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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화 〉스타일 완성 (57/501)



〈 57화 〉스타일 완성

“그동안 기체후 일향 만강하옵신지요?”

서주환은 얼탱이가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봤다. 요즘은 옛스러운 어조로 띠껍게 구는  최신트렌드인가?

그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뭐 용돈 필요하냐? 아니면 방송  번 더 나가줘?”
“아이. 그런 게 아니라요~ 주희는 오라버니가 존경스러워서 그렇…”
“멈춰!”
“우븝?”

손을 뻗어서 여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몸에 닭살이 돋아서 못 견디겠다. 이 정도면 마귀가 씌인 게 아닐까.

“이브느으으!”

서주희가 팔뚝을 탁탁 치면서 저항했다. 드디어 제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그제야 볼을놔주었다.

“콜록. 아니, 왜 고맙다고 해도 난리…  아니라. 오라버니  그러세요. 아프잖아요~.”
“그만해라, 진짜. 쫓아내버리기 전에.”
“쳇. 좋아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뭘 근거로?”
“오빠가 읽던 라노벨? 여동생물 좋아하는  같던데. 제목이 분명 내여…”
“야 이! 그거 1권만 사고 다음 권은 있지도 않은 걸 봤냐!”

분명 집에 ‘내 여동생이 너무 사랑스럽다’라는 제목의 책이있긴 하다. 한창 라이트 노벨을 위주로 읽을  인기가 좋다기에 샀던 것이다. 하지만 취향이 아니어서 다음 권을 사지 않은 건 물론 1권마저도 구석에 처박아뒀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 그걸 봤다는 건 서주희가 그의 방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너 내  뒤졌냐?”
“엑. 아, 음… 미안. 소설 좀 읽어보고 싶어서.”

서주희는 순순히 사과했다. 크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소설이라는 말이 걸렸다.

서주환은 이상한 걸 들었다는듯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소설? 너 책 안 읽잖아.”
“아니 뭐. 오빠가 본격적으로 글 쓴다니까 어떤 거 쓰나  궁금해져서.”

그가 쓴 글을 보려고 했다는 소리였다. 서주환은 고개를 저었다.

“내  종이책으로 없어.”
“엥? 그럼? 나는 분명 내 여동생? 그게 오빠가 쓴 건 줄 알았는데.”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네가 내 동생인데 내가 그런 걸 쓰겠냐?”
“쳇. 수아 보고 썼을 수도 있지.”
“으,응? 나?”

가만히 있던 한수아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눈망울을 깜빡였다. 왜인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혹여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서주희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들어오기나 해. 추우니까 얼른 문 닫고.”
“씨이. 맨날 나만 갖고 뭐라 그래. 난 고마워서 그런 건데.”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노트북 때문에 기행을벌인 거였다. 편집을 한다고 해서 가성비 따지지 않고 최신형 깔쌈한 놈으로 맞춰준 게 화근이었다. 괜히 좋은 거 줘서   꼴을 봐버렸다.

“맞다. 오빠, 이거 엄마가 갖다 주래.”
“아, 나도! 엄마가 환이 오빠 갖다 주라고 했어!”

 여동생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 봉다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갖가지 반찬들이었다.

“안 그래도 반찬 살 때가 됐었는데. 수아야, 아주머니한테 전해… 아니다. 내가 직접 전화할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반찬 싸주셔서 감사드려요. 네? 결혼 언제 할 거냐고요? 에이, 저번에 5년 뒤라고 얘기했잖아요.”
“아, 엄마아! 이상한 소리 그만해!”

여전하신 분들이다. 밖으로 새어나간 대화 내용에 한수아가 빨개진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서주환은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린  부엌으로 향했다.

“뭐 먹을래?”
“엑. 오빠가 하게?”
“반응 봐라. 그럼 굶던가.”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해주려고.”

그 말에 서주환은 식겁하며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

“됐으니까 그냥 앉아 있어. 누굴 암살하려고.”
“환이 오빠 너무해!”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

시무룩한 한수아와 성인 난 서주희의 말 따위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다른  몰라도 두 사람에게 요리는 못 맡긴다. 어찌된 게 둘 모두 부모님의 요리 실력을 이어받지 못 했다. 괴식은 사양이었다.

