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인마, 밑져도 본전
겉옷은 이용료를 내고 사물함에 넣어뒀다.
팔목에 도장을 찍고 힙합존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큰 음악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밀폐된 공간에서 쿵쿵 거리는 사운드가 울려 퍼지니 심장까지 덩달아서 울리는 느낌이다. 확실히 이런 곳에 있으면 빨라지는 박동 때문에라도 들뜰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정훈이 입가에 미소를 띄고 말했다.
“캬. 이 느낌 오랜만이다. 주환아, 분위기 어때. 괜찮은 거 같아?"
“어. 생각보다 좋은데?”
“자식. 취향이랑 맞나 보네.”
이정훈이 씩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서주환은 반응할 생각도 못 하고 한껏 달아올라 있는 클럽 안을 조금 멍하니 쳐다봤다.
쿵, 쿵, 쿵!
사방에서 쏟아지는 색색깔의 현란한 조명과 심장을 울리는 사운드.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흔들어대는 사람들.
반쯤 미쳐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바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홍대 밤거리만 해도 굉장히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했는데 클럽 안은 그보다 더했다.
정신줄을 놓고 흔들어 재끼는 게 허용된 공간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던가?’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는 게 스스로도 의외였다.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클럽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어깨가 절로 들썩 거릴 정도로 기분이 달아올랐다.
그때 이정훈이 그의 등을 팡팡 때리면서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는다.
이정훈이 귀에 대고 소리쳤다.
“따라오라고!”
“어어! 알았어!”
이정훈은 사람들을 제치고 스테이지 근처로 접근했다. 앞으로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VIP룸인 2층 난간은 여성전용 공간이라고했던가?
꽤 야시시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담배를 물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여자랑 눈이 마주쳤는데, 여자가 빙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서주환은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주환아! 잘 출 필요 없으니까 대충 리듬 타!힘들면 고개만 까딱거려도 돼!”
이정훈은 처음 온 서주환을 배려해서 몸소 리듬을 타며 강의라도 하듯 설명했다.
그에 서주환은 피식 웃으면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신나는 사운드에 텐션이 올라가니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몸이 흔들거렸다.
“어때, 이렇게 추는 거 맞아?”
“춤 좀 춘다더니 진짜였네? 잘 추는데?”
그의 질문에 이정훈은 다소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B등급의 춤 재능은 딱히 셔플이니 크록하니 하는 기술을 쓰지 않고 몸만 흔들어도 제법 태가 나게 해주었다.
서주환은 자신감을 갖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그가 잘 적응하는 듯 보이자 이정훈이 걸음을 움직였다.
‘뭐야, 저 형 어디 가?’
이정훈이 잘 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하더니 근처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무시할 수 없다는 걸까.
어어? 하는 사이 이정훈은 양팔을 위로 들고 여성의 뒤에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과감한 게 아닌가 걱정됐지만, 이내 슬쩍 고개를 돌려 이정훈의 얼굴을 확인한 여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아니, 씹. 저게 말로만 듣던 얼굴 개연성인가?’
분명 여자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지는 걸 봤었는데 이정훈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태도가 변했다.
솔직히 말해, 이정훈은 180이 넘는 키에 몸이 좋은 것은 물론 얼굴까지 잘생겼다. 게다가 이정훈의 ‘잘생김’은 흔히 남자들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잘생김이었다. 그러니까 저 군인 티가 나는 짧은 머리로도 먹히는 거겠지.
‘아니, 뭐 배울 게 없는데.’
얼굴 개연성을 어떻게 배우란 말인가. 즉석에서 성형을 할 수도 없고. 아직 외모와 관련된 아이템은 안 나왔다.
이정훈은 그렇게 잠시 여자와 대화하며 춤을 추는가 하더니 다시 서주환에게로 돌아왔다.
“뭐야. 왜 돌아와?”
“인원이 안 맞아. 저쪽 세 명이래.”
“아.”
미처 생각하지 못 했는데 헌팅 할 때는 당연히 상대방과 쪽수를 맞춰야 한다.
