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대 측정
서주환은 월요일에 이어 화요일, 수요일도 운동을 하러 나왔다.
이제는 살을 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운동 자체가 재밌었다. 점점 보기 좋게 잡혀가는 근육을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섹스고 뭐고 헬창이 되어보자.
“후욱, 후욱.”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이어트를 할 때와는 조금 다른 운동을 해야 한다. 유산소로 지방만 태울 것이 아니라 적절한 웨이트 운동이 필요했다.
임수희에게 PT까지 받으며 열심히 운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서주환도 제법 봐줄 만한 몸을 갖게 되었다.
‘오늘은 가슴이다.’
이번에 할 건 벤치프레스다.
군대에서는 간신히 60kg을 들었는데 어느덧 70kg 이상을 가뿐히 들 수 있게 되었다. 회귀 시점을 기준 삼으면 20kg을 증량한 샘이었다.
고작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룬 성과치고는 과할 정도로좋은 성과. 여자 젖처럼 늘어져 있던 가슴은 탄탄한 근육으로 변모했다.
‘아, 진짜 아쉽네.’
시간이 지날수록 『헬창의 축복』의 적용 기간이 얼마 남지 안았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 기세로 일 년 정도만 운동을 더 하면 말로만 듣던 3대 500도 꿈이 아닐지 모르는데 말이다.
“읏차.”
그는 바에 원판을 달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무겁게 가볼 생각이었다.
‘이왕 하는 김에 몇이나칠 수 있는지 해볼까?’
단 1회 들 수 있는 최대 무게를 1RM(1Repetition Maximum)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3대 측정 또한 1RM이 기준이다.
측정을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부상방지를 위해서라도 1RM 측정은 혼자 하는 걸 지양해야 했다.
서주환은 휘휘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이 시간이면 나와있을 형이 한 명 있다.워낙 눈에 띄는 사람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언더아머를 입은 근육질의 수염 아저씨가 데드리프트를 하려는 듯 자세를 잡고 있었다.
서주환은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강호 형님.”
“주환이냐? 잠깐만 기다려. 이것만 하고.”
“옙.”
그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소곳한 자세로 기립했다.
“흡!”
수염 아저씨는 기합과 함께 근육에 힘을 줬다. 동시에 200kg에 달하는 바벨이 가뿐하게 들어 올려졌다.
‘와. 언제 봐도 이건….'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말이 안 나온다. 보는 사람이힘들 지경인데 그걸 저리 가볍게 들다니.
당연하게도 자세는 완벽 그 자체다. 견갑골은 수직선상에 고정되어 있었고 기립근과 햄스트링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땅을 밀고 있는 다리도 엄청났다. 무슨 놈의 허벅지가 쇳덩이 보다 단단해 보였다.
쿠우우웅!
바벨을 내려놓자 고무판 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가 울린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했는지, 정해진 루틴을 마치고서야 그가 땀을 훔치며 돌아봤다.
“후우. 그래, 무슨 일이냐?”
수염 아저씨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를 본다. 생긴 것도 전형적인 호랑이상이라서 서주환은 절로 움츠러들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잘못했어요. 목숨만 살려주세요.
서주환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강호에게 용건을 말했다.
“형, 저 3대 한 번 쳐보려고 하는데…”
“뭐? 3대?!”
“허억! 죄송해요! 저 같은 게 감히! 더 운동하고 올게요!”
덥썩!
도망치려고 하는 서주환의 목덜미가 붙들렸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엄청나다.
잘못했습니다. 언더아머 입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궁금해서 그랬던 거예요!
“인마, 왜 도망가?”
반강제로 그를 돌려세운 백강호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나 화난 거 아니다. 그렇게 도망가면 상처받아 인마.”
백강호가 퉁방울 같은 눈으로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무서울 뿐이었지만.
“하하. 저도 그냥 장난 친 거였어요.”
“아, 장난이었어?”
“그럼요.”
반쯤은 장난이 맞았다.
뒷덜미를 잡혔을 때는 반쯤 진심이었고.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본명, 백강호.
별명, 호랑이 형.
백강호와 알게 된 건 당연히 운동을 하면서였다.
