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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으아아. 주말연재 성공!
일요일은 어떻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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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힙합 좋아하시는 힙찔이 동지 계신가요?
오늘 헉피 형 신곡이 나왔습니다. 락 스타일의 텐션 개쩌는 노랜데 관심 있으면 한 번 들어보세요. 분신 공연에서 떼창하면 진짜 끝내 줄 것 같더군요.
분신 공연 가보고 싶다...
사실 티케팅이 개빡세서 이번 생은 포기하고 있습니다. 대신 내일 있는 온라인 콘서트라도 봐야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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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원고료쿠폰 감사합니다!
by상담사 님, 2na1234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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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69가지 잿빛 그림자
같은 옷도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든다. 정하연이 그랬다. 저지를 벗은 그녀는 검정색 츄리닝 바지에 하얀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큰 키와 더불어 워낙 좋은 비율 덕분에 평범한 차림인데도 태가 살았다.
‘나도 키 좀 더 키워야지.’
염원하던 180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것도 아이템의 효과를 빌어 다리를 많이 늘린 덕분에 비율이 좋게 나올 듯했다.
“집 좋다. 티비도 엄청 크네?”
“영화 보는 거 좋아해서 큰 걸로 샀어.”
“야, 주환아. 앞으로 술 마실 때 어디 가지 말고 너희 집에서 모이면 안 돼? 딱인데?”
“뒤처리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에이. 우리가 설마 그냥 가겠어? 다 정리하고 가지.”
“과연?”
처음에야 그럴지 몰라도 자주 드나들다 보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취를 하더라도 친구들에게 개방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가 경험은 없어도 주워들은 건 있었다.
정하연이 실실 웃다가 말했다.
“그런데 애들은 왜 못 오는 거래?”
“석찬이 놈은 조별 모임. 덕훈이는 가족 모임.”
“쓰읍. 한 번 더 전화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별 수 있냐. 아, 그런데 안주 벌써 시켰는데 어쩌지?”
“엑. 얼마나 시켰는데? 네 명분 시킨 거면 빨리 취소해.”
“그래야겠다. 음. 그냥 아예 만들어 먹을까?”
혼자 요리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 재료는 충분하다.
정하연이 놀란 듯 눈을 깜빡인다.
“너 요리 좀 할 줄 알아?”
“그냥 남들 하는 만큼은? 간단한 건 대부분 할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는 사실 요리에 자신이 좀 있는 편이었다. 상태창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잠재등급 B정도는 되지 않을까. 현재등급은 C~C+정도라고 생각했다.
“올. 뭐 해먹을 건데? 재료는 있고?”
“며칠 전에 장 봐놨어. 음. 너 우산 들고 왔었지? 밖에 비 와?”
“응. 이제 막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데.”
“그럼 전이나 해먹을까? 비 오는 날에는 전이지.”
“전? 좋아! 무슨 전 할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어?”
“김치전 돼? 아니다. 자취생이라 역시 좀 힘드려나?”
당연하지만 김치전은 주 재료인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따로 김장을 하는 것도 아닌 자취생 입장에서는 잘 안 해먹게 되는 요리였다.
하지만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전 중에서 김치전을 제일 좋아했고, 마침 김치도 충분했다. 얼마 전 서주희가 한수아와 집에 왔을 때 받은 것이다. 당시 한수아가 갖가지 반찬을 가져온 반면, 서주희는 김치를 한 통 야무지게 들고 왔었다.
“오징어 넣는 거 괜찮아?”
“오징어도? 너무 좋지!”
“원래 제육하려고 사놨던 거거든. 넉넉히 사두길 잘 했네.”
“오… 너 되게 의외다.”
“뭐가?”
“이미지랑 안 어울려.”
“내 이미지가 뭐 어때서….”
서주환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저번에도 그렇고 얘는 대체 자신을 뭐로 보고 있는 걸까. 그 반응에 정하연이 깔깔거리며 말한다.
“이석찬 같은 놈!”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기분 나쁜데.”
