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잘못했어요, 누님
[3,000LP를 사용하여 재능, 박투(C+)가 박투(B)로 상승합니다.]
[7,500LP를 사용하여 속독(F)가 속독(B)로 상승합니다.]
[10,000LP를 사용하여 재능,『박투』의 랜덤 특수능력을 구매합니다.]
[특수능력, 『집중: 슬로우비디오』를 습득했습니다.]
[10,000LP를 사용하여 재능,『속독』의 랜덤 특수능력을 구매합니다.]
[특수능력, 『정독&속독』을 습득했습니다.]
서주환은 박투와 속독을 B등급으로 올리고 각각 특수능력을 구매했다. 그것만으로도 30,500LP에 달하는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되었다.
최미화에게서 얻은 포인트보다도 많은 값.
하지만 특수능력을 화인하니 그 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집중: 슬로우비디오】
▶ 효과: 동체 시력과 사고가 빨라진다.
※ 박투 상황에서만 온전한 효과가 발휘된다.
【정독&속독】
▶ 효과: 단 하나의 글자도 놓치지 않고 정독 같은 속독을 할 수 있게 된다.
두 개의 특수능력을 본 서주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글쓰기나 게임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그 효과만큼은 발군이었다.
“이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네.”
물론 원래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는 불행하게 살아왔던 만큼 독한 구석도 지니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딱히 물리적으로싸울 일이 없어서 유순해졌지만 말이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두 번째 특수능력이었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읽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정독&속독』은 글쓰기 재능에서 얻은 『속기사의 키보드』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특수능력이었다.
“상태창.”
전역 이후 처음 열어보는 상태창.
이름: 서주환
나이: 23
성별: 남성
키: 175cm
몸무게: 76kg
재능:【글쓰기(B/B+)】, 【게임(B/B+)】, 【교육(D+/A+)】, 【박투(B/A)】, 【속독(B/A+)】
스킬: 【페로몬(Rank: B)】, 【성스러운 손길(Rank: C+)】, 【성스러운 씨주머니(Rank: F)】
특수능력: 【속기사의 타속】, 【멀티태스킹: 다중작업】, 【집중: 슬로우 비디오】, 【정독&속독】
축복:【몽마의 축복(23)】, 【헬창의 축복(23)】
처음의 단촐했던 상태창과는 비할 수 없이 갱신되었다.
보기만 해도 든든해져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어느덧 2월 중순.
그간 서주환은 성실히 글을썼고, 계약 후에는 편당 구매수 1만 이상의 성공적인 유료 전환을통해 회귀 전과는 비할 수 없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밤새 들어온 포인트를 확인했다.
[업적, 『투데이베스트 1위』를 달성하여 1,000LP가 지급됩니다.]
[업적, 『주간베스트 1위』를 달성하여 3,000LP가 지급됩니다.]
유료 전환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연재 관련 업적의 활성화였다.
투데이베스트 1,000LP.
주간베스트 3.000LP.
아직 월간베스트는 얼마나 주는지 확인하지 못 했다. 아마 이번 달 내로 확인 할 수 있지 싶었다. 물론 1위를 하지 못 한다면 다음 달을 노려야겠지만, 현재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의 기세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첫 달 버프라는 것도 있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안정적인 LP 수급처가 생겼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베스트 시리즈 업적은 중복이 가능한 업적이었고, 10위 안에만 들면 1위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량의 LP를 지급해 주었다.
덕분에 서주환은 『집중의 축복』과 『아이템 뽑기』에 사용할 LP를 얻을 수 있었다.
“흠.괜찮은지 잘 모르겠네….”
그는 퇴고를 마친 글을 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기 글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건 힘든 일이다. B급의 글쓰기 재능을 보유했어도 여전히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작업이었다.
“후우. 재능을 올린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란 말이지.”
최근 들어 깨달은 것이었는데, 재능을 올린다고 해도 본질적인 실력이 느는 건 아니었다.
재능과 지식의 영역은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할까.
B급의 박투 재능을 예로 들면 명확했다.
서주환은 어지간한 프로와도 견주어볼 수 있는 박투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이길 수 있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프로. 온갖 격투기를 단련했음은 물론 전투에최적화 된 몸을 가진 괴물이다.
