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클럽 입성
욕망 퀘스트는 감정에 반응하여 랜덤하게 생성된다. 그 감정은 사용자 본인의 것일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의 감정일 수도 있다.
서주환이 지금까지 해결 한 욕망 퀘스트는 두 개.
첫 번째는 12월에 정소라를 대상으로 발생한 『직속상관을 범해라』.
두 번째는 말년 휴가를 나왔던 1월 한수아를 대상으로 발생한 『한수아를 구해라』.
한 달에 한 번씩 발생하는 욕망 퀘스트는 막대한 LP와 함께 다음 레벨로 향하는 『욕망』 수치를 대량으로 수집한다.
그리고 현재 2월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
세 번째 욕망 퀘스트가 발생했다.
띠링!
[사용자의 강렬한 욕망을 감지했습니다.]
[욕망 퀘스트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불타는 금요일 - 클럽』
▶ 한 번도 클럽에 가보지 못한 당신은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들은 클럽에 섹스를 목적으로 오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춤만 추러 오는 걸까?
만화에서 봤던 것처럼 춤판이 벌어지는 신나는 곳일까?
어떤 복장의,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오는 걸까.
오늘 그 현장을 직접 몸으로 체감하고, 성공적으로 ‘홈런’을 치십시오.
▶ 달성 조건: 클럽 입성, 헌팅, 클럽녀와 섹스.
▶ 보상: 10,000LP
서주환은 발생한 퀘스트를 보고 생각했다.
‘별 시답잖은….’
아무래도 그가 클럽에 갖고 있는 환상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
서주환은 여느 때처럼 약속 장소에 20분 일찍 도착했다. 그는 이정훈을 기다리며 새로 얻은 재능과 특수능력을 점검했다.
【춤(Rank:B)】
【멀티-댄싱라인】
▶ 효과: 모든 장르의 음악에 어울리는 춤선을 보일 수 있도록 자세가 교정된다.
※ 춤선은 재능 등급과 해당 음악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적합도가 올라간다.
며칠 전 임수희에게서 얻은 재능, 춤.
클럽에 갈 생각에 신나서 등급을 올리고 특수능력까지 구매했다. 하지만 막상 구매한 특수능력 『멀티-댄싱라인』의 효과는 영 와 닿지 않는 것이었다.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생전 춤에 관심이 없던 서주환으로서는 춤선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춤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멀티-댄싱라인』은 분명 군침을 흘릴만한 능력이었다.
같은 동작을 춰도 사람에 따라 길고 세련된, 손끝까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삐걱대고 짧은 느낌이 나는 사람이 있다.
아름다운 춤선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어떠한 선을 갖고 있는지, 그 선은 어느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알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간을 들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타고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동작의 숙련도와 무관하게 아름다운 춤선이 나오지 않기도 한다. 댄서에게 춤선이란 가수가 타고나는 음색과 같은 것이었다.
한데 서주환이 뽑은 『멀티-댄싱라인』은 별도의 노력 없이, 또 자신의 몸에 이해도가 전무해도 장르 불문하고 어울리는 춤선이 나오도록 몸동작을 자동 교정해준다.
다만 춤에 무지한 서주환으로서는 이러한 능력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몇 개 연습했으니까.’
능력이 못 미더웠기에 그 나름 단기 속성으로 인터넷을 보고 클럽 춤을 몇 개 배웠다. 프로에 해당되는 B급 재능을 보유하고 있어 생각보다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어느덧 약속 시간이 가까워졌다.
- 주환아, 어디냐?
“9번 출구 쪽으로 쭉 와. 아직 역 안에 있어.”
- 아, 오케이.
“형 보이네. 나 손들고 있는데 보여?”
- 어어. 보인다.
그를 발견한 이정훈이 마주 흔들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정훈이 멈칫 손을 내리며 놀란 소리를 냈다.
“서주환… 맞지?”
한 달 사이 몰라보게 변한 그의 모습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정훈이다.
서주환은 픽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형.”
“…주환이 맞구나? 야, 왜 이렇게 변했어? 전역하더니 혼자 좋은 거 먹었냐?”
서주환은 이제 꽤 익숙해진 변명을 했다.
“성장기가 늦게 왔나 봐. 군대에서도 그랬잖아? 피티 받으니까 살도 쭉쭉 빠지더라.”
“와… 적응 안 된다, 야. 무슨 키가 두 달 만에… 몇 센티나 자란 거야?”
“두 달간 한 6센티? 아직도 더 크는 중이야.”
사실 성장은 진즉 멈췄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아이템으로 더 클 수도 있기에 밑밥을 깔아뒀다.
이정훈은 연신 감탄하다가 앞장 서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게?”
지역은 홍대로 정했지만 정확히 어느 클럽으로 가는지 는 듣지 못 했다.
이정훈이 씩 웃으며 답했다.
“좀 어린애들 있는 곳으로 가려고. 지금 2월이라 민짜 풀린 지 얼마 안 된 애들이 엄청 많을 거거든.”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홍대 9번 출구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다. 원래는 강남에 갈까 했는데 이 시기에는 홍대 쪽 물이 더 좋다며 결정되었다. 강남에 비해 연령대가 낮은 홍대 쪽 클럽은 현재 막 성인이 된 남녀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연상이랑만 했었지?’
