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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뭘 잘못 먹은 건지 하루 종일 속이 안 좋았네요. 으으.
하지만 좋지 않은 속과 달리 분량은 낭낭하게 넣었습니다.
리메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서주환이 뽑은 쪽지의 내용은 실제로 제가 20살 때 뽑았던 겁니다.
쪽지 내용 까고 나서 한 대 맞았던 게 기억나는군요. 사실 그냥 가벼워 보여서 골랐던 건데..ㅠ
제가 독자님들처럼 존잘이었으면 안 맞았겠죠?
존못이라 서글픕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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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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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 부탁드려요 :D
비켜
“무슨 일이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 서주환은 곧장 장덕훈에게로 다가갔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부어오른 발이 보였다.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덕훈아, 괜찮냐? 어쩌다 다쳤어.”
“아… 형님, 별 거 아닙니다. 그냥 발을 좀 헛디뎠습니다.”
“별 거 아니긴 미친놈아. 퉁퉁 부었구만!”
발목의 둥그런 복숭아뼈가 과장 조금 보태서 1.5배는 커진 듯했다. 장덕훈이 어벙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진짜 별 거 아님다. 조금 삐끗한 겁니다.”
“학생회에는 말 했어? 보니까 파스도 안 뿌렸네.”
“학생회에는 누님이 갔습니다.”
누님이란 정하연을 말하는 것일 터다. 어쩐지 방에 없다 싶더라니 학생회에 보고를 하러 간 것이었다.
“여기 파스 가져왔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마침 정하연이 돌아왔다. 부과대인 민혜영도 함께였다.
민혜영이 안타까운 눈으로 장덕훈의 발을 보며 말한다.
“많이 아프면 말해요. 바로 병원 가야 되니까.”
“아, 아님다! 저 진짜 괜찮습니다.”
장덕훈이 손을 세차게 내저었다. 괜찮다는 걸 보이려는 듯 발목을 휘휘 돌리기까지 한다. 그러다 통증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린다.
“윽.”
정하연이 한심하다는 듯 장덕훈을 보며 혀를 찬다.
“야, 가만히 있어. 곰탱이 같은 게 지가 진짜 곰인 줄 아네.”
“죄송함다….”
장덕훈이 시무룩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움직이는 걸 보아하니 보기만큼 심각한 부상은 아닌 모양이었다.
“발 이리 내. 붕대 감아줄게. 혜영아, 붕대 줘.”
“아니. 혜영아, 그거 나한테 줘.”
서주환이 중간에 붕대를 가로채며 말했다. 그는 뭐 하냐는 듯 자신을 보는 정하연의 손에서 파스도 뺏어들었다.
“너희는 쉬고 있어.”
“그냥 내가 해도 되는데?”
“내가 할게. 나 붕대 많이 감아봤어.”
서주환은 단호하게 말하며 장덕훈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굳이 직접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손길』의 부가효과인 치유 능력을 쓰기 위함이었다.
서주환은 바로 파스를 뿌리는 대신 장덕훈의 발에 손을 올렸다. 그대로 퉁퉁 부은 발목을 주무른다. 마사지 효과와 치유 효과를 동시에 사용했다.
정하연을 비롯한 다른 조원들은 그가 갑자기 뭘 하는 건가 의문어린 얼굴이었다. 파스도 안 뿌리고 다친 발을 주물러대니 이상해 보인 것이다.
정하연이 다급히 그를 말리고 나섰다.
“주환아, 괜히 건드렸다가 더 안 좋아져. 그냥 붕대 감고 두는 게 좋아.”
“괜찮아. 나 마사지 배웠어.”
“뭐?”
정하연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점점 편안해지는 장덕훈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이 된다.
그녀는 볼 수 없었지만, 서주환의 손에 맺힌 은은한 빛이 실시간으로 장덕훈의 발목으로 스며드는 중이었다. 그는 5분 정도 더 기운을 불어넣고 나서야 스킬을 비활성화시켰다.
치이이익-
파스를 뿌린 그는 땀방울 맺힌 이마를 훔쳤다.
‘좀 피곤하네.’
운동을 한 것처럼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손길을 많이 사용한 반동이다. 스킬을 사용하면 정도에 따라 체력이 소모되었다.
이후 붕대를 단단하게 동여매어 마무리 했다. 그가 장덕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좀 어때. 움직이는 거 안 불편해?”
“예! 붕대 감아서 그런지 아픈 것도 훨씬 괜찮아졌슴다. 형님 마사지 효과 엄청 좋습니다.”