“원래 여럿이서 오는 경우는 세 명이 제일 많아.”
당연하게도 서주환은 처음 듣는 정보다.
헌팅이란 걸 해봤어야 알지.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이었다.
“그래도 두 명이서 오는 그룹도 꽤 많은 편이야. 보통 둘 아니면 셋이서 오니까.”
“다행이네.”
“일단 각자 꼬셔보고 됐다 싶으면 전화하자. 음악 때문에 벨소리 안 들리니까 진동으로 해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말하는 걸 보니 확실히 여러 번 헌팅을 해 본 티가 난다. 다만 그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서주환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나 헌팅 해 본 적 없어. 그냥 같이 다니면 안 돼?”
“어? 왜? 말 걸기 힘들어서 그래?”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무리 여자에 익숙해졌다지만 일면식도 없는 여자에게 같이 뭘 하자고 말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정훈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따로 하는 게 더 나을 걸? 난 항상 그랬거든.”
사실 따로 흩어져서 작업을 거는 건 익숙한 사람들이나 하는 방법이고 보통은 같이 다니면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정훈은 친구들과 처음 클럽을 다닐 때부터 서로 흩어져서 여러 그룹을 간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그룹을 골라잡았던 사람이었다. 평범한 방법이 오히려 낯설었다.
이정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정 그러면 같이 다녀도 되고. 그런데 주환아.”
“어?”
“말 거는 거무서워할 필요 없어. 여기 온 여자들반절 이상은 어차피 남자 꼬시러 온 거라고생각해. 여기 그러려고 오는 곳이야.”
“그야 뭐. 머리로는 알지.”
“너 찌잼 아냐?”
“찌잼이면 래퍼? 당연히 알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찌잼은 그가 회귀 전에도 선호하는 래퍼 중 한 명이었다. 대부분의 노래를 모두 들어봤다.
이정훈이 잘 됐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찌잼이 레이블 단체곡으로 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거든? ‘저 여자가 웃지 않을 걸 왜 겁내. 너랑 쟤는 원래 남이야. 인마, 밑져봐야 본전.’ 알아?”
“들어봤어.”
“노래 가사처럼 어차피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다 남이잖아? 까이면 까이는 거고, 잘 되면 좋은 거지. 까여봐야 손해 볼 거 없어. 그냥 가볍게 생각 해, 가볍게.”
뭐지이 맞춤형 즉석 교육은?
다소 황당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 즐겨 듣던 랩 가사를 예시로 드니 확 하고 와 닿는 게 있었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쫄아 있는 게 바보 같기도 하고.’
이정훈의 말처럼 클럽이나 감주를 오는 목적은 대부분 이성을 유혹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하게 춤을 추러 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조차도 이곳이 그런 장소라는 걸 인지하고 온다.
그리고 클럽은 애인을 만들려고 오는 곳도 아니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안 볼 사람들. 지레 겁을 먹거나 부담스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뭐든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을 달리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서주환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일단 흩어지자.”
“오. 그럴까?”
“그래도 자신 없으니까 기대 말고. 난 형만 믿는다?”
“흐흐. 그래, 인마. 정 힘들면 적당히 춤추고 있어도 돼. 내가 알아서 잡아올게.”
뭐지, 이 미친 자신감은?
서주환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이정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게 잘생긴 얼굴로 살아온 사람의 자신감인가.
밀집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드는 이정훈의 등이 듬직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서주환의 선임이었다.
*
서주환은 지금까지 여성과 관계를 맺을 때 천천히 단계를 밟았다.
정소라의 경우는 회귀 시점 이전까지 포함해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고, 얼마 전에 정을 통한 임수희는 두 달 가까이 PT를 받으며 친해졌다.
최미화의 경우는 급격히 진전된 감이 있었지만, 그 이전에 살인범에게서 구해줬다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헌팅은 이번이 처음.
그가 미리부터 긴장하고 부담감을 느낀 이유였다.
하지만 ‘어차피 남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이정훈의 말을 듣고 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오히려 좋아.’
틀어질 관계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게 특히 주효했다.
