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Feels good(2)
“…왜 울어?”
서주환은 엄지로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러나 다시 손 틈 새로 눈물이 흐른다.
한 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어, 어? 나 왜 울어? 이게 왜 안 멈추지…?”
민가희는 정말로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얼굴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연신 눈가를 닦아낸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눈가는 눈물로 얼룩지며 일그러졌다.
와락.
서주환은 떨어진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민가희가 당황한 소리를 내며 품 안을 빠져나오려는 듯 꼼지락거린다.
“오, 오빠? 이거 놔줘요. 저 괜찮아요. 진짜 괜찮은데….”
그리 말하는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만 있지 울음기는 없었다.
그렇기에 더 안타깝다.
스스로도 우는 이유를 모른다는 건 그만큼 쌓아 온 게 많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냥 울어.”
“네?”
품에 안은 민가희의 등을 위로하듯 쓸어내렸다.
그로서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 한다.
다만 위로해주고 싶었다.
서주환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의 모습 위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기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전혀 슬픈 감정이 들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괜찮다며 외면한 거겠지.
그러나 쌓이고 쌓인 감정은 아무리 외면해도 언젠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차라리 더 쌓이기 전에 빨리 울어서 다행이었다.
“소리 내서 울어도 돼. 여기엔 우리밖에 없으니까.”
“…….”
“난 어차피 오늘 만난 사람이잖아. 참을 필요 없어.”
때로는 가까운 사이보다 낯선 사람이 편할 때도 있는 법이다.
특히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일 때는.
“저 진짜 괜… 흑.”
“괜찮아. 듣는 사람 없어.”
“흐윽…”
“…….”
토닥토닥.
우는 아이를 달래듯 등을 쓸어주었다.
치유의 손길이 도움이 될까.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손길을 활성화시켰다. 성욕을 증가시킬 때와 달리 따스한 느낌을 주는 빛이 미약하게나마 손길에 어린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에 감정이 북받쳤을까.
“흑, 흐으엉~”
이내 그녀가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물기로 젖어갔다.
*
우는 건 익숙하지 않다.
눈물 흘리기보다 웃는 걸 좋아했다.
웃으면 복이 오고 행복해진다는 말을 믿었다.
‘입가에 미소 짓고 행복하게~’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워 넣어~’
그가 선곡한 노래는 자신도 좋아하는 노래였다.
사랑으로 가득하고, 밝은 미소가 눈에 보이는 듯한 가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웃는 얼굴이 되었다. 술집에서 있었던 슬기와의 트러블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래로 웃음을 채워 넣어야지.
‘눈물이 흐르면 그냥 울어 버려-’
‘또 한 번 아프다면 웃어 버려-’
‘마음에 사랑만을 가득 채워-’
하지만 오늘따라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술을 마셔서일까?
분명 행복한데도 웃기가 힘들었다.
처음 온 클럽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처음 해본 헌팅도 성공적이었고
처음 헌팅을 해본 남자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행복해서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왜 울어?”
그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말을 듣고 눈가를 만진 뒤에야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 어? 나 왜 울어? 이게 왜 안 멈추지…?”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오고 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얼른 눈물을 닦고 멈춰야 한다.
그런데- 와락!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벗어나려 했지만 남자의 억센 힘이 몸을 단단히 붙들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신 따뜻한 손이 등을 쓸어주었다. 술집 앞에서 깍지 껴 잡아보았던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그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냥 울어.”
“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 사람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라니.
가장 친한 친구인 슬기 앞에서도 울지 않는데-
“소리 내서 울어도 돼. 여기 너랑 나밖에 없으니까.”
…아, 여기에는 슬기가 없구나.
그래도 아직은 낯선 그가 있다.
“난 어차피 오늘 만난 사람이잖아. 참을 필요 없어.”
하지만 그는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이니까 참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울고 싶지 않아.
“저 진짜 괜… 흑.”
생각과 달리 목이 메여왔다.
아까부터 맘대로 되지 않는 몸 때문에 화가 났다.
“괜찮아. 듣는 사람 없어.”
“흐윽…”
왜, 왜 이 남자는 계속 날 울리려고 하는 건지.
어떻게든 겨우 참고 있었는데-!
…아, 나 참고 있었구나.
깨달은 순간.
토닥토닥, 하고. 크고 단단한 손길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손길은 너무 따뜻하고 또 위로가 되어서-
“흑, 흐윽. 흐으엉~”
참고 참아왔던 감정이 북받치도록 만들었다.
“흐윽, 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천재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나는, 나는 그냥 민가희인데…!”
누구의 딸이 아닌 단지 민가희일 뿐인데 어째서.
다만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인데 왜.
“흐어어엉~!”
