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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뭐야, 그거 무서워…. (30/501)



〈 30화 〉뭐야, 그거 무서워….

그럼 내일 저녁에 뵐게요, 작가님.
“예. 내일 뵙겠습니다, 피디님.”

두 사람은 일요일 저녁 식사를 약속했다.
서주환은 연락이 끊어진 스마트폰을 보며 눈꼬리를 긁적였다.


“그때 그 여자가 최미화 피디일 줄은….”

물론 번호를 받았을 당시 이름을 듣긴 했지만,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지 설마 동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애초에 전생에서도 그녀의 이름만 들어봤지 얼굴은 한 번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잘 됐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능력 있는 편집자와 사적으로도 좋은 인연을 만든 셈이었으니  된 일이었다.
최미화는 현재도 업계에서 알음알음 이름을 날리고 있는 능력자였다. 그녀가 발굴한 여러 작품들 덕분에 출범한지 1년밖에 안 된 신생 매니지인 퍼니북스의 이름도 주가를 올리고 있을 정도. 어째서 4년차 편집자인 그녀가 본래 다니던 ‘레드노벨’을 그만두고 신생 매니지로 옮긴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서주환은 문득 최미화의 상태창이 궁금해졌다. 그녀처럼 뛰어난 편집자는 어떤 재능을 갖고 있을까.

“루시, 최미화 상태창 보여줘.”


최미화와는 이미 접촉한 바가 있다. 구해줬을 당시 품에 안겨서 엉엉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녀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성별: 여성
나이: 24
키: 161cm
몸무게: 53kg
호감도: B
현재 성욕: C+
페티시: Pictophilia(中), Narratophilia(下)
보유 재능: 안목(A/A+), 속독(B+/A+), 소통(C+/B+), 독설(C/B+)


서주환은 작게 감탄했다. 야한 걸 좋아하는 여자라니 호감이 아니고 뭔가.


“오… 역시 탐나는 재능이네.”

특히 안목과 속독에 눈길이 갔다.
예상컨대 안목은 작품에 대한 가능성을 보는 눈일 터. 어쩌면 사람이나 여타 사물을 볼 때도 해당되는 광범위한 재능일 수도 있다.
속독은 문자 그대로 글을 빨리 읽는 재능일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아직 밑바닥에 있는 작가들까지 발굴할 수 있는지 짐작이 가는 재능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한 양의 글을 읽는 거겠지.
반면 독설 재능은 좀 무서웠다. 전생에 알음알음 들었던 소문이 떠오른다. 그녀는 다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피드백을 하는 독설가로 유명했다.


“으음. 진짜 갖고 싶은데.”

안목과 속독 둘 중 하나를 얻는다면 글을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재능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섹스를 해야 한다는  문제다.
여자를 하루 만에 꼬셔서 떡을 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높은 난이도였다.
정소라 때는 ‘페로몬’이라던가 ‘뚱뚱한 체형’ 등 그녀가 지닌 페티시 두 개 모두와 상성이 좋아서 가능했던 것이다. 더불어 정소라는 1년 넘게 함께한 시간이 있지 않던가.
최미화와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부분이라면 그가 최미화를 구해준 은인이라는 점이었는데 과연 그것만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괜히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일이 틀어지면 최고의 담당 편집자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서주환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씁. 일단 한 번 질러 보는 거지 뭐.”


쉽사리 포기하기에는 그녀가 지닌 재능이 너무 탐났다. 결국 슬쩍 찔러보기라도 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루시, 페티시 설명해줘.”


혹시 페티시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루시의 설명이 들려왔다.

[Pictophilia(픽토필리아)는 음란 영상, 이미지, 글 등에 중독된 상태를 말합니다. 중급인 걸 보면 야한 걸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네요.]
[Narratophilia(넬레토필리아)는 막말, 욕설, 선정적인 말 등에서 흥분을 느끼는 도착증입니다. 물론,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흥분할지는 개인에 따라 많이 다릅니다.]

“오….”


서주환은 작게 감탄했다.
음란물과 선정적인 말을 좋아한다라.
어쩐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서주환은 지난밤과 오늘 아침, 아이템 뽑기를 구매했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아이템, 모발~모발 영양제가 지급됩니다.]
[아이템, 매력 상승 립밤이 지급됩니다.]


