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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말년 휴가 출발! (14/501)



〈 14화 〉말년 휴가 출발!

말년 휴가를 나가는 날.
서주환은 기상 노래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외박만 해도 빠르게 일어나는 마당에 말년휴가는 오죽할까. 근무를 서고 와서 늦게 잠들었음에도 번쩍 눈이 떠졌다. 재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환복을 마친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가 되어서야 기상송이울려 퍼졌다.
그는 들뜬 얼굴로 당직사관에게 갔다.

“오. 서주환이 
“강철. 제가 첫 번째입니까?”
“그래. 거 빨리도 왔다.”

다른 휴가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빨리 휴가 나가고 싶은 마음은모두가 똑같았다.

“다 병장이구만.  동기 아니냐?”
“맞습니다!”

다른  명이 큰 목소리로대답했다. 그는 두 사람이 동기라는 걸 이제야 떠올렸다. 그리고 추가로 연상되는 기억이 있었다.

‘아, 비트코인!’


이 두 명의 동기는  당시 비트코인 때문에 크게 손해를 봤었다. 부대 내에서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똑똑히 기억이 났다.

‘그게 이 맘때 떡상했었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는 벌이가 떠올랐다.
당직사관이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병장들이니까 따로 교육은 필요 없지?”
““넵!””

 병장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틀에 박힌 교육 들어서 뭐하나. 병장 짬이면 달달 외우고 있다. 물론 10년 후의 세계에서회귀한 그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그렇다고 교육을 받는 건 사양이었다.
 휴가자는 당직사관과 함께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지통실에는 정소라가 앉아 있었는데, 아까와 달리 쌩쌩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 거무죽죽하게 있던 다크서클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이템 효과가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입 모양으로 ‘고마워’하고 말해왔다.

‘그럼 빨리 보내줘.’


마주 입 모양으로 말하는 서주환. 그를 제외한 휴가자  사람은 긴장 어린 눈으로 정소라를 바라봤다. 정소라는 항상 FM을 추구하는 탓에 휴가를 늦게 보내주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다들 휴가 동안 사고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 봐.”
“…예?”


멍청한 얼굴로 되묻는 휴가자  명.

“넵!”

오직 서주환만이 우렁차게 즉답했다. 다른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 하고 설마 이게 끝이냐는 표정이다.
그런  사람을 향해 정소라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한다.

“뭐해? 너희는 휴가 나가기 싫어?”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힘차게 대답하는 두 사람이었다.
서주환은 웃고 있는 정소라에게 경례 했다.

“강철,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드디어 말년 휴가를 나간다.


*

“잘들 갔다 와라. 사고 치지 말고.”
“예, 감사합니다!”


당직사관이 휴가자들을 내려주며 말했다.
서주환은 경례를 마치고 종합버스터미널로 급히 뛰어갔다. 잊고 있었는데, 이 시간대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빨리 타지 않으면 꼼짝없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떠올려서 다행이었다.
매표 기계 앞에 도착한 서주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오, 이건 또 막아놨네.”

카드 삽입구쪽에 ‘이용불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종이를 떼어내고 카드를 꽂았다.

‘이용불가는 개뿔.’


멀쩡히 잘만된다. 업주들이 카드 수수료를 떼이기 싫어서 개수작을 부려놓은 것에 불과했다.  모르는 이등병이면 모를까 그에게는  통했다.
서주환은 빠르게 티켓을 뽑아 다행히 제 시간에 탑승할 수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오랜만에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떴다. 회귀 전에는 독립하고 나서 몇  동안 집에 가지 않았다. 괜히 찾아갔다가 불운을 옮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번생에는 제대로 효도해야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효도해야 할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말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게 효도라고. 서주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주환의 생각은 달랐다. 건강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이걸 효도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다.


‘일단 돈을 벌자.’


속물 같은 생각일지 몰라도 나이 서른을 넘길 때까지 살아보니 돈 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었다. 물론 돈이 전부는 아닐 테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는,

‘그런 의미에서 일단 계좌에 얼마 들어있는지부터 확인해볼까. 이걸 밑천 삼아서 비트코인으로 불리고, 그 돈으로 나중에 오를 주식들도 좀 사놓고…….’


