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4화 〉오우! (44/501)



〈 44화 〉오우!

임수희가 애처로운 어조로 말했다.

“주, 주환아… 나 힘들어….”
“괜찮아. 힘들면 가만히 있어.”
“그, 그게 아니라… 아흑.”

이후로 두 번을  했다.
힘들어하는 임수희를 배려해서 가만히 있도록 했다. 대신 그녀의 몸을 이리굴리고 저리 굴리며 원하는 자세를 찾아서 몸을 움직였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더  하겠네.”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하려면야 더 할 수 있을 테지만 몸이 상당히 피곤했다.
행위가 완전히 끝나고, 임수희의 아래를 닦아준 다음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는 잠에 들기 전 이때까지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업적, 『연상 킬러(x3)』를 달성하여 3,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실신 오르가즘』을 달성하여 2,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역(易) 수면간』을 달성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페티시, Musclephilia(中)를 수집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페티시, Sthenolagnia(中)를 수집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임수희의 섹스 판타지 『섹시한 근육을 가진 연하남과의 섹스』를 달성하여 5,000LP가 지급됩니다.]
[임수희가 지닌 상위 세 가지 재능 중 하나를 무작위로 습득합니다.]
[잠재등급A, 『춤』을 습득했습니다.]

많기도 하지.
그도 모르는 새 달성한 업적과 페티시가 주르륵 떠올랐다.
메시지를 하나씩 읽어 내리던 서주환은 곧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엉? 실신?”

서주환은 깜짝 놀라서 옆에 누워있는 임수희의 몸을 흔들었다.

“누나? 누나, 일어나 봐. 수희 누나?”

전혀 반응이 없다.
눈은 하얗게 까뒤집혔고 다리는 아직도 미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실신이고 뭐고 이 정도면 그냥 죽은  아닌가 걱정 될 정도다.
서주환은 걱정이되어 그녀를 깨우려 했다. 하지만 말을 걸어도,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다행히 숨은 쉬는 것 같은데 상태가 심히 걱정된다.

“돌겠네. 아이템을 너무 썼나?”

얄미운 마음에 행위  아이템을 너무 과하게 사용한 듯했다. 안전한 질내사정을 위한 아이템을 제외해도 그렇다. 감도를 올려주는『 미끌미끌 러브젤』과 질내사정시 확정으로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드는『절정 사정』을 사용했으니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니까 반응이 나왔다.

“하으으… 가만히  둬.”
“어, 어… 미안.”

엉덩이를 때려서인지 질 내에 남아있던 정액이 울컥 삐져나왔다.

‘너무 심했나?’

서주환은 멋쩍게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성스러운손길』을 활성화시켰다.
물론 그녀를  자극할 생각은 아니었고, 마사지를 통해 다리를  풀어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임수희는 그의 손이 닿자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 좀 해! 네가 무슨 변강쇠야!?”
“아니, 난 마사지 해주려고….”
“됐으니까 그냥 손대지 말라고!”
“아, 알았어….”

그는 시무룩해져서 얌전히 자리에 누웠다.

*

서주환과 임수희가 깨어난 것은 거의 오후가  되어서였다.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헬스장… 아, 혁도 씨한테 맡겨놨지.”

보통 때는 임수희 본인이직접 나가서 헬스장 문을 연다. 하지만 오늘은 애초부터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려던 터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았었다.
안심한 임수희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문을 닫기 전에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서주환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지 마! 덮치지 마! 거기 가만히 있어!”
“…응.”

서주환은 지은 죄가 있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상 발기 때문에 한 번 할까 생각했던 터라 찔리는 것도 있었다. 저 정도면 트라우마가 하나 생긴 거 아닌가 모르겠다.
잠시 후 그도 간밤에 불타올랐던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왔다.
임수희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모텔을 나오며 말했다.

“밥 먹고 갈까?”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아까부터 꼬르륵 소리로 배가 요동치는 두 사람이었다. 괜히 떡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간밤의 섹스는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알았어.”

해장도 할 겸 두 사람은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곧 따끈한 해장거리가 상에 놓였다.
임수희는 내숭도 없이 허겁지겁 국밥을 먹었다. 그녀는 배를 어느 정도 채웠다 싶을 쯤에서야 말문을 열었다.

“아으… 주환이  때문에 걷는 게 힘들어.”
“쩝. 미안. 좀 심했나?”
“좀? 조옴? 나 어제 실신했거든? 그런데 조오옴?”
“하하….”

