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기막힌 우연
어느새 전역한지도 열흘 째.
2월의 첫 주가 지나갔다.
그리고 내일은 서주환의 자취가 시작되는 날이다.
자취 전날 밤.
서주환의 부모님이 그를 거실에 앉혀놓고 말했다.
“아들, 이왕 자취하기로 했으니까 학교생활 열심히 해. 반찬 필요하면 말하고.”
서애라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며 말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는 아들이 영 불안한 듯했다.
서주환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온갖 불행에 시달리던 소심한 성격의 아들이었으니 당연한 걱정이다. 어머니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많이 달라졌다지만 부모눈에 아들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겠지.
하지만 그가 불행하고소심했던 것은 회귀 전의 일.
서주환은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짐짓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걱정 마세요. 이미 싸주신 것만 해도 한 가득이에요.”
“그것도 금방이다. 반찬 떨어지면 바로 말해. 배달 음식만 시켜 먹으면 몸 상한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말을 하는 서재필.
서주환은 작게 미소 지었다. 선 듯 자취를 허락해 주었던 아버지도 막상 때가 되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감정 표현을 크게 안 하던 아버지의 걱정에 어쩐지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꼬리를 긁적였다.
서주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가기 전에 안마 한 번 해드릴게요.”
“어머, 정말? 오랜만에 아들 안마 받아보겠네?”
“크흠. 뭐 그런 걸. 나 아직 안 늙었다.”
“이이는 정말. 아들이 해준다는데 그냥 좀 받아요!”
“아, 알았어. 받으면 되잖아.”
서애라가 눈을 치켜뜨며 노려보니 서재필이바로 꼬리를 말았다. 여자임을 감안해도 키가 작은 서애라였지만 그녀는 서 씨 집 안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성스러운 손길. 루시, 이거 흥분도 올리는 건 뺄 수 있지?’
[가능합니다.]
성스러운 손길에는 세 가지 효과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의흥분도를 올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사지 효과다. 아직 사용해본 적 없는 세 번째 효과는 미약한 치유의 손길이다.
서주환은 성스러운 손길의 두 번째, 세 번째 효과를 활성화시키고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렀다.
“아으. 아들, 안마 솜씨가 늘었네? 어디서 배우기라도 했어? 아, 거기 너무 시원하다. 아우, 시원해.”
“큼. 겨우 안마로 호들갑은.”
아들 앞에서 아내에게 제압당한 게 불만인지 서재필이 작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헉! 헉, 주, 주환이 이녀석… 어헉! 거, 거기 좀 더 눌러 봐라.”
서애라보다 서재필에게서 더 극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루 종일 분식집에서 요리하느라 뭉친 근육이 많았던 것. 연신 어헉 하는 음성과 함께 그의 표정이 노곤해졌다.
다음날.
서주환은 부모님께 깊이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 탄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익숙한 풍경이네.’
본가가 있는 광명을 벗어났지만 버스 창문 밖의 풍경은 여전히 익숙했다.
십년 전, 한참 대학을 다닐 때의 그 풍경이었다.
*
자취 이틀 째 주말.
서주환의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
“안녕, 환이 오빠! 도와주러 왔엉.”
“하이. 나도은혜 갚으러 옴”
자취방 정리를 도와주겠다며 온 한수아와 서주희였다.
집 안에 들어 온 서주희가 깜짝 놀란 눈으로 방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헐. 뭐야. 당연히 원룸인 줄 알았는데 투룸이네? 오빠, 어디서 대출이라도 받았어?”
“내가 대출 받을 데가 어딨냐?”
“그건 그런데… 이제 막 전역한 사람이 투룸에 사니까 하는 말이지.”
“글 써서 벌었다. 그냥 네 오빠 능력이 생각보다 좋은갑다 해.”
“헐. 글 써서 벌었다고? 진짜 능력 좋네? 엄마랑 아빠는 알아?”
“모르니까 아가리.”
“…오빤 왜 나한테만 까칠하냐? 수아 대하는 거랑 온도차이 너무 심하지 않아?”
“새삼스레 뭘?”
서주환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동생을 쳐다봤다.