“술 좋아하고, 담배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귀찮은 거 싫어하고, 이상한 생각만 하는 사차원 또라이.”
“석찬이한테 사과해….”
거 평가가 너무 박한 게 아닌가. 서주환의 말에 정하연은 손을 휘적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농담이야. 보통 요리할 줄 알아도 혼자 살면 귀찮아서 잘 안 해먹잖아. 장도 꾸준히 보는 것 같길래 신기해서 해 본 말이야.”
서주환은 픽 웃음을 흘렸다. 그만큼 친한 사이니까 저리 할 수 있는 거겠지. 16살 때부터 알았다고 하니까 7년째 친구인 두 사람이었다.
서주환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너 혹시 석찬이 좋아해?”
“…죽을래? 싸우자는 거지?”
정색하고 반문하는 말에 서주환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정색하니 무섭다. 고양이 눈매가 작정하고 날카로워지니까 그리 싸늘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얼른 말을 바꿨다.
“그냥 농담 한 번 해본 거야.”
“농담도 할 게 있지! 한 번만 봐준다.”
“하하. 너흰 음, 연인이라기 보단 좀 남매 같은 느낌이지.”
“…남매?”
“응. 나랑 내 동생 보는 것 같아.”
“너 동생 있어?”
정하연은 동생이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있어. 여동생 하나. 내년에 우리 과 들어올 걸?”
본래 회귀 전의 서주희는 타 대학교의 광고홍보학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송 매니지와 위튜브 편집을 하고 있는 지금은 출판콘텐츠학과로 오고 싶어 했다.
“그럼 고삼이겠네? 나도 동생 하나 생기겠다.”
“하나 아니고 둘일 것 같은데.”
“둘? 어… 동생이 쌍둥이야?”
“푸핫. 그건 아니고.”
서주환은 반죽을 만드는 동안 서주희와 한수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하연은 동생들이 있는 게 부럽다는 듯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외동인 듯했다.
서주환은 반죽 통을 애매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흠. 양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제육이라도 할까?”
“응? 제육 좀 잘 볶아?”
“다른 건 몰라도 제육은 자신 있지. 오징어 남은 것 좀 쓴다?”
“어어. 빨간 걸로 해줘.”
“오키.”
서주환은 김치전을 부치고 정하연은 오징어 제육을 볶았다. 거기에 계란말이를 비롯해 김 가루 뿌린 꼬마 주먹밥 등을 추가해 한상 차림을 완성했다.
“배달 취소하길 잘 했다.”
“응. 오랜만에 요리한 듯.”
“제육 밖에 안 볶았잖아.”
“불만 있어?”
“없습니다. 죄송해요….”
“아니, 왜 사과를 해. 그냥 물어본 건데.”
정하연이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 진짜 그냥 한 말이었나 보다.
두 사람은 상을 세팅하고 티비를 틀었다. 그런데 어째 재밌는 방송이 안 보였다.
채널을 돌리던 그가 말했다.
“영화라도 볼까?”
“좋지. 영화 오랜만에 본다.”
“뭐 볼래?”
“저거 어때? 69가지 잿빛 그림자. 어디서 재밌다고 한 것 같은데.”
“어… 저거?”
“왜? 별로야?”
“아니, 그건 아닌데….”
서주환은 애매한 얼굴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정하연이 가리킨 영화 ‘69가지 잿빛 그림자’는 호불호가 제법 갈리는 영화였는데, 취향만 맞으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수작이었다. 다만 그와 정하연 둘이 보기에는 좀 문제가 있었으니.
“아. 로맨스 싫어하는구나? 그럼 다른 거 봐도 되고.”
“그것도 아닌데.”
“그럼 뭔데?”
“저거 좀 많이 야하대. 우리 둘이 보긴 좀….”
69가지 잿빛 그림자는 베드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였다. 하지만 정하연은 고작 그거 때문이었냐는 듯 픽 코웃음 쳤다.
“우리가 뭐 고딩이야?”
