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93화 (9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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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 너무 기분 좋은 댓글을 봤네요.

댓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리메이크를 하는 입장에서 너무 힘이 나는 댓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

악마벨제브브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늘이v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prayerless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일반광인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무슨 이벤트라도 있었던 걸까요? 갑자기 후원쿠폰을 주시는 독자님들이 많아서 놀랐네요.

원고료쿠폰도 너무 감사합니다!

*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데이트

“이석찬 개새끼.”

한 차례 씨근덕거린 정하연은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옷장을 뒤적여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아씨. 집 나올 때 옷 좀 가져올 걸.”

집을 나온 지도 벌써 삼 년 째였다. 나올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적당히 챙겨왔는데, 이제 와서 후회가 될 줄이야. 워낙 꾸미는 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간 사둔 옷이 몇 벌 없었다.

“어쩌지….”

있는 옷이라고 해봐야 후드 아니면 추리닝이 전부다. 다른 옷은 청바지와 하얀 티 정도가 끝. 아무리 생각해도 첫 데이트에 입고 나가기엔 지나치게 빈약한 차림새였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서주환의 까톡이었다.

[서주환]: 내일 같이 쇼핑도 할까?

[나]: 쇼핑?

[서주환]: ㅇㅇ옷 사러 가자. 내가 괜찮은 가게 알아.

그러고 보니, 남자친구인 서주환은 옷을 꽤 잘 입고 다녔다. 비슷한 옷을 자주 입긴 했지만, 그마저도 그녀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종류였다.

정하연은 얼른 답장을 보냈다.

[나]: 안 그래도 옷 살 때 됐는데 잘됐다

[나]: 그럼 나 대충 입고 나간다?

[서주환]: ㅇㅇ편하게 와. 어차피 몇 번 갈아입을 건데 편한 게 좋지.

그녀는 답장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적당한 구실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화장은 좀 해야겠지?”

평소처럼 생얼로 나가는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화장이라곤 평소의 날카로운 눈매를 감추기 위한 위장뿐이었으니.

“보자. 뷰티 위튜브가….”

밤중에 관심도 없던 채널에 구독을 누르고, 영상을 시청하는 정하연이었다.

*

서주환은 집을 나서기 전 다시 한 번 계획을 점검했다.

“음. 완벽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무난하고도 확실한 데이트 코스였다.

그는 평소 습관대로 삼십 분 일찍 약속 장소로 향했다. 원래는 정하연을 마중 나가려고 했지만, 데이트 기분을 내기 위해 각자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합의를 한 참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서주환은 근처에 있는 거울을 보고 머리와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헤어 스타일링에 자신이 없어 무난하게 내린 앞머리. 자른 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솜씨 좋은 신하늘이 잘라준 터라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옷은 스완의 사장인 윤서라가 일전에 골라준 옷으로 입었다. 흰색 티셔츠 위로 그레이 후드집업을 걸치고 다시 그 위에 너무 힙하지 않은 검정 레더자켓으로 마무리. 바지는 무난한 데님팬츠를 입었는데, 혹시 꼬툭튀 패션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허벅지가 너무 붙지 않아서 핏이 괜찮았다.

‘다리를 많이 늘려서 다행이다.’

운동을 했는데 바지 핏이 괜찮은 이유였다. 키를 올릴 때 다리 길이를 많이 늘렸기 때문에 서주환은 비율이 상당히 좋았다.

차림새를 점검한 그는 휴대폰을 보며 정하연을 기다렸다.

‘안양이라고 싫어하진 않겠지?’

어젯밤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아무 곳이나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해서 오늘 데이트 코스는 그가 전담하여 짰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갔다. 약속 시간 5분 전, 까톡이 하나 왔다.

[정하연]: 주환아 미안 5분 정도 늦을 것 같아ㅠㅠ

[정하연]: 진짜 미안

[정하연]: 서 있지 말고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늦잠이라도 잔 걸까. 서주환은 괜찮다고 답장을 보낸 후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혹시…”

정하연인가 돌아보니 웨이브진 갈색 단발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있었다.

서주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쓰읍. 또냐.’