장덕훈이 한결 나아진 얼굴로 신기하다는 듯 발목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당분간 조심해. 엠티 끝나면 병원 가보고.”
치유의 힘을 사용했어도 바로 낫는 건 아니다. B등급 스킬의 부가효과는 고작 ‘미약한’ 치유의 손길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붓기를 가라앉히고 통증을 덜어내 줄 수는 있었다.
서주환이 장덕훈의 발목을 놓고 장난스럽게 손을 털어냈다.
“으. 손에서 발 냄새 난다.”
“아, 형님! 저 발 냄새 안 납니다. 조금 전에 씻었슴다!”
억울함 가득한 반응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때 주위에서 속닥거리던 여자들이 그를 쳐다봤다. 뭔가 싶어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니 유소정이 어째 불길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오빠, 덕훈이 얌전히 있으라고 했죠?”
“어… 그치? 저거 무리하면 악화 돼.”
유소정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그 뒤에서 정하연이 혀를 쯧쯧 차고 있는 게 보였다. 서주환은 불길함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유소정이 어째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여장은 어떻게 해요?”
“…어?”
“덕훈이 아프니까 여장 못 하잖아요. 앞에 나가면 뭐 시킬 텐데.”
“…….”
서주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유소정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예상되었다. 그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는 조경준이 보였다. 그는 조경준을 다급히 불렀다.
“경준아! 여장 한 번 더 할 생각 없냐? 내가 엠티 끝나고 술 사줄게!”
“꺼져! 미친놈아!”
“아, 왜!”
“난 1학년 때 했어! 절대 안 해!”
한 치의 고민도 없는 즉답이었다. 더 말해봐야 씨도 안 먹힐 게 분명했다. 서주환은 그를 설득하는 대신 다른 조원들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얘들아, 우리 그냥 여장 나가지 말자. 양주가 뭐가 중요해? 양주 그까짓 거 내가 나중에 사줄… 어어? 저리 안 가? 나 장기자랑 나가기로 했잖아!”
그는 마지막까지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어느새 뒤로 돌아온 누군가가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등에서 익숙한 볼륨감이 느껴졌다.
“주환아, 포기해. 우리가 예쁘게 꾸며줄게.”
“정하연, 너!”
“덕훈이 아프잖아. 어쩔 수 없지.”
“하연아, 그냥 덕훈이 올리자. 지금 보니까 별 거 아닌 것 같아. 덕훈이도 괜찮다고 했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덕훈이 발목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으윽! 갑자기 다리가! 저 못 움직일 것 같슴다….”
“이 곰탱이가?!”
기껏 스킬까지 써서 치료해줬더니 배신을 한다. 그가 더 뭐라 하기도 전에 뒤에서 팔을 붙잡은 정하연이 작게 속삭였다.
“그냥 하자. 계속 빼면 아까 일 다 말해버린다?”
“…무슨 일?”
“아까 신문지 게임 할 때 너…”
“할게, 하면 되잖아….”
치사하게 그걸로 협박이냐! 서주환이 억울함 가득 담아서 노려보았지만 정하연은 깔깔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녀가 짓궂게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기억해둔다고 했었지?”
그런 말을 듣기는 했다. 설마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
서주환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얼굴 위로 뭔가가 날아와서 툭툭 치대고 발라댄다. 지음 그의 얼굴은 흡사 도화지였다. 치대고, 그리고, 바르고. 익숙하지 않은 화장품 냄새가 얼굴을 뒤덮었다.
“오빠, 얼굴 만지지 마세요. 찡그리지도 말고요!”
제일 적극적인 건 유소정이었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눈을 빛내면서 연신 화장을 해댄다.
이윽고 화장을 마친 여자들이 가발과 갈아입을 옷을 내주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두꺼운 뽕도 있었다.
“이걸 나더러 입으라고…?”
서주환이 절망감에 축 처진 눈으로 말한다. 그 시선이 자못 애처롭다. 그 눈빛에 방 안에 있는 여성들은 마음이 콕콕 찔려왔다. 그녀들은 멍하니 서주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어떡해. 이 오빠 눈빛 봐.’
‘주환 오빠가 이렇게 잘 생겼었나? 화장 때문인가?’
화장으로 보정된 피부에 『페로몬』 효과까지 더해진 서주환의 분위기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실제 생김새보다 얼굴이 빛나 보였다.
다만 그게 꼭 좋은 효과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덕훈였으면 그냥 개근데 주환 오빠는 분위기가… 여장 바꾸길 잘했다.’
오히려 옷을 맞춤형으로 준비해 오지 못한 게 아쉬울 지경. 그나마 다행이라면 장덕훈의 덩치가 더 커서 옷을 입을 수는 있다는 점이었다.
