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연재 시작!
타다다다닥! 타다닥!
여느 때보다 다양한 문장이 떠오르고 서사가 정리되었다. 키보드 위를 두드리는 손가락도 평소보다 족히 두 배는 빨라진 듯 했다.
‘플롯부터 정리하면서 연재하자. 이미 대략적인 플롯과 설정은 정해져 있으니까 이걸 더 다듬어서….’
『집중의 축복』은 단순히 집중력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사고력도 상승시켜준다.
창작자에게는 더 없이좋은 축복.
서주환의 사고는 전에 없이 활성화 된 상태로 설정의 빈틈을 채우고 문장의 다양함을 끌어냈다.
‘일전에 독자들이 문제 제기 했던 부분이여기였지? 이걸 이렇게 바꾸면… 됐다. 이제 자연스러워졌어.’
현재 서주환이 쓰고 있는 글은 회귀 전의 세상에서 한창 연재했던 작품이다.
제목은 ‘빙의사부는 무림공적’.
‘빙의사부는 무림공적’은 그가 쓴 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인해 연재 했던 작품 중 유일하게 완결을 내지 못한 글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생에서라도 이 글을 완결 짓고 싶었다.
이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아직 연재되지 않은 작품이니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책임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찌 됐든 이 회귀 후의 세상에도 그의 글을 읽었던 독자가 존재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이 글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인연이 된다면 분명 다시 한번 재밌게 읽어줄 터였다.
서주환은 시간을 잊고 글쓰기에 몰입했다.
*
[00 : 10 . 09]
[00 : 06 . 04]
[00 : 03 . 02]
……
…
띠링!
[00 : 00 . 00]
[집중의 축복 효과가 사라집니다.]
“아…!”
고도의 집중을 하게 되면 일종의 트랜스(Trance) 상태에 빠진다고 하던가?
축복 효과가 사라짐과 동시에 서주환은 미몽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주르륵.
“허억, 헉. 무슨 땀이….”
글을 썼을 뿐인데 격렬한 운동을 한 것처럼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체력 소모가 심하네.”
단지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쓴 축복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글을 쓴 게 아니라 운동을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땀을 닦아낸 서주환은 4시간 동안 쓴 글을 확인했다.
“얼마나 쓴 거지?”
원래라면 한 편을 쓸 때마다 저장하고 새 페이지를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중간 작업조차 없이 쭉 써 내려갔던 터라 몇 편이나 쓴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평소의 그라면 네 시간 동안 16페이지 정도를 썼을 터다. 그마저도 플롯이 잡혀있다고 가정했을 때다. 보통 그가 한 편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퇴고까지 포함해서 총 6시간 정도였다.
“…34페이지?”
서주환은 깜짝 놀란음성을 토해냈다.
“하하….”
그의 입에서 얼떨떨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글자크기 10.5pt를 기준으로 잡고 34페이지면 무려 2편 분량이다. 그것도 최소 글자수가 아닌 소위 ‘혜자’라고 할만한 분량이었다.
“효과가 엄청나잖아.”
피로감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효과가 상상이상으로 엄청났다.
4시간에 2화 분량이라니. 2시간에 한 편을 쓸 수 있다니!
이미 대략적인 설정과 플롯이 있었음을 감안해도 엄청난 속도였다.
‘중간에 한 번도 한눈을 안 팔았어.’
본래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어 중간에 딴짓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중의 축복』을 사용했고, 축복의 효과로 순수한 4시간을 전부 글쓰기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렇기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연재에 엄청난 도움이 되겠어.’
비단 연재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일에서 도움이 될 정도로 범용성이 넓은 축복이었다.
다만, 이를 제대로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과 LP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LP의 경우는축복을 물 쓰듯 하다가 모자라게 될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때 루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해왔다.
[LP를 수급할 방법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욕망 시스템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약간의 노력만 한다면 충분한 LP의 습득이 가능하답니다.]
“흠. 그래?하긴, 살 뺀다고 노력만 해도 포인트를 줬으니까.비만을 벗어나면 또 주려나?”
[죄송합니다. 그건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쳇.”
아쉬움에 혀를 차는 서주환이었다.
*
휴가를 나온 서주환의 일과는 단조로웠다.
