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S급 재능 조각 (54/501)



〈 54화 〉S급 재능 조각

민가희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주환은 섣불리 대답하는 대신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민가희의 어머니는 해외에서도 이름을 알린 성악가였고, 아버지는 국내의 유명한 가수였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 하고 떠올릴 수 있을만한 사람들.

“어렸을 때부터 시선을 많이 받았겠네.”

덕분에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다. 그녀의 부모님보다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법석이었다.

“네. 뭐든 곧잘 배워서 더 그랬어요.”

재능이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그녀 자신 또한 음악이 재밌었기에 어려서부터 몰두해왔다. 쏟아지는 관심에 부담감보다 즐거움을 느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었다.

노래도, 악기도.
남들보다 쉽게 배우고 익혔다.
어린 나이에 신동이라며 방송을 타기도 했었다.

그러나 재능이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스스로도  수 없는 법.

성장의 정체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잘 늘지 않더라고요. 물론 제자리에 멈춰 있는 건 아니었지만….”

중학생쯤부터 얼핏 그런 기색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연습하고 실력을 갈고 닦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예고에 진학한 후.

“순식간에 따라잡히고 뒤쳐졌어요.”

민가희는 뛰어난 어머니와 아버지 밑에서 재능을 빠르게 개화했다. 덕분에 언제나 또래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체된 순간,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분명 제가  잘했었는데, 뒤처지는 걸 눈앞에서 보니까 좀, 아니 많이 분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슬기한테 미안했어요. 둘이서 같이 데뷔하자고 했었는데….”

그리 말하는 민가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그럼 술집에서 그랬던 게….’

이제야 그 당시 윤슬기가 보인 반응을 이해할  있었다. 같이 데뷔하기로 약속 친구가 술 먹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니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겠지.

‘힘들었겠네.’

민가희가 느꼈을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뒤늦게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기분은 어떠했을까.

유명 성악가의 딸.
유명 가수의 딸.

부모의 유명세 때문에 더욱 비교되기도  것이다. 그녀를 질시했던 누군가는 뒤에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눈새인 척 하는  오히려 편할 때도 많거든요.’ 라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지례짐작일 뿐이지만, 그런 성향은 뒤에서 수근대는 말을 못들은 체 하며 만들어진 게 아닐까.

“히히. 오빠 덕분에 속이 좀 

이야기를 마친 민가희는 예의 빙구 같은 웃음을 지었다.
서주환은 그녀의 파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심히 했네.”

이제껏 열심히 달려온 게 기특하고 대견했다.
누군가는 고작 21살의 짧은 인생으로 뭘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순간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고마워요.”

민가희는 다시 웃음을 흘리며 그의 손길을 즐기듯 강아지처럼 머리를 부볐다.

서주환은 그녀의 머릿결을 쓸어주며 말했다.

“가희야.”
“네?”
“여전히 음악이 좋은 거지?”
“…네.”

대답은 늦었지만 고개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벽을 느끼고도포기하지 않은  그의 말처럼 음악이 좋아서였으니까.

서주환은 그녀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가 뭐 대단한 걸 할 수는 없었지만…

“작곡을 해보는 건 어때?”

넌지시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었다.

*

다음날.

서주환은민가희를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탔다.

‘아, 피곤해.’

오후인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한숨 잘 생각이었는데 그른  같았다.

‘차를 한 대 살까?’

회귀 전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면허를 땄었다. 지금 당장 차를 사기 위해서는 면허 시험부터 봐야한다.

‘차를 산다니. 뭐가 좋으려나.’

회귀 전에는 면허를따고도 차를 사지 않았다. 돈을 떠나서 불행한 운수 탓에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행은 고사하고 행운이 넘쳐난다.

축복의 기간이 조만간 끝난다 해도 이전과 같지는 않을 터. 좀 더 지내보며자차 장만을 고민해 봐야겠다.

- 1호선 환승역입니다. 환승을 원하시는 손님 여러분은…

‘오. 자리 있다.’

다행히 환승 전철에는 자리가 많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욕망 시스템에 대해 생각했다.

‘재능이라. 진짜 축복은 이거네.’

 있으면 기간이 끝나는 두 개의 축복보다 시스템 자체의 성능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을 볼 수 있고, 타인의 재능을 습득할 수 있으며, 포인트로 등급마저 빠르게 올릴  있다.
레벨에 따른 제약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특혜였다.

재능하니까 집에 가고 있을 민가희의 S급 작곡 재능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려나.’

이미 길은 제시해 주었다.
당시 민가희는 뜬금없이  작곡이냐는 얼굴이었지만…그 이후 어떤 길을 갈지는 그녀가 선택해야  문제였다.

‘알아서 하겠지.’

재능이 아깝다 해도 옆에 딱 붙어서 작곡을 하도록 이끄는  지나친 오지랖이었다. 번호를 교환했으니 나중에라도 작곡을 하게 된다면 소식을 들을  있겠지.