반면 그는 단순히 재능을 가지고 있을 뿐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상태였다. 물론 특수능력도 있으니 작정하고 싸운다면 혹시 모르는 일이었지만.
요는 재능을 100% 끌어내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글쓰기 재능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걸까?’
적어도 다른 재능에 비하면 분명 효율이 좋다. 글을 업으로 삼고 썼던 가락이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100% 활용하고 있느냐 하면 여전히 의문이다. 아직도 글을 쓰는 중간 마다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행인 점은 이러한 답답함을상당부분 해소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서주환은 퇴고를 마친 비축분을 최미화에게 보내주었다. 곧바로 1이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돌아왔다.
[최미화(음란토끼)]
- 이번 편도 재밌어!
- 그런데 남궁서린의심리 묘사가 좀 어색한 것 같은데 어떤 생각으로 쓴 건지 설명해줄 수 있어?
- 아, 그리고 비문 하나 있는데 한 번 확인해봐.
- …여기 이 부분이야.
최미화는 기대했던 대로 뛰어난 편집자였다.
그녀는 서주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알려줄 때도 있었고, 비문 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다. 또 남자인 그로서는 어색한 감이 있는 여성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도와주기도 했다.
지금만 해도 무의식중에 걸리던 부분을 명확하게 풀어주었다.
“크으. 역시 미화.”
잠깐의 상담을 통해 답답하던 부분이 해결됐다.
본래 서주환은 다른 사람에게의견을 구하기보다 혼자 고민하는 편이었다. 어설프게 이 생각, 저 생각을 듣다보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릴 것같았기 때문이었는데, 최미화의 조언만큼은 예외였다.
(나): 땡큐. 그렇게 고쳐볼게.
(최미화): ㅇㅇ고치면 보여줘!
(나): ㅇㅋ
(최미화): 빨리 써라, 글 노예. 일해라 핫산!
(최미화): (당근을 들고 위협하는 토끼 이모티콘)
토끼가 발로 바닥을 탁탁치며 당근을 몽둥이 마냥 손바닥에 두드린다.
무슨 이모티콘이 이렇게 역동적인지.
빨리 다음편을 내놓으라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서주환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 좀 괜찮은가 보네.”
그날 이후, 최미화는 그를 꽤 어색해 했다. 직접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까톡 메시지에서 그런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작가고 최미화는 그의 담당 피디.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있었고, 어색함은 서서히 사라졌다.
애초에 활자중독자인 그녀는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의 비축분을 미리보고야 말겠다는 의지 때문에라도 그에게 먼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호칭이나 반말 문제도 포기한 듯했다.
“으아. 다 썼다.”
조언 덕분에 걸리던 부분을 금방 수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친 부분을 최미화에게 보내려는데, 못 보던 까톡 두 개가 보였다.
곧 메시지를 확인한 서주환의 눈이 커졌다.
[대안대학교 16학번 단톡방]
[이정훈]
“이 형이 어떻게 까톡을 보냈지?”
대안대학교는 그렇다 치자. 그가 복학생이라지만 1학년이었던 만큼 16학번 단톡방에 초대 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군대에 있을 이정훈은 어떻게 까톡을 보낸 걸까. 스마트폰 사용은 20년도에나 풀릴 텐데.
“휴가를 예정보다 빨리 나왔나?”
그는 이정훈의 까톡부터 확인했다.
[이정훈]
- 잘 지내고 있냐?
- 아, 이거 몰폰이니까 전화하지 마.
“아하. 이 형 이거 보관함 땄구만.”
사정을 안 그는 낄낄 웃음을 흘렸다.
그가 있었던 4중대는 인원이 적은 중대다. 이 때문에 간부들의 관심을 덜 받았고 위치도 3층인지라 휴대폰 보관함이 다른 중대와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덕분에 몰래 휴대폰을 사용하기에 용이했는데, 이를 이용해먹기 위해 옛 선임들은 보관함의 스페어키를 잔뜩 만들었다. 그리고 그 스페어키는 아직까지도 4중대 고참들에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스페어키를 물려받은 사람은 말년으로접어들면 다들 알게 모르게 몰폰을 하고는 했다.