오전에는 공복 상태로 헬스장에 가서 피티를 받고, 점심에는 분식집으로 찾아가 밥을 먹는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서 연재를 위한 글을 쓴다.
이렇듯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이란,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즐거운 것이었다.
연신 싱글거리는 서주환의모습이 의외였던 걸까. 한수아가 그를 보며 말했다.
“환이 오빠.”
“응?”
“오빠 요즘 기분 좋은 일 있어?”
“응? 그건 왜?”
“얼굴이 엄청 좋아보여서. 옛날 오빠 보는 것 같아.”
“옛날의 나?”
“응! 우리 꼬맹이일 때!”
맹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한수아.
서주환은 내심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헛웃음을 흘렸다. 한수아가 꼬맹이란 단어를 쓰니 참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너 지금도 꼬맹인데?”
“…지금 말고 완전 꼬맹이 때 말하는 거잖아.”
“149cm면 지금도 완전 꼬맹이….”
“우씨! 진짜! 그럴 거야?”
“푸하하. 미안, 미안.”
서주환은 웃음을 터뜨리며 한수아에게 사과했다. 하여간 반응이 통통 튀는 녀석이라 놀리는 맛이 있었다.
성을 내던 한수아는 낄낄대는 서주환을 묘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역시 뭔가 변했어.’
이건 19년 차 소꿉친구의 명예를 걸고 확신할수 있었다. 휴가를 나온 서주환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이는 자신과 주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옛날의 장난기 많고 활발했던 오빠의 모습이 조금씩 엿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기에 그늘졌던 얼굴이 다시 밝아진 걸까?
그 순간 한수아는 한 가지 추측이 번뜩 떠올랐다. 그녀가 특유의 강아지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환이 오빠, 혹시 여자친구 생겼어?”
“으잉?”
“여자친구 생겼지! 그래서 그렇게 기분 좋은 거지? 애라 이모! 환이 오빠 여자친구 생겼대요!”
“뭐? 정말이야, 아들?!”
“우리 엄마 아들한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물어보는가 싶더니 답도 듣지 않은 채 이르듯 말하는 한수아다. 그에 서빙을 하고 있던 서애라가 깜짝 놀라고, 막 분식집 안으로 들어오던 서주희가 기함을 한다. 아버지 서재필은 칼을 든 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분식점 안 손님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음은 당연했다.
서주환은 당황해서 무어라 말도 못하고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목이 부러질까 염려 될 정도로 격찬 도리질에 그제야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잠시 후.
“히잉.”
꿀밤을 맞은 한수아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파아… 여자친구 생긴 게 아니었어?”
“아니야, 이 녀석아. 여자친구는 무슨. 아직 전역도 안 했는데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겨?”
“흠. 그럼 뭐지? 환이 오빠는 뭐가 이렇게 즐거운 거지?”
순순히 말하라는 듯 다시금 노려보는 한수아.
그래봤자 타고나길 유순한 눈이라 하나도 안 무서웠지만, 서주환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군인이 휴가 나왔으면 당연히 기분 좋지.”
“그것뿐이야?”
“뭐가 더 필요해? 음. 요즘 운동을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지금 일주일째 피티 받고 있거든. 살 빠진 거 티 안 나?”
“그야 뭐… 확실히 많이 빠지긴 했지? 솔직히 오빠 쪼끔 잘생겨졌어.”
“오, 나 잘생겼어?”
“쪼끔! 그것도 내 눈에만!”
“…야, 알았어. 왜 그러냐. 상처받게.”
“히히. 오빠가 어디서 잘생긴 척하고 다니면 욕먹을까봐 미리 말해준 거야.”
“고오맙다아….”
화기애애하게 말을 주고 받는 둘.
그 모습을 가자미눈으로 지켜보던 서주희는 고개를 내저었다.
‘못 봐주겠네, 진짜.’
잘생겨지긴 개뿔.
한수아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살이 빠지던, 근육이 붙던, 그녀에게 서주환은 그냥 '우리 엄마 아들' 이었다.
‘물론 얼굴이 밝아진 건 맞지만.’
어두웠던 얼굴에서 그늘이 걷혔다. 그것만은 동생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좋아 보였다.