“성인이지.”
“그리고 너 나 여자로 안 보인다면서?”
“그, 그렇지?”
‘아뇨. 그건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요.’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주환은 결국 어깨를 으쓱이곤 영화를 틀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더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미 한 번 봤던 영화였지만 서주환은 금방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공부를 위해서라도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물의 대사를 참고하면, 소설을 쓸 때 대사문에서 딱딱한 느낌을 탈피하여 구어체를 잘 다룰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대사는 중요하다. 특히 캐릭터의 매력을 중심으로 글을 굴릴 때는 대사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잘 만든 캐릭터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잡담 떠는 것만으로도 재밌지.’
실제로 시답잖은 대화만 하는데도 잘 팔리는 소설이 은근히 있다. 거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 최근 대학 생활을 하느라 연재 속도가 떨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어느덧 『빙의사부는 무림공적』도 100화를 넘긴 것이다. 슬슬 타 플랫폼에도 런칭이 될 시기였다.
서주환은 잡생각을 치워두고 영화에 집중했다.
‘슬슬 나오겠네.’
69가지 잿빛 그림자는 잘 나가는 사업가 ‘말벤 그레이’와 사회 초년생의 여주인공 ‘아니스 브라운’의 로맨스를 그린 멜로 영화다. 주인공 말벤 그레이는 다소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었는데, 그에게 호감을 갖고 만나던 아니스 브라운이 이를 알게 되고 경악하는 장면이 나왔다.
- 말벤, 당신 도대체….
- 나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아니스, 난 당신에게 이해받고 싶어.
말벤 그레이가 지닌 성도착증은 SM플레이였다. 그는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 아니스 브라운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아니스 바라운 이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등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랑(말벤 그레이)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고, 그녀는 말벤에 의해 자신도 알지 못 했던 새로운 본능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서주환은 회귀 전 영화를 볼 때 보다 더욱 관심있게 그 장면을 지켜봤다.
‘내가 한 건 비교도 안 되네.’
영화를 보다 보니 그가 유지경과 보낸 시간은 애들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엉덩이 좀 찰싹거린다고 SM플레이가 아니었다. 어느새 서주환은 영화의 야한 장면조차 공부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반면 그의 옆에서 영화를 보던 정하연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중이었다.
‘으악! 미친! 저런 걸 한다고? 아니, 야하다더니 이렇게까지? 미치겠네.’
적나라한 베드신에 정하연은 미칠 노릇이었다. 서주환이 말릴 때 그냥 다른 영화나 볼 것을! 괜히 객기를 부리다가 낯이 뜨거워서 숨소리까지 신경 쓰였다. 그러다 힐끗 옆을 돌아본 정하연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얘는 뭘 이렇게 흥미롭게 보는 거야….’
티비 속에 들어갈 듯 뚫어져라 바라보는 서주환의 시선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듯했다.
‘얘가 설마 이런 취향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제 아예 자세를 고쳐 잡고 영화를 시청 중이었는데, 팔짱을 끼는 도중 그녀의 어깨와 팔꿈치가 맞닿았다.
생각에 빠져 있던 정하연이 그에 몸을 움찔하는 순간.
- 허억, 허억!
- 하, 으읏, 아아앙~!
영화에서 야릇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흥분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쾌감과 당혹감으로 절여진 여자의 신음 소리!
깜짝 놀란 정하연이 참았던 숨을 신음처럼 내뱉었다.
“힉!”
“헉! 깜짝아.”
“미, 미안.”
“어?”
얼떨결에 사과하는 정하연과 그녀를 돌아본 서주환. 그는 뜬금없는 사과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귀가 빨개진 걸 발견한다.
- 흐윽! 아! 말벤, 제발!
- 아니스! 헉, 허억.
베드신은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신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에 정하연이 흠칫한다. 서주환은 그제야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고 픽 웃음을 흘렸다.
‘괜찮다더니.’
