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끊어진 필름(2)
임수희가 그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주환아, 누나 애인 할래? 누나가 잘 해줄게.”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당시 서주환은 술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이유가 궁금했다. 만난 지 두 달이라지만 자신과 그녀는 서로를 잘 모른다. 사적인 대화를 나눈 건 정말 일부였다. 무얼 보고 사귀자고 하는 걸까.
그는 순간 사귀지도 않을 거면서 침대로 데려갔던 최미화가 떠올랐다. 당시 그녀가 처녀라는 걸 알고 느꼈던 부담감. 그리고 이번에는 사귀자는 고백.
다만 그때와 달리 부담스럽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녀와 사귀고 싶어서가 아니라 룸 안의 공기가 전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사랑보단 욕망에 충실한 두 남녀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물어봤다.
“나를 왜 좋아하는데?”
그 질문에 임수희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녀가 이내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 사귀는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니?”
서주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유가 있으니까좋아하는 게 아닌가? 좋아하니까 사귀는 거고.
아, 어지럽다. 머리가 핑핑 돌고 임수희가 두 개로 보였다. 두 명의 그녀가 킥 하고 웃더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 배로 쓰다듬어졌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못할 것도 없지. 일단 나는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근육이 섹시한 남자가 좋아. 그리고 난 연하가 좋아서.”
“그런 사람은 헬스장에 많잖아?”
그가 아무리 축복 덕분에 빨리 성장했다지만 그래봐야 헬린이 수준. 헬스장에는 그보다 몸 좋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대부분이 아저씨지만 그녀보다 어린 사람은 꽤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임수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냥 몸 좋은 사람들이고. 내 기준에서 근육이 섹시한 건… 네 몸처럼 질 좋은 근육이거든. 이렇게 안이 꽉 차서 약동하고… 남들보다 금방 성장하고, 또… 회복력이 좋은…?”
그녀 자신도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다만 서주환은 그녀의 눈빛이 조금 위험해 보인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일종의 집착이 보였다.
Musclephilia(머슬 필리아).
그리고 Sthenolagnia(스테놀라그니아).
임수희의 페티시가 떠올랐다.
임수희는 그의 목에 손끝을 올리고 쓸어내렸다. 손가락이 어깨와 삼각근을 지나 대흉근과 복근을 어루만진다. 아래로 떨어진 손은 바지 안으로 들어와 잠시 쪼그라들었던 자지를 살며시 움켜쥐었다. 하복부로 다시 피가 몰리며 자지가 순식간에 부풀었다.
“기운도 좋지….”
그녀도 취기로 힘든지 흐릿한 눈으로 자지를 응시했다. 그 와중에도 양물을 갖고 놀 듯 조물락거리는 모습이 관능적이다.
그러고 보니 남성의 음경을 이루고 있는 해면체는 일종의 탄성 높은 근육이라고 하던가.
임수희가 음경 밑에 있는고환을 살살 만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주환아. 대답은?”
“미안해, 누나. 나 당분간은 누구랑 사귈 생각 없어.”
만취한 상태에서도 변명이 튀어나왔다. 사실 속마음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꽤 이기적인 심보였다. 정신이 서른둘, 아니 이제 서른셋인가. 어쨌든 정신과 달리 육체는 스물셋의 파릇파릇한 몸이었다. 그리고 양심적으로 고백하려면 본인 나이부터 밝혀야지 않겠는가.
“나 거절 당한 거야?”
“미안해. 누나가 싫은 건 아니야.”
서주환의 대답에그녀는 샐쭉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던 모양.
그도 그럴 게 임수희는 길 가다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예쁜 건 물론 쉽게 볼 수 없는 몸매를 가진 여성이었다. 거기에 젊은 사장님이라는 재력까지 있으니 그녀의 고백을 거절할 남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임수희는 눈꼬리를 위로 올려 뜨더니 고환을 살짝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순간 그는 간담이 서늘했지만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녀는 이내 도발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하지 말까? 나도 나 싫다는 사람 필요 없는데.”
자존심이 꽤 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한 말 같지도 않았다. 단지 구태여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는 의사표현처럼 보였다.
현재 임수희의 호감도는 C+고 성욕은 그보다 두 단계나 높은 B+까지 올라간 상태.
서주환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나 키스는 그녀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림으로써 무산되었다.
“어머. 얘 봐라.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랑 입은 왜 맞추려고?”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전히 그의 물건을 주무르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나.
술에 취한 와중에도 기분을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코올로 마비된 이성은 그보다 과격한 방법을 선택했다.