서주환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밤새 쌓인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단 퀘스트 보상으로 1만 LP. 이번에는 추가 달성이 없네.’

그 외에는 『클럽녀 헌팅』이라는 업적으로 2,000LP를 습득했고, 중급 페티시  개를 수집하여 10,000LP를 얻었다.

‘아, 재능은 노래네.’

서주환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S급의 『작곡』 재능을 습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B급 재능인 『노래』를 얻었다.

‘이것도 나쁘진 않아.’

춤이나 노래 등 예체능 쪽 재능은 그렇지 않아도 탐내고 있던 부류였다. 막연한 환상이랄까. 그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습득한 재능을 확인하고 창을 닫으려는 때.
여태껏 본 적 없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S급 재능을 보유한 여성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S급 재능 조각을 습득했습니다.]

‘S급 재능 조각?’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름.
서주환은 아이템 설명을 불러냈다.

【S급 재능 조각】
▶ 효과1: 상점에 팔아 100,000LP를 획득할 수 있다.
▶ 효과2: 조각 10개를 모아 『S급 재능석』을 만들 수 있다.

지나치게 간단한 설명. 『S급 재능석』이 무엇인지에 대한 건 나와 있지도 않았다.

서주환은 루시에게 말을 걸었다.

‘루시, 설명해줘. S급 재능석이 뭐야?’
[재능을 S등급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강화 재료입니다.]
‘그냥 레벨만 올리면 되는 게 아니었어?’

시스템 레벨에 따라 재능과 스킬의 등급 제한이 풀린다. 이제껏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S급 재능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욕망 포인트(LP)로 올릴 수 있는 등급의 한계는 A+까지입니다. 다음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재능석이 필요하죠. 참고로 주인님께서 민가희에게 작곡 재능을 얻었다면 A+로 등록되었을 거랍니다.]
‘쯧. 거저 주지는 않겠다는 건가. 아니, 아니지.’

서주환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해도 투정할 거리는 아니지 싶었던 것이다. A+만으로도 세계에서 충분히 통하는 재능이다. S급은  그냥 안 주냐고 불만을 가지기엔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이미 있는 능력에 감사하면 감사했지.’

물론 A+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조건이 걸리니까 의욕이 더 샘솟았다. 이만한 능력을 가졌는데 정점을 한 번 찍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걱정이라면.

‘10개라. 평생 가도  되는 건 아니겠지?’

지구를 통틀어도 천재라 불리우는 S급 재능의 소유자를  명이나 만나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조각을 얻기 위해서는 모두가 여자여야 한다. 열 명의 여자와 만난다고 해도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난제까지 있었으니.

‘애초에  명을 만나지도 못 하는 건…’
[그건 아니에요. S급 재능이 귀한  맞지만 주인님의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거랍니다.]

루시가 희망을 주었다.

‘그래?’
[네. 그러한 재능도 귀하지만, 그들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니까요.]
‘아.’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민가희만 해도 S급 작곡 재능이 있는데 다른 우물을 파고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의외로 금방 모을 있을지도 몰랐다.

희망에 부푼 그에게 루시가 초를 쳤다.

[물론, 그렇다 해도 쉽지는 않겠지만요.]
‘하나만 해라, 좀.’

밀당하는 것도 아니고.

*

[축복,『몽마신의 축복』효과가 사라집니다.]
[축복,『헬창의 축복』효과가 사라집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으악! 축복 내놔!”

사실 축복이 끝난 당일에는 달라진 점을 체감하지 못 했다. 그러나 사흘 만에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큰 혜택을 받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우선 『헬창의 축복』.

항상 하던 운동을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평소와 전혀 다른 근육통이 몸을 덮쳐 왔다. 전신이 삐걱거려서 다음날 운동을 하루 쉬어야만 했다.

축복이 사라지고 운동을 해보니 그동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강도로 해왔는지 실감이 났다.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난 자리는 안다고, 지독한 역체감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매일 같이 온몸을 조지던 루틴을 평범한 운동인들처럼 바꿔야만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몽마신의 축복』은 지금까지 서주환에게 가지 효과를 제공해왔다.

【몽마신의 축복】
▶ 효과1: 성(性)과 관련된 행운이 대폭 상승한다.
▶ 효과2: 어떤 일을 숙련할 때 200% 추가 효과를 받는다.
 효과3: 정력이 샘솟는다.

성에 관한 행운이 줄자 새로운 여성들과 눈 마주치기도 힘들었다. 엮일 일이 도무지 일어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건 서주환이 헬스장을 갈  외에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  수 있었다.

두 번째 효과는 『헬창의 축복』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쉬웠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효과는 아니었다.
축복이 사라지니 회귀 전의 병세가 떠오르며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다.

“내정력 돌려줘어어어!”

불알이 텅텅 빈 느낌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