그간 알게 모르게 받아 온 상처와 압박이 터져버렸다. 일부러 외면해왔던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마주하는 순간 그렇게나 좋아하던 음악마저 싫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단단히 묵어놓았던 마음이-
“…….”
토닥토닥.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이 따스했다.
등에서 스며드는 듯한 위로가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비로소, 목에 걸린 듯 잘 나오지 않던 가사가 마음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흐르면 그냥 울어 버려.’
그냥, 그냥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
얼마나 울었을까.
“…좀 진정 됐어?”
울다 지친 민가희가 훌쩍훌쩍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끅. 흐르릇!”
“…코 들이키지 말고 풀어. 여기 휴지.”
“프에에엥!”
‘으엑!’
코가 휴지 밖으로 조금 삐져나왔다.
찝찝했지만 티 내지 않고 휴지를 한 장 더 꺼내 닦았다. 민가희의 코도 마저 닦아주었다.
‘으이그. 애네, 애.’
어린 것이 얼마나 참고 살았기에 그리 쌓인 게 많았는지. 한 번 둑이 터지니 세상 서럽게 울어 재꼈지 무언가.
그녀를 보고 있자니 삼십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때 민가희가 다시 품에 안겼다. 아니, 그를 품에 안았다. 덩치 차이 때문에 모양새가 좀 이상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가슴에 얼굴을 묻은 서주환은 생각했다.
‘애라는 거 취소.’
이런 빅- 젖을 가진 여자가 어떻게 애란 말인가.
삼십대로 돌아간 것 같다는 것도 취소다. 가슴에 얼굴 한 번 묻었더니 소중이가 불끈불끈 힘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이십대의 혈기왕성함이 아랫도리에서부터 느껴졌다.
그를 가슴에 묻다시피 끌어안은 민가희가 아직도 울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환 오빠,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지.”
“넹?”
“아냐, 아무것도. 이제 놔줄래?”
“왜요? 남자들은 가슴 좋아하잖아요. 오빠도 엄청 쳐다보던데.”
“…….”
“히히. 고마우니까 서비스.”
일부러 한 거였어? 그런데 왜 앞에 한 말은 못 알아 듣냐?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서주환은 딱 3초 정도 풍요로운 가슴을 만끽하고 그녀의 품을 빠져나왔다.
‘10초 채울 걸 그랬나.’
안면에 남은 감촉 때문에 금방 또 아쉬워졌다.
마약 배게, 아니 마약 가슴이다.
‘진짜 배고 자도 좋을 것 같…’
“오빠.”
민가희가 생각을 끊고 들어왔다.
그녀가 네모난 판을 내밀었다.
“히히. 노래 불러요.”
노래방 리모컨이었다.
“…그렇게 울어놓고?”
“응. 아, 저는 못 부르니까 오빠가 불러줘요.”
“나 랩밖에 못 하는데.”
“전 랩도 좋아요. 아니면 제가 노래 가르쳐 줄까요?”
“오, 그거 좋지.”
아싸였던 서주환은 노래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다.
‘노래 잘 부르면 인싸 같잖아.’
서주환이 생각하는 인싸의 3대 요소.
노래, 악기, 춤.
춤 재능의 특수능력인 『멀티-댄싱라인』도 그 때문에 배운 거였다.
*
랩을 한 곡조 뽑고, 짤막한 노래 강의를 마쳤다.
노래방을 나온 두 사람은 새벽의 홍대 거리를 걸었다.
민가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서주환에게 팔짱을 낀 상태였다.
“새벽인데도 사람이 꽤 있네.”
“그러게요. 오빠도 처음 알았어요?”
“응. 홍대를 밤에 온 건 처음이거든.”
“오빠도? 나돈데. 혹시 클럽도 처음?”
“맞아. 정훈이 형 따라 온 거야.”
“정훈 오빠는 많이 다녀봤죠?”
“어. 그 형은 선수지.”
현역 시절에 같이 근무 서면서 들은 썰만 수십 개였다.
홍대, 강남, 이태원.
이정훈은 안 가본 곳이 없는 전형적인 인싸였다.
불공평하게 부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민가희는 그런 서주환을 올려다보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으음. 선수는 오빠가 더 선수 같은데….”
“내가?”
“네. 여자 많이 꼬셔봤죠?”
“설마. 나 모쏠인데?”
“엑? 거짓말!”
민가희가 기함을 했다.
말해줘도 믿지를 못하니 억울하다.
아니, 좋아해야 되는 건가? 여자 잘 꼬실 것 같다니 조금 기분 좋을지도.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 동작에 의심스런 눈길로 보던 민가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묻는다.
“정말로?”
“그렇다니까.”
“정말에 정말로?”