서주환은 축복이 적용되는 동안 최대한 뽕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운동을 했는데,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그 강도가 운동 중 쓰러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임수희가 몸 상한다며 말린적도 있었으니.
여하튼 그렇게 죽어라 운동을 하고 있는 서주환의 모습이 백강호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꼭 자기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특하다나 뭐라나. 물론 그렇게 운동하면 탈난다고 충고를 들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둘은 나름 친하게지내는 중이었다.
‘인상과 달리 착한 형이란 말이지.’
사람 두어 명 쯤은 담가봤을 것 같은 인상과 달리 백강호는 털털하고 성격 좋은 형이었다. 가끔가다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백강호가 자기 나름대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3대 치게 도와달라고 했지?”
“예. 몇이나 칠 수 있을지 궁금해서요.”
“크흠. 알았다. 잘 말했어. 괜히 혼자 하다가 다치면 안 되지.”
백강호는 씩 웃으며 서주환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물론 그 팡팡은 백강호의 기준이었다.
“그럼 벤치부터 해봐.다치는 건 걱정하지 말고.”
“옙.”
그렇게 서주환의 3대 측정이 시작됐다.
*
최근 그의 벤치프레스 최고 무게는 70kg.
일단 5kg을 증량해서 들어 올려 본다.
“흐으읍!”
번쩍.
예상 외로 무리 없이 올라가는 바벨.
그걸 본 백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kg 더 달아보자.”
“예? 너무 갑자기 늘리는 거 아니에요?”
“지금 들어 올리는 거 보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 안 다치게 보조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옙.”
백강호의 말은 정확했다.
한계까지 힘을 짜내자 팔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기어코 바를 들어 올렸던 것이다.
철커덩!
서주환은 바를 내려놓고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우욱! 와. 이게 되네요?”
“된다고 했잖냐. 흠. 하긴, 내가 시켜 놓고도 놀랍긴 하다. 아무리 초보자라도 증량이 이렇게 빨리 되나? 진짜 타고났네.”
“흐흐. 칭찬 감사함다.”
“실실 웃지 말고 인마. 대신 너는 등이 부실해. 다음은 데드 해봐.”
“옙!”
백강호의 말대로 그는 벤치에 비해 데드 수치가 낮게 나왔다. 벤치를 85를 들었는데 데드는 120이 간신히 나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벤치보다 데드가 50~60정도가 더 높게 나오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등이 부실했다.
마지막으로 스쿼트.
서주환은 바를 잡기 전에 잠깐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는데, 어느새 헬스장 내 몇몇 시선들이 몰려있었다. 3대 측정하는 걸 보고 흥미로운 눈빛들이다.
물론 ‘대단하다’라는 반응보다는 헬린이를 구경하는 눈빛이다. 어느새 임수희도 옆에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임수희 같은 미녀가 보고 있으니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남자는 하체!
서주환은 바를 잡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흡!”
번쩍!
120kg이 단번에들어 올려졌다.
생각보다 손쉽게 해내는 모습.
그게 의외였는지 백강호도 조금 놀란 눈이었다.
“주환이 너 하체가 생각보다 더 좋은데? 10kg 늘려보자.”
무게를 늘리고 다시 앉았다가 일어난다.
“흐읍!”
중심은 안정적이고 예상보다 힘에 여유가 남았다.
여지없이 그를 포착한 백강호는 다시 무게를 10kg 추가했다.
“자세 무너질 것 같으면 뒤에서 받쳐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자, 스쾃!”
바벨을 잡고 가슴을 연다.
엉덩이를 꽉 조이고 코어에 힘을 유지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흐으읍!”
140kg의 무게를 짊어진 채 복압을 유지한다. 그리고 힘을 주어 다시 올라간다!
“흐으으읍!”
부들부들.
“끄으읍!”
번쩍!
결국 간신히 성공하고야 마는 서주환.
철커덩!
그는 얼른 바를 고정대에 걸쳐놓고 참았던 호흡을 거칠게 내뱉었다.
“으아. 어지러.”
순간적으로 머리에 피가 몰려서 핑핑 돌았다.
“주환이 대단하네. 허벅지 좀 봐. 자, 여기 물.”
