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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두 번째 욕망 퀘스트(2) (18/501)



〈 18화 〉두 번째 욕망 퀘스트(2)

서주환과 두 여고생은 콘서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콘서트는 처음이네. 지루할 거 같은데.’

사실 구태여 콘서트까지 같이 갈 필요는 없다.
마중만 제 시간에 나간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터.


‘확실하게 해야지.’

서주환은 일말의 위험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휴가를 나오자마자 암표를 구한 것이다.
그는 암표를 구할 때 서주희와 한수아의 옆좌석을 타겟으로 했다. 그리고 회귀 전의 불운이 거짓말인 것처럼 한수아의 옆자리를 구할  있었다. 업(業)을 정상화 시켰다더니 이번 생에는 운이 따르는 듯 했다.


“환이 오빠 우리  좌석이네? 잘 됐다!”
“흐음. 말을 맞추고 예매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로 옆일 수가 있지? 우리 뒷조사라도 한 거 아니야?”


마냥 좋다며 폴짝거리는 한수아와 의심스럽다는 듯 가자미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서주희.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뒷조사 하면 같은 좌석으로 예매하는 게 가능은 하고? 그냥 우연이야.”
“하긴. 나도 너무 절묘해서 괜히 해 본 소리였어.”

다행히도 서주희는 쉽게 납득했다. 상식적으로 암표를 구매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으리라.
세 사람은 콘서트장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기다리는 와중, 갑자기 장내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위가 비추어졌다.
콘서트가 시작된 것이다.

“아, 이제 시작한다! 제발 오늘이 마지막 콘서트가 아니길…!”
“우리 스윙이들 정말 해체하면 어떡하지… 히잉.”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꼭 쥔 채 정면을 응시하는 두 사람.
반면 서주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의 기억상 두 소녀의 바람대로 스윙 레이디는 해체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많은 팬을 가지고 있던 리더가 올해 말쯤 조용히 그룹을 탈퇴한다.

‘리더 이름이 뭐였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노래를  하는 게 리더였던  같은데.
서주환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연예인에게 관심이 없었던지라 금방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야, 일어나! 끝났어!”
“환이 오빠!”
“응? 어, 어어. 와아, 재밌었다. 그치?”


몸을 흔드는 느낌에 서주환은반사적으로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뭐래? 계속 자놓고.”
“환이 오빠….”

돌아오는 반응이 싸늘했다.
서주환은 머쓱해져서 얼른 몸을 일으켰다.


“어우. 요즘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나.  자고 싶었는데 깜빡 졸았네.”
“졸기는. 아주 숙면하던데.”
“오빠, 갑자기 너무 무리해서 건강 나빠진  아니야?”
“수아 너는 저걸 믿어? 착해빠져서는.”
“그, 그래도 진짜면 어떡해.”
“크흠. 그냥 조금 피곤한 거야. 자, 이제 집에 가자.”

무작정 한 변명에 진짜로 걱정해주는 한수아를 보니 민망해진다.
서주환은 말을얼버무리며 둘을 밖으로 이끌었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두 여학생은 조잘조잘 재밌게도 떠들었다.

“해체 안 해서 다행이다. 그치, 수아야?”
“응! 우리 윤 리더 계속  수 있어서 다행이야.”


 리더 은퇴하기까지 1년도 안 남았는데- 하고 미래를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서주환은 뒷자리에서 조용히 창밖을 내다봤다.
물기 어린 유리창 너머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보였다.


- 이번 정류장은 광현 공고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갔다.

“으으. 끈적거려. 빨리 샤워하고 싶다.”
“난 추워… 환이 오빠가 우산 가져오자고 해서 다행이다.”
“그러게. 어떻게 알고 챙겨 왔대? 일기예보에도 안 나왔는데.”
“그냥 비가 내릴 것 같았어.”
“무당이야?”
“환이 오빠 짱.”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동생과 마냥 좋다고 웃으며 엄지를 치켜드는 한수아다.
그 해맑은 모습에 서주환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어찌 오늘날씨를 모를  있을까.

‘재수 없는 날씨야.’

1월 중순이면 한창 겨울임에도 여름철 장마처럼 끈적한 습기가 차오른다. 추운데 끈적거리기까지 하니 불쾌지수가 올라갔다.
 사람은 어느덧 한수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수아야, 어서 들어가. 아줌마 걱정하시겠다.”