이정도로 수위가 높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나 보다. 눈치 채지 못 했었는데, 귀 외에도 하얀 목덜미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한 번 의식하고 나니까 하얀 피부라서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가 웃는 걸 본 정하연이 민망함에 팔꿈치를 쿡 찔러온다. 그녀가 옆구리를 찌르며 불만어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웃지 마. 왜 웃어.”
“푸흐흫.”
“웃지 말라니까?”
“어떻게 안 웃냐고. 크흐흐흡.”
“이게!”
간지럼을 태우려는 듯 손을 뻗어온다. 서주환은 웃는 와중에도 손을 들어 막았다. 정하연의 손은 상당히 매워서 그냥 맞아주기엔 조금 아팠다. 손짓이 몇 번 오가다가 오기가 들린 정하연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메시지 음성이 들리는 순간.
미끌.
그의 어깨를 헛짚은 정하연의 몸이 기우뚱 쓰러진다. 그의 몸을 향해서였다. 위로 올라탄 그녀가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흐읏!
- 아니스, 네가 위로 올라가.
- 아, 나 너무 지쳤…
- 올라가!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지.
영화의 여주인공 아니스가 말벤의 위로 올라가 자세를 잡았다.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현재 두 사람의 자세와 비슷했다. 그에 깜짝 놀란 정하연이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다시 바닥을 헛짚으며 그의 위로 안기듯 넘어졌다. 서주환은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끌어안았다. 자세가 영화와 더욱 흡사해졌다.
정하연이 당혹스러운 어조로 말해왔다.
“미, 미안.”
“미안 할 필요 없는데.”
“어?”
서주환은 대답하지 않고 힐끗 영화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정하연을 쳐다본다. 어느덧 그의 시선에는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정하연도 그 시선을 느꼈음인가. 그녀의 몸이 긴장한 듯 움츠러들었고,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말했다.
“이제 좀 놓지?”
“싫은데.”
“…….”
서주환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가 더욱 뚜렷해지고, 잡티 하나 없이 투명한 피부 위의 불그스름한 입술이 점점 확대되었다.
마침내 입술이 겹쳐지려는 순간이었다.
탁.
하얀 손 하나가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어서.
퍽!
서주환의 아랫배로 둔탁한 타격이 전해졌다.
“켁!”
“야, 어딜 개수작이야.”
아랫배를 짧게 끊어 친 정하연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뱉었다. 서주환은 대꾸도 못한 채 중심부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거, 거긴… 어으윽….”
그 격렬한 반응에 정색하던 정하연이 놀라서 말한다.
“어? 야, 괜찮아? 서주환!”
새우 자세로 웅크린 채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그녀는 화내던 것도 잊고 서주환을 일으켜 세웠다.
“아, 앉아봐. 등 두드려줄게.”
그를 앉힌 정하연이 허리 아래를 두드려준다. 그러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씨. 거기 안 쳤는데…”
“어윽!”
“마, 많이 아파?”
“으으….”
“아, 진짜. 그러게 왜 그래서… 좀 괜찮아?”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연신 허리를 두드려주는 정하연,
토닥토닥.
서주환은 그녀를 등지고 쓰게 웃었다.
[주인님, 아랫배 맞지 않으셨나요?]
‘…맞아.’
[순발력이 뛰어나시네요….]
루시의 말대로 굉장한 순발력으로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그는 아랫배에 타격이 전해지는 순간 새됐음을 감지하고 일단 바닥을 구른 것이다.
“야, 아직도 아파?”
아무것도 모르는 정하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급작스러운 헤프닝이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영화는 끝을 맺었다. 결말은 말벤 그레이와 아니스 브라운의 결별. 결국 그의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니스가 갈등 끝에 떠나가는 장면이 마지막이었다.
정하연이 저지를 챙겨 입었다.
“나 갈게.”
“안 자고 가? 밖에 비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자면 누구 씨가 덮칠 것 같아서요.”
“아니, 그건 분위기에 휩쓸려서… 미안.”
“풋. 반쯤 농담이야.”
