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스타일 완성
“그동안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요?”
서주환은 얼탱이가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요즘은 옛스러운 어조로 띠껍게 구는 게 최신트렌드인가?
그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뭐 용돈 필요하냐? 아니면 방송 한 번 더 나가줘?”
“아이. 그런 게 아니라요~ 주희는 오라버니가 존경스러워서 그렇…”
“멈춰!”
“우븝?”
손을 뻗어서 여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몸에 닭살이 돋아서 못 견디겠다. 이 정도면 마귀가 씌인 게 아닐까.
“이브느으으!”
서주희가 팔뚝을 탁탁 치면서 저항했다. 드디어 제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제야 볼을놔주었다.
“콜록. 아니, 왜 고맙다고 해도 난리… 가 아니라.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아프잖아요~.”
“그만해라, 진짜. 쫓아내버리기 전에.”
“쳇. 좋아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뭘 근거로?”
“오빠가 읽던 라노벨? 여동생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제목이 분명 내여…”
“야 이! 그거 1권만 사고 다음 권은 있지도 않은 걸 봤냐!”
분명 집에 ‘내 여동생이 너무 사랑스럽다’라는 제목의 책이있긴 하다. 한창 라이트 노벨을 위주로 읽을 때 인기가 좋다기에 샀던 것이다. 하지만 취향이 아니어서 다음 권을 사지 않은 건 물론 1권마저도 구석에 처박아뒀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 그걸 봤다는 건 서주희가 그의 방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너 내 방 뒤졌냐?”
“엑. 아, 음… 미안. 소설 좀 읽어보고 싶어서.”
서주희는 순순히 사과했다. 크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소설이라는 말이 걸렸다.
서주환은 이상한 걸 들었다는듯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소설? 너 책 안 읽잖아.”
“아니 뭐. 오빠가 본격적으로 글 쓴다니까 어떤 거 쓰나 좀 궁금해져서.”
그가 쓴 글을 보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서주환은 고개를 저었다.
“내 건 종이책으로 없어.”
“엥? 그럼? 나는 분명 내 여동생? 그게 오빠가 쓴 건 줄 알았는데.”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네가 내 동생인데 내가 그런 걸 쓰겠냐?”
“쳇. 수아 보고 썼을 수도 있지.”
“으,응? 나?”
가만히 있던 한수아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눈망울을 깜빡였다. 왜인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혹여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서주희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들어오기나 해. 추우니까 얼른 문 닫고.”
“씨이. 맨날 나만 갖고 뭐라 그래. 난 고마워서 그런 건데.”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노트북 때문에 기행을벌인 거였다. 편집을 한다고 해서 가성비 따지지 않고 최신형 깔쌈한 놈으로 맞춰준 게 화근이었다. 괜히 좋은 거 줘서 못 볼 꼴을 봐버렸다.
“맞다. 오빠, 이거 엄마가 갖다 주래.”
“아, 나도! 엄마가 환이 오빠 갖다 주라고 했어!”
두 여동생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 봉다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갖가지 반찬들이었다.
“안 그래도 반찬 살 때가 됐었는데. 수아야, 아주머니한테 전해… 아니다. 내가 직접 전화할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반찬 싸주셔서 감사드려요. 네? 결혼 언제 할 거냐고요? 에이, 저번에 5년 뒤라고 얘기했잖아요.”
“아, 엄마아! 이상한 소리 그만해!”
여전하신 분들이다. 밖으로 새어나간 대화 내용에 한수아가 빨개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서주환은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린 후 부엌으로 향했다.
“뭐 먹을래?”
“엑. 오빠가 하게?”
“반응 봐라. 그럼 굶던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해주려고.”
그 말에 서주환은 식겁하며 두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됐으니까 그냥 앉아 있어. 누굴 암살하려고.”
“환이 오빠 너무해!”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보자!”
시무룩한 한수아와 성인 난 서주희의 말 따위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다른 건 몰라도 두 사람에게 요리는 못 맡긴다. 어찌된 게 둘 모두 부모님의 요리 실력을 이어받지 못 했다. 괴식은 사양이었다.
반면 서주환은 나름 다년간의 자취생활로 다져진 요리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특별한 건 못 만들어도 기본 이상은 한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요리 재능을 이어받은 건 그인 듯했다. 상태창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대충 C정도는 되지 않을까.