그의 말에 한수아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환이 오빠,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갑자기 웬 존대?”
“히히. 고마우니까?”
“싱겁긴.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내가 말한 거 잊지 말고.”
“응! 오빠랑 주희도  가!”
“수아, 안녕!”


 사람은 한수아가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본 후 걸음을 돌렸다.
두 사람의 집은 한수아의 집과 15분 정도 반대 방향에 있다. 옛날에는 바로 옆에 살던 이웃이었지만 이사를  탓에 거리가 벌어졌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즘, 서주환은 욕망 퀘스트를 불러냈다.


『한수아를구해라!』
▶ 당신은 계속해서 후회했습니다.
‘내가 제 시간에 데리러 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결코 당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당신이 막을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트라우마는 나날이 짙어져 갔습니다.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음에도 당신은 자신의 불운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그때와 다릅니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 있고, 한수아를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트라우마를 극복하십시오.
▶ 달성 조건: 한수아의 무사안전
 보상: 20,000LP

한수아가 무사히 집에 들어갔으니 이제 안전은 확실하다. 혹시 몰라서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얘기도 해놓았다. 그러고도 걱정이 되어 혹여 나올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기까지.
그 탓에 귀찮음을 느낀 건지 한수아가 여태 본  없던 묘한 표정을 보였었다.

‘이렇게 끝인가?’

현재 시각은 10시가 조금 넘은 참이다.
집에들어가서 씻고 자리에 누우면 오늘 하루는 끝.
한수아가 해를 입을 일은 없어졌다.


“…찝찝해.”

그런데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걸까.
그의 혼잣말을 들은 서주희가 말했다.


“그치? 오빠도 찝찝하지? 아, 그래도 샤워는 내가 먼저  거다?”
“…그러시던가요.”
“뭐야.  이렇게 시큰둥해?”
“내가 뭘?”
“칫. 됐어. 어쨌든 오늘은 고마워, 오빠.”
“엉?”


서주환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끔뻑였다.
얘가 웬일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그에 서주희는 뭘 보냐는  그를 한 번 째릿 노려보더니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고맙다는 말이 이상한가? 그냥 덕분에 비도 안 맞았고, 솔직히 흉악범이니 뭐니 해서 무서웠는데 덕분에  도착했고, 군대 갔다 와서 그런지 좀 든든해진 것 같기도 하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하는 말에 서주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동생이랑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얼마만인지.
한수아와 셋이 있을 때나 수다스러웠지 둘이서 이렇게 대화하는 건 회귀  처음이었다.
서주환은 괜히 어색해서 서주희의 등을 툭툭 밀며 말했다.

“뭐라냐?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들어가. 도착했다.”
“씨. 고맙다고 해도 뭐래. 돼지가.”
“응. 이제 돼지 아니야. 살 많이 빠졌어.”
“아직 돼지거든?”
“그만 쫑알대고 어른 들어가기나 해라, 돼지야.”
“누가 누구더러 돼지래. 그리고 먼저 들어가면 되지 왜 계속 밀어?”
“난 좀 이따 들어갈 거거든.”
“뭐? 왜?”

서주환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보였다.
서주희가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아파트 현관 안으로 걸어갔다.


“담배  작작 펴!”
“예술가한테 담배는 필수인 거 모르냐?”
“예술은 개뿔.”

서주희가 씩씩거리면서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서주환은 낄낄거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담뱃갑을 꺼냈다.


“…돛대네?”

애들 옆에 있느라 안 피고 있었더니 돛대인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 비 와서 귀찮은데.”

그리 말하면서도 그는 담배를 사기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차피 5분 거리에 있어서 금방이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간 서주환은 습관적으로  먹을만한 게 없나 편의점 안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근 나름대로 식단을 하고 있는 중이다. 편의점 음식은 자제해야 한다.
결국 그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가 담배 코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쎄 한갑 주….”


툭.

“계산.”


말하고 있는 와중 웬 남자 하나가 서주환을 밀치고 끼어들었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키가 크고 덩치가 좀 있는 남성이 보였다.
목장갑을 던지듯 올려놓은 남자가 그를 힐끔 보더니 알바생을 재촉했다.


“계산  해?”
“저기요, 손님. 앞에 분이 먼저 오셨거든요.”


알바생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반문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험악했다.
서주환은 일이 커지기 전에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상황을 중재했다.