앞서 만난 여자들은 혹시 잘못 접근했다가 틀어지면 그 전까지 쌓아온 관계마저 무너질 수가 있다. 단순히 차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좋은 인연을 하나 잃어버린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 클럽에서 본 여자들은?
거절당해도 잠깐 쪽팔리고 끝이다. 쌓아 온 시간이 없으니 무너질 관계도 없었다. 마음 놓고 껄떡대도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서주환의 마음은 가벼워졌고, 금세 텐션이 올라가서 빵댕이를 흔들어재꼈다.
그는 천천히 리듬을 타며 이정훈 선생님의 시범을 떠올렸다.
우선 뒤태가 끝내주는 여성을 고른다. 그리고 여성의 뒤로 접근해서 부비부비를 시도했다. 혹시 이정훈과 달리 뺨을 맞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예상외로 한 방에 성공했다. 힐끗 돌아본 여성이 빙긋 웃으며 마주 몸을 부딪쳐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헉. 엉덩이가.’
밀착한 상태에서 둠칫둠칫 몸을 흔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고간과 이름 모를 여성의 엉덩이가 스치게 되었다.
그 미약한 자극이 어찌나 짜릿한지!
왜 대꼴 놔두고 은꼴을 찾는지 알 것만 같았다.
원래 보일락 말락한 게 더 꼴리는 법이라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짝살짝 스치는 그 순간이 굉장히 야릇했다.
엉덩이는 또 얼마나 빵빵한지 청바지 위로도 탄력적인 살이 느껴졌다.
‘아, 꼴렸다.’
덕분에 진짜 꼴려버리고 말았다.
서주환의 소중이가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번쩍 들었던 것이다.
다시 스치는순간, 쿡 하고 이름 모를 여자의 엉덩이를 찔러버린 눈치 없는 소중이.
처음엔 긴가민가 갸웃거리던 여자는 소중이가 세 번쯤 닿았을 때 인상을 구기고 자리를 옮겨 버렸다.
‘돌아와, 엉덩아! 나 섹스 잘 할 수 있어!’
육성으로 외칠 수 없는 게 너무 한스러웠다.
서주환은 눈물을 머금고 여자를 떠나보냈다.
짧지만 진심으로 사랑했다, 엉덩아. 넌 나에게 있어 대꼴이었다!
쿵, 쿵쿵, 쿵, 쿵쿵쿵!
여자가 떠난 게 아쉬웠지만 그리 실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신나는 힙합 음악 덕분이었다.
연신 가슴을 쿵쿵 울려대는데 텐션이 떨어질 리가 있나. 어차피 주변에 여자는 차고 넘쳤다.
서주환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자들과 몸을 부대끼고 놀았다. 헌팅 때문에 부담을 갖고 말을 걸 필요도 없이 함께 리듬을 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렇게 놀고 있으니 어느순간 사람들 사이로 한 무리의 여자들이 일렬로 걸어왔다.
여자들은 가슴골이 보이고 배가 훤히 드러나는 상의와 짧은 치마로 통일된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클럽 내 다른 여성들과 비교해도 유난히 가벼운 차림이었다.
서주환은 특이한 복장에 눈을 끔뻑이며 혼잣말을 뱉었다.
“뭐야, 무슨 코스프레 하나?”
“코스프레가 아니라 샴페인걸이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정훈이 답해주었다.
서주환은 깜짝 놀라서 흠칫했다.
“와씨. 깜짝이야. 형, 언제 왔어?”
“인마. 전화 안 받아서 겨우 찾아왔다. 두번이나 전화했는데 그걸 다 안 받으면 어떡하냐.”
“뭐? 어, 진짜네?”
확인해보니까 20분 간격으로 전화가 두 통이나 와있었다.
“설마 두 번이나 성공한 거야? 근데 여자들은?”
“성공했었는데 이제 나가리지. 여기서 누가 그렇게 오래 기다려줘?”
여자들 입장에서도 차고넘치는 게 남자인데 굳이 시간 버려가며 기다려 줄 이유가 없었다.
서주환은 머쓱해져서 눈꼬리를 긁적였다.
