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두 번째 욕망 퀘스트
서주환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고민했다.
“대학이라….”
회귀 전의 그는 전역 후 복학을 했었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대학에 갈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복학한 대학.
당연하게도 꿈과 낭만이 가득한 캠퍼스 라이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서주환은 안 그래도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고 학번도 높았는데, 지난 학창 시절과 군 시절을 겪으며 위축된 성격 탓에 대인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다.
“흐음.”
그때를 생각하면 복학하지 않는 게 맞다. 그 시간에 글이라도 한 줄 더 쓰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
그러나 지금과 그때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그의 정신은 32살이었고, 지난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였다. 더불어 한수아의 사건은 그가 책임지고막을 생각이었으니 그것 때문에 대학에 가지 않는 건이유가 되지 못한다.
“하아. 어렵다. 루시,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저한테미래를 계산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예지’ 종류의 재능 습득을 권합니다.]
“뭐? 하하. 그런 뜻으로 물은 건 아니었는데.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 본 거야.”
[…제 생각 말입니까?]
“응.”
루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괜한 걸 물어봤나.
그가괜찮다며 입을 떼기 직전, 루시의 대답이 돌아왔다.
[주인님은 대학에 가셔야 합니다.]
“그, 그래? 어째서?”
설마 이토록 단호하게 대답해줄 줄 몰랐던 서주환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루시는 다시 한 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주인님은 친구가 없으니까요.]
“…뭐?”
[대학에 가지 않은 주인님은 방구석 생활을 할 겁니다. 그럼 또 친구 하나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되겠지요.]
뼈를 때리는 루시의 말.
서주환은 애써 변명했다.
“어, 음. 그렇지도 않을 걸?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수아도 일단 친구고… 지금 쓰고 있는 글만 다 쓰면 여러 가지 배우러 다닐 거야. 노래도 배울 거고, 악기나 스포츠도 배울 생각이거든. 아, 소라 누나한테 얻은 박투 재능이 있으니까 격투기도 배울까? 거기서 친구 만들면 되지.”
[말씀처럼 하신다면 다행이지만… 제 데이터에 의하면 사람이란 한 번에 변하기 힘든 생물입니다. 특히 외부의 자극이 없다면요.]
“윽.”
서주환은 이를 간단히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변화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마음먹은 대로 하는 사람은 정말로 일부 아니겠는가.
루시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주인님이 행복한 인생을 보내려면 대학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주인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생은 꼴리는 대로 살겠다고요. 정말 꼴리는 대로 살겠다면 대학에 대한 고민은 무의미합니다. 일단 해보고 맘에 안 들면 그만두면 되니까요.]
“뭐?”
서주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루시가 저런 말을 할 줄이야.
그는 곧 큭큭 목 매인 웃음을 흘리다가 배를 잡고 폭소했다.
“푸하하하! 고마워, 루시. 덕분에 머리가 개운해졌어.”
[고민이 해결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응. 진짜 고마워.”
서주환은 대학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루시의 말처럼 이번 생은 기분 내키는 대로 산다 하지 않았던가. 일단 대학에 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퇴라도 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
“어머. 정말 복학할 거니?”
“어떤 선택이든 후회 없이 하거라.”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아버지는 믿겠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예. 그래서 말인데… 복학하면자취를 시작하려고요.”
결정을 내린 서주환의 행동은 신속했다. 그는 바로 자취방 매물을 찾아보았다. 당연하게도 대학과 가깝고 편의시설이 잘 된 자취방일수록 빨리 나간다. 이미 1월이었기에 빨리 계약하지않으면 꼼짝없이 전철로 통학해야 했다.
“자취하려고? 그냥 집에서 다니지.”
어머니는 그가 통학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들을 보내야 하는 게 아쉬운 것이다.
“죄송해요, 어머니. 소자 지옥철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대신 자주 놀러 올게요.”
학교는 한 시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지만 교통이 문제였다.
아침 출근 시간대 전철은 그야말로 지옥철.