그때, 서주환의 포크가 날아와 접시에 있는 계란을 찍었다.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둔 계란이 오빠 놈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서주희가 도끼눈을 뜨며 꽉 쥔 포크를 들어 올렸다.
“야! 내가 다시 얼굴에 그늘 좀 만들어줘?”
“히익!”
“주희 무서워!”
먹을 때 개는 건드려도 여동생은 건들면 안 되는 법이었다.
*
저녁 시간, 가족끼리 단란하게 모여 티비를 보던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들, 대학은 어떻게 할 거니?"
“네?”
“복학 할 거지?”
그 말을 듣고 서주환은 자신이 휴학 중이었음을 깨달았다. 복학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문제였던지라 그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어… 생각 좀 해보려구요.”
“그러니? 엄마는 더 늦기 전에 복학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1학년인데 더 늦으면 힘들지 않겠니?”
“하하….”
서주환은 스무 살 때, 글을 쓰겠다는 이유로 입학과 동시에 휴학을 했었다.
그렇게 1년간 글을 쓰다가 군에 입대했다.
‘복학해야 되나?’
현재 그의 나이는 스물 셋.
1학년임을 감안하면 당장 복학해도 꽤 늦은 나이다.
‘어떻게 하지?’
사실 돈을 생각하면 대학을 다닐 필요는 없다. 투자해 놓은 비트코인은 지금도 순조롭게 상승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선 듯 자퇴하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방에 들어가서 고민해보자.’
서주환은 먼저 일어나보겠노라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에 서애라는 자신이 괜한 말을 꺼낸 건가 당황했다.
방문이 닫히고, 묵묵히 있던 서재필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뭐라고 하든 지지해줘.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해야지.”
“…그래도 먹고 살려면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이는 어머니로서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리라. 이에 대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서재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주환이 녀석 얼굴 밝아진 것 좀 보게.”
“확실히 밝아지긴 했죠.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군인이란 녀석이 휴가 나와서까지 글을 쓰고 있어. 그만큼 글 쓰는 게 좋단 거겠지.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돼.”
“어머. 정말요?”
“그래.”
“그런데 당신, 주환이가 글 쓰는 거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도피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랬던 거고.”
서주환이 글을 쓴다며 휴학을 했을 때, 서재필은 불같이 화를 냈었다. 소설을 핑계로 방에 틀어박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각과 달리 서주환은 웹소설 연재에 도전했던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대인관계 형성을 두려워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서주환은그때와 달랐다. 서재필은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틀 전의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엊그제 이야기 좀 해볼까 방에 들어갔었는데,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글에 집중하더구만. 방해하기 미안할 정도라서 그냥 나왔었지.”
서재필은 그 날 아들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성장하면서 불운한 일들을 많이 겪은 탓에, 문제를 회피하는 기질이 강해진 아들. 그랬던 아들이 죽을 기세로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집중의 축복 때문이었지만, 단단히 오해한 서재필은 자신의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남편의 단호한 말에 설득된 걸까. 이내 서애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뭘 어쩌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어. 요즘은 대학 안 나와도 다 먹고 산다니까. 우리 때랑 시대가 달라졌잖아. 그리고 나중에 정 안 된다 싶으면 분식집이나 물려받으라고 하면 되지.”
“호호. 당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걸 주환이도 알아야 할 텐데.”
“크흠. 괜한 소리 말고.”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는 서재필.
가만히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서주희가 말했다.
“아빠, 그럼 나도 대학 안 가면 안 돼? 분식집 내가 할게.”
그 말을 들은 서애라의 눈썹이 하늘로 올라갔다.
서재필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쌍노무 기지배. 헛소리 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 좀해!”
“아, 엄마는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라면도 똑바로 못 끓이는 기지배가 무슨 분식집을 한다고?”
“치. 엄마도 요리 못하잖아. 요리는 아빠가 하지, 엄마가 하나?”
“아니, 요 년이? 너 모레 보러 간다는 그 콘서트 가지 마. 티켓 값 도로 내놔!”
“에엑?! 그게 뭐야! 너무해! 엄마 바보! 아빠, 도와줘!”
서재필은 다시 한 번 크흠 헛기침을 하며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사랑하는 딸이었지만 아내가 더 무서웠… 아니,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