돈 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


4시간 뒤.
서주환은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야… 이거 추억 돋네.”


동서울터미널에는 언제나 군인들이 보인다.
이등병, 일병 때는 여기서 상, 병장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전역하나한숨을 내쉰다.
상병 쯤 되어 분대장을 달면 초록 견장이 멋있는 건 줄 알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윽고 병장이 되어 전역을 앞두고 이곳에 오면, 다른 군인들이 다 가소롭고 불쌍해 보인다.

“전역하고 보면  다른데 말이지.”

하여간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겪는 감정들이다. 어쩌다보니 다시 그때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동서울터미널 풍경에 추억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는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다시 한 시간을 넘게 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 이번에 내리실 역은 철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전철을 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금 그가 가고 있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그의 발걸음은 시청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로 향했다. 정확히는 고등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서가네 분식>

가게 이름은 아버지와 서주환, 그의 동생은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포함해 가족 모두의 성이 ‘서씨’이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었다.
분식집에 도착하니, 한창 요리를 하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주환은 몇 년 만에 보는 부모님의 얼굴이 반가워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머니, 아버지! 저 왔습니다!”

목소리를 알아들은 서주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아,아들?”
“주환이냐?”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파를 썰던 아버지, 서재필은 손으로 눈을 비비더니 곧 눈물을 줄줄 흘리시면서 황급히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서애라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들 맞지? 아들이 어떻게 여기 있어?”
“어떻게 있긴요. 휴가 나왔지.”
“아이고, 아들. 휴가 나오면 나온다고 말을 했어야지.”
“어… 지난번에 통화했을 때 말  했던가요?”
“안 했거든요, 아드님?”


그 말에 서주환은 어색하게 웃는얼굴로 눈꼬리를 긁적였다. 깜빡하고 말을 안 한 모양이었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또한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어? 뭐야. 설마 서주환?”
“오. 동생, 잘 지냈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진짜 서주환이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말년 휴가 나왔다.”
“아니, 그건 보면 알지. 그런데 네가 어쩐 일로 여기를…”
“서주희!  엄마가 오빠한테 말 똑바로 하라고 했지!”
“으엑. 그걸 또 들었어요?”

무어라 말하던 서주희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귀를 막았다. 그녀는 대화하던 걸 까먹었는지 투덜대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서주희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여학생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그를 반겨주었다.

“야호! 환이 오빠, 오랜만! 어? 오빠 살 빠졌어? 어떡해. 군대에서 고생 많이 했나 보다!”


서주환은 순간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여학생을 보고 과거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차례 고개를 내젓고 이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그래. 오래만이네 수아. 잘 지냈어?”
“못 지냈어! 이제 고3이라서 너무 힘들어! 히잉.”

한 눈에 봐도 생기발랄함이 느껴지는 이 여학생의 이름은 한수아. 그녀는 친여동생인 서주희보다 더 여동생 같은, 서주환의 유일한 소꿉친구였다.
그리고 소꿉친구임과 동시에,

‘이번에는 죽게 하지 않아.’

그의 가장 괴로운 트라우마이기도 했다.

*


서애라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아들, 왜 옷도 안 갈아입고 왔어?”
“어머니랑 아버지 보고 싶어서 왔죠.”
“어머?”

넉살 좋은 서주환의 대답에 놀란 듯 눈을 깜빡이는 서애라. 평소 아들이 하던 말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본래그녀의 아들은 다소 차갑고 딱딱한 말투를 구사했었다. 한데 이렇게 다정한 말이라니? 서주환이 회귀했다는 걸 모르는그녀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반면 옆에 있던 서주희는 못  걸 봤다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너  잘못 먹었어?”
“올. 환이 오빠가 스윙해졌어.”
“수아야, 스윙이 아니라 스윗.”
“앗. 그렇게도 말하지.”


에헤헤 헤픈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한수아다.
서주환은 배를 두손으로 부여잡으며 말했다.

“바로 여기로 오느라 밥도  먹어서 배고파 죽겠어요. 밥 좀 주세요, 어머니.”