“미안. 놀다보니까 전화 온 것도 몰랐네.”
“재밌게 논 거 같으니까 됐다. 여자들한테 말은 걸어봤고?”
“아니, 그것도… 그냥 부대끼면서 춤만 췄어.”
말 거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고 신나게 놀다보니까 음악에 취해버렸다.
서주환은 민망해져서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샴페인걸이 뭐야?”
“직접 봐봐. 지금 하네. 가까이 가면 술 준다.”
고갯짓을 따라 보니 일렬로 걸어오던 여자들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불꽃이 나오는 샴페인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미 새에게 밥 달라는 병아리들마냥 입을 벌리며 모여든 사람들.
불꽃이 사그라들자 여자들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입에 술을 부어주었다.
“가서 술 마실래?”
“어. 재밌어 보인다.”
두 사람은 테이블 근처로 다가가 다른 사람들처럼 입을 벌렸다.
샴페인걸들도 얼굴을 보고 술을 주는 걸까.
이정훈은 입을 벌리자마자 술을 받아마셨다. 부러운 마음에 힐끗 쳐다보고 있으니 어느새 서주환의 입에도 술이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친 샴페인걸이 그에게 찡긋 윙크했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것은 무대 위로 가수가 올라왔을 때였다.
검정색 비니를 쓰고 목에는 금목걸이와 체인을 주렁주렁 매단 덩치.
그가 올라오자 남녀 할 것 없이 환호성이 울렸다.
덩치의 정체는 힙합계의 거물 스윙즈!
스윙즈는 언더시절부터 최근까지도 힙합씬에서 꾸준하게 언급되는 핫한 래퍼였다.
주변 사람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와, 미쳤다. 스윙즈가 홍대 클럽에 다 오네.”
“오늘 무슨 날이야?”
“아, 모르겠고 일단 소리나 질러!”
스윙즈가 마이크를 잡고 비트가 나오기 시작하자 장내는 이미 열광에 빠졌다. 벌스가 나오기도 전에 사람들이 미쳐서 비명같은소리를 질러댔다.
서주환 또한 즐겨 듣던 래퍼였기에 같이 열광했다.
이윽고 스윙즈가 특유의 썩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서고, DJ가 비트를 때렸다.
그렇게 랩이 두세 곡쯤 지나가자 무대 위로 한 명이 더 올라왔다. 노란 머리의 원숭이를 닮은꼴로 유명한 한유한이었다.
선곡은 한유한 곡에 스윙즈가 피쳐링한 FAKE RAPSTARS.
최근 가장 핫한 곡이었다.
한유한이 시그니처 사운드로 곡의 시작을 열었다.
- Uno! Dos! Tres! Cuatro!
와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악!
랩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아예 미쳐버렸다.
이미 미쳐있다고 생각했는데 텐션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안 그래도 일렉 사운드에 락 느낌을 섞은 곡이 힙찔이들을 만나니까 클럽 안이 떠나갈 듯 쿵쿵 울려댔다.
이 순간에는 여자고 뭐고 다 잊고 서주환과 이정훈도 미쳐 날뛰었다. 이리 저리 밀리면서 점프를 해대니 둘의 거리가 멀어졌다.
서주환은 누구지도 모르는 옆 사람과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몸을 들썩였다. 아무래도 여자인지 몸을 튕길 때마다 탄력적이고 거대한 가슴이 몸을 스쳤다.
훅(Hook)이 나올 때면 클럽 안의 모두가 떼창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힙합이 좋아서 온 사람들.
한 데 모인 떼창이 스피커의 풀 사운드를 넘어서 울려 퍼졌다.
- Fake rapstar들 전부 닥쳐!
““Fake rapstar들 전부 닥쳐!””
훅도 훅이지만 스윙즈의 피쳐링 파트를 더블링(doubling) 칠 때도 모두가 목이 터질 것처럼 따라 외쳤다.
- Rhyme 좆까! Rhyme 좆까!
““Rhyme 좆까! Rhyme 좆까!””
다음 가사야말로 하이라이트.