왜 자기한테만 까칠하냐니. 진짜 새삼스러운 질문이 아니고 뭔가. 언제부터 서로 부드럽게 말하고 받아줬다고?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여동생을 잘 챙기는 오빠와 그런 오빠를 잘따르는 이상적인 남매 사이긴 했다.
‘얘랑도 좀 달라진 건가?’
이상적인 남매도 한 순간이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들며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면 다행인 흔한 남매 사이가 되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나마도 항상 서주희가 먼저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너무 무관심했나.
서주환은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데 잘 지내야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치이….”
생각에 잠긴 서주환과 못내 불만이라는 듯 볼을 부풀리는 서주희.
서주환은 귀여운 동생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 볼을 꽉 눌러 짜부시켰다.
“으붑?! ”
“이게 어디서 귀척이야? 죽을래?”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친동생의 귀여운 척은 봐줄 수가 없었다.
서주희가 억울하다는 듯 눈가를 찌푸리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씨. 투룸 엄마한테 다 말해버린다?”
“말해도 상관없긴 한데,좀 띠껍네? 생일 선물 필요 없나 보다? 나 돈 많이 벌었는데.”
“…헤헤. 오라버니, 어디부터 정리하면 될까요? 바닥부터 쓸까요?”
“오냐, 점순아. 함 반짝반짝하게 청소해봐라.”
“네이.”
돈 앞에 굴복한 서주희가 적극적으로 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를 따라서 한수아도 조막만한 손을 움직여 물건을 정리했다. 움직일 때마다 하나로 묶은 말꼬랑지 머리가 흔들리는 게 강아지 꼬리 같았다.
두 사람 덕분에 자취방 청소는 빨리 끝났다. 무거운 물건은 전날에 이미 정리를 해둔 터라 청소가 수월했다.
“밥 먹으러 가자.”
“사주는 거야?”
“오냐. 고생했는데 그래도 밥은 먹여야지.”
“오올.”
“헤헤. 고마워, 오빠.”
청소가 끝난 후에는 수다를 떨다가 동생들을 나름 맛있는 식당에 데려가 대접했다.
“환이 오빠, 그럼 우리 이제 가볼게. 자주 연락해!”
“그래. 자주 연락할게. 조심해서 들어가.”
“집에 가끔 들려. 엄마가 벌써 오빠 없다고 쓸쓸해 해.”
“아까 저녁 먹다 체했냐? 갑자기 철 든 척을 하네.”
“아, 진짜!”
“아, 알아따따. 농담이니까 너도 조심해서들어가.”
서주환은 정류장까지 두 사람을 데려다 주고 자취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여동생 덕에 떠들썩한 하루였다. 그 때문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밤거리가 어제보다 더 적막한 느낌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담배나 한 대 필까?’
마침 근처에 흡연구역이 있다. 이 동네의 장점은 시내 곳곳에 흡연구역이 있다는 점이었다.
“오, 사람 없다. 나이스.”
그는 사람이 많으면 부스를 피하는편이었다. 뿌연 연기 때문에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흡연자가 지닌 내로남불 심리이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하나 무는데, 긴 생머리의 여자 한 명이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 예쁘네. 모델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의 외양은 인상적이었다. 170을 살짝 넘어 보이는 키도 그렇지만 동양인답지 않게 쭉쭉 뻗은 팔다리 비율이 모델을 연상케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나 길게 뻗은 속눈썹 등도 어딘가 서구적인 면이 있었다.
다만 냉랭하다 싶을 정도로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아 보였는데, 희한하게도 서주환은 그녀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바라봤던 걸까.
담배를 입에 문 여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딱 마주친 시선에 서주환이 내심 당황하는데, 여자는 그를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우, 깜짝이야.’
서주환은 속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예쁘긴 더럽게 예뻐서 시선 마주치는 순간 딱 굳어버렸다.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돌연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뭘까. 이 여자를 꼬시기라도 하라는 걸까?
그때 여자의 입에서 된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씨.”
틱. 틱.
보아하니 라이터 기름이 떨어진 모양.
흡연 부스 안에는 서주환과 여자 두 사람 뿐이다. 여자가 다시 그를 쳐다봤다.
서주환은 여자가 말하기 전에 라이터를 내밀었다.
“이거 써요.”
“아, 고마워요.”