주변의 평을 들어보면 분명 선한 인상은 아니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종교 안 믿어요.”

“네?”

“조상신도 안 믿습니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여자가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당연히 조상신이 어쩌고 하는 사이비 권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자는 수줍은 기색으로 번호를 줄 수 없냐고 물어봤다.

서주환은 조금 당황했다.

‘여자가 먼저 번호 물어보는 날이 다 오네….’

이럴 때면 이전 생과 바뀌긴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실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얼굴만 보고 번호를 물어볼 정도는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서주환은 내심 기쁜 마음과 달리 어색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어서요.”

“아….”

안타까운 탄식이 따라왔다. 하지만 여자는 그래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니, 우물쭈물하며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번호 말고… 그, 혹시 향수 뭐 쓰세요?”

“네?”

“옆에 지나가는데 향이 너무 좋아서요….”

길거리에서 갑자기 이런 걸 묻는다는 게 창피한지 빨개진 얼굴이다. 자세히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 몇이 지켜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일행인 듯했다.

서주환은 난감하게 웃었다. 향수가 아니라 『페로몬』스킬에서 나온 체취였으니 알려줄 수가 없었다.

“저 향수 따로 안 써요.”

“네? 진짜요?”

“예. 정말로요.”

“아….”

어지간히 궁금했는지 탄식하는 여자.

“그,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곧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하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귀엽네.’

서주환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저 여자도 냄새 기호증인가?’

냄새 기호증, 올팩토필리아. 향에 민감하고 냄새에서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이다. 그의 첫 경험 상대인 정소라가 가진 페티시이도 했다.

어째 갑자기 번호를 따려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올팩토필리아 등급이 꽤 높은 여자인 듯했다.

그때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도착한 정하연이 뚱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하연아, 언제 왔어?”

“…한 3분 전에.”

“왔으면 말을 하지.”

“누가 히죽히죽 대는 걸 보니까 말 걸기가 싫더라고.”

까칠한 말투에 서주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설마 질투하는 건가? 그 사실을 인지하자 그녀가 불퉁한 얼굴로 화를 내고 있음에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웃음기를 본 정하연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음은 물론이었다.

“뭐야, 왜 웃어?”

“흐흐. 네가 질투해주니까 좋아서.”

“누, 누가 질투를 했다고…!”

“푸흐흐.”

“아, 그만 웃어!”

정하연이 화를 내며 가슴팍을 쳤지만 이미 올라간 입꼬리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서주환은 히죽거리며 웃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 번호 안 줬어. 잘했지?”

“…당연히 안 줘야지. 줬으면 그냥은 안 끝났어.”

“그럼. 내가 이렇게 예쁜 여친 두고 다른 여자한테 번호 줄 리가 없지. 하연이 너 오늘 진짜 예쁘다.”

“길거리에서는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붉어진 얼굴의 정하연이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까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학교에서 가까운 안양 시내인지라 같은 과 학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주환은 오히려 그런 정하연의 손을 더 꼭 잡으며 깍지를 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들어갈까 신경 쓰는 그녀와 달리 그는 오히려 누군가 봐줬으면 싶었다. 이 여자가 내 여자친구라고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리 말하면서도 굳이 풀지는 않는 점이 그녀다웠다. 한숨을 폭 내쉰 그녀가 마주 깍지를 껴온다. 드디어 포기한 듯했다.

서주환은 싱글거리며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오늘 화장 잘 어울린다.”

한동안 안 하던 화장을 한 정하연은 이전과 전혀 달라보였다. 화장이나 스타일링 등에 문외한인 그도 화장법이 바뀐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흐흠. 어디부터 가자고 했었지? 빨리 가자.”

정하연은 짐짓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살짝 걸렸다. 밤중에 위튜브를 보고 공부한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웜톤보다는 쿨톤.’

반응이 좋은 걸 본 정하연은 지난밤 공부한 내용의 핵심을 단단히 새겨 넣었다.

피부가 하얀 그녀는 이전의 화사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화장보다 다소 차갑지만 세련된 느낌을 주는 쿨톤의 색조가 잘 어울렸다.