그는 말년에 운동을 하느라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이정훈]
- 너 참모총장 포상도 양도해줬더라?
- 미리 언질이라도 주지 맨날 뜬금포냐.
- 아무튼 고맙다. 너무 나만 받기 눈치 보여서 지난번에 받은 혹한기 포상은 석규한테 줬다.
- 아, 나 20일에 휴가 나간다. 조만간 보자. 시간 비워놔.
-포상 준 보답으로 형이 금요일 화려하게 불태워준다ㅋㅋㅋ
- 만루홈런 쳐드림. 기대하고 있어.
이정훈의 까톡을 확인한 서주환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기억하고 있네.”
포상을 양도한 보람이 있다. 벌써부터 금요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으로 16학번 톡방을 확인했다.
[대안대학교 16학번]
(백정기): 신입생들 반갑다. 나 2학년 과대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2월 23일 입학식이 있다. 단순 입학식 뿐 아니라 수강신청 방법과 앞으로 지내게 될 대학 생활에 대해 알려줄 예정이니 모두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까톡 확인하면 답장하고.
(이수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하나): 알겠습니다.
(이석찬): 알겠습니다.
(정하연): 알겠습니다.
......
....
공지 외에는 알겠다는 대답만 주르륵 올라와 있었다. 이제 막 만들어진 톡방이라 그런지 신입생들끼리 떠들지도 않는다.
하긴, 불편하게 선배가 있는데 떠들기도 그렇겠지. 나중에 따로 톡방을 만들던가 백정기가 나가면 떠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나저나 백정기라… 서주환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있었지.”
특별히 마찰을 빚은 건 아니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놈도 아니었다.
일단 말투부터가 거슬린다. 톡방에 있는 사람들이 신입생이라지만 벌써부터 반말을 하고 있었다. 본인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아, 학번 가지고 지랄하는 놈이었지.”
군대도 안 갔다 온 놈이 기수 놀이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렇다고 지금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나한테만 지랄 마라.”
먼저 나서서 갈등을 빚는 건 성격에 맞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었지만 원한이라고 할 만큼 큰 감정도 아니었다.
다만 먼저 건드린다면 굳이 참을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다시 대학이구나.”
까톡방에 초대되니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순간 서주환은 아싸로 살았던 이전 생활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와는 다르다.
키가 커졌고 살은 빠졌으며 트라우마도 없고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졌다. 거기에 돈 걱정이 없으니 성적에 연연하지않고 다녀도 된다.
회귀 전과는 모든 게 달랐다.
“아싸는 면해보자.”
이번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캠퍼스 라이프라는 걸 보내볼 수 있으려나.
조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서주환은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축복 기간도 얼마 안 남았네.”
몽마신과 헬창의 축복 모두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간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사라질 걸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루시, 이것도 나중에 생기겠지?”
[레벨이 오른다면 생길 거예요. 몇 레벨인지는 말씀드리지 없지만요.]
“음. 아이템 뽑기에서도 나오나?”
[네. 확률은 비밀이랍니다.]
“확정으로 사용하려면 레벨이 올라야겠구만.”
욕망 시스템은 그 이름처럼 다양한 욕망을 흡수하고 성장한다. 단순히 LP를 많이 모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욕망을흡수하는 게 중요했다.그 욕망은 서주환 본인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었다.
“역시 헬스장은 가까워야지.”
안양에 있는 리본 피트니스도 집에서 10분이면 도착한다.
익숙하게 회원증을 찍고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은 피티를 받는 날.
이제는 제법 친해진 임수희 트레이너가 그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 주환아. 오늘도 빨리 왔네?”
“약속 시간은 여유롭게 가는 게 습관이라서요.”
이 또한 회귀 전의 불행 때문에 만들어진 습관이었다. 제 시간에 출발해도 예상치 못한 일로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20분, 30분씩 일찍 출발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호호. 좋은 습관이네. 운동은 부지런한 게 중요하지.”
옳게 된 운동인의 마인드라며 고개를 주억이는 임수희.