냉락한 인상과 달리 고개를 살짝 숙이는 여자.
“뭘요. 흡연자끼리 돕고 살아야지.”
그 말의 뭐가 웃겼던 건지 여자가 피식 웃으며 라이터를 받았다.그녀는 불을 붙인 후 라이터를 내밀었다.
서주환은 그를 받아들며 다시 한 번 기시감을 느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저기요.”
“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아뇨. 처음 보는데요.”
“그럼 혹시 위튜브나 방송 같은 거 하세요?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서주환은 말하고도 아차 싶었다. 너무 캐묻는 것 같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가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헌팅하는 거예요?”
“네?”
“죄송해요. 저는 키 큰 남자가 취향이라서.”
서주환의 키는 얼마 전 175에 이른 참이다.
평균 이상의 키.
하지만 여자의 키는눈대중으로 봐도 170을 넘었으니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오… 상당히 재수 없는데?’
꼬시려던 것도 아닌데 퇴짜를 맞으니 좀 얼떨떨하다. 여자의 넘치는 자신감이 조금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히 오해할만한 발언이었고, 여자는 조금쯤 재수 없어도 상관없을 만큼 매력적인 외양이었다.
서주환은 조금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제가 잘못 본 것 같네요.”
그 말에 여자가 담배를 피다 말고 눈을 깜빡이더니 조금 당황한 투로 말했다.
“‘어… 헌팅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라니까요.”
“아, 쪽팔리게…. 미안해요.”
상당히 창피했던 모양인지 여자의 하얀 피부가 발갛게 물들었다.
서주환은 담뱃재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별 말씀을. 전 차였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윽… 수고하세요.”
“그쪽도요.”
그는 대충 인사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길을 걸어가는데,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라 잇사이로 큭큭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 웃기네.”
직전의상황이 우습고 신기했다.
한 번 죽고 회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근래에 목숨 걸고 싸운 경험 덕분에 간덩이가 커진 걸까.
옛날 같으면 소심해서 말도 못 걸어봤을 여자와 태연히 대화하고 되려 놀려먹은 게 재밌었다.
*
집에 돌아온 서주환은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새로 산 컴퓨터는 집에 있는 고물과 달리 순식간에 부팅되었다.
“루시, 집중의 축복… 아니다. 지금 포인트가 얼마나 남았지?”
최근 포인트를 꽤 많이 사용했다. 집중의 축복을 꾸준히 사용했더니 그 많던 포인트가 금방 소모됐다.
[현재 잔여 욕망 포인트는 37,230LP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
[업적 달성으로 얻은 포인트가 상당하니까요.]
“아, 맞네.”
업적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얼마 전 부모님을 안마해드렸다고 포인트를 얻는가 하면, 이틀 전에는 첫 번째 자취를 시작했다면서 10,000LP를지급받았을 정도다.
한수아의 방송을 도와주며 얻은 포인트도 상당했다. 특히 엊그제 서주희가 편집한 위튜브 영상이 올라가고 나서는 조회수 100당 1LP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벌써 조회수 10만을 기록하고 달달하게 포인트를 얻은 참이었다.
지금 싸이킥워치의 영상은 한정되어 있으니 조회수는 앞으로도 더 올라갈 터. 타인의 방송이라며 포인트 지급에 1/2페널티가 생긴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부담 없이 사용해도 되겠네.”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루에 한 번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뽑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금방 소모 될 거예요.]
“아. 그거 굳이 사야 되나?”
[꼭 살 필요는 없지만 여유가 있으면 구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양한 아이템이 있으니까요.]
“쩝. 열심히 벌어야겠구만.”
돈은 걱정이 없는데 포인트가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귀찮게 방송을 하긴 싫은데. 왜 연재는 포인트가 짠거지.’
선호작 1만을 달성했을 때 외에는 지급받은 게 없었다. 투데이 베스트나 주간 베스트, 월간 베스트에도 포인트를 주면 좋으련만.
“글이나 쓰자.”
서주환은 잡생각을 털고 한글파일과 맞춤법검사기, 인터넷 사전, 그리고 연재 사이트 글조아를 열었다. 그가 글을 쓸 때 항상 켜 놓는 목록이었다.
