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속기사의 타속
[업적, 『두 번째 전역』의 달성 보상으로 10,000LP가 지급됩니다.]
위병소를 나섬과 동시에 뜬 알림.
어쩐지 루시가 축하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 까톡 보내야지.”
서주환은 부모님과 동생, 한수아에게 지금 집으로 돌아가노라 전역 소식을 보냈다. 그렇게 네 명에게 까톡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보낼 사람이 없었다.
“…절망적인 인간관계구만.”
하지만 그 생각은 몇 시간 후 깔끔하게 사라졌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축하의 말이 쏟아졌던 것이다.
“아들,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건강하게 전역해줘서 고마워.”
“고생 많았다.”
정말 다행이라는 듯 두 손을 꼭 붙잡으며 말씀하시는 어머니와 그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를 던지는 아버지.
“오, 살이 더 빠진 것 같네? 여튼 축하축하.”
부모님의 뒤로는 이제 왔냐는 듯 손을 슬쩍 들어 올리는 동생 서주희와,
“환이 오빠! 전역 축하해! 이제 자주 볼 수 있겠다!”
친동생보다 더 밝은 얼굴로 그를 반겨주는 한수아가 있었다.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
‘좋다.’
자기혐오에 빠졌던 이전과는 다른 전역이다.
어쩐지 이제야 제대로 전역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관계 좀 좁으면 어떠냐.’
그거야 앞으로 넓혀나가면 될 일이다. 지금 당장은 부모님과 한수아만으로도 충분했다.
“빨리 앉아. 밥 좀 먹자!”
아, 덤으로 동생년도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서주환은 환하게 웃으며경례를 올렸다.
*
즐거운 식사를 마진 후.
서주환은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웅-
컴퓨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팅된다.
이놈의 고물 컴퓨터.
아무래도이제 놓아줄 때가 된 듯 하다.
“반응부터 봐야지.”
휴가 중 연재를 시작했던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의 반응이 궁금했다.
당시 그는 갑작스럽게 부대로 복귀하는 바람에 연재를 이어가지 못했다. 공지를 올려두었으니 독자들의 민심이야 괜찮겠지만, 궤도에 오르기 직전 휴재를 한 것이 글쟁이로서 못내 아쉬웠다. 혹여 연독률이 처참하게 무너졌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서주환은 웹소설 연재 사이트 ‘글조아’에 접속했다. 그리고 작품관리에 들어가 통계를 확인한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서, 선호작 8천?!”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 숫자를 하나씩 다시 확인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정말로 선호작 8천을 달성한 것이다.
고작 15화밖에 안 되었건만 어떻게 이런 수치를 보이는 건지 얼떨떨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투데이 베스트에 들어가서 15화를 올렸던 날짜로 설정했다. 공지와 함께 마지막으로 올렸던 그날의 순위가 떠올랐다.
<투데이 베스트 - 전체>
1위. 『빙의사부는 무림공적』- 서환
“진짜 1위…!"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비록 하루 반짝에 불과했고, 지금은 중위권으로 떨어졌다지만 충분히 대단한 성과였다. 오히려 최신 연재분이 없음에도 중위권을 유지한 게 신기한 일이다. 연재만 계속 되었다면 선호작8천이 문제가 아니라 1만을 훨씬 넘겼을 지도 몰랐다.
그는 이어서 작품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본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댓글을 잘 안 보려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참을 수가 없었다.
- (무협조아):오, 돌아왔구나 서태식이! 전작은 좀 아쉬웠는데 이번 작은 어떨런지?
- (NTR있으면하차): 무림색황 작가네. 이제 성인물은 안 씀? 필력 ㅈㄴ좋아졌는데 떡신도 좀 쓰자.
- (연참안하면3대가대머리): 재밌네요. 연참 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연참 안 하면 작가님 대머리!
- (꿀잼소설판독자): 와. 분량이 왜 이렇게 적나 했는데 재밌어서 빨리 본 거였네요. 작가님 필력이 이전 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코멘트는 대부분이 칭찬이었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지라 아예 악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댓글은 극히 일부.
대부분은 재밌다는 내용의 댓글이었고, 특히 전작을 봤던 독자들은 필력이 발전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편이 올라오지 않자 15화에 수많은 물음표와 함께 다소 무섭기까지 한 댓글이 도배되었다.
- (무협조아): 언제 오시나요. 하루에 두 편씩 올리시던 분이 이틀 째 감감무소식이니 걱정되네요.
- (NTR있으면하차): 형, 어디 갔어. NTL까지는 허용할 테니까 돌아와.