다가 온 임수희가 그의 허벅지를 찰싹 두드리며 물을 내밀었다.
“아, 누나. 고마워.”
“너 진짜 굉장하다. 벌써 이렇게 무게를 늘리는 게 말이 되나?”
그리 말하는 임수희의 눈은 흥분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주환아 수고했다."
돌아보니 백강호가 호쾌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서주환은 마주 엄지를 들어 답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쇠질은 형님만 믿겠습니다.
*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
임수희가 말했다.
“주환아, 오늘 저녁에 한 잔 할래?”
“어? 술 마시자고?”
서주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가 알기로 임수희는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쓰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를 하지않았다.
“누나 술 안 하지 않아요?”
“어머. 나 술 좋아해. 평소에는 일부러 안 먹는 거지.”
“그런데 오늘 왜요?”
“호호. 날 잡고 그때만 마시는데, 오늘이 안양 지점 모임이거든.”
그렇다면 더 이상하다. 직원들이랑 모이는데 그가 끼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은가.
친한 회원들은 참석하기도 하나?
서주환은 여전히 의문을 담아 물었다.
“직원들이랑 가는 거예요?”
“아니. 자주 나오는 회원님들이랑. 직원들은 자유 참석.”
“아아.”
서주환은 그제야 납득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 헬스장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임도 갖는 다더니 리본 피트니스가 그런 모양이었다.
‘오래 나오지도 않았는데 고맙네.’
그가 리본 피트니스에 다닌 건 고작해야 두 달도 안 되었다. 안양 지점은 한 달 남짓일까.
서주환은 슬쩍 임수희의 상태창을 열어 성욕과 호감도를 확인했다.
<임수희>
현재 성욕: B
호감도: C+
어느새 호감도가 C+를 달성했다.
말을 놓은 게 주효했던 걸까.
분명 얼마 전에 확인했을 때는 C였는데 모르는 새 올라있었다.
루시가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3대 측정을 할 때 올랐습니다. 집중하고 있으셔서 다칠까봐 알림을 꺼놨었어요.]
‘아, 그래? 고마워.’
젖먹던 힘까지 다 쥐어짜고 있었는데 그때 알림이 울렸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환아?”
아차! 성욕과 호감도를 확인하느라 생각이 조금 길어졌다.
임수희가 눈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니?”
“무, 물론이죠.”
“흥. 안 듣고 있었구나? 그리고 반말.”
임수희는 아직도 반말에 집착했다.
설마 진짜로 자기를 스물다섯이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누나가 동안이긴 해도 그건 좀 양심이 없는데.’
임수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 말해줄게.”
“응. 이번엔 잘 들을게.”
“특별한 건 아니고 운동 열심히 하는 회원님들 하고 가끔 회식 자리를 가져. 회비는 그때그때 걷는 편이고. 어때? 올 거야?”
“음. 갈게. 회비는 얼마야?”
임수희가 눈을 찡긋 윙크하며 말했다.
“호호. 너는 처음이니까 누나가 내줄게.”
“어? 괜찮은데…”
“어허. 누나가 사준다니까?”
허리에 양 손을 짚고 눈을 부릅뜨는 임수희.
인상이 선해서 전혀 위압감이 없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준다는데 구태여 계속 거절할 필요는 없다.
그제야 임수희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온다니까 다행이다.”
“다행? 왜?”
서주환은 약간의 기대감을 담아 물었다.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근육 페티시인 임수희이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서주환도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몸을 갖고 있었다. 몸을 노리고 오는 거라면 사양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아쉽게도 임수희의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회원님들이 주환이 널 마음에 들어 하거든. 운동 열심히 한다고. 특히 오늘 주환이 너 하는 거 보고 초대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
임수희가 아니라 다른 회원들이 먼저 제의를 한 모양이었다.
서주환은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보면 더 좋은 몸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 굳이 그한테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아, 너 강호 씨랑 친하지? 참고로 강호 씨도 나올 거야.”
“오, 그래? 의외네. 그 형 무섭게 생겨서 친구 없을 줄 알았는데.”
“어머? 그거 강호 씨한테 다 말한다?”
“히익.”
그건 좀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