그렇게글조아에 로그인을 했는데, 못 보던 쪽지가 쌓여있었다.
“아, 드디어 왔네.”
쪽지는 매니지먼트에서 온 계약제의였다. 사실 계약제의는 한참 전부터 여러 곳에서 왔었지만 따로 계약하고 싶은 곳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다.
[퍼니북스]
안녕하세요, 서환작가님.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저는 퍼니북스의 최미화PD라고 합니다.
이미한 번 쪽지를 보낸 바 있고, 회신을 주지 않으신 게 거절이라고 인지했지만, 작가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쪽지 드립니다.
작가님께서 연재 중이신‘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은 첫 연재부터 관심 있게 지켜 봐왔습니다.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은 트렌디하면서도 신선한 설정과 스토리로…‘
…중략…
뿐만 아니라 ‘무림색황’, ‘블레이즈 전기’ 등 저는 작가님의 전작들을 모두 봐왔습니다.
비록 저희 퍼니북스가 아직 작은 매니지에 불과하지만 작가님을 케어해드릴 자신이있습니다.
혹시 아직 출간계약을 하지 않으셨다면 편집자로서도, 한 명의 팬으로서도 작가님의 작품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척이나 정성들인계약제의.
쪽지를 읽는 내내 서주환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원하던 곳에서 계약제의가 온 것만해도 좋은데 쪽지를 보낸 담당자가 무려 그 ‘최미화’였으니 기쁘지 않겠는가.
최미화는 미래에 웹소설 작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능력 있는 편집자였다. 그녀의 조언 하나하나가 작가들의 글을 달라지게 한다고 하던가.
그녀는 작품을 보는 안목도 대단해서 아직 뜨지 않은 원석 같은 작가들을 잘 찾아냈는데, 이 때문에 헤드헌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훗날에는 직접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후 본인이 발굴했던 작가들과 계약을 맺고 업계 탑급으로 성장하니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퍼니북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꼭 그녀를 담당자로 붙여달라고하려 했는데 이미 그의 팬이라니 운이 좋았다.
“그런데 말이 이상한데? 쪽지를 보냈었다고?”
그것도 한참 전에 보냈었다는 뉘앙스였다.
“미친. 설마 실수로 삭제했었나?”
언제 삭제한 건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일부 악플러들은 댓글로 모자라 쪽지로도 공격적인 말을 일삼았는데, 서주환에게도 그러한 쪽지가 여럿 왔었다. 아무래도그 쪽지들을 삭제할 때 최미화의 것도 함께삭제한 것 같았다.
서주환은 얼른 쪽지를 회신했다.
“주말이니까 좀 기다려야 되려나?”
빨리 연락이 오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성(性)에 관한 강력한 행운이 개입합니다!]
오늘만 두 번째 보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책상 위에 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이름은 최미화.
쪽지를 받자마자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 어… 서환 작가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퍼니북스의 최미화 피디님이죠?”
- 아, 네! 그런데 그… 혹시 작가님 성함이 서주환이신가요?
“그것도 맞습니다만… 제가 이름을 알려드렸던가요?”
- 아, 역시! 전역하셨군요! 정말 축하드려요!
“…?”
서주환은 갑작스러운 축하 인사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기울였다.
이 여자가 어떻게 자신이 전역한 사실을 안단 말인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뉴스를 보고 알았다기에도 필명 서환을 당연하다는 듯 서주환과 동일시하는 게 이상했다.
그런데 문득 드는생각 하나.
‘어? 그러고 보니 왜 이름이 떴지?’
액정에 이름이 뜨려면 특정 기관의 전화가 아닌 이상 저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가 최미화와 연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설마서환 작가님이 주환 씨일 줄은 몰랐어요!
- 제 은인이 제가 덕질하고 있는 작가님일 줄은… 전역은 언제 하신 거예요? 계속연락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아!”
그 말을 듣고서야 퍼니북스의 최미화PD가 아닌 다른 최미화가 떠올랐다.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살인범에게서 구해준 여자.
고맙다며 전역하면 꼭 연락하라던 그 여자의 이름도 바로 최미화였다.
서주환은 기막힌 우연에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 작가님, 언제 시간 되세요? 제가 맛있는 식사 대접할게요!
스마트폰 너머로 최미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