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너 스테로이드라고 아냐?
서주환은 낮 동안 미리 글을 써두고 여유 있게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음. 옷은 저번에 코디 받았던 걸로 입으면 되겠지?”
최미화와 처음 만날 당시 커뮤니티를 통해서 코디를 받은 게 두어 개 정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패션 감각을 믿기보다 추천 받았던 코디를 그대로 따랐다.
바지는 스트레이트로 떨어지는 검정 청바지를 입고, 흰 티 위로 갈색 무스탕을 걸친다. 신발은 무난하게 검정색 운동화를 신었다.
“오. 이 정도면 나도 꽤 생기지 않았나?”
아직 술도마시지 않았건만 거울을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서주환.
살이 빠지고 키도 커지면서 제법 보기 좋아진 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이야기일 뿐 얼굴은 아직 흔남을 막 탈출한 정도였다.
[페로몬 스킬을 생각하면 훈남 정도는… 될 거예요.]
“페로몬이 합쳐져야…?”
[걱정하지 마세요.아이템 뽑기가 있잖아요? 외모를 보정해줄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죠.]
주인을 생각해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는 루시였다.
“…응.”
그가 안에 숨겨진 의미를 다 알아들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서주환은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며 말했다.
“일단 오늘 치 템 좀 뽑아볼까?”
포인트에 여유가 생긴 뒤 그는 되도록 매일 아이템을 뽑고 있었다.
아이템의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모든 아이템이 쓸만하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정말 꽝인 경우에는 『맛 좋은 사탕』 따위의 실용도가 전혀 없는 아이템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키가 쑥쑥 텡텡 영약』같은 대박 아이템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좋은 게 나오기를.”
그렇게 간절함을 담아 아이템 뽑기를 시작했다.
이윽고.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오랜만에 발동한 행운과 함께.
[아이템,『내 맘대로 쥬지 커스텀』이 지급됩니다.]
염원하던 대박이 터졌다.
“으라쌰아!”
서주환은 의미 불명의 환호성을 지르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안 그래도 요즘 키라던가 소중이라던가 신체적인 성장이 멈춰서 아쉬웠는데 바라던 게 딱 나와주었던 것이다.
『내 맘대로 쥬지 커스텀』
▶ 효과1: 길이를 2cm 늘릴 수 있다.
▶ 효과2: 둘레를 1cm 늘릴 수 있다.
▶ 효과3: 귀두의 모양을 0.2cm에 한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 효과4: 지름 0.2cm의 돌기를 10개 만들 수 있다.
※ 네 개의 효과 중 하나만 적용할 수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다양한 효과가 있다.
“아, 고민되네.”
단순히 길이를 늘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효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니 고민이 되었다.
“일단 돌기는 기각.”
소중이에 그런 흉물을 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여자를기쁘게 하는 거라면 다른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었으니.
“음. 귀두 커스텀도 기각.”
그는 자신의 소중이 형태에 만족하고 있었다. 휜 각도라던가 귀두의 갓이라던가… 사실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무려 정소라가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해 준 쥬지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길이와 둘레.
사실 그는 처음부터 두 개를 놓고 갈등 중이었다.
길이냐, 두께냐.
결코 쉽지 않은 난제였다.
“결정했다. 1번으로 가자.”
역시 당장 눈에 보이는 건 두께보다 길이라며 결국 2cm의 증가를 선택하는 서주환.
“오, 오오!”
아이템을 선택하자 실시간으로 소중이가 길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이템의 효과는 발기 전 상태에도 적용 되는 건지 노멀 폼 상태였는데도 하물이 묵직해졌다.
원래 시즈 모드가 14cm였으니 이제 16cm인가.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크기가 되었다.
[쥬지 길이 15cm를 달성하였습니다.]
[업적,『업소용 쇠몽둥이』를 달성하여 3,000LP가 지급됩니다.]
이전에 12cm를 달성했을 때는 『가정용 방망이』더니 이제는 쇠몽둥이가 되었다. 확실히 한 층 더 강력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아이템 사용.”
서주환은 곧바로 다음 아이템을 사용했다.
얼마 전 얻은 『키가 쑥쑥 텡텡 영약』.
갑자기 키가 크면 이상할까봐 일부러 시간을 두고 사용하기 위해 아껴놨던 아이템이었다.
그래봤자 1cm증가니 별로 티도 안 날 테지만… 본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는 훗날 180cm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이제 가볼까.”
어쩐지 거울 속의 그 자신이 아까보다 잘생겨 보이는 듯했다.
역시 남자는 자신감이다.
*
“너무 빨리 나왔나?”
습관대로 20분 정도 빨리 나오고 말았다. 처음 참석하는 자리에 혼자 가서 얼 타고 있기는 싫은데… 조금 늦게 나올 걸 그랬다.
“어? 강호 형님!”
다행히도 약속장소인 감자탕 집 앞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손을 흔드니 백강호는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마주 인사했다.
“빨리 왔구나.”
“하하. 습관이라서요.”
“좋은 습관이네. 난 들어가기 전에 한 대 필 건데, 너는?”
“아, 그럼 저도요.”
“근처에 흡연장 있으니까 가자.”
“이 동네는 흡연장이 많아서 좋네요.”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이지.”
두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백강호가 한숨을 쉬듯 연기를 뿜어냈다.
“오늘 먹고 나면 살찌겠지?”
“에이. 형님은 좀 쪄도 돼요. 대회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인간미 없어요.”
“으하하. 내 어렸을 때 꿈이 터미x이터였거든.”
“하하….”
농담이라고 한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웃었다. 딴죽을 걸다가 한 대 맞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물론 진짜 때리진 않겠지만 적어도 얼굴만큼은 터미x네이터에 뒤지지 않는 백강호였다.