뽑기에서 나온 아이템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모발~모발 영양제(x10)】
▶ 효과1: 모발에 영양을 공급하고 머릿결 상태를 좋게 만들어준다. 꾸준히 사용한다면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효과2: 탈모 방지 및 치료를 해준다. 방지는 즉효지만 치료에는 진행 상태에 따라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매력 상승 립밤】
▶ 효과1: 입술의 매력을 상승시켜준다. 여성이 보기에 키스를 하고 싶어지는 입술일지도?
▶ 효과2: 입술이 트는 걸 방지하고 이미 튼 입술을 재생시켜준다. 재생에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오오! 탈모 치료제!”


영양제의 효과를  서주환은 크게 흥분했다.
탈모 치료제라니!
모발의 영양 상태나 머릿결은 둘째 치고 탈모를 치료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과학 기술로도 탈모만큼은 치료할  없는 영역이지 않던가. 특히 원형 탈모가 아닌 M자 탈모라면 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게 고작이었다.
회귀 전의 서주환은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극심한 M자 탈모 때문에 가발을 써야만 하는 신세였다. 급성으로 진행되었던 탓에 하루하루 줄어가는 머리카락을 보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덕분에 M자로 모자라 원형 탈모까지 오는 바람에 분루를 머금고 머리를 빡빡 밀었더랬다.
물론 지금은 업이 정상화 되며 달라졌겠지만, 한 번 탈모의 공포를 경험한 서주환으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아이템이었다.
서주환은 영양제가 열 개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 너무 아쉬웠다.


“…포인트 열심히 벌어야지.”

그 어느 때보다 굳은 다짐이었다.
랜덤으로 나오는 아이템을 뽑으려면 포인트가 필요했다.

*

최미화와 만나기로 한 시각은 저녁 7시 경이다.
사실 더 빨리 만날 수도 있었지만 서주환은 일부러 시간을 늦게 잡았다.
아침 운동 후  가기 위함이었다.


“으아… 힘들다. 수희 쌤 수고하셨습니다.”
“후후. 주환 씨도 고생하셨어요.”

리본 피트니스의 사장이자 그의 PT트레너인 임수희.
그녀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말했다.
서주환은 안양으로 거처를 옮겼음에도 여전히 헬스장에 다니는 중이었다.
다만 광명이 아닌 안양점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었는데, 천운으로 안양점에서도 임수희의 PT를 받을 수 있었다.

“수희 쌤이 광명점이랑 안양점을 오가서 다행이에요. 새로운 트레이너님을 붙여줄 수 있나 문의 드리려고 했거든요.”
“…아하하. 안양점을 오픈한지 오래 안 돼서 살펴보려고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네요.”

임수희는 잠시 멈칫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서주환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니 그녀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환 씨는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거의 환불처리 되거든요. 중간에 트레이너를 바꾸긴 어려우니까요.”
“아하. 진짜 다행이네요.”
“후후. 주환 씨도 중간에 트레이너가 바뀌는  싫죠?”
“네. 아무래도 익숙한 사람이 좋죠. 그리고 수희  같은 분한테 배우면 좋잖아요.”
“어머. 그건 무슨 뜻?”
“하하. 쌤이 굉장히  가르친다는 뜻이요.”
“에이. 그게 끝?”
“…물론 미녀 트레이너한테 배우는 이점도 있죠.”
“쿡쿡. 그렇게 말해도 운동할  안 봐드릴 거예요.”
“윽. 들켰어요?”


그가 짐짓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PT를 계속하다보니  정도 농담은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둘이었다.
서주환은 샤워를 한  그녀에게 인사하고 헬스장을 나왔다.


“어디 보자… 시간은 충분하네.”

오전 운동을 마쳤으니 슬슬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오랜만에 미용실도 가고 옷도 사려면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옷은 무난한 걸로 한 벌만 사자.’


키가 크고 살이 빠져서 일전에 사둔 운동복을 제외하면 몸에 맞는 옷이 없었다.
그럼에도 한 벌만 사는 이유는 아직도 체형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던 키는 슬슬 멈추는 듯했지만 몸무게는 계속 빠져서 최근 75kg을 달성한 참이었다.
175cm에 75kg.
아직은 살짝 과체중이었지만 92kg일 때와 비교하면 새로 태어난 수준이었다.