여자들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서주환은 손에 들린 옷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여자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밖으로 나가던 유소정이 아쉬운 눈으로 말한다.
“오빠, 혼자 입을 수 있겠어요? 내가 도와줄…”
“어딜! 소정이 너 나와!”
“얘가 지 혼자 뭘 하려고? 음흉한 년, 얼른 나와!”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자들이 유소정을 끌고 나갔다.
혼자 남게 된 서주환은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여자 옷을 입어보는 게 처음이다. 물론 뽕을 끼우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낑낑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다가 결국 밖으로 나왔다.
“뭐야. 다 어디 갔어?”
기껏 갈아입고 나왔더니 아무도 안 보였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정하연이 나왔다. 세수를 한 건지 얼굴과 머리카락에 약간 물기가 있었다.
정하연은 놀란 눈으로 서주환을 바라봤다. 곧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떨리는가 싶더니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푸흡!”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얼른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녀가 눈꼬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주환아. 옷 갈아입… 프흡… 다, 다 갈아, 흡… 입었, 네. 응, 잘 어울린다. 큽.”
“…야, 차라리 그냥 웃어.”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니,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하연이 배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꺄하하하하! 아, 졸라 웃겨! 어떡해! 아하하하!”
가만히 내비 두면 바닥에 데굴데굴 구를 기세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못 마땅한 어조로 투덜댔다.
“…웃으랬다고 너무 웃는 거 아니냐?”
“아하하하! 아하악. 하악, 학. 아, 배 아파. 잘 어울리니까 더 웃긴다. 푸흑!”
정하연의 말처럼 서주환은 의외로 여장이 잘 어울렸다. 키가 커서 여리여리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신 여성 모델 같은 느낌이 났다.
소위 센 언니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화장을 통해 바뀐 그의 얼굴은 얼핏 보면 성별을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성적이로 변했는데, 본의 아니게 『페로몬』효과까지 더해져서 묘한 색기마저 흘렀다.
루시가 처음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을 정도였으니.
[주인님, 어쩐지 기분이 나쁩니다…. 왜 그런 걸까요?]
‘시끄러워….’
정하연은 그 후로도 한참을 웃다가 서주환을 한 번 슥 훑어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살펴 본 그녀가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말한다.
“예쁘긴 한데 치마가 좀… 종아리에 비해 허벅지가 너무 두껍다. 허리는 또 생각보다 얇네?”
“그냥 바지 입으면 안 돼? 치마는 좀 아닌 거 같은데.”
“흐음. 확실히 허벅지가 좀….”
서주환은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다리가 훤히 드러나서 민망했다. 아니, 민망한 건 둘째치더라도 단단하게 근육 잡힌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건 스스로가 봐도 역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체질적으로 체모가 적어서 다리털이 없는 게 다행일까. 아무래도 장덕훈을 상정하고 준비해왔던 만큼 아예 개그 컨셉으로 가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아! 좋은 방법 생각났어!”
그리 말한 정하연은 방구석에 던져 둔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다. 어째 불길한 느낌이 든 서주환이 정하연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가 한 발 빨랐다.
“자! 여기 이거 입어!”
“…진심?”
“당연히 진심이지. 저번에 쟁여두고 깜빡하고 안 뺐는데 잘 됐다. 그치?”
“뭐가 그친데!”
정하연이 건넨 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검정 스타킹이었다. 서주환은 분노해 소리치면서도 결국 스타킹을 신었다. 근육 잡힌 맨다리를 드러내는 것보단 그게 덜 역겨웠기 때문이다.
“꺄하하핳! 너 진짜 예쁘다! 엄청 섹시하다, 서주환!”
“…….”
“앞에 나가면 남자들 다 반할 듯. 푸훗!”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가 질색을 하며 정색하니 정하연도 조금 미안했던지 웃음을 그쳤다. 그녀가 웃느라 살짝 베어 나온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그런데 진짜 잘 어울려. 그냥 앞으로 여장하고 다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어울린다.”
‘미안해하긴 개뿔.’
아주 끝도 없이 놀려먹을 기세였다. 이게… 그토록 바라던 친구?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아예 선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야, 정하연.”
“어, 어? 야, 왜 그래. 삐졌어?”
“됐고, 나 봐봐.”
서주환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정하연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마주보고 말했다.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잘 봐봐. 화장 했어도 여자라기 보단 중성적인 느낌 아니냐?”
“어, 어. 알았으니까 좀 떨어지지?”