“하하. 그치?”
“웃기는. 반은 진담이란 소리거든. 한 번 더 그러면 진짜 죽어.”
정하연이 짐짓 위협적으로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여자 치곤 큰 손이지만 그에 비하면 여전히 가느다란 손이다. 저 주먹에서 어떻게 그런 위력이 나오는지.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같이 우산을 집어들었다.
“데려다 줄게.”
“됐어. 뭐 얼마나 멀다고.”
“야, 너 취해서 비틀거리거든? 그리고 지금 열두 시 넘었어.”
“흠. 네가 더 위험해 보이는데….”
“그건 미안하다니까….”
그걸 언급하면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그가 눈꼬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니 정하연이 웃음을 흘렸다.
“킥킥. 알겠어. 그럼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자.”
정하연이 깔깔거리며 집을 나섰다. 서주환도 얼른 뒤따라갔다.
또록, 똑, 또로록.
늦은 밤 시간 봄비가 추적거린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잎새를 타고 흘러 땅으로 스며들었다.
서주환과 정하연은 항상 들리는 흡연부스에 가서 담배를 태웠다. 희끄스름한 담배 연기가 부스 안을 채웠다.
정하연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까 영화 있잖아.”
“응?”
“그게 끝이야? 결말.”
“아아. 그거 3부작이야. 아직은 2부까지만 있고, 3부는 좀 나중에 나올 걸.”
“그래?”
“왜. 뒷내용 궁금해서?”
“응. 재미는 있었잖아. 누구 때문에 산통 다 깼지만.”
“윽.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으려고?”
“우려먹긴. 아직 한 시간도 안 지났다?”
정하연이 한 쪽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평생 놀림거리가 될 듯했다.
‘그냥 넘어가는 게 어디냐.’
어색해지는 것보다야 이렇게 장난처럼 놀리는 게 낫다. 그나마 정하연이니까 이렇게 분위기를 푸는 거겠지.
서주환은 역시 바로 구르길 잘했다며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때 정하연이 지나가듯 물었다.
“야, 서주환.”
“응?”
“너 나 좋아해?”
“뭐? 콜록! 아, 목에 걸렸… 콜록, 콜록.”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려서 따가웠다. 다가 온 정하연이 등을 두드려 주며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하루 종일 꼴불견이네.”
“콜록, 콜록. 야, 누구 때문에…”
“나 때문이야?”
“그럼 너지, 누구 때문이겠냐.”
황당한 눈으로 보라보니 킥킥 웃는다. 그녀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드리곤 말한다.
“아까 왜 키스하려고 그랬어?”
“말했잖아. 분위기에 휩쓸려서…”
“참나. 여자로 안 보인다더니.”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서주환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정하연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한다.
“아무튼 그게 끝?”
“…뭐가 더 필요해? 예뻐 보여서 그랬다던가.”
“아니 뭐 그냥. 이제 됐어.”
정하연은 한 차례 웃더니 다시 우산을 집어 들었다. 혼자 갈 셈인가? 뭘 잘못했나? 그리 생각하는데,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뭐 해? 데려다 준다면서?”
“어어.
서주환은 담배를 비벼 끄고 우산을 폈다.
*
“고마워. 조심해서 들어가.”
“어. 하연아, 아까는 미안했어.”
“됐어. 없던 일로 칠 테니까 앞으로 잘해. 일단 너희 집 아지트 삼는다?”
“엑.”
“싫어? 이석찬이랑 덕훈이한테 아까 일 다 말해야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마님.”
“킥킥. 잘 들어가거라, 돌쇠야.”
“네이~.”
“푸흐흐흫. 진짜 조심해서 들어가. 오늘 재밌었어.”
그녀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서주환은 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으아. 피곤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서주환은 추적거리는 빗길을 걸어 돌아갔다.
한편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담배를 피며 걸어가던 백정기가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것들. 사귀나?”
*
개강 후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은 출판콘텐츠학과가 엠티를 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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