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페티시가 보여-71화 (7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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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오늘은 분량이 짧습니다.

사실 쿠키로 쓴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 할 것 같아서 본편만 올렸습니다아...

오늘도 지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ㅅ;

외전 편인 쿠키는 오전 중으로 따로 업로드해보겠습니다.

*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너의 페티시가 보여가 무려 원고료쿠폰 베스트 1위를 했습니다!

오예. 저 이거 처음 해봐요!

는 쿠폰 63장 받았는데 1위...? 이상하다. 옛날에는 이거 가지고는 15위에도 못 들어갔던 것 같은데...?

뭔가 기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ㅠㅠ

*

원고료쿠폰 주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1위 해봤습니다!

*

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한 번만 부탁드려요 :D

외전-유지경

Cookie.

<유일한 친구>

“오빠, 고기 잘 굽는다?”

“그래? 다행이네.”

남자는 옅게 미소 지으며 고기를 구웠다. 유지경은 턱을 괴고 남자를 바라봤다.

‘이 오빠랑 친해질 줄은 몰랐는데.’

남자는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견도 평범하고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녀와 접점이라고는 같은 학과 같은 반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런 남자와 말을 트게 된 건 흡연장에서였다.

당시 4학년이었던 유지경은 학과에서 아싸가 된 참이었다. 겨울 방학 동안 실습으로 참여한 회사에서 같은 학과 동기의 남친을 뺏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학과에는 있는 소문 없는 소문이 다 퍼졌고, 자연히 그녀는 혼자 다니게 되었다.

유지경은 학교에 도는 소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들끼리 수근대며 쳐다보는 눈빛도 간단히 흘려 넘겼다.

그녀는 오히려 더 당당한 자세를 견지했다. 이딴 소문으로 앞뒤 확인도 없이 떨어져 나갈 사람들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차피 1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이제 와서 무슨 평판을 신경 쓰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 관리 때문에 숨기고 지내왔던 담배도 대놓고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흡연장에서 이 남자를 만났다.

항상 혼자 다니던 사람. 가까이 가면 재수가 없어진다는 이상한 소문이 도는 사람.

딱히 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유지경은 호기심이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던 걸까. 그녀를 발견한 남자가 당황하더니 먼저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왜 존대해요? 저보다 선배고 나이도 많잖아요.”

“하하. 이게 편해서….”

어색한 듯 순박하게 웃는 남자였다. 소문을 못 들은 건지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피하는 기색이 없었다.

유지경은 픽 웃으며 말했다.

“혹시 담배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요? 연초 피고 싶은데 전담밖에 없어서요.”

“아, 네. 당연히 괜찮죠. 여기 라이터도 받아요.”

“풋. 고마워요.”

그 뒤로는 가끔 흡연장에서 같이 담배를 피게 되었다. 항상 그에게 먼저 다가간 건 그녀 쪽에서였다.

언제부턴가는 그와 학식을 같이 먹기도 했다. 역시 유지경이 먼저 그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간 것이었다. 그는 어쩐지 곤란한 얼굴을 하면서도 피하지는 않았다. 아직 소문을 모르는 걸까.

예상과 달리 남자는 진즉 소문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그야… 처음부터죠?”

“…그런데 왜 안 피했어요? 나랑 같이 다니면 안 좋은 소문 돌잖아요.”

“어, 음. 그거 아니어도 나는 원래 소문 안 좋아서 괜찮아요. 그리고…”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혼자 다니면 외롭잖아요. 힘들고.”

“…….”

유지경은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내가 외롭고 힘들었구나.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만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뒤에서 수근대는 걸 모르는 척 하는 건 누구라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이다.

유지경이 복잡한 얼굴로 입을 다물자 남자가 당황해서 말을 이었다.

“그, 그리고 소문이란 건 대게 안 좋게 부풀려지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아, 내 소문은 대충 맞지만…”

“오빠.”

“어, 어어?”

“오빠라고 불러도 되지? 말도 놓을게.”

“어? 그건 상관없지만요.”

“오빠도 말 놔. 그냥 이름 불러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날부터 유지경은 남자에게 더 자주 연락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폰 번호 하나 따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의외로 비싸게 구는 남자였다.