그 말에 또다시 눈을 휘둥그레 뜨는 서애라. 오늘은 그녀의 이마에 여러 번 주름이 지는 날인 듯 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서주희와 한수아도 놀랍다는  말한다.


“뭐야. 배 많이 고팠나 보네? 분식 싫다더니. 엄마, 이 돼지 빨리  주세요.”
“환이 오빠도 드디어 분식의 소중함을 깨달았구나? 내 추천 메뉴는 라볶이야!”

겨우 밥 하나 먹겠다는 데  이상한 반응이다.
서주환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생에 그는 혹여 가게에 피해를 입히면 어쩌나 싶어 얼씬도 안 했었다. 그뿐 아니라 동급생들에게는  분식점이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꼭꼭 숨겼었다.
이 사실을 서주희와 한수아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넉살 좋게 모르는 척 딴청을 부리는 게 참 고마웠다.


“그럼 수아 말대로 라볶이 해주실  있어요? 삶은 계란도  개 얹어서.”
“그럼  모듬 튀김.”
“애라 이모, 저는 오뎅이요. 우리 다 같이 나눠 먹자!”
“그, 그래. 여보! 주환이도 먹는다니까 맛있게해줘요!”

그 말에 아버지인 서재의 어깨가  차례 들썩거리더니, 이내 탁탁 칼질하는 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서주환이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조금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데, 한수아가 말을 걸어왔다.

“환이 오빠,  컸어?”
“응? 아,키. 조금 컸어. 요즘 갑자기 다시 크더라고.”
“역시. 어쩐지 평소보다 올려다보기가 더 힘들더라.”

까치발을 들며 하는 말에 서주희가 딴지를 걸었다.

“응? 우리 수아는 원래 누구든 올려다보기 힘들잖아?”
“우쒸. 그러니까 평소보다 더 힘들다고 했잖아.”
“내말은 더 올릴 각도가 있었냐는 뜻이지.”
“씨잉. 주희 너!”


서주희의 놀림에 째릿 그녀를 노려보는 한수아였지만, 안타깝게도 계란형 얼굴 149cm 단신의 노려봄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 했다. 뱁새가 화를 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서주환은 같이 낄낄거리다가 어떻게 오빠까지 웃을 수 있냐는 듯 노려보는 한수아의 눈빛에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너희는 학교에 왜 온 거야?”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한 말이었는데, 말하고 보니 진짜로 궁금하다. 오늘 날짜는 1월 14일. 아직 겨울방학이 한참이었다.
 질문에 투닥거리던 두 여자가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은 비극이 분명해….”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줬는데 어째서 우리는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걸까?”


얘들이 갑자기 뭔 소리야? 그가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서애라가 호호 웃으며 대신 답해주었다.


“걔네들 올해부터 3학년이잖니. 고삼은 방학중에도 나와서 공부 좀 하래.”
“아, 그래요? 그런데 3학년이라고 그런 강제가 있었나?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는 원하는 사람만 등교해서 공부를 하곤 했었다. 독서실 대신 가는 느낌이랄까. 공부를  하는 학생을 따로 모아서 엘리트  같은 걸 따로 만들었던 것도 같다.
이 역시도 서애라가 답변해주었다.  여동생은 못 들은척 테이블에 축 늘어져 있었다.


“둘 다 파마랑 염색 걸려서 그렇단다. 방학 할 때까지 좀 참으라니까 기어코하더니 딱 걸렸지 뭐니?”
“푸핫. 그런데 그걸 그대로 뒀어요? 학부모가 대신 연락 드려서 말하면 봐줄 텐데.”
“어머? 내가 왜? 가뜩이나 학원도 안 다니고 공부도 안 하는 앤데 방학 중에도 학교 가서 공부한다니까 너무 좋지. 수아네도 똑같더라.”

서주환과 한수아의 부모님은 서로 매우 친하다. 이웃집에 2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살았으니 당연했다. 죽이 잘 맞는 두 학부모의 얄궂은 미소가 선하게 떠올랐다.


“치. 엄마 바보.”
“맞아. 우리 엄마도 바보야.”

테이블에 축 늘어진 채 소곤대는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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