서주환은 미리 예약해둔 미용실로 향했다.
항상 집 근처에 있는 남성전문 이발소에서 잘랐지만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안양에서 제일 비싼 미용실을 예약했다.
동네 미용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성 직원이 영업용 미소를 예쁘게 지어보이며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오신 적 있으세요? 지명하고 싶은 미용사는 이쪽에 써주시면 됩니다.”
“아니요. 처음 왔습니다. 아, 예약은 미리 해놨어요.”
“아하. 그럼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서주환이에요.”
“네. 잠시만요… 어? 아, 그 운 좋은 분이시구나.”
“네?”

뜬금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직원이다.
직원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신바다 미용사한테 예약하셨죠?”
“아, 네.”
“사실 바다 씨가 저희 미용실 에이스거든요. 그래서 항상 예약이 꽉 차 있어요. 바다 씨 예약하기 엄청 힘든 사람이에요.”
“…….”
“그런데 얼마 전에 딱 한 분이 예약을 취소했거든요? 그때 딱 빈자리에 바로 예약을 하신 게 손님이에요.”
“…아, 네. 그렇군요.”


말하는 걸 좋아하는지 재잘재잘 수다스럽게 말하는 직원. 어쨌든 운이 좋다는 뜻이었으니 나쁠 건 없다.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미용사  명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주환 님?”

청바지에 하얀 티를 입은 여자 미용사.
신바다가 밝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네.”
“어떻게 해드릴까요?”
“어…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추천 해주실만한 머리가 있을까요? 일단 앞머리는 그냥 두려고 하는데요. 아, 끝나고 세팅도 부탁드려요.”


큰 미용실의 에이스라고 하니 뭔가 해주겠지 싶어 말하고 보는 서주환이었다.
미용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옆머리 시원하게 치고 앞머리는 정리만 할게요. 숱도 좀 치고… 이따 세팅 끝나면 만지는 방법도 알려드릴게요.”
“네.”

서주환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큰 미용실의 에이스라도 딱히  다를 건 없구나 생각했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평범한 투블럭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커트가 시작되고, 미용사가 말을 걸어왔다.



“손님. 전역한지 오래  되셨나 봐요?"
“아, 티 나요?”

서주환은 조금 당황해서 되물었다. 설마 한 눈에 그걸 알아볼 줄이야. 헬창의 축복 덕분에 머리가 꽤 빨리 자랐는데… 아직 군인 티가 나는 듯했다.
그의 반응을  신바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머리는 많이 자라셨지만 보면 티가 나요. 전역하고 기르기만 하신 분들은 이런 머리가 되거든요.”
“그, 그렇군요. 역시 미용사님이라 잘 아시네요.”
“그렇죠? 이 정도 길이면 전역하신지 한두 달쯤 됐겠어요?”
“아뇨. 이제 열흘  됐는데요.”
“네? 어머, 머리 엄청 빨리 자라시나 보다. 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면서도 은근히 자주 오라는 말을 한다.

‘영업 잘하네.’


영업스킬도 그렇지만 말하는 게 사근사근해서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도 대화가 잘 이어졌다. 원래 미용사가 말을 걸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편안했다.
미용사는 머리를 잘라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손님, 오늘 처음 오셨죠? 솔직히 여기가 비싼 편인데, 오늘 여자친구 만나러 가시나 봐요?”
“네? 아, 아뇨. 여자친구는 없어요.”
“정말요?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런 말은 처음 듣네요.”
“그것도 정말? 거짓말인  같은데….”


사람 기분 좋게 할 줄 아네.  서비스가 끝내준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주환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미용사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이 사람은 또 어떤 재능을 갖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상태창을 보는 건 최근 생긴 그의 취미였다.
신바다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성별: 여성
나이: 25살
키: 165cm
몸무게: 57kg
현재 성욕: E
호감도: E
페티시: Trichophilia(上+)
보유 재능: 미용사(A/A+), 스타일링(A/A+), 내숭(B/B+)


상태창이 나타나고, 여지없이 루시의 설명이 뒤따랐다.

[Trichophilia(트리코필리아)는 모발 기호증을 말하며, 사람의 머리카락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입니다.]
[상급 중에서도 최상위면 중증이군요. 머리카락을 굉장히 사랑하는 여자네요.]

뭐야, 그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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