“괜찮으니까 먼저 계산해드리세요.”
“네? 하지만…”

진상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고다.

“빨리 계산하지?”


남자가 짜증 가득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에 울컥한 입을 열려는 알바생.
하지만 서주환이 고개를 저으며 말리는 시늉을 하자 이내 혀를  번 차더니 바코드를 찍고 계산한다.

“…….”


계산을 마친 남자는 무언가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툭.
이번에는 남자가 들고 있던가방이 서주환의 무릎을 치고 지나갔다.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딸랑.


문을 열고 나가는 남자와 인상을찌푸리며 쪼그려 앉는 서주환.
알바생이 그를 의아하게 보며 물었다.

“손님, 왜 그러세요?”
“아, 방금 나간 사람 가방에 찍혀서요.”


바지를 걷어 올려 확인해보니 피가 눈물처럼 살짝 배어 나와있었다.
뭔가에 찔린 자국.
그 순간 서주환은 조금 전에 남자가 중얼거린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죽여버릴까?’

등골이서늘해지고, 오싹 소름이 돋는다.
서주환은 직감적으로 확신했다.

‘루시, 방금  남자 상태창!’


즉시 남자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주성범>
성별: 남성
나이: 37살
키: 183cm
몸무게: 80kg
호감도: F+
현재 성욕: S
페티시: Apotemnophilia(上), Erotophonophilia(上,) Pecattiphilia(中)
보유 재능: 추리(E+/A), 의술(E/B+), 정리(C+/B)


상태창에 나타난 페티시.
정확한 뜻까지는 모르겠지만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다.
루시가 페티시의 정확한 뜻을 설명해주었다.

[Apotemnophilia(아포템노필리아)는 신체를 절단하는 행위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이고, Erotophonophilia(에로토포노필리아)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성적 쾌락을 얻는 증후군입니다. 마직막으로 Pecattiphilia(펙카티필리아)는 강간, 절도와 같은 범죄를 행할 때 성적 쾌락을 얻는 증후군입니다. 두 개가 상급에 하나가 중급, 그리고 현재 성욕이 최고치인 S 까지 올라가 있군요. 당장 살인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주환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씨발!”

강간에 신체 절단, 그리고 살인까지.
정상적인 기호가   가지도 없다.

‘이딴 놈이 지금 거리를돌아다니고 있다고?’

소름끼치는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수아만 안전하게 한다고 끝이 아니었는데!’

서주환은 스스로를 질책했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서 한수아만 신경 쓰느라 생각의 폭이 너무 좁아졌었다. 이대로라면 한수아 대신 다른 사람이 죽어나갈 판이었다.
그는 당장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전화를 받지 않고 대기 신호만 울린다.
그는 초조하게 신호를 기다리다가 한편에 굳어 있는 알바생을 불렀다.


“저기요.”
“네, 네? 저요?”
“지금 당장 경찰에 연락해서 살인범 나타났다고 전해요.”
“네? 그게 무슨 소리…”
“최근 뉴스에 줄창 나오는 토막살인사건 있잖아요! 방금  새끼가 범인이니까 빨리 전화해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요? 물론 그놈이 재수 없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아니니까 빨리 전화하라고!”

답답함에 버럭 소리 지른 서주환.
초조해진 그가 지갑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기! 이거 두고  테니까 경찰이 나중에 뭐라고 하면 제 이름 대요! 아, 경찰은 이 근처에 폐건물로 오라고 하고! 분명 그쪽으로 갔을 거니까!”
“예? 아니, 저기요! 저기요! 이봐요!”

벌컥!

다급히 그를 부르는 알바생을 뒤로하고, 서주환은 우산도 쓰지 않은  빗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범인이 편의점을 나간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차라리 처음부터 따라 나갈 것을 괜한 시간 낭비를 했다.

‘장소는 알고 있어.’

회귀 전, 사건은 이 근처에 있는 폐건물에서 벌어졌다. 공사 예정일이 잡혀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둔폐건물은 범행을 저지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헉, 헉. 허억.”


건물 앞에 도착한 서주환은 숨을 몰아쉬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전력으로 뛰었더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후우우.”

호흡을 진정시킨 후 건물 안으로 접근한다.
그는 이곳에 범인이 없더라도 잠복하고 있을 작정이었다. 결국 범인은 이곳으로 올 테니까.
서주환은 긴장으로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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