서 남은 것도 맞지만, 사실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남은 것도 맞았다. 둘만 남게 되자 시선이 자꾸만 서주환의 바지춤으로 향하려 했다.

그녀는 애써 무시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 있기를 몇 분, 정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 소설 쓰는 거 너무 어렵다.”

“흠. 문장은 처음 쓰는 사람 같지 않게 좋은데.”

“내용을 못 떠올리겠어. 그냥 눈앞에 백지만 보여.”

서주환은 눈꼬리를 긁적이며 정하연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재능목록에 A+급의 잠재등급을 가진 『문장력』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석찬보다도 글 쓰는 진도가 느렸다.

‘사무적인 건 잘 쓸 거 같은데.’

평소에 정하연이 필기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가 보기에 정하연의 문제는 문장이 아닌 상상력의 부재였다. 이건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난감했다.

잠시 고민하던 서주환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수필을 써보는 건 어때?”

“수필?”

“어. 생각해보니까 굳이 소설을 쓸 필요는 없잖아?”

“아… 그러네. 수필을 쓰면 되는 거였어.”

하루 종일 소설 얘기를 했더니 무심코 소설을 쓰려고 했다. 분명 과제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다시 써볼게.”

정하연은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허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글이 나왔다.

*

두 시간이 지난 뒤.

정하연은 피곤한 기색으로 노트북을 덮었다.

“후아. 나중에 이어서 써야겠다. 더는 못 쓰겠어.”

“고생했어. 그래도 방향은 정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응. 어떻게 써야할지 알 거 같아. 소설이 아니라서 좀 아쉽지만.”

서주환처럼 소설을 써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될 듯했다. 정하연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서주환이 고생했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한다.

“이제 집에 갈 거지? 데려다 줄게.”

“…어?”

“늦었는데 안 가게?”

“그게…….”

정하연은 말을 흐리며 서주환의 눈치를 살폈다.

‘얘가 오늘 왜 이러지? 그냥 보낼 리가 없는데.’

분명 둘만 남게 되면 먼저 분위기를 잡을 줄 알았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생각이었는데, 지금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그냥 집에 보낼 생각인 듯했다.

그때 서주환이 가까이 다가와서 쪽 입을 맞췄다.

정하연은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그럼 그렇지. 역시 오늘도 하는구나. 그렇게 혀가 들어오길 기다리는데, 입술이 금방 떨어져 나갔다.

정하연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속마음을 입에 담았다.

“어? 끝?”

“뭐가?”

“아, 아니야.”

“가자. 데려다 줄게.”

아무렇지 않은 듯 여상한 말에 정하연의 속눈썹이 작게 떨렸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옷을 챙겨 입었다.

“…혼자 갈게.”

“왜? 데려다 줄게.”

“혼자 갈 거야. 너도 피곤할 텐데 쉬어.”

“잠깐만, 하연아.”

서주환은 나가려는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장난 좀 친다고 한 게 기분을 상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미안. 내가 오늘은 피곤해서 그랬어.”

그 말에 정하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속내를 들켜버린 것이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냥 보내려 하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아쉬움과 실망에 감정적으로 티를 내버렸다. 생각해 보면 이틀 동안 몇 번이고 해댔으니 피곤한 게 당연한 거였는데.

정하연은 차마 섹스해주지 않아서 기분이 상했었다고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할 거 없는데? 난 그냥 너 피곤해 보여서 혼자 간다고 한 거야.”

“하하. 알지. 그런데 하연아.”

“으응?”

서주환은 그녀의 귓바퀴에 대고 속삭였다.

“내일 엄청 하자. 애들 부르지 말고 너만 와.”

“…….”

“사실 지금도 하고 싶은데 일부러 참는 거거든? 내일은 진짜 네가 싫다고 해도 안 멈출 거라서.”

서주환은 미리 각오하라는 듯 말했다.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내일은 정하연이 무어라 해도 안 멈추고 최소 다섯 번은 할 생각이었으니까.

‘5회 중첩 쌓으려면 오늘은 참아야 돼.’

내일 저녁쯤이면 아이템을 사용한 지 3일, 72시간이 된다. 효과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다시 아이템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지금 참는 건 그 때를 위해서였다. 아이템을 사용하면 정력이 두 배 이상 소모되니까 하루쯤은 참아야 했다.

정하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주환이 음흉하게 웃음을 흘린다.

“흐흐. 약속한 거다?”

“뭐, 뭐래. 난 이제 갈게.”

“안 데려다 줘도 돼?”

“몸이나 잘 챙겨!”

화내듯 일갈하고 문을 나서는 정하연.

서주환은 정하연의 말이 내일을 위해 몸보신 잘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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