반면 서주환은 나름 다년간의 자취생활로 다져진 요리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특별한 건 못 만들어도 기본 이상은 한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요리 재능을 이어받은 건 그인 듯했다. 상태창에 표시되진 않았지만 대충 C정도는 되지 않을까.

‘흠. 뭐가 없네.’

장을  지가 좀 돼서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는 대충 햄과 김치, 파를 꺼내서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익숙한 칼질로 대파를 썰었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던 서주희와 한수아의 놀란 소리가 들렸다. 고작 칼질 가지고 그러는 게 우스워서 실소를 흘렸다.

치이이익.

파기름을 내고 햄과 밥,김치를 볶은 후에식용유, 설탕, 간장,  참기름으로 양념을 쳐준다. 마지막으로 보기 좋게 부친 계란 후라이를 밥 위에 올려주면 김치볶음밥 완성이다.

“너무 많이 만들었나?”

세 사람 몫을 만든다는 게  조절을 잘못한 것 같다. 곤란한 듯 눈썹을 긁적인 서주환은 이내 밥그릇에 적당량을 덜었다.

“남으면 한 끼  먹지 뭐.”

세팅이 끝나고 두 사람을 불렀다.

“헐. 이걸 오빠가 만들었다고?”
“환이 오빠 요리 잘하네…?”

 사람이 가져 온 반찬까지 곁들이니 김치볶음밥 하나로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낯간지러우니까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아~.”

*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밥은 남김없이 비워졌다. 서주희와 한수아는 이게 왜 맛있는 거냐고 분해하며 요리 연마를 다짐했다. 서주환은 당분간 두 사람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설거지는 한수아가 하고, 집 청소는 점순이가 했다.
청소를 마친 점순이가 활기차게 말한다.

“빨리 가자!”
“어딜?”
“당연히 홍대지. 우리가 오늘 옷 사주겠다고 했잖아.”

서주희와 한수아가 찾아 온 이유였다.  사람은 지난번 방송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그에게 옷을 사주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거절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아직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 수익창출 안 되지 않아?”

위튜브는 수익창출을 위한 구독자 달성 기준이 따로 있다. 인터넷 방송 플랫폼인 트릭키는 기준이 없지만 아직 정산할  있는 날짜가  됐을 터였다.

한수아가 곰돌이 그림이 새겨진 지갑을 꺼내 보이며 말한다.

“헤헤. 오빠 옷 사려고 이번 달 용돈 아껴놨어. 저번 달에 남은 용돈도 있고.”
“나도 저금통 깼어.”

서주환은 두 여동생이 기특하면서도  묻은 애들 돈으로 옷을 사도 되나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고민이 단번에 없어졌다.

“오빠 내일부터 대학  평소처럼 입고 가면 분명히 아싸 된다?”
“맞아. 환이 오빠, 대학가서도 친구없으면 슬프잖아.”

약 올리는  아니라 진심어린 표정이라는 게 더 화가 난다.

“이것들이.”
“에이. 화내지 말고,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니까?”
“솔직히 오빠 옷 입는  좀….”
“아니, 내가 옷 입는  뭐 어때서.”

절레절레.
말없이 고개만 젓는 두 사람.

“허. 그래, 가자.”

양심의 가책 없이 뜯어 먹어야겠다.

*

옷을 사러 나왔지만 홍대로 가지는 않았다. 일전에 최미화를 만나기 전에 가려고 했던 ‘스타일 완성’의 개장일이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1번가 거리를 거니는데, 서주희와 한수아가 그에게 눈을 떼지  했다.

서주희가 이상하다는 듯 연신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왜 옷이 괜찮지? 그거 오빠가 산 거 맞아?”
“그렇다니까.”
“이상하네. 오빠가 옷을 무난하게 잘 입을 리가 없는데….”

서주환은 패션 갤러리에서 골라준옷을 입고 있었다. 동생의 말에 뜨끔했지만 그는 뻔뻔하게 자신이 고른 옷이라며 우겼다.

‘…앞으로도 직접 사지는 말자.’

갤러리 유저들이 오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친동생은 물론 한수아까지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면 패션 센스가 없는 게 확실했다. 그는 옷을  골라주기로 소문이 자자한 스완의 단골손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근처에 도착했을 쯤 한수아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환이 오빠.”
“응?”
“키가 더 커진 것 같아.”
“오. 티 나? 이제 177이야. 180까지 머지않았다.”