‘흠. 뭐가 없네.’
장을 본 지가 좀 돼서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는 대충 햄과 김치, 파를 꺼내서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익숙한 칼질로 대파를 썰었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던 서주희와 한수아의 놀란 소리가 들렸다. 고작 칼질 가지고 그러는 게 우스워서 실소를 흘렸다.
치이이익.
파기름을 내고 햄과 밥,김치를 볶은 후에식용유, 설탕, 간장, 참기름으로 양념을 쳐준다. 마지막으로 보기 좋게 부친 계란 후라이를 밥 위에 올려주면 김치볶음밥 완성이다.
“너무 많이 만들었나?”
세 사람 몫을 만든다는 게 양 조절을 잘못한 것 같다. 곤란한 듯 눈썹을 긁적인 서주환은 이내 밥그릇에 적당량을 덜었다.
“남으면 한 끼 더 먹지 뭐.”
세팅이 끝나고 두 사람을 불렀다.
“헐. 이걸 오빠가 만들었다고?”
“환이 오빠 요리 잘하네…?”
두 사람이 가져 온 반찬까지 곁들이니 김치볶음밥 하나로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낯간지러우니까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아~.”
*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밥은 남김없이 비워졌다. 서주희와 한수아는 이게 왜 맛있는 거냐고 분해하며 요리 연마를 다짐했다. 서주환은 당분간 두 사람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설거지는 한수아가 하고, 집 청소는 점순이가 했다.
청소를 마친 점순이가 활기차게 말한다.
“빨리 가자!”
“어딜?”
“당연히 홍대지. 우리가 오늘 옷 사주겠다고 했잖아.”
서주희와 한수아가 찾아 온 이유였다. 두 사람은 지난번 방송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그에게 옷을 사주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거절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아직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 수익창출 안 되지 않아?”
위튜브는 수익창출을 위한 구독자 달성 기준이 따로 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릭키는 기준이 없지만 아직 정산할 수 있는 날짜가 안 됐을 터였다.
한수아가 곰돌이 그림이 새겨진 지갑을 꺼내 보이며 말한다.
“헤헤. 오빠 옷 사려고 이번 달 용돈 아껴놨어. 저번 달에 남은 용돈도 있고.”
“나도 저금통 깼어.”
서주환은 두 여동생이 기특하면서도 코 묻은 애들 돈으로 옷을 사도 되나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고민이 단번에 없어졌다.
“오빠 내일부터 대학 평소처럼 입고 가면 분명히 아싸 된다?”
“맞아. 환이 오빠, 대학가서도 친구없으면 슬프잖아.”
약 올리는 게 아니라 진심어린 표정이라는 게 더 화가 난다.
“이것들이.”
“에이. 화내지 말고,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니까?”
“솔직히 오빠 옷 입는 건 좀….”
“아니, 내가 옷 입는 게 뭐 어때서.”
절레절레.
말없이 고개만 젓는 두 사람.
“허. 그래, 가자.”
양심의 가책 없이 뜯어 먹어야겠다.
*
옷을 사러 나왔지만 홍대로 가지는 않았다. 일전에 최미화를 만나기 전에 가려고 했던 ‘스타일 완성’의 개장일이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1번가 거리를 거니는데, 서주희와 한수아가 그에게 눈을 떼지 못 했다.
서주희가 이상하다는 듯 연신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왜 옷이 괜찮지? 그거 오빠가 산 거 맞아?”
“그렇다니까.”
“이상하네. 오빠가 옷을 무난하게 잘 입을 리가 없는데….”
서주환은 패션 갤러리에서 골라준옷을 입고 있었다. 동생의 말에 뜨끔했지만 그는 뻔뻔하게 자신이 고른 옷이라며 우겼다.
‘…앞으로도 직접 사지는 말자.’
갤러리 유저들이 오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친동생은 물론 한수아까지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면 패션 센스가 없는 게 확실했다. 그는 옷을 잘 골라주기로 소문이 자자한 스완의 단골손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근처에 도착했을 쯤 한수아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환이 오빠.”
“응?”
“키가 더 커진 것 같아.”
“오. 티 나? 이제 177이야. 180까지 머지않았다.”
