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86화 (8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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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은 어째 몸이 안 좋네요... 예약으로 올리고 빨리 자야겠어요.

연참하려고 써둔 비축분이 허무하게 날아가는 하루입니다..ㅠ

독자님들은 모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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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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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마지막으로 말할게

“하아. 이제야 살겠다.”

정하연이 개운한 표정으로 말하며 예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흡연자가 하루 종일 담배를 피지 못하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백정기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받았더니 담배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었다.

한편 서주환은 굳어버린 채로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깜짝 놀랐네….’

순간 담배를 물고 있는 것도 잊은 채 키스를 하려는 건 줄 착각해버렸다. 입가에 물고 있던 담배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작게 떨렸다.

그때 정하연이 그를 돌아봤다.

“주환아.”

“어, 어?”

놀라서 말이 어벙하게 나왔다. 다행히 정하연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아까 고마워.”

“엉? 뭐가?”

“백정기 있잖아. 그때 막아줘서 고맙다고. 너 아니었으면 맞았을 거야.”

정하연은 조금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서주환이 아니었더라도 백정기에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직접 업어치기라도 한 판 내던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속내를 감추고 감사함을 전하며 힐끗 그의 눈치를 살폈다.

고맙다는 말이 낯간지러운지, 서주환은 어딘가 머쓱한 얼굴이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여느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장난기 어린 얼굴. 아니나 다를까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지은 그가 말문을 연다.

“내가 안 막았어도 너는…”

“나는?”

정하연이 말 꼬리를 잡아채고 되물으며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 그가 조금 당황한다.

“어… 너는…”

자신을 응시하는 선명한 눈동자에 서주환은 하려던 말을 되삼켰다. 아무래도 농담할 분위기는 아닌 듯해서.

대신 그는 정하연의 왼손을 힐끗 쳐다봤다. 백정기의 주먹질을 막았던 손. 이후 가늘게 떨렸던 손이다.

“…너는 진짜 크게 다쳤을 거라고. 여자애가 뭐 그리 겁이 없냐. 안 다쳐서 다행이다.”

“킥. 고마워.”

정하연의 웃는 모습에 서주환은 어쩐지 한 고비 넘긴 기분이 들었다. 이내 그가 요상한 기분을 털어내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은 좀 괜찮아?”

“뭐가? 나 다친 데 없는데?”

“아까 손 떨고 있더만. 그, 많이 무서웠어…?”

서주환은 괜히 민망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깊이 머금는다. 여태 놀려먹거나 장난만 치다가 진지하게 말하려니까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정하연은 살짝 옆으로 고개 튼 그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손 떠는 건 또 언제 본 건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픽픽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빠른 눈치를 보이곤 했다. 자신을 향한 호의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둔감하면서.

“서주환.”

정하연은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계속 고민했는데, 역시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어?”

어벙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묻는다.

“너 나 좋아하지?”

“…….”

정하연의 질문에 서주환은 입을 다물었다.

벌서 세 번째 듣는 물음.

그리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세 번째였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침묵 이후에도 정하연이 장난스런 기색을 띄거나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답을 종용하듯 새까만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아아-.”

돌연 정하연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담배 연기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춘다.

“내가 뭐 어려운 질문했어? 그러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 말하면 되잖아.”

서주환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조금 전부터 깜빡거리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달콤한 사랑-연애』

3월이 되어 나타난 네 번째 욕망 퀘스트.

욕망 퀘스트는 그녀가 흡연장에 온 순간부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비단 퀘스트만이 아니다. 귓가에서는 연신 축복의 ‘행운’이 울리는 중이었다.

갈등하던 서주환은 메시지와 알림을 모두 꺼버렸다. 그리고 몇 번인가 입을 달싹이다가 어렵게 소리 내어 말한다.

“…미안해. 내가 누구랑 사귄다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 말에 정하연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이해가 잘 안 간다는 듯 그녀가 되묻는다.

“어… 싫다는 뜻?”