불가피하게 들어야 할 오전 수업 때마다 지옥철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음. 요즘 원룸은 얼마나 하나?”
어머니는 서운해하는 반면, 아버지는 자취비를 지원해주려 했다. 보증금과 월세를 묻는 서재필에게 그가 손사래를 쳤다.
“돈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직 전역도 안 한 놈이 무슨 돈이 있다고?”
“입대 전에 글 썼었잖아요. 자취비 할 정도는 남아 있어요. 부족하면 알바 해도 되고요."
현재 투자한 비트코인의 수익률이 300%를 넘었다. 그는 원룸이 아니라 투룸을 계약할 생각이었다.
서재필은 이러한 아들의 속도 모르고 그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어떤 일을 겪은 건지 아들이 아주 듬직하게 변해 있었다.
반면 서주환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필요한 만큼만 빼자.’
비트코인은 아직 본격적으로 되팔 때가 아니었다. 필요한 만큼만 처분하고 월세 정도는 따로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을 벌 방법이라면 비트코인 말고도 있었다.
‘알바 대신 계속 글을 쓰면 돼.’
서주환은 알바 대신 집필을 택했다. 이래 봬도 그는 회귀 전에 글로 먹고사는 전업 작가였다.
최저시급보다는 글을 쓰는 게 벌이가 좋을 터.
2016년 최저시급이라고 해봐야 6,030원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연재하고 있는 작품이 궤도에 오르면 돈이 좀 되겠지?’
며칠 전부터 연재를 시작한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의 스타트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면 회귀 전보다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리라.
*
말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가 복(福)이 될 수도 있고, 화(禍)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말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다’는 등 괜히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게 아니었다.
‘힘내라.’
‘걱정 마라.’
‘넌 할 수 있다.’
예컨대, 긍정적인 의미를 품은 말도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의 상대방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때는 그 위로가 섣부른 말이 아닌지 할 번쯤생각해 볼 일이었다.
스물셋의 서주환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주고 말았다.
‘힘내라고? 환이 오빠, 내가 어떻게 힘을 내야 되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리 말하던 한수아.
그녀의 얼굴에는 심각한 흉이 져 있었고,한쪽 다리가 없어서 휠체어에 탄 상태였다. 그나마 휠체어 바퀴를 굴려야 할 팔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약간의 이동조차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오히려 살아난 게 신기한상황.
그런 사람에게 섣불리 힘내라는 말을 했으니 원망의 말을 듣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때… 그때 오빠가 데리러 오기만 했어도….’
‘…….’
서주환은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사과의 말 한마디마저도 그녀에게 상처가 될까 우려되었으므로….
그로부터 며칠 뒤.
한수아는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미안해. 오빠 탓이 아니야.’
서주환의 앞으로도 짤막한 편지 하나가 남겨졌다.
'수아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순간에도 마음을 쓰고 있던 걸까.
천성이 착했던 한수아는 원망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떠나갔다.
편지를 읽은 서주환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아야…….'
날카로운 비수로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렸다.
모든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죄스러웠기에….
*
굿모닝~!
딩딩딩~!
빠빠빠 빠 빠 빠빠빠빠!
스마트폰에서 악마의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뜬 서주환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한수아에게 일이 벌어진 건 서주희와 콘서트를 갔던 날이다. 콘서트를 다녀와서 집으로 들어가던 한수아는 당시 뉴스에 한창 보도 되고 있었던 흉악범의 눈에 띄었다.
범인은 한수아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갔다. 이후 겁탈은 물론이고 그녀의 신체를 절단했다. 범인은 단순한 강간마가 아닌 토막 살인으로 유명한 연쇄 살인마였다.
“씨발.”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는 서주환의 눈에는 물기가 차올라 있었다.
꿈의 내용이,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했다.
마중 나와 달라고 하던 한수아.
힘내라는 말에 눈물을 흘리던 한수아.
영정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던 한수아.
한편에 묻어 두었던 기억이 이렇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리라.