다만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대충 걸쳐 입은 듯한 옷이었다. 청바지에 흰 티, 그 위로 걸친 검정색 가디건. 집을 나오기 전 흔들어 깨운 이석찬에게 박한 평가를 받은 차림이었다.

‘으웩. 그 새까만 가디건은 어디 헌옷 수거함에서 주워옴? 다른 거 가져와봐.’

‘…야, 아니다. 다시 보니 그게 선녀다. 그냥 그 깜장 가디건 입고 가라.’

문제는 이 가디건이 그나마 제일 낫다는 것이었다.

반면 서주환은 확실히 평소보다 더 꾸미고 나온 느낌이었다. 괜히 옷을 비교해본 정하연은 이내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옷가게부터 가자. 괜찮은 곳 안다고 했지?”

“점심 안 먹고?”

“옷부터 살래. 배고프면 밥 먼저 먹어도 되긴 하는데….”

“아냐. 옷부터 사러 가자. 스완이라고 좋은 가게 있어.”

“스완?”

“스타일 완성의 줄임말이야. 백조라는 뜻도 있고.”

서주환은 그리 말하다가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직 학기 초라서 스완이라고 불리기 전이던가?

*

서주환은 1번가에 위치한 ‘스타일 완성’으로 정하연을 이끌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산했던 이전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보였다.

“와. 좋은 데라더니 장사 엄청 잘 되네? 이런 데가 있었던가?”

정한연이 작게 감탄했다. 개강 한 달 전부터 안양에 자취를 했었지만 이런 가게를 보지 못했다. 한눈에 봐도 예쁜 옷들이 많았다.

서주환도 감탄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장인 윤서라 혼자서만 운영했었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알바생만 두 명이었다.

계산을 하고 있던 윤서라는 그가 부르기도 전에 먼저 다가왔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이전과 전혀 다른 밝게 웃는 얼굴이었다.

“주환아!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하하. 누나, 잘 있었어요?”

“아니! 잘 못 있었어!”

“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잘 못 있었다니. 다른 걱정거리라도 생겼단 말인가?

윤서라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게가 너무 바빠서 너~무 힘들어. 다 너희 덕분이야!”

“아아. 그 소리였어요?”

“응. 내가 먼저 연락한다는 게 노 젓는다고 깜빡했어. 미안해.”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저희야 돈 받고 한 건데요. 덕분에 옷 잘 입고 있어요.”

일전에 윤서라는 그와 함께 왔던 한수아를 알아보고 광고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옷 몇 벌을 대가로 주고 찍은 위튜브 광고!

일견 헐값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당시 한수아의 위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3만 정도 밖에 안 되었던 데다 게임 채널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하면 오히려 윤서라가 밑지고 팬심으로 찍은 광고라고 볼 수 있었으니.

그리고 놀랍게도 팬심으로 찍은 그 광고의 조회수가 대박이 났다. 고작 구독자 3만 게임채널의 옷가게 광고 영상이 무려 조회수 50만 이상을 찍었던 것이다.

덕분에 윤서라는 무료했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주환이 찾아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까.

“너희가 내 은인이지 뭐야. 얼굴 보니까 너무 반갑다.”

“하하. 저희 아니었어도 스완은 대박 났을 거예요.”

과장 전혀 보태지 않은 진심이었다. 스완은 굳이 위튜브 광고가 아니었더라도 대박이 난다. 그가 아는 미래에는 온라인 쇼핑몰까지 운영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회귀자인 서주환의 입장이고, 윤서라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그의 말이 무척 겸손하게 들렸다. 얼굴도 나름 훈훈하게 생긴 데다 스타일 좋은 남자가 성격까지 좋다니!

그때 윤서라의 눈에 뚱한 얼굴로 서주환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가 들어왔다.

“아, 누나. 이쪽은 제…”

그 시선을 알아챈 그가 정하연을 소개하려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서라가 엄청난 기세로 다가가 정하연의 손을 잡아챘다.

“왜, 왜 그러세요?”

당황하는 정하연.

그런 정하연을 홀린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윤서라.

윤서라가 정하연의 손을 꼬옥 쥐며 말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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