남자는 어째선지 거리를 두려는 듯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고, 사적으로 자리를 갖지도 않았다. 그녀를 둘러싼 소문 때문은 아니었다. 남자와는 여전히 학교에서 함께 담배를 폈고 식사를 했으니까.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그가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녀는 단순히 남자의 숫기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 처음으로 술자리를 하게 된 건 졸업식 날, 바로 오늘이었다. 몇 번이나 권해도 나오지 않던 남자가 웬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지경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그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영화관도 갔고, 볼링장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술상을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지경아, 취업은 어떻게 됐어? 저번에 서류 넣었다고 했잖아.”

“아, 그거. 미안! 오빠가 자기소개서까지 도와줬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어.”

“…그래?”

“응. 뭐 다음에는 되겠지. 이제 두 번째인데.”

“교수님들은? 너 성적 괜찮으니까 추천 해주시지 않나?”

“음. 그게… 교수님들도 소문 들었나봐. 아, 그래도 몇 분은 권해주셨는데, 원하는 회사가 아니라서 거절했어.”

“…다음엔 될 거야.”

“풋. 나 위로해주는 거야? 고마워, 오빠.”

“하하. 자, 마시자.”

유지경은 남자가 내민 잔에 마주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소주를 한 번에 마신 뒤 잔을 탈탈 털어냈다.

“흐이이~ 좋다. 나 누구랑 술 마시는 거 너무 오랜만이야.”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남자의 말과 달리 유지경은 술을 빠르게 비워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물처럼 잘 넘어갔다.

“너 취한 것 같은데….”

“에이. 뭐 이정도로. 오빠야말로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난 뭐… 혼술 자주해서.”

“오올. 보기보다 잘 마시네.”

테이블 위에 병이 점점 늘어났다. 남자는 생각보다 술을 정말 잘 마셨다. 얼굴에 홍조가 오른 와중에도 멀쩡하게 고기를 구웠다.

반면 유지경은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 취해 주량을 넘겨버렸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쓸데없는 말을 꺼내게 된 건.

“씨이. 그게 내 탓이야? 섹스가 나빠?”

“지, 지경아. 좀 진정해.”

“내가 어떻게 진정해? 오빠도 들었으니까 알겠지? 내가 그 새끼가 지 남친인 걸 어떻게 알았겠냐고!”

유지경이 말하는 ‘새끼’는 실습을 나간 회사에서 만난 남자 직원이었다.

“아니, 여친 있는 새끼가 딴 여자 꼬셔서 떡친 게 잘못 아냐? 그년은 지 남친한테 뭐라 그러지 왜 나한테 지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실습에서 만난 직원은 동기의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유지경은 그 사실을 몰랐고, 직원이 먼저 접근해 온 걸 받아주었다. 단지 그게 다였다. 그런데 학교에 온갖 소문이 이상하게 나버렸다.

“난 그 새끼 여친 있는 것도 몰랐거든? 그럼 누가 잘못한 거야. 그 새끼가 잘못한 거지. 안 그래, 오빠?”

“그, 그치. 지경이 넌 잘못 없어.”

“맞지? 그런데 왜… 씨이.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개새끼들. 나쁜놈년들. 그 새끼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취업도 했을 텐데. 빨리 돈 벌어야 하는데… 씨이.”

말하다보니 너무 억울했다. 얼마나 분한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지경아, 다 잘 될 거야.”

남자가 자상하게 등을 두드려주었다. 유지경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었다. 주량을 한참 넘겨버린 그녀는 테이블에 엎어졌고, 남자는 당황하다가 결국 그녀를 업었다.

다음날 유지경은 침대에서 깨어났다. 번쩍 눈을 뜬 그녀는 올라오는 숙취와 두통으로 정신이 없었다. 잠시 후 집이 아닌 모텔임을 깨달은 그녀는 깜짝 놀라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미친. 나 오빠랑 잤나?’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던 기억이 끝이다. 그렇다면 그가 자신을 옮겼을 터. 모텔인 걸 확인하니 그와 했다는 생각밖에 안 떠올랐다. 유지경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런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잔 건 괜찮았다. 별로 순결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섹스는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상대가 그라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와 잤는데 무엇 하나 기억나지 않는 게 억울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침대 옆 테이블에 메모지가 하나 있었다. 그가 남겨놓고 간 것이다.