회귀 전에 나이가 있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관계를 맺은 세 여자 모두 현재의 그보다 연상이었다. 오죽하면 시스템상으로 『연상 킬러』라는 업적이 뜰 정도였으니. 슬슬 연하와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어텐션으로 갈 거야.”
“어텐션?”
“이 근처에서 제일 큰 힙합클럽이야. 쇼 미 더 힙합 알지? 그 프로그램 확 뜨면서 10대부터 20대까지 지금 힙합 붐이잖아. 그쪽으로 가면 스무 살부터 스물넷 정도까지 존나 많을 걸?"
확실히 이때 힙합이 엄청 떴었다.
쇼 미 더 힙합이라는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었다. 벌써 4시즌 째였는데, 힙합 열풍은 식을 줄을 몰랐다. 오히려 이번 시즌부터 더 물이 올랐었지. 기억 상 올해 있을 5시즌에서 절정을 찍었다.
힙합이라면 서주환도 꽤 즐겨 들었던 음악이었다. 그는 클래식이나 재즈, 발라드 보다 힙합을 좋아했다.
그런데 잠깐만.
서주환은 번뜩 떠오르는 의문을 이정훈에게 물었다.
“힙합이면 일렉은 안 나오나?”
“당연하지. 힙합 클럽에서 일렉을 왜 틀어. 뭐 일렉이랑 섞인 힙합도 있긴 한데.”
그 말에 서주환은 아쉬운 마음으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기껏 셔플과 크록하 등을 연습해왔는데 쓸 기확 없을 듯 했다. 힙합 음악에 셔플을 출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정훈이 그 기색을 눈치 채고 말했다.
“힙합 별로 안 좋아해?”
“그건 아닌데. 춤 좀 추고 싶어서.”
기껏 연습했는데 한 번쯤 써먹어보고 싶었다.
“주환이 너 춤 좀 춰?”
“음. 대충 셔플이랑 크록하 정도는 가능해.”
“오오. 야, 그럼 아우라로 노선 변경한다. 거긴 힙존이랑 일렉존으로 나눠져 있으니까 힙존에서 좀 놀다가 여자 안 꼬이면 일렉존으로 갈아타서 춤이나 추자”
“나야 좋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진짜 안 꼬이면 춤이나 실컷 춰야겠다.
우우웅.
어느덧 에스컬레이터가 다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홍대를 밤에 온 건 처음이던가?
“와아.”
그가 몰랐던 홍대 밤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정훈이 의아한 듯 물었다.
“홍대 처음 와봐?”
“몇 번 온 적은 있는데 밤에 온 건 처음이네.”
“그래? 너희 집 여기서 가깝지 않나? 30분도 안 걸리잖아.”
“그렇긴 한데, 동네를 잘 안 벗어나서.”
서주환은 서울이 바로 지척인 광명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온 적이 손에 꼽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자신이 살아왔던 광명도 잘 모른다.
집구석에 처박혀서 반쯤 폐인처럼 생활 했는데 알긴 뭘 알겠는가.
‘나중에 여행도 다녀볼까.’
외국 이전에 동네도 잘 모르는 만큼 국내 여행이라도 한 번 돌아보고 싶었다.
이정훈이 서울 촌놈처럼 행세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밤은 좀 분위기가 다르지?”
“어. 낮 보다 사람이 더 많네.”
그는 신기한 눈으로 거리를 바라봤다.
낮의 홍대도 문화의 거리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밤거리 홍대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낮에 비해 더 자유분방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
버스킹도 더 많았고 개성 넘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특히 길바닥에 대충 걸터앉아서 술을 까는 모습은 꽤 문화충격이었다.
정말 촌뜨기마냥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는데, 이정훈이 팔을 툭 건드렸다.
“주환아, 저기 좀 봐라.”
“뭐를?”
이정훈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뭐야, 무슨 일 난 거야?”
“노노. 저거 그냥 꽐라 된 거다. 근처에 있는 일행들 보이지? 그냥 술 먹고 꼴은 거야.”
“아직 열한시밖에 안 됐는데?”
“좀 빠르긴 한데 그리 드문 일도 아니야. 새벽 되면 더 많아져.”
저런 옷차림으로 무방비하게 쓰러져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게 어메이징하다.
저래서야 무슨 일 당하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지금만 해도 치마가 말려 올라가서 드러난 허벅지에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이 꽂혔다. 아니, 남자가 아니라 여자도 뭐야 하는 눈으로 보는 걸 보니 그냥 볼썽사나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위험할 거 같은데.”
“위험하지. 그래도 일행들 있으니까 괜찮아. 없어도 우리 알빠는 아니고.”
이정훈은 저런 사람을 한두 번 본 게 아닌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요즘에는 괜히 관여했다가 뒤집어쓰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최미화의 경우는 워낙 특별했던 거고.
그가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보고 있으니 이정훈이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한다.
“혹시라도 골뱅이는 건드리지 마. 인생 좆 되는 수가 있다.”
“나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해.”
“푸핫.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낄낄대며 걷다 보니 어느새 클럽 앞에 도착했다.
도착은 했는데….
“줄 더럽게 기네.”
“그러게.”
“하아. 오랜만이라 깜빡했다.”
이정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뭔 놈의 줄이 세 바퀴를 꼬아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밖에서 30분을 넘게 기다리고서야 클럽 안으로 입장했다.
[업적, 『클럽 첫 입성』을 달성하여 500LP가 지급됩니다.]
자, 이제 신나게 놀아재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