바짝 들이밀어진 얼굴에 정하연이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화장을 했어도 그의 얼굴은 여자보다 남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직 가발도 쓰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가발을 쓴다 해도 좋게 봐줘서 중성적인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거칠었던 피부가 화장으로 보정되어 평소보다 잘 생겼다는 느낌도 들었으니.
서주환은 당황해 하는 정하연을 보고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귓불이 살짝 붉어져 있는 게 보였다. 겉보기엔 냉랭한 인상의 정하연이었지만, 실상은 놀리는 맛이 은근히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새삼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서주환은 잠시 정하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또렷한 시선에 그녀가 목을 움츠리며 되묻는다.
“왜, 왜 그렇게 봐?”
“너 화장 지웠어?”
“어? 아, 맞다! 야, 얼굴 치워! 나 지금 화장 다시 해야 돼!”
“그냥 화장 안 하면 안 돼?”
드세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게 매력이었다. 이미 엠티가 진행 되는 동안 어느 정도 성격이 나왔는데, 이제 계속 감추고 지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말없이 계속 바라보고 있자 정하연이 툭 하고 내뱉었다.
“…뭐래? 비켜.”
정하연이 그의 가슴팍을 치며 밀어냈다. 하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서주환이 겨우 그 정도로 밀릴 리 없었다.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있자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한다.
“야, 서주환. 나 진짜 화낸다? 장난치지 마.”
“나 장난 안 쳤는데?”
“…그럼 지금 뭐하는 건데.”
정한연의 얼굴에서 장난스러운 기색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녀는 올곧은 시선으로 서주환과 눈을 맞추고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정하연이 특유의 고양이 눈으로 올려다보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자신을 좋아하냐는 질문.
얼마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금요일. 헤프닝 이후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던 중 흡연장에서. 그때 서주환은 분위기에 휩쓸렸었다며 어물쩍 넘어갔었다.
그럼 지금은?
‘좋아하는 건가?’
그는 바로 즉답할 수가 없었다.
친구로서의 정하연이라면 당연히 좋아한다. 여자로서의 정하연도… 분명 매력적이었다.
정하연은 굳이 출콘과 내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메이크업을 한다면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 보다 예쁠지 모른다. 외적인 면만 봤을 때 그녀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렇다고 성격이 모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항상 틱틱대는 어조였지만, 티 나지 않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걸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여러 번 도움을 받았더랬다.
“…….”
문제는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분명 정하연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게 친구로서인지, 연애 감정인지, 아니면 예쁜 여자와 하고 싶은 남자로서의 단순한 본능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또한 그에게는 욕망 시스템이 있었으니, 고백해서 사귄다 해도 좋은 끝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정하연은 말없이 서 있는 그를 바라봤다. 이내 그녀가 나직하게 내뱉는다.
“…비켜.”
그리 말한 그녀는 서주환을 세게 밀어내고 정강이를 차버렸다.
퍽!
정확히 다리 중간을 까버리는 쪼인트!
서주환이 한쪽 다리를 잡고 펄쩍 뛰었다.
“어억! 야, 야 이거 진짜 아파! 아!”
이등병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날 정도로 강렬한 쪼인트였다. 그가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한 눈빛으로 정하연을 바라봤다.
정하연은 오히려 주먹까지 치켜들며 쌍심지를 켰다.
“씨. 이게 봐주니까 끝이 없네. 서주환 주제에 나를 놀려?”
“아오… 놀린 거 아닌데….”
“시끄러! 30분 까지 집합이라고 했는데… 아이씨.”
서주환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학생회가 각 방을 돌아다니며 인원들을 집합시켰다. 그나마 여장 당사자와 보조하는 사람 한 명은 조금 늦게 내려오라고 했는데, 그게 30분까지였다.
정하연이 급히 옷을 챙겨 입으며 재촉한다.
“빨리 일어나. 늦겠다.”
“너 화장한다며?”
“누구 때문에 시간이 없네요. 그만 닥치고 나오시지?"
“옙, 누님.”
“누님은 무슨. 알았으면 똑바로 모시란 말이야.”
정하연이 킥킥 웃으면서 방을 나섰다. 방금 전까지의 묘한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따라나섰다.
“같이 가시죠,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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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안에는 대안대학교 출판콘텐츠학과의 모든 사람이 모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왔다는 뜻이었다.
한편 서주환을 비롯한 아홉 명의 남자들은 여장을 한 채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강당 안쪽에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자, 우리 출콘과의 전통! 여장대회가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예쁜 남성들이 등장할지 기대되네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여장남자들 중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 자리의 모두가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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