- 우유 사뒀으니까 먹고 속 풀어. 그리고 힘내. 다 잘 풀릴 거야.

유지경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 쑥맥이 진짜. 어떻게 여자가 자는데 손 하나 안 대고 그냥 가냐고….”

이제 보니 옷도 그대로였다. 정말로 손끝 하나 대지 않은 모양. 이쯤 되니 자신한테 매력이 없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유지경은 바로 남자에게 연락을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자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주억였다. 그도 술을 많이 마셨으니 지금쯤 곯아떨어졌을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그녀는 어젯밤 기억이 불현 듯 떠올랐다.

유지경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어떡해! 미친! 야, 이 미친년아! 유지경 또라이 같은 년아!”

밀물처럼 몰려오는 흑역사에 스스로를 욕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섹스가 나빠?!’

‘아니, 내가 그 남자가 지 남친인 걸 어떻게 알았겠냐고!’

‘여친 있는 새끼가 딴 여자랑 떡친 게 잘못 아냐?’

‘그년은 지 남친한테 뭐라 그러지 왜 나한테 지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아무리 술을 오랜만에 처먹었다지만, 주량을 넘겼다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그 오빠 앞에서 한단 말인가. 대체 자신을 무어라 생각할는지 걱정이 들었다.

유지경은 곧 손톱을 물어뜯으며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 오빠는 그런 거 신경 안 쓸지도 몰라. 어차피 더 한 헛소문도 다 알고 있었는데 나랑 잘만 지냈으니까… 는 무슨! 여자 입에서 직접 떡이니 섹스니 하는 소리 듣는 게 그거랑 같냐고! 이 미친년아!”

유지경은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한참 날뛰던 그녀는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깨달았다.

“…아씨. 나 그 오빠 좋아하네.”

그냥 같이 다닐 사람이 필요한 거였는데, 어느새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유지경은 갖은 소문에도 아랑곳 않는 그가 좋았다. 그랑 함께 있는 게 편안했고, 묵묵히 말을 들어주는 게 좋았고, 내숭 떨지 않고 드러낸 성격에도 어울려주는 게 좋았다. 눈치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자상하게 챙겨주는 면이 좋았으며,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다는 점도 좋게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장점을 하나씩 찾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유지경은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아, 진짜! 왜 그냥 가! 좀 덮치지!”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까 더 억울했다.

술에 취해서 무방비한 여자를 두고, 손끝 하나 대지 않고 가는 게 정녕 고추 달린 사내새끼가 맞는 건가.

유지경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초코우유를 집어 들었다. 언제 빨대까지 준비해 놓은 건지. 그녀는 우유를 한 모금 쪽 빨아들이곤 푸념처럼 말했다.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니까….”

어차피 취업할 때까지는 남는 게 시간이었다. 유지경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남자와 연락이 끊겼다. 그는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까톡을 해도 답장해 오지 않았다. 집에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 오빠가 진짜!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쯤 되니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오기로 찾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원하는 회사에 취업한 유지경은 주말에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취업 사실은 이미 며칠 전에 까톡으로 알린 뒤였다.

“야! 문 열어! 피하지 말고 얼굴 보고 얘기하라고!”

쾅쾅쾅!

소리치며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는 건 여전했다. 대신 소란을 들은 옆집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유지경은 지은 죄가 있어 어깨를 흠칫거리며 옆집 사람을 돌아보았다.

‘힉. 엄청 예쁘네.’

말도 안 되게 예쁜 여자가 나왔다. 좌우 세팅을 다르게 한 언밸런스 컷의 시크해 보이는 여자였다.

‘와. 하연 언니만큼 예쁘네.’

욕 나오게 예쁘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유지경은 사과해야 된다는 것도 잊고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가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많이 시끄러웠죠.”

“그건 괜찮은데요. 그쪽 집에 사는 남자 분 이사 갔어요.”

“네?”