서주환은 그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참 한 결같이 운동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환이는 대학생이라고 했나?”
“네.”
“조만간 개강하겠네?”
“그렇죠?”
“음. 개강해도 운동은 계속나올 거지?”
“어… 글쎄요?”
“설마 안 나오려고? 근육은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금방 빠진다? 근손실 나.”
“근손실이 그렇게 쉽게 나는 거던가요?”
헬스인들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근손실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가 알기로 사실 근손실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정말한계까지 단련한 사람이라면 빠질 근육이 많으니 또 모르지만 오히려 초보자는 반대로 빠질 근육도 얼마 없어서 덜 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임수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특히 주환이 너처럼 운동 얼마 안 한 사람들은 금방 빠져.”
“음. 어지간하면 꾸준히 다닐게요. 그런데 저도 대학 생활이 처음이라서 확실하지는 않아요.”
“으음. 내가 진짜 너무 아쉬워서 그래. 주환이 너는 진짜 타고난 몸이라서 꾸준히만 하면 몇 년 내로 대회도 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
“하하. 대회는 좀… 제 목표는 패션 근육입니다.”
서주환은 곤란하다는 듯 눈가를 긁적이며 말했다. 대회에는 전혀 나갈 생각이 없었다.
딱히 크고 두꺼운 근육에 거부감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터질 듯 부담스러울 정도의 근육은 사양이었지만, 그건 약을 병행해도 인생 전반을 투자해야 할 만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니 논외였다.
그럼 국내에서 개최하는 내츄럴대회를 나가야 할 텐데, 그가 내츄럴 대회에 나가기엔 영 찝찝했다.
‘사실 합법적 도핑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현재도 적용 중인 『헬창의 축복』은 어지간한 약보다 효과가 좋은 도핑이었다.
업이 정상화 되며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지만 축복이 없었다면 이렇게 단시간에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로 불가능하다.
축복을 사용한 그가 헬스 대회에나가는 건 다른 내츄럴 헬스인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적어도 서주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그는 비단 헬스뿐만 아니라 구기 운동 등의 스포츠나 복싱, UFC격투기와 같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순위 경쟁을 하는 대회에는 발을 들일 생각이 없었다.
‘글은… 내가 잘나간다고 다른 사람을 누르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건 도핑이 아니라 재능이고.’
큰 틀에서 보면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가딱 서주환이 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임수희는 그의 말에 정말이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 응. 그래도 계속 운동을 하다 보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그때는 나한테 말해. 전력으로 도와줄 테니까.”
“하하. 감사합니다.”
서주환은 부정하는 대신 감사를 표했다.
어차피 본인이 안 하면 될 일.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듭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미안했다.
그때 아쉬워하던 임수희 트레이너가 한 발작 다가오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말 높일 거니? 우리친구하기로 했잖아.”
“하하….”
PT를 진행하는 동안 임수희는 자신의 나이를 밝힌 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몇 살 같냐고 물어보기에 25살 정도로 불러줬더니 장난식으로 조금 전과 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이봐요, 누님. 양심 좀 챙깁시다. 당신 저랑 7살 차이에요.’
물론 회귀 전의 나이로 치면 그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말은 놓을까?’
사이가 가까워지는데 말을 놓고 안 놓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생각을 마친 서주환은 마주 장난스럽게 말했다.
“누님… 이 아니라, 그래도 누나인데 친구는 좀 그렇고 말은 놓을게. 괜찮지?”
말을 놓으라고 했다지만 한 번 더 확인했다. 놓으란다고바로 놓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럼. 내가 놓으라고 했는 걸.”
그냥 한 말은 아니었는지 다행히 임수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준비 좀 하고 올게?”
“응.”
그리 말하며 몸을 돌리… 는가 싶더니 임수희가 그를 향해 고개를 반쯤 돌리며 말했다.
“한 번 더 누님이라고 부르면 혼난다?”
분명 웃는 얼굴로 나긋나긋 말하는데 무섭다.
이게 나이 서른을 달성한 여자의 기백인가.
서주환은 저도 모르게 존대로 대답했다.
“…네.”
“반말.”
“응.”
잘못했어요,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