모두가 한 마음으로 욕설 섞인 가사를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 BlackDick 앨범 내! 씨발롬아!
““BlackDick 앨범 내! 씨발롬아!””
이후 마지막 훅의 떼창을 끝으로 짧고도 강렬했던 스윙즈와 한유한의 공연이 끝났다.
목이 터져라 불러재낀 서주환은 후욱 하고 달아오른 열기를 토해냈다.
그때 옆 사람이 그를 꽉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 어깨동무를 한 채 같이 뛰던 여자였다.
물컹. 출렁. 꾸우욱.
보기 드물게넓은 마음을 소유한 그녀.
그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어 자연스럽게 그의 마음마저 적셨다.
서주환을 안은 그녀가 방방 뛰었다.
“꺄아아! 대박! 스윙즈가 여기 왔어요!방금까지 다 같이 날뛰었다고요! 믿겨요?!”
출렁출렁.
꾹꾹.
“그, 그러게요. 저도 믿기지가 않네요.”
이런 착한 마음이 자신의 가슴에 문대진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여자는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죠? 엄청났죠?”
“네. 진짜 끝내줬어요.”
현재 진행형으로 끝내줍니다.
당신의 마음.
여자는 서주환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듯 흥분어린 숨결을 토했다.
“하아. 내가 Fake Rapstars 떼창에 참여하다니!”
‘낯선 여자가 다가와서 가슴을 비비다니!’
여자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 깜짝 놀라며 떨어졌다.
“앗,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서 그만…”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흥분했는걸요.”
“네?”
속마음이 튀어나와버리고 말았다.
서주환은 급히 고개를 치켜드려는 하물을 달랬다.
소중아, 가만히 있어라! 이번에는 일어나지 말고!
그는 짐짓 감격했다는 듯, 아니 실제로 그녀의 마음에 감격했기에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스윙즈랑 한유한 라이브 무대라니 미쳤잖아요. 실제로 들을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지금 제 플레이리스트 일위거든요.”
“정말요? 저도 그래요! 오빠도 힙합 좋아해요?”
방금 만난 그를 서슴없이 오빠라고 부른다. 넓은 마음만큼이나 사교성이 좋은 여성이었다.어쩐지 머리도 파랗더라. 바다를 닮아 그런 거였다.
서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힙합을 꽤 즐겨들었기에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다.
“당연하죠.”
“그럼 블랙딕이랑 강민호 알아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물어보는 거대 가슴녀.
이 정도면 최소 D컵이다. 더 될지도?
그는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애써 그녀의 얼굴에 고정하고 대답했다.
“그 쇼미 더 힙합에 나온 래퍼 말하는 거죠?”
“맞아요! 오빠 힙합 좋아하는 거 맞구나! 오빠, 레미넴이랑 칸예이스트도 알아요?”
설레는 표정으로 자꾸 시험하듯 물어보는 그녀.
그런데 질문이 조금 이상하다.
쇼미의 블랙딕과 강민호를 아냐고 했을 때는 가슴에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레미넴이랑 칸예이스트를 물으니 이거 참 골 때린다.
힙합 좋아하는 사람 중에 그 살아있는 전설들 모르는 사람도 있나?
서주환은 일단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음악 때문에 소리가 묻혀서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당연히 알죠. 레미넴이 옛날에 영화 찍은 건 알아요?”
“헉! 정말요?! 우리 미넴이 오빠가 영화도 찍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여자.
‘힙합 좋아한다면서 레미넴이 찍은 7mile을 모른다고?’
확실하다.
이 여자, 최근에 성행하고 있는 힙찔이다.
“오빠, 저희랑 놀래요?”
바다를 닮아 머리까지 짜진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럴까요?”
그리 대답하는 서주환의 머릿속에 이방원 선생님의 시조 하나가 떠올랐다.
감히 개작하여 불러보자면,
힙찔이 어떠하리
골빈녀 어떠하리
아우라 클럽 뒷담
무너진들 어떠하리
신나게 떡을 쳐
한 발 빼면 그만이거늘.
물론, 한 발만 빼진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