그 말에 어색하게 웃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설마 그도 섹스로 사람이 실신할 줄은 몰랐다. 그런 건 히토미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본의 아니게 진귀한 구경을 해버렸다.
임수희는 불만어린 얼굴로 서주환의 손등을 꼬집었다. 세게는 아니고 투정어린 장난이었다.
그는 가만히 받아주다가 손등이 약간 빨개졌을 때쯤 말했다.

“누나도 나 잘  했잖아. 그거랑 쌤쌤하자.”

나직하게 반격하니 임수희는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수긍했다.

“…알았어. 그래도 기분 좋았으니까 쌤쌤해준다.”
“거 무지하게 고맙네.”
“받들어 모셔. 알겠니?”

키득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임수희였다.

*

과연 나이가 있어서일까.
몸을 섞은 이후에도 임수희가 서주환을 대하는 태도는 깔끔했다. 물론 육체적으로 가까워진 만큼 이전보다 더 친근한 느낌은 들었지만 말이다.

“엉덩이 더 내리고! 가슴 열고!”
“흡!”

그녀는 고백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그에 대해 언급하는 법이 없었고, 그가 헬스장에 나오면 태연하게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렇지.  하네, 역시.”
“후우. 누나가 잘 가르쳐준 덕이지. 요즘 뱃살이 사라져서 거울 보는  재밌다니까?”
“푸훗. 그래도 제대로 복근 나오려면 좀  빼야 돼.”
“아이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축복이 끝나가는 요즘, 서주환의 몸은 제법 탄탄해진 상태였다. 어깨나 가슴은 물론이고 체지방이 10프로중반까지 내려가서 복근 윤곽이 제법 또렷해졌다.
PT 시간이 끝나고, 임수희가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런데 주환아,  진짜 대회 나갈 생각 없니?  생각엔 몇 달만  하면 입상도 노려볼만 할 것 같은데.”
“에이. 난 대회 나갈 생각 없다니까. 패션근육이 목표래도?”
“그거야 들어서 아는데… 아쉬워서 그러지. 진짜 타고난 몸인데….”

임수희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이따금 대회를 제안해왔는데, 운동을 하면 할수록 즉각적인 변화를 보이는 그의 몸이 아직도 탐이 나는 듯했다.

“그런 표정으로 봐도 소용없어. 그리고 나는 따로 하고 있는 일도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거든.”
“일? 알바?”
“아니. 그냥 뭐… 따로 하고 있는 일이 좀 있어. 그거 때문에라도 대회는 무리야. 대회 준비하려면 최소 몇 달은 투자해야 되는데 그럴 시간이 없거든.”

서주환은 그녀가 제안을  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느덧 운동 자체가재밌어진 그였지만 대회에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전에 다짐했듯 다른 내츄럴 운동인들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유독 단호한 그의 말에 임수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에휴. 그래.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니. 계속 얘기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말 안 할게.”
“하하. 그래도 운동은 재밌으니까 꾸준히 할 거야.”
“그건 좋네. 개강하고 헬스장에 못 나오면 집에서라도 운동하는 게 좋아. 장난처럼 근손실이 어쩌고 하지만 막상 근육 빠지면 상실감 엄청  걸?”

원래 없던 것보다 있던 게 없어지는 쪽이 괴로운 법이다. 확실히 기껏 만든 근육이 빠지면 허탈할  같았다.

‘더 이상 축복도 없고.’

아이템으로 뽑거나 해당 축복이 나올 때까지 시스템 레벨을 올리지 않는 이상 평범한 몸으로 돌아간다.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금세 다시 뚱뚱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주환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운동 꾸준히 할게. 누나는 몸 좋은 연하가 좋잖아?”
“어머. 얘 봐라? 지금  부리니?”
“어때. 조금 설렜어?”

씩 웃으며 물어보자 임수희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셔. 아직도 그 날만 생각하면 PTSD 올라 그러거든?”
“쳇. 그렇게 좋아해놓고.”
“죽을래? 일곱 살이나 많은 누님한테 까불어?”
“아니, 언제는 스물다섯이라더니.”
“입 안 다물래? 팍.”

임수희가 장난처럼옆구리를 찔렀다. 약점을 찔려 몸을 움츠리니 그녀가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다음 회식 때까지 기다려.”
“…오케이.”
“그때까지 운동 열심히 하고.”
“오케이!”
“참나.”

힘차게 대답하니 헛웃음을 흘리는 임수희였다.

*

2월 20일.
전화가  통 걸려왔다.
서주환은 연락한 사람이 누군인지 보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상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주환아, 잘 지내냐?  휴가 나왔다!
“오우!”
- 내일  준비하고있어. 불금 조져야지?
“오우!”
- 형이 책임지고 홈런 쳐준다. 형만 믿어라 알간?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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