서주환은 도발에는 도발로 갚아주겠다는 듯 『성스러운 손길』을 활성화시키고 임수희의 바지 안으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보스락거리는 털을 지나 계곡 사이에 있는 콩알을 비비면서 말했다.
“누나, 나 섹스 존나 잘하는데?”
“흐으응. 만지는 거 보니까 그럴 것 같긴 한데….”
술로 달아오른 몸.
욕구불만으로 높아진 성욕.
자신의 취향에 가까운 남자.
계곡 사이에서 느껴지는 자극적인 감각.
이미 불이 붙은 상황에서 거절할까?
임수희는 애초에 밀당을 즐기는 성향이 아니었다. 다만 높은 자존심과 성욕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 서주환은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그럼 나랑 내기 할래?”
“무슨 내기?”
“일단 MT로 가자.”
“…안 할 거라니까?”
고민이 가득 베어 있는데 끝까지 고집부리기는.
그는 임수희의 계곡에 손가락 하나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바로 섹스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럼?”
관심을 보이는 임수희.
의문일까, 흥미일까. 그도 아니면 구실이 필요한 걸까.
서주환은 본능적으로 후자임을 알고 입을 열었다.
“나는 손과 혀만 사용할게. 거기서 누나가 먼저 해달라고 말하면 내 승리. 사귀지 않고 섹스하는 거야. 누나가 이기면 사귀는 거고.”
“뭐…? …푸훗! 주환이 너 술 마시니까 되게 웃긴다. 그럼 내가 이기는 조건은 뭔데?”
“그야 내가 애원하는 거지. 하게 해달라고.”
“흐응. 주환이 너랑 사귀자고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누나도 하고 싶잖아. 겸사겸사 딸려오는 부상 같은 거야.”
나사가 몇 개쯤인가 빠진 논리였지만 그녀는 제법 흥미를 보였다. 황당하니만큼 재밌고, 또 좋은 구실이다 싶었을 것이다.
임수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더니 이내 결심했다는 듯 그의 자지를 꽉 움켜쥐었다.
“좋아.”
그 뒤로 둘은 모텔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임수희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쿠우울~.”
희대의 병신은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
기억을 떠올렸더니 황당함이 몰려왔다.
‘나 새끼는 정말 병신인 거냐?’
술 처마시고 성격 바뀐 거야 그렇다 치자. 오히려 평소 보다 자신감 넘쳤던지라 마음에 든다.
그런데 왜! 밥상 다 차려 놓고! 쳐! 잔거냔 말이다!
빨리 대가리 박고 반성해라. 물론 그 좆대가리는 임수희한테 박아라.
서주환이 자괴감에 빠져있는데, 임수희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킥킥. 표정 좀 봐. 너 술 다 깼구나?”
“…응. 술 먹고 필름 끊긴 건 처음이네. 진짜 미안.”
“아하하! 주환이 너 취했을 때랑 너무 다른 거 아니니?”
“하하… 그렇게 취해본 적이 없어서 나도 처음 알았어.”
“깔깔깔! 아, 너무 웃겨. 배 아파!”
어지간히 웃긴지 배를 잡고 계속 깔깔거린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게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그는 웃고 있는 임수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누나, 아까 그 내기 말인데….”
“응? 아하.”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 임수희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씩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거 하려고? 난 자고 일어났더니 안 하고 싶어졌는데.”
“…진짜? 안 할 거야?”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태연한 얼굴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성욕이 B+까지 올라간 기억이 선명하거늘.
서주환은 다시 그녀의 호감도와 성욕을 확인했다.
<임수희>
호감도: C+
현재 성욕: C+
확인을 마친 그는 절망했다.
호감도는 문제가 없지만 성욕이 C+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새 혼자서 자위라도 한 것일까.
문제는 이제 그가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소중이는 시즈모드로 변화를 마친 상태다. 그런데 옆에 여자가 누워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시 자라? 그건 고문이나 다름없는 처사였다.
‘확 그냥 덮쳐?’
솔직히 옆에 예쁜 여성이 나체로 있는데 가만히 놔두는 게 병신 아니겠는가. 벗은 남녀 두 명이 침대에 나란히 있는데도 강간죄가 성립하나? 이건 수도승이 와도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주환은 이내 열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임수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아까 그 내기 시작하자.”
“응? 난 됐다니까. 뭐 주환이 네가 정 부탁한다면… 꺅?!”
서주환은 순식간에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강제로 하는 것만큼은 막았다.
다만 합법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자, 내기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