백강호가 물었다
“주환아, 너 술 좀 마시냐?"
“흐흐. 아직 저 보다 잘 마시는 사람 본 적 없습니다.”
이건 허세가 아니라 팩트였다.
다른 사람과 술을 마셔 본 경험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당연히 그보다 잘 마시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서주환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호오. 그래?”
농담으로 한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백강호의 눈이 번뜩인다. 이내 산적 같은 웃음을 지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오케이. 알았다.”
뭘 알았다는 걸까.
서주환은 얼른 말을 정정하려고 했지만 백강호는 이미 작정을 한 듯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 괜찮겠지…?’
『숙취해소제(사탕형)』 아이템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한 거지만 그는 실제로 술을 꽤 잘 마시는 편이었다.
*
감자탕 집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으하하하! 오늘은 체지방 걱정 말고 마시자고, 강호 씨!”
“크하하. 좋습니다, 대섭이 형님.”
“어엉? 형님?”
“저보다 세 살이나 많으니 형님이지요.”
“으하하. 그래, 강호 동생! 한 잔 해!”
듣자하니 백강호도 이번이 처음 참석하는 자리라고 한다. 본래 다른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리본 피트니스에 등록한 지는 2달 정도밖에 안 됐다던가?
그런 것치고는 어느새 십년지기 친구처럼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지만 말이다. 저 무서운 얼굴로 저런 친화력이라니 참 모를 일이었다.
그때 자칭 헬스 10년차 3대 540 이문석이 말했다.
“강호 씨는 3대 얼마나 쳐요?”
도발은 아니었고, 그냥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백강호의 피지컬은 리본 피트니스에서도 워낙 압도적이었으니까.
백강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요즘은 안 재봐서모르겠고, 예전에는 육백 정도 쳤습니다.”
“커헉. 육백이요?”
“꽤 오래 전이니까 지금은 좀 더 늘었을 거라고생각합니다. 조만간 측정해보려고요.”
“크으. 저 없을 때 하면 안 됩니다? 그 구경거리를 놓칠 수는 없지!”
서주환은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술을 홀짝였다. 누가 헬창들 아니랄까봐 술안주가 운동 얘기였다. 작작해라, 좀.
그때 옆에 있던 여성이 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운동 얘기만 하니까 재미없죠?”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은 제가 재미없어서요. 아, 저는 이혜리예요. 이름이…서주환 씨라고 했었죠?”
“제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강호 씨가 얘기하는 걸 들어서요.”
그러고 보니 헬스장에서 백강호와 얘기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 있는 것 같다.
“강호 형님이랑 친하신가 봐요.”
“네? 호호. 뭐, 그렇죠?”
잠시 눈을 동그랗게뜨더니 이내 한 쪽 눈을 감으며 윙크를 한다.
찡긋 내리감은 눈 아래 있는 눈물점이 매력적인 여성이다.
나이는 20대 중후반 정도일까?
나긋나긋한 어조와 선한 인상, 부드럽게 웨이브 진 머리 등 어딘가 자애롭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결코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이 자애롭다는 뜻은 아니었다.
서주환은 어쩔 수 없이 가슴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자제해야 했다.
‘이런 가슴은 대체 무슨 컵이지?’
E컵? F컵?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 했던 크기의 가슴이 눈앞에서 위풍당당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서주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혜리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술잔을 내밀었다.
“저도 오늘 모임에 처음 참석해요. 저희 친하게 지내요.”
“아, 네. 얼굴 보면 먼저 인사할게요.”
“호호. 그 말 기억할 거예요?”
그리 말하며 술을 홀짝이는 이혜리.
예쁘게 찍힌 눈물점 때문일까. 어째 나긋나긋한 어조였음에도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찌됐건 일단 말 상대가 생겨서 다행이다.
술이 쭉쭉 들어갔다.
*
한참 술을 마시던 서주환과 백강호는 가게 밖으로 담배를 피러 나왔다.
“후우. 주환아, 난 한 대 더 핀다. 먼저 들어가려면 가라.”
“기다리죠, 뭐. 같이 들어가요.”
항상 루틴이니 식단이니 해서 담배를 안 할 것 같았지만 백강호는 사실 진성 꼴초였다.
애초에 운동을 시작한 이유가 술, 담배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나?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정신승리의 끝판왕 격인 이유였다.
‘이쯤에서 『숙취해소제(사탕형)』나 먹을까?’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시다 보니 취기가 꽤 올라왔다.
『숙취해소제(사탕형)』은 이미 오른 술기운을 낮춰주는 동시에 2시간의 지속 시간 동안 취기가 늦게 오르도록 해준다.
서주환은 품에서 사탕을 꺼내는 척 아이템을 불러냈다.
그렇게 사탕 껍질을 깠을 때였다.
큼지막한 손이 사탕을 덥썩 집어갔다.
“오, 마침 달달한 게땡겼는데. 잘 먹을게.”
“어, 어엇! 형님, 그거!”
그렇게 외쳤을 때는 이미 백강호의 입 안으로 사탕이 사라진 뒤였다.
“꿀꺽. 콜록콜록. 왜 그래? 놀라서 그냥 삼켜버렸네.”
“아, 아니에요….”
서주환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억울하긴 한데 사탕 가지고 정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백강호가 이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비싼 거냐…? 인마, 형이 박스로 사줄게.”
“괜찮아요. 담배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그래요…. 저도 한 대 더 펴야겠어요.”
서주환은 고개를 젓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다시 불을 붙였다.
담배를 피던 백강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했다.
“주환아, 너 스테로이드라고 아냐?”
갑자기 약 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