띠링!
[사용자의 강렬한 욕망을 감지했습니다.]
[욕망 퀘스트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한수아를 구해라!』
▶ 당신은 계속해서 후회했습니다.
‘내가 제 시간에 데리러 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결코 당신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당신이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트라우마는 나날이 짙어져 갔습니다.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음에도 당신은 자신의 불운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그때와 다릅니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 있고, 한수아를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그만 트라우마를 극복하십시오.
▶ 달성 조건: 한수아의 무사안전
▶ 보상: 20,000LP
두 번째 욕망 퀘스트였다.
*
오늘도 여느 때처럼 분식집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한 테이블에 앉은 한수아와 서주희가 비장한 얼굴로 말을 주고받았다.
“준비됐지, 수?”
“물론이야, 희.”
팔을 쭉 뻗어 손을 겹치는 둘.
그런 둘에게 서애라가 못 마땅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콘서트 안 가면 안 되겠니? 요즘 뉴스에서 흉악범 때문에 시끄러운데.”
“안 돼, 엄마! 이번이 해체 전 마지막 공연일 수도 있단 말이야!”
“이모,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진짜 다른 데 안 들리고 곧장 올 거예요.”
“에휴. 지금도 저렇게 뉴스가 나오는데….”
두 사람의 대답에도 서애라는 불안하다는 듯 티비를 쳐다봤다. 티비에서는 최근 부천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다루고 있었다.
범인의 신원은 정체불명. 사건 현장을 보아 덩치가 큰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알려진 전부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서주환은 두 사람의 손등 위로 자연스럽게 손을 겹치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니. 저도 같이 갈 거니까.”
“어머, 정말?”
“…뭐?”
“흐엥?”
놀라는 어머니와 얼척없다는 눈빛으로 보는 서주희, 그리고 이상한 효과음을 내는 한수아.
서주희가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따지듯 말했다.
“그게 뭔 소리야?”
“무슨 소리긴? 나도 콘서트 같이 간다는 소리지.”
“아니이! 그러니까 네가 왜 따라 오냐고! 누구 콘서트 가는 줄은알아?”
“스윙 레이디 콘서트잖아. 야, 나도 빠따야.”
스윙 레이디의 팬덤명 빠따.
정확한 팬덤명은 배트(bat)였지만 같은 팬들끼리는 어감이 찰지다는 이유로 빠따라는 은어를 사용했다.
서주희가 의심스럽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거짓말. 네가 배트라고?”
“거 의심도 많다. 자, 군대에서이렇게 표까지 구한 거 보면 모르겠냐?”
서주환은 주머니에서 당당하게 표를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표를 바라보는 서주희. 급기야 그녀는 서주환의 표를 가져가더니 자신의 표와 대조까지 해가며 진위여부를 확인했다.
잠시 후 표가 진짜라는 걸 알게 된 서주희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서주환을 본다.
“너 연예인한테 관심 없지 않았어?”
그는 태연한 얼굴로 이유를 설명했다.
“동성들만 득시글한 곳에 1년 넘게 갇혀 있어봐라. 걸그룹한테 관심이 생기나, 안 생기나. 그리고 군대에서는 아침에 기상해서 트는 게 걸그룹 노래고, 저녁에 자기 전에듣는 게 걸그룹 노래야.”
“헐. 그게 진짜였구나.”
당연히 구라다.
기상 후와 취침 전에 걸그룹 노래를 듣는 건 사실이지만, 스윙 레이디는 워낙 하꼬 그룹이라 군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리더 한 명을 제외하면 외모는 물론 노래도 주목받지 못 할 실력 아니던가.
서주환의 말은 단지 의심을 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그럼 팬도 아니면서 표는 어떻게 구했느냐.
당연히 암표를 구매한 것이다. 암표 구매는 서주환이 휴가를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고.
“이제 가자.”
“진짜 해체하는 걸까?”
“안 하면 좋겠당.”
서주환과 두 여고생은 콘서트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