서주환은 뿌듯하게 웃었다. 얼마 전 아이템 덕분에 1cm가 커졌는데, 다리만 길어져서 비율이 더 좋아졌다. 목표로 했던 180이 넘으면 그야말로 8등신 비율이  지도.

“오빠가 가자던 곳이 여기야?”
“맞아.”
“사람이 아예 없는데…? 다른 데 가면  돼? 홍대가 많아서 좋은데.”

서주희는 홍대로 가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패션하면 홍대라는 인식이 강한 걸까. 물론 그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쪽은 개성이 너무 강해서 취향이 아니었다.

“일단 들어가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종소리와 동시에 외침이 들리더니 여자 한 명이 후다닥 뛰어나왔다. 서주환은 여자를 보고 살짝 뒷걸음쳤다.

‘…다른  갈까?’

그가 보기에 여자의 옷차림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가슴 위로 쇄골까지 훤히 드러나는 상의. 그 위에 걸친 가죽 재킷. 아래로는 검정색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는데, 구멍 사이로 보이는 그물 망사가 살짝 드러난 배까지 이어져 있었다. 머리는 또  녹색 빛을 띄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괴랄한 패션인지.

패션에 문외한인 그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완 맞는데?’

벽면에 붙은 가게 로고는 분명 소문으로 듣던 스타일완성(Style Completion)이 맞다. 잘못 들어온  아니었다.

그런데 두 여동생의 반응이 이상했다.

“와. 저 언니 패션 끝내준다.”
“응응! 진짜멋있다.”

둘이 속닥거리더니 과연 여기로 오자고  이유가 있었다며 그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다.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의문이 드는 순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 온 여자가 말을 걸었다.

“자, 자. 여기로 오세요. 어떤 스타일 원하세요? 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맞춰드릴게요. 아, 첫 손님이니까 세 벌 이상 사면 서비스로 만 원 이하로 장신구도 드릴게요. 반지도 있고 목걸이도 있어요.”

개업 첫 손님이었나. 여자가 환한 얼굴로 말을 따발총처럼 쏟아냈다. 어지간한 래퍼보다 딕션이 좋아서 빠르게 말하는데도 귀에 내용이 모두 들어왔다.

여자는 말하면서  사람을 순식간에 훑더니 서주환의 손을 잡았다. 그가 물주라고 생각한 걸까.

“와. 남자 분 너무 잘생기셨다. 옷도 잘 입으셨네요? 그런데 제가 추천해드리면 더 멋있어질 것 같아요. 다리가 길어서 뭘 입어도 잘 어울리긴 하겠지만요.”
“하하… 감사합니다.”

부담스러우니까 좀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 이래서 혼자 고를  있는 가게를 선호했던  떠올랐다.

하지만 서주희와 한수아는 여자가 믿음직해 보인 듯했다.

“언니, 이 오빠 좀 꾸며주세요. 원래 저희가 골라주려고 했는데 언니가 더 잘 고를 것 같아요.”

언제 봤다고 언니인지 모르겠다.
여자는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기분 좋게 웃으며 응대한다. 어느새 타깃을 변경했는지 서주환의 손을 놓았다.

“어머, 예쁜 동생들 생겼네? 몇 살이에요?”
“고3이에요.”
“와. 고삼? 어쩐지 피부가 너무 좋더라.”
“편하게 말하세요. 왠지 여기 단골 될 것 같아서.”
“그럼 그럴까?”

대화의 흐름이 너무 빨랐다. 요즘 인싸들은 이런가 의문이 든다. 만난 지 몇 분 만에 언니 동생이라니.

“남자 분은… 누구 남자친구?”
“엑.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친동생이고 얘는… 음.”
“저, 저도 그냥 친한 동생이에요.”
“흐응~.”
“그, 그보다 환이 오빠 내일 대학 가야 되니까  부탁드려요. 아싸 되면 안 되거든요!”
“뭐? 푸훗. 아, 죄송해요.”

하나도 안 죄송한 표정이었다. 물주고 자시고 결정권이 그에게 없다는 걸 알아챈 걸까. 어느새 여자는 두 여동생을 사로잡았다.

서주희가 한수아의 말을 받았다.

“그럼 좀 세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언니 입은 거 보니까 가죽도 괜찮을  같은데. 일단 튀면 아싸는 면할 거 아니야.”

“…….”

서주환은 생각했다.
전부 꺼져줬으면 좋겠다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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