“그건 아니야. 싫냐, 좋냐 하면 좋아하는데.”

“그런데?”

“…하연아, 나는 사귄다는 게 좀 무서워.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그렇게 되면 얼굴도 마주보기 힘들어지겠지. 서주환은 말끝을 흐렸다.

우습지만, 평생 불행 속에서 사람의 정을 갈구해온 서주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무의식중에도 항상 생각해왔다.

‘어차피 언젠가 헤어질 사이라면, 애초부터 사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랬기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과 사귀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워질수록 나중에 있을 헤어짐이 큰 상처가 될 테니까. 그리고 욕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이상, 그가 먼저 상처를 주는 입장이 될 수도 있었다. 서주환은 그 사실이 가장 무서웠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정소라에게 고백했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

서주환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정하연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고개가 아래로 향한다. 바닥을 향해 고개 숙인 그녀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서주환은 깜짝 놀라서 정하연에게 손을 뻗었다.

“하, 하연아. 울지… 마?”

“…킥. 푸흑!”

“…우는 게 아니라 웃니?”

“미, 미안. 그런데… 아학. 아하하하!”

그의 생각과 달리 정하연은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배꼽이 빠져라 웃던 그녀는 이내 웃음을 뚝 그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연아, 나는 사귄다는 게 좀 무서워.”

“…….”

“푸흑! 꺄하하하! 아, 졸라 웃겨! 서주환 미쳤다, 진짜. 으악! 오글거려!”

닭살이 돋는다는 듯 양 손으로 어깨를 잡고 움츠리는 정하연이다. 서주환은 갑자기 밀려오는 수치심에 스스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가 벌게진 얼굴로 떠듬떠듬 말한다.

“야, 야… 나는 진지하게 말한 건데… 그걸 웃냐?”

“오글거리는 걸 어떡해! 이거 봐, 닭살 돋았어!”

그리 말한 정하연은 외투를 젖히고 팔을 보여줬는데, 하얀 피부 위에는 정말로 소름이 돋아있었다.

그를 본 서주환은 이제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너… 다시 담배 뱉어.”

말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찌질하게 느껴지는 말이었으니. 그 말을 들은 정하연이 다시 가볍게 웃음을 흘린다.

“풋. 나중에 줄 테니까 하나만 더 빌리자.”

뱉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 개비를 더 가져가는 정하연이다. 그녀는 피던 담배를 이용해 불을 옮겨 붙였다.

그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너 바보지? 누가 헤어지는 걸 생각하고 사귀어? 난 또 내가 결혼이라도 하자고 잘못 말했나 고민했네.”

“…….”

“주환아, 난 너 좋아해.”

“…어?”

뜬금없는 고백에 서주환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그러나 정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잇는다.

“못 들은 척 하지 마. 나는 너 좋아한다고. 그런데 그게 막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 이런 건 아니야.”

“그, 그야 알지.”

“웃기시네. 아는데 그런 말을 하냐?”

서주환은 얼떨떨한 얼굴로 정하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하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너무 태연해서 지금 고백을 한 사람이 맞나 싶었다.

정하연은 그의 반응에 연신 웃어보였다. 그녀는 일부러 가벼움을 가장하여 말을 이었다.

“헤어지는 걸 무서워하면 사람들이랑 어떻게 만나? 애인이든 친구든 서로 안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

“그리고 난 이미 너 좋다고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고 끝이야? 앞으로 내 얼굴 어떻게 보려고? 모르는 척 하게?”

정하연은 돌연 정색한 얼굴로 서주환의 옷깃을 잡았다.

“난 그렇게 못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해. 애매한 대답 하지 말고. 혹시 싫다고 한다면, 그냥 지금까지처럼 친구로 지내면 되니까.”

박력 넘치게 말한 그녀는 잠시 후 애매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친구는… 역시 오늘은 무리고 내일부터.”

서주환은 무어라 말도 못하고 입만 벌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순식간에 쏟아낸 말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정하연은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

“너도 나 좋아해?”