서주환은 뿌듯하게 웃었다. 얼마 전 아이템 덕분에 1cm가 커졌는데, 다리만 길어져서 비율이 더 좋아졌다. 목표로 했던 180이 넘으면 그야말로 8등신 비율이 될 지도.
“오빠가 가자던 곳이 여기야?”
“맞아.”
“사람이 아예 없는데…? 다른 데 가면 안 돼? 홍대가 많아서 좋은데.”
서주희는 홍대로 가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패션하면 홍대라는 인식이 강한 걸까. 물론 그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쪽은 개성이 너무 강해서 취향이 아니었다.
“일단 들어가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종소리와 동시에 외침이 들리더니 여자 한 명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서주환은 여자를 보고 살짝 뒷걸음쳤다.
‘…다른 데 갈까?’
그가 보기에 여자의 옷차림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가슴 위로 쇄골까지 훤히 드러나는 상의. 그 위에 걸친 가죽 재킷. 아래로는 검정색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는데, 구멍 사이로 보이는 그물 망사가 살짝 드러난 배까지 이어져 있었다. 머리는 또 왜 녹색 빛을 띄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괴랄한 패션인지.
패션에 문외한인 그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완 맞는데?’
벽면에 붙은 가게 로고는 분명 소문으로 듣던 스타일완성(Style Completion)이 맞다. 잘못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두 여동생의 반응이 이상했다.
“와. 저 언니 패션 끝내준다.”
“응응! 진짜멋있다.”
둘이 속닥거리더니 과연 여기로 오자고 한 이유가 있었다며 그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의문이 드는 순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 온 여자가 말을 걸었다.
“자, 자. 여기로 오세요. 어떤 스타일 원하세요? 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맞춰드릴게요. 아, 첫 손님이니까 세 벌 이상 사면 서비스로 만 원 이하로 장신구도 드릴게요. 반지도 있고 목걸이도 있어요.”
개업 첫 손님이었나. 여자가 환한 얼굴로 말을 따발총처럼 쏟아냈다. 어지간한 래퍼보다 딕션이 좋아서 빠르게 말하는데도 귀에 내용이 모두 들어왔다.
여자는 말하면서 세 사람을 순식간에 훑더니 서주환의 손을 잡았다. 그가 물주라고 생각한 걸까.
“와. 남자 분 너무 잘생기셨다. 옷도 잘 입으셨네요? 그런데 제가 추천해드리면 더 멋있어질 것 같아요. 다리가 길어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긴 하겠지만요.”
“하하…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우니까 좀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 이래서 혼자 고를 수 있는 옷가게를 선호했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서주희와 한수아는 여자가 믿음직해 보인 듯했다.
“언니, 이 오빠 좀 꾸며주세요. 원래 저희가 골라주려고 했는데 언니가 더 잘 고를 것 같아요.”
언제 봤다고 언니인지 모르겠다.
여자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기분 좋게 웃으며 응대한다. 어느새 타깃을 변경했는지 서주환의 손을 놓았다.
“어머, 예쁜 동생들 생겼네? 몇 살이에요?”
“고3이에요.”
“와. 고삼? 어쩐지 피부가 너무 좋더라.”
“편하게 말하세요. 왠지 여기 단골 될 것 같아서.”
“그럼 그럴까?”
대화의 흐름이 너무 빨랐다. 요즘 인싸들은 이런가 의문이 든다. 만난 지 몇 분 만에 언니 동생이라니.
“남자 분은… 누구 남자친구?”
“엑.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친동생이고 얘는… 음.”
“저, 저도 그냥 친한 동생이에요.”
“흐응~.”
“그, 그보다 환이 오빠 내일 대학 가야 되니까 잘 부탁드려요. 아싸 되면 안 되거든요!”
“뭐? 푸훗. 아, 죄송해요.”
하나도 안 죄송한 표정이었다. 물주고 자시고 결정권이 그에게 없다는 걸 알아챈 걸까. 어느새 여자는 두 여동생을 사로잡았다.
서주희가 한수아의 말을 받았다.
“그럼 좀 세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언니 입은 거 보니까 가죽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튀면 아싸는 면할 거 아니야.”
“…….”
서주환은 생각했다.
전부 꺼져줬으면 좋겠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