- (연참안하면3대가대머리): 작가님 대머리 되고 싶음? 빨리 안 돌아오면 M자로 벗겨지기 시작할 거임. 알죠? 원형은스트레스성이지만 M자는 유전이라 치료도 안 됨.
- (멘탈탈곡기): ㅉㅉㅉㅉ. 작가놈 배가 불렀네. 걍 쓰지 마.
처음에는 조금 순한 맛이었다. 악플이라기 보다는 아쉬운 마음에 하는 투덜거림. 그러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자 댓글창은 순식간에 곱창났다.
- (Buntang): 걍 나가 뒤지셈. 이럴 거면 올리질 말았어야지. 님들 제 거 보러 오세요.
- (NTR있으면하차): NTR 없어도 안 봄. 하차함. 작가는 상하차나 하셈.
- (욕쟁이할매국밥): 씨X. 휴재 할 거면 공지라도 올리던가 작가새끼야. 걍 연중해. 절대 돌아오지 마라.
-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다음편내놔!
- (문열어작가양반):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
- (글못읽으면정신병생김):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정신나갈거가태! 점심 나가서 먹을 거 가태!
-(군만두장사):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군만두 좋아해?
실망했다는 댓글부터 자기 소설을 홍보하거나 원색적인 욕설까지. 이후에는 조금 무섭기까지 한 컨셉러들의 댓글들이 줄을 이루었다.
댓글을 확인한 서주환은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고, 공지가 안 올라갔었나?”
공지를 봤으면 이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곧 상황을 파악한 그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빌어먹을 사이트 오류.”
연재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사이트 오류 때문에 글을 등록했음에도 올라가지 않는 상황. 하필이면 공지를 올렸을 때 오류가 난 모양이었다.
이미 한참 늦었지만, 서주환은 지금이라도 얼른 공지를 올렸다. 유료화를 노리고 있는 작품인데 인식이 안 좋게 박히면 낭패다. 글이 아무리 재밌어도 민심이 돌아서면 연독률 반토막은 우스운 일이었다.
공지를 올리고 나니까 뒤늦게 다른 생각도 들었다.
“…되게 고맙네.”
서주환은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한 멋쩍음에눈꼬리를 긁적였다. 이것도 불행이 없어진 탓일까? 전생에 여러 작품을 썼지만, 이렇게 관심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글 솜씨는 간신히 밥 빌어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써볼까.”
서주환은 손목을 쭉 펴고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자신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자 글쟁이로서 뿌듯함이 차올랐다. 동시에 보답해야겠다는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루시가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글을 쓰기에앞서 욕망 포인트 사용을 추천 드립니다.]
“아, 맞다. 이제 B등급까지 올릴 수 있나?”
[네. 그리고 2레벨이 되면서 스킬 뽑기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흠. 지금 남아있는 포인트가 얼마더라?”
[55,100LP입니다.]
“많기도 해라. 아니지. 그리 많은 것도 아닌가?”
얼핏 많아 보이는 수치였지만 등급 상승에 필요한 비용이나 아이템, 스킬 구매 비용을 떠올리니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 『집중의 축복』같은 경우는 분당 소모 LP가 10이나 된다. 한 시간이면 600LP니까 하루에 한 시간씩 한 달이면 18,000LP. 그야말로 포인트 잡아먹는 하마가 따로 없었다.
‘열심히 모아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욕망 퀘스트, 업적 달성, 페티시 수집, 섹스 판타지 수집 등 LP의 수급처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은 너무 아끼지 않고 써도 좋을 듯했다.
“뭐부터 해야 되나.”
[2레벨이 되었으니 우선 스킬 뽑기를 추천 드립니다.]
스킬 뽑기는 각 레벨 마다 단 1회만 구매할 수 있다. 참고로 가격은 레벨과 덩달아 상승해서 제법 비싸다.
서주환은 스킬 뽑기를 구매했다.
띠링!
[20,000LP를 사용해서 스킬 뽑기를 구매합니다.]
[스킬, 성스러운 씨주머니를
“성스러운 씨주머니? 세트 스킬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스러운 손길과 비슷한 이름이었다.
【성스러운 씨주머니(F)】
▶ 효과1: 정력이 아주 미약하게 증가한다.
▶ 효과2: 정액이 아주 미약하게 달콤해진다.
“아… 당장은 쓸모없겠네.”
서주환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정력 증강은 현재 몽마신의 축복이 있으니 전혀 걱정이 없다. 그리고 두 번째 효과는…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정액이 맛있어져서 뭐 어쩌라는 거지.