“엊그제 짐 챙겨서 가는 거 봤어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유지경은 멍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손에 들린 치킨과 맥주를 대충 내팽개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멍하니 누워 있는데, 까톡 알림이 울렸다. 한 사람만 따로 설정해 놓은 알림 소리였다.

“…오빠?”

유지경은 벌떡 일어나서 까톡을 확인했다.

- 취업 축하해, 지경아.

- 나 얼마 전에 이사 갔어. 많이 고민하다가 보낸다.

- 다시 한 번 취업 축하하고, 앞으로도 하는 일 다 잘 됐으면 좋겠어.

- 연락은 더 하지 마. 나랑 더 엮이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네 번호는 삭제 할 거니까 연락해도 안 받을 거야.

메시지를 확인한 유지경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게 진짜!”

그녀는 폰을 쥔 손을 확 위로 들었다가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화가 나서 뭔가 던지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싫으면 싫다고 얼굴 보고 말을 하던가!”

이딴 문자는 왜 보내서.

유지경은 입술을 깨물고 일어났다. 상 위에 내팽개친 맥주를 꺼내 들었다. 일단 뭐라도 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

사람의 마음과 달리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새싹이 움트고 만개한 꽃이 지며 사계절이 몇 번이고 지나갔다.

어느덧 유지경은 29살이 되었다.

그녀는 신입사원이었던 시절을 거쳐 제법 능력 있는 편집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경력을 쌓고 이직을 몇 번인가 하다 보니 월급도 제법 올라갔다. 빚은 진즉에 다 갚았고, 현재는 꽤 잘 나가는 출판 매니지먼트의 직원이었다.

“지경아, 그거 어떻게 됐어?”

“아, 미화 언니.”

“얘가 진짜. 사장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아니면 팀장님이나.”

“히히. 죄송. 시킨 건 다 했어요. 작가님이랑 상의도 했고. 자료 정리해서 팀장님 메일로 보내놨어요. 아, 일러스트 관련 말인데요. 작가님이 원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고…”

- 지이잉!

“아, 죄송해요. 끌게요.”

“아냐. 전화 먼저 받아. 작가님일지도 모르잖아.”

“네입.”

유지경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액정을 확인 한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언니…”

“얘가 정말. 팀장님이라고 부르라니… 지경아, 너 괜찮아?”

“미안해요.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유지경은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받으며 복도로 나왔다. 휴대폰 너머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 …오빠랑 친구 맞으신가요?

예상과 전혀 다른 여자 목소리였다. 유지경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맞긴 한데… 누구세요?”

- …오빠 동생이에요.”

“동생… 이요? 어, 그, 여자친구?”

- 아, 아뇨! 친동생이에요.

“아아. 친동생. 그런데 왜 동생분이…?”

유지경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그건 둘째 치고 그 동생이 왜 자신에게 전화를 한단 말인가?

- 오빠가 얼마 전에…

이어지는 목소리에 유지경은 전화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유지경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사람 가지고 놀면 재밌어요?”

- 네?

“왜 이딴 장난전화를 하냐고! 너는 씨발 애미 애비도 없…”

-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한테 유일한 친구 분이라 전화 드린 거예요.

“뭐?”

여자가 말을 이었다.

- 오빠 폰에 있는 전화번호부에… 친구 목록에 딱 하나 있었어요. 유지경 씨 한 분이요.

“…….”

- 친구 분한테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문자를 안 보시길래….

“…조금 전에 한 말은 죄송해요.”

- 아니요. 오히려 화내 주셔서 고마운 걸요. 우리 오빠한테 그래도 친구 한 명은 있었네요…. 그, 시간 되시면, 와주시면 고맙겠어요.

유지경은 알겠노라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폰을 확인해 보니 이미 낮에 문자가 와있었다.

- 서재필, 서애라의 아들 故서주환님께서 별세하셨기에 부고를 알립니다.

- (상 주): 서재필, 서애라, 서주희.

- (빈 소): …….

유지경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장난질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질 나쁜 장난전화이기를 바랬는데.

“개새끼. 끝까지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이미 수년에 걸쳐 옛적에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가슴 언저리가 답답해졌다.

“번호 지웠다고 했으면서….”

물기 때문에 눈앞이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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