“정말에 정말에 정말로.”
“헐.”
민가희는 입을 딱 벌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눈이 좀 째졌지만 남자답게 생긴 얼굴로 나름 훈훈한 생김새다.
키도 꽤 큰 편이었고 운동을 한 듯 몸이 탄탄해보였다.
성격이 이상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슴을 너무 쳐다보긴 하지만 그거야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오히려 무던한 성격에 눈치도 빨라서 여자들이 좋아할 법 했다.
‘그런데 모쏠이라고?’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있긴 한가 싶을 정도다.
그녀만 해도 중, 고등학생 시절 남자친구를 두 번은 사귀어봤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도 적은 편이었다.
‘피부가 안 좋아서 그런가?’
그는 꽤 피부가 안 좋은 편이었다. 따로 관리를 안 하는 듯 까슬까슬한 얼굴이다. 여드름 때문에 생긴 잔 상처도 조금씩 보였다. 피부를 신경 쓰는 여자들이 보기엔 조금 마이너스 요소다.
하지만 그것도 관리 안 하는 남자들이 워낙 많으니 남성 평균이다. 모쏠일 이유는 아니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민가희는 골몰히 생각하다가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걸 왜 고민해? 그냥 물어보자.’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본다. 그게 그녀의 성격이었다.
“오빠.”
“응?”
“고백해본 적 있어요?”
“어… 있지? 차였지만.”
“엑. 여자 눈이 엄청 높았나 보네요.”
“말하자면 조금 복잡한데… 눈이 높은 건 아니야. 그냥 누나가 일에 집중하고 싶어 했거든.”
고백한 대상이 누나라는 정보를 얻었다!
연상을 좋아하는 걸까?
서주환과 그녀의 나이 차이는 두 살이나 났다.
“연상 좋아해요?”
“글쎄다? 별로 그런 건 아닌데. 나이는 안 따지는 것 같아.”
서주환은 고개를 저었다.
관계를 맺은 셋 중 두 명이 연상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원래 나이보다 적었으니 연하라고 볼 수도 있었다.
민가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고백 받아본 적은 있어요?”
“음. 그것도 한 번. 아니, 두 번인가? 한 번인 것 같은데.”
임수희에게는 확실히 고백 받았다.
최미화는 애매했고.
민가희는 손가락을 접었다 피는 그를 보며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 그런데 모쏠인 거면 안 사귄 거죠?”
“그렇지?”
“왜요? 고백했던 여자가 안 예뻤어요?”
아니면 가슴이 작았나?
민가희는 여태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가슴을 그의 팔에 더욱 밀착시키고 고개 각도를 기울였다.
그녀는 얼굴에도 나름 자신이 있었다.
반면 서주환은 팔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잊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음. 진짜 왜 거절했지?’
그때 당시에는 그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임수희의 고백은 나이 차이 때문에 거절했다. 연상이 좋긴 해도 좀 더 어린 사람과 풋풋하게 연애하고 싶었으니까.
최미화는 만난 지 두 번째라서 거절했다. 뭘 알지도 못하는데 사귀는 건 꺼려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욕망 시스템….'
정소라에게 고백했을 때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욕망 시스템의 능력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여자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자와 사귈 수 있을까?
한 여자한테 집중할 수 있을까?
서주환은 회의적이었다.
탐나는 재능을 보면 십중팔구는 다른 여자에게 눈이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결국 사귀는 여자에게 상처를 주게 되겠지.
무의식중에 그런 이유로 고백을 거절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오빠?”
“아.”
민가희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은 안 예뻤냐고 했었지? 오히려 나한테 고백한 게 의외일 정도로 예뻤어. 성격도 좋았고.”
“그런데 왜 거절했어요?”
“그냥 연애 생각이 없어서.”
서주환은 일부러 조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민가희가 움찔하며 눈치를 본다.
“그… 오빠가 고백했다던 분 있잖아요. 혹시 아직도 그분 좋아해요?”
“엉? 푸흐. 그야 좋아하긴 하는데.”
“…하는데?”
“이제 그런 감정은 아니야. 그냥 친한 누나 동생이지.”
“그럼 진짜 연애할 생각 없어서 그런 거예요?”
“응. 당장은 생각 없어.”
“왜요? 왜 연애할 생각 없는데요? 네?”
민가희는 꽤 안달 난 듯 질문했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질문은 이제 그만. 그보다 어쩔래?”
“…뭘요?”
“이제 들어갈 거야? 아까는 그런 기분 아니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뭘…”
서주환의 턱짓을 따라 민가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의 눈에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간판이 들어왔다.
T-HOTEL.
“어때. 지금은 그런 기분 들어?”
서주환이 그녀의 파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민가희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