대답은 없었다.

다만 서주환의 고개는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얼떨결에 수긍하고 말았다. 자신이 정하연을 좋아하고 있노라고.

하지만 정하연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그녀가 짐짓 인상을 쓰며 말한다.

“고갯짓 말고 말로 하지?”

“어, 어어.”

“똑바로.”

“…나도 너 좋아해.”

“그럼 사귀는 거지?”

“그, 그래.”

끄덕끄덕.

그제야 정하연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의 옷깃을 놔주었다.

치지직- 어느덧 피지 않은 담뱃불이 필터까지 타들어갔다. 정하연은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듯 버리더니,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놀란 서주환이 얼른 부축하려는데, 그녀는 돌연 팔을 위아래로 쓸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으으! 나도 지금 졸라 오글거렸어! 서주환 너한테 옮은 것 같아!”

“야….”

그 부름에 정하연이 눈을 치떴다.

“어쭈. 여자친구한테 야가 뭐냐?”

“…하연아.”

“그래도 눈치는 있네.”

픽 웃는 정하연.

얼을 타고 있던 서주환은 낮게 헛웃음을 흘렸다. 오늘 참 바람 소리를 많이 낸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마치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달밤에 미소 짓는 그녀가 참 예뻐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서주환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전조도 없이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깜짝 놀랐을까. 그녀의 고양이 같은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쪽. 그는 입술만 살짝 도장처럼 찍은 후 떼어냈다. 가벼운 버드 키스. 그것만으로도 정하연은 당황한 듯 목소리를 떨었다.

“그, 야. 사, 사귀자마자 키스는 진도가 좀 빠른 거 아니야?”

본인이 ‘야’라고 부르지 말라 해놓고는 당황해서 잊은 모양이다. 서주환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도 정신이 없었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복잡했지만, 어쨌든 일은 벌어졌다. 더 걱정한다고 해서 좋아질 게 무얼까.

서주환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여자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여자친구라면서? 키스 정도야 뭐 어때.”

“그건, 그런데… 으읍?”

쪽. 쪼옥.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살며시 혀를 넣으려 했다. 앙 다물린 이가 앞을 막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톡톡 두드리니 결국 문이 열렸다.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혀가 부드럽게 얽힌다.

“하… 으음… 츄읍….”

정하연은 의외로 키스가 서툴렀다. 좀 전에 말하는 것만 봐선 연애 고수처럼 보였는데, 생각과 달리 키스를 몇 번 해보지 않은 걸까. 끈적하게 얽힌 혀는 오래지 않고 떨어졌다.

입술이 떼어지고, 정하연이 불그스름한 얼굴로 숨을 내쉬며 말한다.

“변태. 그때 집에서도 이러려고 했지?”

“그래서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보다 주환이 너 첫 키스가 담배맛이라서 어떡해? 아하하.”

정하연은 짐짓 말을 돌리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서주환의 눈에는 그 의도가 너무 빤히 보였고, 그녀가 민망해하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전혀 생각지 못한 요소에서 진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첫 키스라니, 그게 도대체 웬 말인가?

그는 일단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자도 여자처럼 직감이라는 게 있다. 그는 본능적으로 여기서 우물쭈물하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아래를 내려보라. 예쁜 여자친구의 고개가 벌써 모로 기울어지고 있지 않은가.

“왜 그래?”

“아, 아냐. 키스, 응. 맛있었어.”

그 말에 정하연의 표정이 샐쭉해졌다. 그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노려본다.

“야, 말하는 게 좀 그렇다? 맛있었다니. 모쏠이 엄청 건방져!”

그리 말하며 가슴팍을 콩 두드려온다. 이제까지 하던 것과 달리 힘이 전혀 안 들어가지 않은 손장난이었다.

그 손짓에 서주환은 묘한 간질거림을 느끼면서도, 등 뒤로는 서늘함을 느껴야 했다.

‘모쏠이지만 아다는 아닌데….’

말로써 나오려는 생각을 간신히 되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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