“재능이나 올리자.”
[어떤 재능을 올리실 건가요?]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본래 그의 재능이었던 글쓰기, 게임, 교육과 정소라에게 얻은 박투 재능까지 총 네 가지였다.
“물론 글쓰기지. 다른 건 나중에 올릴게.”
글쓰기 외에는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3,000LP를 사용하여 글쓰기(C+)의 재능 등급을 상승시킵니다.]
[글쓰기 재능이 B로 상승하여 특수능력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 보는 단어에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특수능력?”
[재능 등급이 B가 되면 개방 되는 능력입니다. 참고로 능력은 랜덤으로 지급되며 가격은 10,000LP입니다.]
“…주는 만큼 가져가는구나.”
포인트의 수급처가 다양한 만큼 사용처도 다양했다.
서주환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특수능력을 구매하기로 했다. LP는 어떻게든 또 수급하면 된다.
[10,000LP를 사용하여 재능,『글쓰기』의 랜덤 특수능력을 구매합니다.]
[특수능력, 『속기사의 타속』을습득했습니다.]
【속기사의 타속】
▶ 효과1: 평균 800타의 속도로 오타 없이 타자를 칠 수 있게 된다.
▶ 효과2: 속기사 전용 키보드를 사용 시, 평균 1,200타의 속도로 오타 없이 타자를 칠 수 있게 된다.
※ 본인이 모르는 단어는 사용할 수 없다.
“우, 우와아아아!”
서주환의 입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터졌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놀란 서주희와 어머니가 방문을 열어보고 갔을 정도였다.
그는 놀란 두 사람을 돌려보낸 후 스스로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리고 특수능력의 효과를 다시 한번 읽었다. 효과를 읽는 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으흐흐. 대박이다. 앞으로 연재 시간에 쫓길 일은 없겠어.”
웹소설 한편은 공백을 포함해 보통 최소 기준치가 5,000자 정도고 평균은 5,500자 정도다. 분량이 많으면 6,000자를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분당 800타라니. 심지어 속기 키보드를 사용하면 1,200타도 가능하다. 앞으로 글을 쓰는 속도가 엄청 빨라질 게 분명했다.
“루시, 축복 한 시간 사용할게.”
[600LP가 사용됩니다.]
[집중의 축복(1시간)이 적용됩니다.]
축복이 적용 되고, 집중력과 사고력이 증가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필요한 글줄을 떠올렸다.
서주환은진한 미소를 지으며 열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새로운 능력을 사용할 생각에 손가락이근질거리는 느낌이었다.
타다닥! 탁! 타다다다닥!
서주환의 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노닐었다.
*
분당 10LP의 소모. 1시간이면 600LP.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사용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소모 값이다. 그러나 서주환은 LP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집중의 축복』을 사용하면 잡생각이 날아가고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다. 온전히 하나의 작업에 집중할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이득이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글에 몰입했다.
띠링!
[00 : 00 . 00]
[집중의 축복 효과가 사라집니다.]
“흐아아…!”
집중 상태에서 깨어난 그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축복은 그에게 집중력과 사고력의 증가를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큰 체력을 소모했다.
“어디 보자. 한 시간에 한 편 정도인가?”
특수능력이 없었을 때는 두 시간에 한 편이었으니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서주환은 조금 아쉬운 마음에 쩝 입맛을 다시면서도 결과에납득했다.
“하긴. 더 바라면 욕심이지.”
그나마 이것도 『속기사의 키보드』와 『집중의 축복』이 시너지를 이루어 만들어낸 속도였다.
사실 글이라는 건 타자를 치는 시간보다 설정과 플롯 등 이야기를 구상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신들린 듯 쓰다가도 이야기 전개가 이상하다 싶으면 고쳐야 하고, 원하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간혹 찾아오는 ‘삘’을 받는 순간에는 무아지경으로 써내려갈 수 있을 테지만 보통의 경우는 타자가 빠르다고 해서 글을 쓰는 속도가 극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걸로도 충분해.”
서주환은 아쉬움을 접고 씩 입꼬리를 올렸다.
한 시간에 한 편을 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말이 안 되는 속도다. 다른 작가들이 안다면 말도 안 된다며 경악을 할 터였다.
“다시 또 써볼까.”
서주환은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아직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 글을 쓸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총 5편.
그간 기약 없이 기다린 독자들에게 연참을 선물해줄 생각이었다.
[2,400LP가 사용됩니다.]
[집중의 축복(4시간)이 적용됩니다.]
서주환의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